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1. 말씀읽기: 요한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하루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삼위일체 교리를 어떻게 하면 잘 깨닫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하여 고민하면서 바닷가를 산책하고 계셨습니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쪽 구석 백사장에서 아이들 세 명이 역시 하루 종일 모래성을 쌓아 놓고 작은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부으며 놀고 있었습니다. 성인께서 가까이 가서 “애들아, 너희들 무엇을 하고 있어?\”라고 물으시자, 어린이들은 “저희들은 저 바닷물을 이 모래성에 모두 퍼 담으려고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성인께서 웃으시며 다시 “애들아, 너희가 죽을 때까지 해도 그 일은 못 끝낼 것이야!\”라고 하시자, 아이들은 “그래도 선생님께서 삼위일체교리를 깨닫는 일보다 더 쉬울 거예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바닷가에서 돌아와 5시간 동안 삼위일체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자, 저는 지금까지 인간의 말을 총동원하여 성부, 성자, 성령이 한분의 하느님이라는 삼위일체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마지막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이것입니다. ‘삼위일체는 신비다.’”
삼위일체는 신비입니다. 믿으세요.
삼위일체 교리는 계시를 떠나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창조된 사물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어느 것도 이 신비를 적당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의 신비로서, 계시로서 알려지는 진리입니다. 계시를 떠나서는 인식이 불가능한 진리이기에 나의 이성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가 되었다 하더라도 삼위일체의 신비가 남김없이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삼위일체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믿고 고백하는 것 뿐 입니다. 그래서 나는 큰 소리로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분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역사 안에서 만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구원의 역사는 한분이신 하느님, 즉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당신을 계시하시고, 하느님과 등진 사람들을 당신께로 돌아서게 하시고, 당신과 일치시키는 역사입니다.
성부께서는 인류 구원의 영원한 계획을 세우시고, 성자를 지상에 파견하시어 인류를 구원하게 하셨고, 성령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성화시켜 이 영원한 계획을 완성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에 의하여 모인 백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미사 시작 때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신약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험에서 그 사건의 계시를 절정으로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령을 체험하면서 성령을 하느님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즉 계시를 통하여 삼위의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는 있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이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너무나도 큰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제 나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믿음을 통해서 지금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이 다음에 돈 벌면 행복하게 해 줄게!”하지만 매일 폭력과 온갖 모욕을 준다면 과연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일까요?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행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지금 시작되어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은 꽃을 피워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삶,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정적인 생각들, 비교하는 생각들, 자기를 보잘 것 없이 여기는 생각들이나 행동들, 남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생각들과 행동들, 교만하거나 허영심 가득한 행동들,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그래야 믿는 사람처럼 살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지금부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믿고 따르는 주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주님께서”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가장 기쁨을 주는 말씀은 “누구나”입니다. 믿기만 하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단죄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나를 극진히 사랑하셔서”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운 심판자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께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자매가 병으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병상에 누운 그녀는 한 가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병든 자신을 두고 떠나 갈까봐 두려웠습니다. 남편은 정성스럽게 그녀를 간호했지만 그녀는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약을 지어다주면 먹는 체 하고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혹시 남편이 잘못된 약을 주어 자리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약을 먹지 않으니 더욱 허약해지고, 급기야 남편은 본당 신부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녀에게 종부성사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당신부님은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꺼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누운 자리 밑에서 약을 한 봉지 꺼내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서 먹지 못했어요.”라고 말씀을 드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조용히 그 약봉지를 가방 속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부터 남편이 챙겨주는 약을 꼬박 꼬박 드세요. 남편은 당신을 사랑한답니다. 자매님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는지 몰라요. 자매님이 마음을 여신다면 남편의 기도의 힘을 느끼실 거예요.”
그로부터 두 달 후 그녀는 남편과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성당에 나왔습니다. 그녀는 신부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남편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어요. 느끼고 있어요. 그 사랑이 저를 이렇게 낳게 해 주었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쏟아지는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과 그 사랑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응답하여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인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한 가득 받고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활짝 핀 아름다운 꽃처럼,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나무처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이미 시작하여 맛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이들은, 그래서 예수님께 등을 돌린 사람들은 사랑을 거부했기에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정성스럽게 지어온 약을 먹지 않아서 더욱 악화되어 가는 사람처럼, 그 약을 먹으면 되는데 불신하여 약을 버렸기에 치유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인다면, 그 안에서 사랑을 느끼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그 약의 효과와 성분을 모두 분석하고, 알아야 만이 먹어서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병에 맞는 약이라면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하고 믿으려하면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믿으면 오히려 이해하기가 쉬워집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이해할 수 있고, 믿어야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성부 하느님!, 나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이 되셨고,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성자 하느님! 그리고 나를 이끄시어 믿음에로 초대하시며, 하느님 나라로 향하도록 몸소 보호하시는 성령 하느님! 삼위일체의 신비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가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사랑 받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나도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느끼고 살아갑니까? 어떤 때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느낍니까?
③ 믿는다는 것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믿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4. 공지사항
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고백하기
② 하느님의 신비를 묵상해보기
③ 주님의 구원에 감사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삼위일체 대축일
1. 말씀읽기: 요한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하루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삼위일체 교리를 어떻게 하면 잘 깨닫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하여 고민하면서 바닷가를 산책하고 계셨습니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쪽 구석 백사장에서 아이들 세 명이 역시 하루 종일 모래성을 쌓아 놓고 작은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부으며 놀고 있었습니다. 성인께서 가까이 가서 “애들아, 너희들 무엇을 하고 있어?”라고 물으시자, 어린이들은 “저희들은 저 바닷물을 이 모래성에 모두 퍼 담으려고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성인께서 웃으시며 다시 “애들아, 너희가 죽을 때까지 해도 그 일은 못 끝낼 것이야!”라고 하시자, 아이들은 “그래도 선생님께서 삼위일체교리를 깨닫는 일보다 더 쉬울 거예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바닷가에서 돌아와 5시간 동안 삼위일체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자, 저는 지금까지 인간의 말을 총동원하여 성부, 성자, 성령이 한분의 하느님이라는 삼위일체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마지막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이것입니다. ‘삼위일체는 신비다.’”
