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와 성혈 대축일

 

“성체와 성혈“


하루는 안토니오 성인이 강론을 하는데, 성당 뒷좌석에 오랫동안 냉담하다가 나와 앉아 있는 귀족 한사람을 보고 그에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내용은 당나귀 한 마리를 3일 동안 굶긴 뒤, 당나귀가 좋아하는 당근을 오른쪽에, 그리고 축성된 성체를 왼쪽에 놓고 당나귀가 어느 쪽을 먼저 선택하는가 하는 내기였다.


냉담 중에 있던 귀족은 안토니오 성인의 내기를 받아들이며 말하기를


“신부님이 당나귀를 3일 동안 성체 있는 곳으로 가도록 교육시킬지 모르니, 제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라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3일 후에 동네 사람들이 당나귀가 하는 짓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귀족은 3일 동안 굶긴 당나귀를 끌고 나오며 의기양양하였고,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당나귀가 어떻게 행동할까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 앞으로 나온 당나귀는 두리번거리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당근이 수북하게 쌓인 것을 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를 돌려 성체가 있는 곳으로 가더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며 놀라워했고, 당나귀는 당근 있는 곳으로 천천히 가서는 배고픔을 채웠다.


당나귀조차도 성체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임을 알거늘…,




1. 성체와 성혈은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성체와 성혈을 상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던 간에,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몸과 피입니다.


 전에 중고등부 지구 학생 체육대회 때 있었던 일입니다. 마침 그날이 성체와 성혈 대축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성체가 예수님의 몸임을 믿습니까? 손드는 학생들은 많지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결국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 뵙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못 느끼고, 못 알아보는 것입니다.




2. 1264년 독일 신부님 하나가 로마를 순례하던 중, 「보르세나」에 들러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과연 밀떡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 걸까? 계시지도 않는 예수님을 계신다고 생각하며 헛수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사 예식을 거행하는 중에, 갑자기 밀떡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밀떡이 살덩어리로 변하는가 하면, 포도주 잔에 있던 포도주가 피가 되어 잔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당시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이 사건을 기념하여 교회 축일로 지정하였다,



3. 아이들의 첫영성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로 오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초자연적인 양식을 영하는 데에는 적어도 어느 정도의 이성의 분별과 신심과 존경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어린아이들에게 돈을 주어서는 안 됩니까?”라는 질문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가 돈의 가치를 알지도 못할 뿐더러, 쓸 줄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에게 돈을 안 주지요. 용돈을 주기 시작하는 것도,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돈을 쓸 줄도 알아야 주지 않습니까?




4. 그리스도의 살은 참된 양식이며, 그분의 피도 참된 음료입니다. 그리고 성체와 성혈을 영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그리스도 또한 그 사람 안에 머무십니다. 그리스도를 영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 채워지고, 그분에게서 샘솟는 생명의 물을 풍요롭게 마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사랑을 받고 있는 친구처럼 성체를 영한 사람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어렵게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죽음으로 나오게 된 “보상금(위로금)”으로 작은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일구어서 두 가족이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외아들은 어머니의 마음대로 커 주지 않았습니다. 삐딱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들은 어머니 몰래 작은 밭을 팔았습니다. 도박 빚 때문에 밭을 몰래 팔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그 밭이 어떤 밭인데, 그 밭은 네 애비 피여! 그 밭이 바로 네 애비 몸이란 말여! 어떻게 그것을 팔수가 있냐! 이놈아!~”


아버지의 목숨이 밭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머니가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아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던 아들은 그 밭이 그저 밭일 뿐 이었던 것입니다.




 성체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빵과 포도주만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이 없다면 밀떡과 포도주밖에는 안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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