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21주일;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1. 말씀읽기:요한 6,60-69 :영원한 생명의 말씀

60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심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 저 사람 혹시 미친 사람 아닌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생명을 얻고 싶으면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된다고 되풀이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떠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내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고백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 사도처럼 고백을 해야 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주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문제 1: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하며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6,60)하면서 투덜거렸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그들은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분으로 받아들일 것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②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과 마셔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람을 잡아먹는 것으로 오해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③ 그들은 예수님을 모세보다 못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며, 자신들의 수준으로 예수님을 대하려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④ 예수님께서 영어와 한자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문제 2: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믿고 있습니까?

① 확실하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② 못 믿고 있다.^*^

③ 믿고는 있는데 가끔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

 

나는 성체 성사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요, 하느님이심을 확고하게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확신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하는 척,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척 하고 있는 모습이 내 모습일 수 있습니다.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해서 그 말씀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해서 하느님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 3: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그들은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들어도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진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귀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생명의 빵이심을 “어떻게 하면, 무엇을 보여주면” 그들이 믿을 수 있고,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요한6,62)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지 못하는 이들이 부활과 승천을 체험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체험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 믿겠소.”라고 말할까요? 그래서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반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4: 예수님께서는 “영은 생명을 준다.”(요한6,62)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① 영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이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는 이들입니다.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기에 눈앞에 펼쳐진 하느님의 구원을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② 육적은 것은 “세상적인 지혜와 자신의 지식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이해하려 하는 것”으로 육적인 선택은 결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기에 생명으로부터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③ 영은 0 이고, 육은 6입니다. 그래서 6 이 0보다 큽니다. ^*^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로 내어주실 당신의 몸과 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듣는 청중들은 그것을 육적인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주시는 성체(살과 피)는 나의 살과 피와 전혀 다릅니다. 성분은 같지만 서로 다른 흑연과 다이아몬드처럼 그렇게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이해할 수 있고,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 5: 다음 중에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친구는 누구입니까?

① 흰둥이는 복음묵상이 너무 어렵고, 미사는 재미없다고 생각했기에 교리시간에는 게임방에서 가서 있다가 미사 끝날 때 쯤 들어옵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미사에 참례하고 왔다고 말을 합니다.

② 세희는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들은 깊이 고민하고, 부모님과 함께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그 말씀 안에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기뻐하며, 더욱 깊이 있게 기도합니다.

③ 깜씨는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라고 말하며, 성경 말씀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④ 태연이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좋은 친구를 사귀면 자신의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나쁜 친구를 사귀면 신앙에서도 멀어지고, 좋은 친구들과도 멀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성찰을 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문제 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요한6,64)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고통은 어떠하셨을까요?





 

문제 7: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누구이며, 또 예수님을 팔아넘길 자는 누구입니까?

①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며,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떠날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팔아넘길 자는 유다입니다.

② 믿지 않는 자들은 미사에 참례해서 미사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떠들거나 장난치는 아이들이며, 예수님을 팔아넘길 자는 다른 친구들이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그 친구를 유혹하여 다른 곳으로 가게 하는 자입니다.

 

문제 8: 나를 욕하는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친한 척 합니다.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해주겠습니까?





행동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삶의 발자국들은 믿음의 발자국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내딛고 있는 곳에 자신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행동은 무엇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문제 9: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요한6,65)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은 누구를 말할까요?

① 아무리 아버지가 엄하시다 하더라도 자녀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할 때 끝까지 말리시지는 않습니다. 나중에는 잘 해보라고 격려를 해주십니다. 부르심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할 때(사제나 수도자, 평신도, 기타 성소) 그분께서는 말리지 않으십니다. “그래? 그럼 한번 열심히 해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마음이 있다면 그분께서는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허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은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② 내가 믿음의 생활을 하고 싶어 할 때 하느님께서는 힘을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허락은 나의 마음을 전제로 합니다. 나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어 억지로 끌고 가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이들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③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들은 예수님께 마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마음만 있다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것이며, 마음이 없기 때문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것입니다.

 

문제 10: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라는 말씀을 들으며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떠난 제자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던 그 자체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떠나면서 예수님을 탓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의 무딘 마음과 어리석은 머리를 탓해야 합니다.

 

문제 11: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6,67) 라고 열두 제자에게 물으십니다. 이때 제자들은 어떻게 대답을 했습니까?

① 예! 떠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기에 돌아갈 곳도 없습니다. 그러니 퇴직금으로 100만원씩 주세요 ^*^

②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6,67)라고 물으셨을 때, 슬펐을 것입니다.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 사도는 멋진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6,68)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③ 제자들은 예수님을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지셨는데,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자신만이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님을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6,69)라는 말씀을 통해 고백합니다.

 

돌아갈 곳이 없어야 힘을 내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합니다. 이것을 배수진이라고 합니다. 뒤로 물러날 곳이 없으니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로만 나아가는 것입니다.

 

문제 12: 신앙생활을 하다가 성당을 떠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왜 성당을 떠나고, 어떻게 하면 그 친구들을 성당으로 불러올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떠나려는 사람들은 표시가 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다면, 알고 있는 대로, 믿고 있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더더욱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떠나려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어 주님께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우리가 생명의 양식인 주님을 두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신앙생활을 하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공동체를 떠나려고 생각했던 적은 없습니까?

 

③ 시몬 베드로는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라고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요?

 

4. 실천사항

① 이해하려 하지 말고 믿으려 하고, 믿음 안에서 이해하려 하기

② 떼제 29번 외워서 매일 반복해서 부르기

③ 신앙생활을 하면서 계산하지 않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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