삼위일체는 신비입니다. 믿으세요.
삼위일체 교리는 계시를 떠나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창조된 사물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어느 것도 이 신비를 적당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의 신비로서, 계시로서 알려지는 진리입니다. 계시를 떠나서는 인식이 불가능한 진리이기에 나의 이성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가 되었다 하더라도 삼위일체의 신비가 남김없이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삼위일체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믿고 고백하는 것 뿐 입니다. 그래서 나는 큰 소리로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분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역사 안에서 만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구원의 역사는 한분이신 하느님, 즉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당신을 계시하시고, 하느님과 등진 사람들을 당신께로 돌아서게 하시고, 당신과 일치시키는 역사입니다.
성부께서는 인류 구원의 영원한 계획을 세우시고, 성자를 지상에 파견하시어 인류를 구원하게 하셨고, 성령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성화시켜 이 영원한 계획을 완성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에 의하여 모인 백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미사 시작 때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신약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험에서 그 사건의 계시를 절정으로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령을 체험하면서 성령을 하느님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즉 계시를 통하여 삼위의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는 있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이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너무나도 큰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제 나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믿음을 통해서 지금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이 다음에 돈 벌면 행복하게 해 줄게!”하지만 매일 폭력과 온갖 모욕을 준다면 과연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일까요?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행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지금 시작되어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은 꽃을 피워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삶,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정적인 생각들, 비교하는 생각들, 자기를 보잘 것 없이 여기는 생각들이나 행동들, 남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생각들과 행동들, 교만하거나 허영심 가득한 행동들,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그래야 믿는 사람처럼 살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지금부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믿고 따르는 주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주님께서”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가장 기쁨을 주는 말씀은 “누구나”입니다. 믿기만 하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단죄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나를 극진히 사랑하셔서”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운 심판자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께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자매가 병으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병상에 누운 그녀는 한 가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병든 자신을 두고 떠나 갈까봐 두려웠습니다. 남편은 정성스럽게 그녀를 간호했지만 그녀는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약을 지어다주면 먹는 체 하고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혹시 남편이 잘못된 약을 주어 자리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약을 먹지 않으니 더욱 허약해지고, 급기야 남편은 본당 신부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녀에게 종부성사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당신부님은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꺼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누운 자리 밑에서 약을 한 봉지 꺼내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서 먹지 못했어요.”라고 말씀을 드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조용히 그 약봉지를 가방 속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부터 남편이 챙겨주는 약을 꼬박 꼬박 드세요. 남편은 당신을 사랑한답니다. 자매님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는지 몰라요. 자매님이 마음을 여신다면 남편의 기도의 힘을 느끼실 거예요.”
그로부터 두 달 후 그녀는 남편과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성당에 나왔습니다. 그녀는 신부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남편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어요. 느끼고 있어요. 그 사랑이 저를 이렇게 낳게 해 주었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쏟아지는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과 그 사랑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응답하여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인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한 가득 받고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활짝 핀 아름다운 꽃처럼,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나무처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이미 시작하여 맛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이들은, 그래서 예수님께 등을 돌린 사람들은 사랑을 거부했기에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정성스럽게 지어온 약을 먹지 않아서 더욱 악화되어 가는 사람처럼, 그 약을 먹으면 되는데 불신하여 약을 버렸기에 치유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인다면, 그 안에서 사랑을 느끼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그 약의 효과와 성분을 모두 분석하고, 알아야 만이 먹어서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병에 맞는 약이라면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하고 믿으려하면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믿으면 오히려 이해하기가 쉬워집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이해할 수 있고, 믿어야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성부 하느님!, 나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이 되셨고,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성자 하느님! 그리고 나를 이끄시어 믿음에로 초대하시며, 하느님 나라로 향하도록 몸소 보호하시는 성령 하느님! 삼위일체의 신비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가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사랑 받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나도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느끼고 살아갑니까? 어떤 때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느낍니까?
③ 믿는다는 것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믿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4. 공지사항
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고백하기
② 하느님의 신비를 묵상해보기
③ 주님의 구원에 감사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느끼고 살아갑니까? 어떤 때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느낍니까?
– 신앙생활을 한 후로는 내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가 그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그들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 믿지 않던 내가 신앙을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느끼는 증거입니다.
– 배우자가 변화된 것이 기쁨입니다. 함께 기도하려 하고, 술 담배를 끊었으며, 매일 미사에 참례하려 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 기도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 행복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못하는 것들도 많기에 두려움도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믿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 형제자매들의 뒤통수 안 때리기
– 내어 주면서 주님을 따르기
–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주님 때문에 나사가 빠지면 좀더 웃고, 먼저 인사하며, 덜 계산하고, 덜 미워하게 됩니다.
– 의무감으로라도 성당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틀이 있어야 그 틀에 은총이 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은총을 담을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무감으로라도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때 신앙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아무리 믿는 사이라 할지라도 비밀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을 하게 되면 그도 죄책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부정적인 생각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버려야 믿는 사람처럼 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하는 기도와 봉사가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앙인이라면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