나해 연중 제 32주일 셀모임 자료: 가난한 과부의 헌금

 

연중 제 32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가난한 과부의 헌금


1. 말씀읽기: 마르코 12,38-44


38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 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말씀연구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은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 행동할 사람이 없어집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혹시 저 사람이 잘못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내가 저 사람과 닮지는 않은지…,




38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입법자였습니다. 모세 이후로는 조상들의 전승만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의 관심사는 모세 율법과 아울러 거기서 발전된 전승을 보존하고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율법학자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과 율법에 나타나 있는 하느님을 뜻을 알려 주었습니다.




율법학자 제도는 에스델 시절(기원 전 5세기)의 것인데, 회당에서 율법을 읽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그들이 맡은 소임이었습니다. 이 제도를 유다 사회는 정당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이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율법학자들은 사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유다 국민의 지도자로서, 또 어떤 의미에서는 모세를 이은자들 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모세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위기의 미드라스(해석)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가르치고 그리고 그 가르침을 스스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




히브리인 사이에서는 인사를 받는 사람을 마음과 이마와 입에 새겨 두고 싶다는 그런 뜻으로 깊이 머리를  숙여 절을 하면서 동그라미를 그려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원말은 “라브”(스승), “라삐”(나의 스승), “랏방”(우리의 스승)입니다. 라브는 기원 전 2세기 말, 현재 말하는 박사, 선생 등의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기원 후 1세기 말에는 “라삐”라 하고, 일반적으로 팔레스티나의 선생을 가리켰습니다. 그 무렵 로마 정부가 인정한 유다의 으뜸은 “랏방”이라 불렀습니다.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자리는 나이의 차례에 따라 앉게 정해져 있었으나, 위엄이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 순으로 정해져 있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허영 다툼의 근원 같습니다. 자리 그 자체에 위아래를 정하는 것은 질서를 잡기 위해 당연한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은 명예심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윗자리 다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높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과부들은 힘없음을 상징합니다. 재산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재산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을 율법학자들이 등쳐먹고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를 길게 하는 위선자들에게 엄중한 벌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척 하며, 위선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 돈을 넣었다.


성전 금고 맞은편에 있는 여인의 뜰에는 누구나 다 접근할 수가 있었는데 그 곳에는 나팔 모양으로 된 열세 개의 헌금궤가 있었습니다. 이 궤들은 율법 규정에 따른 봉헌물과 자발적으로 하는 봉헌물을 넣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얼마나 되며  또 무엇을 위한 헌금인지를 조사하는 당번사제에게 먼저 그 돈을 주었습니다.


사제: 어느 곳에 쓰일 헌금을 얼마나 내시겠습니까?


봉헌자: 사제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100만원!” “100만원”을 냅니다…(거들먹..거들먹….)


그러면  사제는 액수를 검사한 다음 각각  정해진 목적에 따라 놓여져 있는 합당한 궤를 지적해 주었습니다. 


사제: 저 두 번째 헌금궤에 넣어 주시지요.


봉헌자: 에헴. 그러시지요.


이렇게 하면 성당 헌금은 좀 올라가겠지만 사제들 참 힘들겠는데요….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과부의 헌금. 언제 들어도 부끄러운 이야기 입니다. 많이 번 사람들이 많이 낼 것 같지만, 많이 번 사람일수록 많이 낸 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이 번 사람들이 더 많은 것에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은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똑같습니다. 오늘 과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것을 나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덜 하면 좋겠습니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무일푼의 그녀가 렙톤 두 닢을 봉헌하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큰 돈을 바친 부자의 헌금에 과부의 두 닢을 비교하시면서 과부 쪽이 더 많은 돈을 넣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실제로 그녀는 얼마 안 되는 것을 넣었지만 그의 가난과 사랑에 비추어 보면 보다 큰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렙톤 두개를 넣는 과부의 마음 어떠했을까요? 그것을 받아든 사제가 이 여인은 렙톤 두개를 넣는다고 소리쳤을 텐데...(아무 데나 넣고 빨리 가쇼…)


하지만 그 여인은 가진 것을 전부 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있는 데서 얼마를 내 놓기는 쉬워도 없는데서 다 내 놓는 다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주일 봉헌금과 교무금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그래서 남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했을지라도


그녀가 하느님 앞에서 떳떳했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기에 그녀는 복된 여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과부의 마음을 몰라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알아주시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 앞에서 떳떳한 것보다는 오히려 하느님 앞에서 떳떳한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을까?


“이 여인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내일 먹을 것도 생각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일 굶던 말던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모두 바쳐야 한다는 것이냐? 집 팔고 땅 팔아서 다 바쳐야 하느냐? 그것이 사이비 종교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




바치기 싫은 사람이 꼭 그런 핑계를 댑니다. 주제 파악을 못하는 사람들이 꼭 딴 소리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가진 것을 다 바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비록 렙톤 두개라 할지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그녀의 사랑을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는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과부의 헌금을 바라보면서 내가 가진 것 중에 봉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봉헌할 때 아까워한 적은 없는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봉헌을 하지는 않았는지도 생각해 봅시다.




2.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남에게 빌려 주기 싫은 것의 목록을 작성해 봅시다. 빌려 줘도 되는데 안 빌려 주고 있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고, 그것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도 생각해 봅시다.




4. 공지사항


1. 친구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 가져 주기


2. 말씀으로 기도하기를 좀더 충실하게, 셀 모임 때 마음을 좀더 열기


3. 선생님들께 한 주일에 한번은 연락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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