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위령의 날

 

행복한 사람들(참 행복)

1. 말씀읽기: 마태오 5,1-12ㄴ

1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서 모든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은 11월 2일 위령의 날입니다. 이날은 추사이망 첨례(追思已亡 瞻禮)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추사이망이라는 것은 이미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돕는 것을 말합니다. 죽은 이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공로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없기에 위령의 날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여, 그들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날인 것입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이 기도가 죽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모든 성인의 통공”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된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의 주인이시며 시작도 끝도 없으신 하느님 앞에서 시간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도 이 공동체의 일원이며 살아 있는 우리들도 이 공동체의 동일한 구성원입니다. 즉 천상교회와 지상교회는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는 유대감 안에서 죽음으로 연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우리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에 이미 들어가 있는 성인들은 이 세상에서의 순례를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하느님께 간구해 주실 수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나아감으로 보고 있기에 다른 이들보다도 죽음과 친숙한 편입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을 자주 기억합니다. 부모님의 기일에는 미사를 봉헌하며 행복과 광명과 평화의 나라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며, 상갓집에는 반드시 찾아가 연도를 바치며 영원한 행복을 빌어 줍니다. 또한 매 식사 후 기도를 바칠 때마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하며 기도합니다. 또한 제일 많이 하는 기도인 묵주기도를 마치며 연옥 영혼 중에서도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이처럼 가톨릭 신앙인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선행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보다 먼저가신 연령들을 위하여 이 한달 열심히 기도해 줍시다.



1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참된 행복은 무엇일까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내가 기쁘게 해 드려야 할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는 것. 이것이 행복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행복입니다.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멸망해 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무능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동전 두 닢을 성전에 봉헌한 것은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기에 하느님께 무엇인가 하나를 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하루의 양식을 봉헌한 것입니다.

또한 내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음도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내 것 만을 생각하는 사람 안에는 하느님께서 자리하실 공간이 없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하늘나라가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바로 그런 사람의 것입니다. 내 것을 내 놓을 수 있을 때, 그것으로 덕을 쌓고, 하느님께는 기쁨이 되며, 나에게는 행복이 밀려옵니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육체나 영혼에 있는 여러 가지 고통을 참아 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슬픔이 너무도 커서 마치 어머니가 죽어서 우는 것과 같이 그렇게 슬피 운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슬픔, 가혹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슬픔, 그리고 잔인한 운명에 대한 슬픔, 그리고 이 눈물에는 유혹이나 죄를 용서받은 것 때문에 흐느끼는 슬픔의 눈물(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뒤 자기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신앙을 고백하는 형태가 바로 통곡)도 엉켜 있을 것입니다. 슬퍼하는 사람을 예로니모와 레오는 “남의 죄를 슬퍼하는 사람, 자기 죄를 슬퍼하는 사람(암브로시오)”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메시아가 가져다주는 행복 때문만이 아니라, 그 슬픔의 교훈으로 현세를 떠나 참된 행복을 찾으려고 하며, 그리스도교의 희망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근심스러운 눈초리와 우울한 얼굴과 절망스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고통 속에서도 마음을 하느님께 열어 놓고 예수님께 위로를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괴로움과 역경이라는 인생의 학교에서, 생명의 가치를 배운 사람은 정녕 행복하리라”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온유한 사람들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입니다. 마음에 욕심이 없을 때 온화해 질 수 있고, 부드러워질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검소하고 가난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완전히 의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압박하거나 착취하지 않으며, 복수를 하거나 폭력으로 목적을 성취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사회적 불의를 증오하시고 오만한 박해자를 단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옳은 일을 하기 위하여 기회를 엿본다는 것입니다. 이 옳은 일은 바로 하느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가난을 감수하고, 고통을 참으며 역경 가운데에서도 인내하는 온유한 사람은 하느님의 뜻에 따르며 그분의 섭리와 정의의 질서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자비는 예수님 말씀과 삶의 핵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 라고 하셨고, 율법 가르침의 핵심은 바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도 하느님의 자비를 바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하느님께 자비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 자비를 행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마태18,30)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유다인들은 정결을 강조했는데 깨끗하다는 것은 유다인에게는 중요한 삶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밥을 먹을 때도 손을 씻고 먹었습니다. 깨끗해지는 방법은 더럽혀진 몸을 예식을 통해서 깨끗해지는 것이 있고, 마음이 더럽혀진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의 마음은 항상 그 존재의 기초를 말하는데 인간 존재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이 마음이라고 했고, 이 마음에서부터 하느님을 믿고 안 믿고, 선과 악이 나옵니다. 따라서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을 향한 순진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하느님의 일을 볼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뵐 수 있는 것입니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평화는 최고의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즉 하느님의 모든 축복이 평화에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화 있기를” 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사도 활동의 특별한 임무인 것이며, 그것은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화해시키는 임무이며, 화해의 이치를 전하는 임무(2코린토5,18-21)입니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박해는 구약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보편적인 유다인들의 행복관이었고, 박해받는 자는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자라는 사실이 예수님 당시 널리 유포되어 강조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박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우리는 박해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예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에 대한 박해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신앙인들이 악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기에 오는 것들입니다. “터무니없는 말로 갖는 비난을 다 받게 된다는 것” 그것은 중상모략입니다. 영혼을 지닌 사람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 중상모략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느님이시고 사람이시며 그 명예가 더럽혀지는 일을 참아 받으신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러 모욕, 이런 고통도 참아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참된 행복은 무엇입니까?



