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1. 말씀읽기: 요한 6,51-59
2.말씀연구
성체와 성혈은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성체와 성혈을 상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성체와 성혈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내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던 간에 말입니다.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전에 중고등부 지구 학생 체육대회 때 있었던 일입니다. 마침 그날이 성체와 성혈 대축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성체가 예수님의 몸임을 믿습니까?”
손드는 학생들은 많지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결국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 뵙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못 느끼고, 못 알아보는 것입니다.
어른 신자 중에도 “성체가 상징 아니었습니까?” 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은 계속 생길 것입니다. 볼 눈이 없는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 있는 빵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그 빵으로 힘을 얻어 구원을 향해 한발자국씩 나아갑니다. 성체로 힘을 얻은 신앙인들은 그렇게 생명을 향해,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따졌습니다.
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유다인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피를 마신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 금지되어 있었고,, 더 나아가 사람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살을 먹는 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결국 그를 죽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말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다인들은 이해를 못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 때 밀떡과 포도주의 형상을 통하여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물론 영성체를 하는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코기를 먹으라고 주면 이런 반응이 나오겠지요.
“그리스도의 몸!”
“으아~악”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1264년 독일 신부님 하나가 로마를 순례하던 중, 「보르세나」에 들러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과연 밀떡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 걸까? 계시지도 않는 예수님을 계신다고 생각하며 헛수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사 예식을 거행하는 중에, 갑자기 밀떡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밀떡이 살덩어리로 변하는가 하면, 포도주 잔에 있던 포도주가 피가 되어 잔에 흘러 넘치고 있었다. 당시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이 사건을 기념하여 교회 축일로 지정하였다,
예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먹도록 내어주는 이 빵은 바로 예수님 자신의 몸으로써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참으로 성체 안에서 만나고 받아들여져야 할 분이시기에 이에 그들의 어떠한 오해도 바로잡아 주시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생명을 얻고 싶으면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된다고 되풀이하여 더욱 강조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합당한 예복(혼인잔치의 비유)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장례미사 때 듣는 말씀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예수님처럼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을 얻는 에너지원이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성체로 힘을 얻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체를 힘을 내서 예수님께로 나아갈 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왜 첫영성체 해야만 성체를 영할 수가 있나요? 이 말씀대로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신께로 오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초자연적인 양식을 영하는 데에는 적어도 어느 정도의 이성의 분별과 신심과 존경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첫영성체 교리를 통해서 믿음을 준비시키고, 첫 고백을 통해서 합당한 자세를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어린아이들에게 돈을 주어서는 안 됩니까?”라는 질문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가 돈의 가치를 알지도 못할 뿐더러, 쓸 줄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에게 돈을 안 주지요. 용돈을 주기 시작하는 것도,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돈을 쓸 줄도 알아야 주지 않습니까?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자동차가 연료가 없으면 멈춰 버립니다. 생명의 빵도 그렇게 되었으면 쉽게 이해할 텐데… 미사 참례 한번 안하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성체 한달 영하지 않으면 말을 못하게 되고, 기도 안하면 숨이 막혀 버리고… 그렇게 되면 잊어버리지도 않고, 안 찾을 래야 안 찾을 수가 없을텐데….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난 벌써 걷지도 못하고 숨이 막혀 죽어 버렸을지도 모르지요…^*^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어렵게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죽음으로 나오게 된 “보상금(위로금)”으로 작은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일구어서 두 가족이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외아들은 어머니의 마음대로 커 주지 않았습니다. 삐딱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들은 어머니 몰래 작은 밭을 팔았습니다. 도박 빚 때문에 밭을 몰래 팔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그 밭이 어떤 밭인데, 그 밭은 네 애비 피여! 그 밭이 바로 네 애비 몸이란 말여! 어떻게 그것을 팔수가 있냐! 이놈아!~”
아버지의 목숨이 밭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머니가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아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던 아들은 그 밭이 그저 밭일 뿐 이었던 것입니다.
성체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빵과 포도주만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이 없다면 밀떡과 포도주밖에는 안 보일 것입니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성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오신 분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체를 영한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닭장 안에서 독수리를 두려워하는 병아리인줄 알고 있는 독수리와 같습니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인간의 생명, 인간 전체를 나타내는 통상적인 히브리적 표현은 살과 피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만나를 말씀하십니다. 만나를 먹은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몸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시나이 산에서의 계약을 상기할 것입니다. 야훼께서 맺으시고자 원하셨던 계약의 조건을 이스라엘 백성이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 후 모세는 희생 제물로 바쳐졌던 황소의 피를 받아, 반은 제단 위에 붓고(야훼를 대신하는 제단), 반은 이스라엘 백성 위에 뿌려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계약의 성립을 표현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몸과 피는 이스라엘 조상들이 맺었던 계약이나, 이스라엘 조상들이 먹었던 빵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몸과 피는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성체를 영하는 나는 예수님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 내가 성체를 모실 때와 모시지 않을 때의 차이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성체를 모시면 내 삶이 달라집니까? 성체를 모신 힘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2. 나는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왜 믿고, 믿지 못하겠다면 왜 믿지 못하고 있습니까?