②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 중에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4. 공지사항

① 학교 생활 열심히 하기 ② 부모님과 하루 30분 이상 대화하기

③ 학교에서 식사전후기도 바치기 ④ 아침 저녁 기도 하기(짧게라도)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가해(말씀과놀이,2),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가해 위령의 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행복한 사람들(참 행복)

    1. 말씀읽기: 마태오 5,1-12ㄴ

    1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서 모든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은 11월 2일 위령의 날입니다. 이날은 추사이망 첨례(追思已亡 瞻禮)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추사이망이라는 것은 이미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돕는 것을 말합니다. 죽은 이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공로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없기에 위령의 날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여, 그들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날인 것입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이 기도가 죽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모든 성인의 통공”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된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의 주인이시며 시작도 끝도 없으신 하느님 앞에서 시간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도 이 공동체의 일원이며 살아 있는 우리들도 이 공동체의 동일한 구성원입니다. 즉 천상교회와 지상교회는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는 유대감 안에서 죽음으로 연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우리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에 이미 들어가 있는 성인들은 이 세상에서의 순례를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하느님께 간구해 주실 수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나아감으로 보고 있기에 다른 이들보다도 죽음과 친숙한 편입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을 자주 기억합니다. 부모님의 기일에는 미사를 봉헌하며 행복과 광명과 평화의 나라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며, 상갓집에는 반드시 찾아가 연도를 바치며 영원한 행복을 빌어 줍니다. 또한 매 식사 후 기도를 바칠 때마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하며 기도합니다. 또한 제일 많이 하는 기도인 묵주기도를 마치며 연옥 영혼 중에서도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이처럼 가톨릭 신앙인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선행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보다 먼저가신 연령들을 위하여 이 한달 열심히 기도해 줍시다.


    1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참된 행복은 무엇일까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내가 기쁘게 해 드려야 할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는 것. 이것이 행복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행복입니다.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멸망해 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무능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동전 두 닢을 성전에 봉헌한 것은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기에 하느님께 무엇인가 하나를 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하루의 양식을 봉헌한 것입니다.

    또한 내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음도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내 것 만을 생각하는 사람 안에는 하느님께서 자리하실 공간이 없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하늘나라가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바로 그런 사람의 것입니다. 내 것을 내 놓을 수 있을 때, 그것으로 덕을 쌓고, 하느님께는 기쁨이 되며, 나에게는 행복이 밀려옵니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육체나 영혼에 있는 여러 가지 고통을 참아 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슬픔이 너무도 커서 마치 어머니가 죽어서 우는 것과 같이 그렇게 슬피 운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슬픔, 가혹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슬픔, 그리고 잔인한 운명에 대한 슬픔, 그리고 이 눈물에는 유혹이나 죄를 용서받은 것 때문에 흐느끼는 슬픔의 눈물(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뒤 자기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신앙을 고백하는 형태가 바로 통곡)도 엉켜 있을 것입니다. 슬퍼하는 사람을 예로니모와 레오는 “남의 죄를 슬퍼하는 사람, 자기 죄를 슬퍼하는 사람(암브로시오)”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메시아가 가져다주는 행복 때문만이 아니라, 그 슬픔의 교훈으로 현세를 떠나 참된 행복을 찾으려고 하며, 그리스도교의 희망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근심스러운 눈초리와 우울한 얼굴과 절망스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고통 속에서도 마음을 하느님께 열어 놓고 예수님께 위로를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괴로움과 역경이라는 인생의 학교에서, 생명의 가치를 배운 사람은 정녕 행복하리라”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온유한 사람들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입니다. 마음에 욕심이 없을 때 온화해 질 수 있고, 부드러워질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검소하고 가난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완전히 의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압박하거나 착취하지 않으며, 복수를 하거나 폭력으로 목적을 성취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사회적 불의를 증오하시고 오만한 박해자를 단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옳은 일을 하기 위하여 기회를 엿본다는 것입니다. 이 옳은 일은 바로 하느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가난을 감수하고, 고통을 참으며 역경 가운데에서도 인내하는 온유한 사람은 하느님의 뜻에 따르며 그분의 섭리와 정의의 질서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자비는 예수님 말씀과 삶의 핵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 라고 하셨고, 율법 가르침의 핵심은 바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도 하느님의 자비를 바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하느님께 자비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 자비를 행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마태18,30)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유다인들은 정결을 강조했는데 깨끗하다는 것은 유다인에게는 중요한 삶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밥을 먹을 때도 손을 씻고 먹었습니다. 깨끗해지는 방법은 더럽혀진 몸을 예식을 통해서 깨끗해지는 것이 있고, 마음이 더럽혀진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의 마음은 항상 그 존재의 기초를 말하는데 인간 존재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이 마음이라고 했고, 이 마음에서부터 하느님을 믿고 안 믿고, 선과 악이 나옵니다. 따라서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을 향한 순진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하느님의 일을 볼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뵐 수 있는 것입니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평화는 최고의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즉 하느님의 모든 축복이 평화에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화 있기를” 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사도 활동의 특별한 임무인 것이며, 그것은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화해시키는 임무이며, 화해의 이치를 전하는 임무(2코린토5,18-21)입니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박해는 구약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보편적인 유다인들의 행복관이었고, 박해받는 자는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자라는 사실이 예수님 당시 널리 유포되어 강조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박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우리는 박해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예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에 대한 박해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신앙인들이 악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기에 오는 것들입니다. “터무니없는 말로 갖는 비난을 다 받게 된다는 것” 그것은 중상모략입니다. 영혼을 지닌 사람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 중상모략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느님이시고 사람이시며 그 명예가 더럽혀지는 일을 참아 받으신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러 모욕, 이런 고통도 참아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참된 행복은 무엇입니까?


    ②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 중에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4. 공지사항

    ① 학교 생활 열심히 하기 ② 부모님과 하루 30분 이상 대화하기

    ③ 학교에서 식사전후기도 바치기 ④ 아침 저녁 기도 하기(짧게라도)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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