포
4. 공지사항
① 기도하기 ② 친구들에게 내가 신앙인이라 것 보여 주기 ③ 공부 열심히 하기
④ 선생님들께 잘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1. 말씀읽기: 요한 6,51-59
2.말씀연구
성체와 성혈은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성체와 성혈을 상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성체와 성혈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내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던 간에 말입니다.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전에 중고등부 지구 학생 체육대회 때 있었던 일입니다. 마침 그날이 성체와 성혈 대축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성체가 예수님의 몸임을 믿습니까?”
손드는 학생들은 많지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결국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 뵙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못 느끼고, 못 알아보는 것입니다.
어른 신자 중에도 “성체가 상징 아니었습니까?” 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은 계속 생길 것입니다. 볼 눈이 없는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 있는 빵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그 빵으로 힘을 얻어 구원을 향해 한발자국씩 나아갑니다. 성체로 힘을 얻은 신앙인들은 그렇게 생명을 향해,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따졌습니다.
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유다인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피를 마신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 금지되어 있었고,, 더 나아가 사람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살을 먹는 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결국 그를 죽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말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다인들은 이해를 못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 때 밀떡과 포도주의 형상을 통하여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물론 영성체를 하는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코기를 먹으라고 주면 이런 반응이 나오겠지요.
“그리스도의 몸!”
“으아~악”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1264년 독일 신부님 하나가 로마를 순례하던 중, 「보르세나」에 들러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과연 밀떡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 걸까? 계시지도 않는 예수님을 계신다고 생각하며 헛수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사 예식을 거행하는 중에, 갑자기 밀떡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밀떡이 살덩어리로 변하는가 하면, 포도주 잔에 있던 포도주가 피가 되어 잔에 흘러 넘치고 있었다. 당시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이 사건을 기념하여 교회 축일로 지정하였다,
예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먹도록 내어주는 이 빵은 바로 예수님 자신의 몸으로써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참으로 성체 안에서 만나고 받아들여져야 할 분이시기에 이에 그들의 어떠한 오해도 바로잡아 주시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생명을 얻고 싶으면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된다고 되풀이하여 더욱 강조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합당한 예복(혼인잔치의 비유)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장례미사 때 듣는 말씀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예수님처럼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을 얻는 에너지원이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성체로 힘을 얻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체를 힘을 내서 예수님께로 나아갈 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왜 첫영성체 해야만 성체를 영할 수가 있나요? 이 말씀대로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신께로 오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초자연적인 양식을 영하는 데에는 적어도 어느 정도의 이성의 분별과 신심과 존경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첫영성체 교리를 통해서 믿음을 준비시키고, 첫 고백을 통해서 합당한 자세를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어린아이들에게 돈을 주어서는 안 됩니까?”라는 질문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가 돈의 가치를 알지도 못할 뿐더러, 쓸 줄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에게 돈을 안 주지요. 용돈을 주기 시작하는 것도,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돈을 쓸 줄도 알아야 주지 않습니까?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자동차가 연료가 없으면 멈춰 버립니다. 생명의 빵도 그렇게 되었으면 쉽게 이해할 텐데… 미사 참례 한번 안하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성체 한달 영하지 않으면 말을 못하게 되고, 기도 안하면 숨이 막혀 버리고… 그렇게 되면 잊어버리지도 않고, 안 찾을 래야 안 찾을 수가 없을텐데….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난 벌써 걷지도 못하고 숨이 막혀 죽어 버렸을지도 모르지요…^*^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어렵게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죽음으로 나오게 된 “보상금(위로금)”으로 작은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일구어서 두 가족이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외아들은 어머니의 마음대로 커 주지 않았습니다. 삐딱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들은 어머니 몰래 작은 밭을 팔았습니다. 도박 빚 때문에 밭을 몰래 팔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그 밭이 어떤 밭인데, 그 밭은 네 애비 피여! 그 밭이 바로 네 애비 몸이란 말여! 어떻게 그것을 팔수가 있냐! 이놈아!~”
아버지의 목숨이 밭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머니가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아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던 아들은 그 밭이 그저 밭일 뿐 이었던 것입니다.
성체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빵과 포도주만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이 없다면 밀떡과 포도주밖에는 안 보일 것입니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성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오신 분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체를 영한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닭장 안에서 독수리를 두려워하는 병아리인줄 알고 있는 독수리와 같습니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인간의 생명, 인간 전체를 나타내는 통상적인 히브리적 표현은 살과 피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만나를 말씀하십니다. 만나를 먹은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몸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시나이 산에서의 계약을 상기할 것입니다. 야훼께서 맺으시고자 원하셨던 계약의 조건을 이스라엘 백성이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 후 모세는 희생 제물로 바쳐졌던 황소의 피를 받아, 반은 제단 위에 붓고(야훼를 대신하는 제단), 반은 이스라엘 백성 위에 뿌려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계약의 성립을 표현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몸과 피는 이스라엘 조상들이 맺었던 계약이나, 이스라엘 조상들이 먹었던 빵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몸과 피는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성체를 영하는 나는 예수님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 내가 성체를 모실 때와 모시지 않을 때의 차이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성체를 모시면 내 삶이 달라집니까? 성체를 모신 힘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2. 나는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왜 믿고, 믿지 못하겠다면 왜 믿지 못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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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지사항
① 기도하기 ② 친구들에게 내가 신앙인이라 것 보여 주기 ③ 공부 열심히 하기
④ 선생님들께 잘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