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1. 말씀읽기: 마태10,17-22 박해를 각오하여라 (마르 13,9-13 ; 루카 21,12-17)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말씀연구

2.1.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7월 5일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축일을 지내며 순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신앙인들은 박해나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주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고, 주님을 증거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① 신학생으로 선발 및 사제서품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1821년 충청남도 당진의 솔뫼에서 태어나 부모의 깊은 신앙을 물려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는 16세 때 파리 외방 전교회 모방 신부에게 발탁되어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6개월 만에 마카오에 도착하여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인근의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나바위 인근의 바닷가로 입국하셨습니다.

 

② 체포

페레올 주교님께서는 김대건 신부님께 선교사가 해로를 통해 입국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님은 1846년 5월 14일에 신자들과 함께 서해안으로 나가 5월 29일에 관리들의 감시망을 뚫고 백령도에 도착하여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의 선원들과 접촉하여 페레올 주교님의 편지와 자기의 편지(조선 입국을 대기하고 있는 베르뇌 신부와 메스트르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조선지도 등을 전달하고 황해도 순위도에까지 무사히 돌아왔으나 이곳에서 6월 5일에 체포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다섯 명의 신자들과 함께 해주 감영에 끌려가 네 차례에 걸쳐 심문을 받으면서 배교를 강요받았고, 다시 한양의 포도청에 이송되어 40차례에 걸친 심문과 고문을 받으셨습니다. 재판관들과 대신들은 김대건 신부님의 외국어(중국어, 라틴어, 불어 등) 실력과 폭넓은 서양 지식에 놀랐고, 어떤 대신들은 김대건 신부님께 지리서 편술과 세계 지도(영국제)의 번역을 부탁하여 옥중에서 두 장의 지도를 채색하여 한 장은 국왕에게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재능은 조정의 인정을 받아 일부 대신들은 김대건 신부님을 위한 구명운동을 벌여 그에 대한 판결이 3개월이나 연기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846년 6월에 세실 제독이 세 척의 군함을 이끌고 충청도 홍주에 나타나 기해박해 중에 세 명의 프랑스 선교사(앵베르 범 주교님, 모방 신부님, 샤스탕 신부님)들을 처형한 사실을 항의, 문책하는 서신을 주민들을 통해 조정에 전달했습니다. 이는 조선 정부가 천주교와 김대건 신부님께 대해 강경책을 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③ 순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1846년 6월 5일 붙잡혀 그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때 나이가 26세의 젊은 나이셨습니다. 순교하시기 전에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셨습니다.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였으니 여러분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한 것은 나의 하느님과 종교를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으며 이제 내게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후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신봉하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신부님께서는 형리에게 편하게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자세를 묻고 그의 주문대로 자세를 취해 주셨습니다.

 

④ 시복시성

1949년 11월 25일에 교황 비오 12세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한국의 모든 성직자의 특별 수호자로 선정하였으며, 돌아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5월 6일에 성인으로 시성하였습니다. 삶의 가치를 하느님께 두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하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축일을 맞이하여 나 또한 세상 것 보다는 하느님을 위한 것에 조금 더 마음 쓰는 그런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2.2. 박해자들을 조심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마태10,17)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내가 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나를 갖은 말로 유혹하여 내 신앙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입니다. 내 신앙을 흐려 놓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에서 종교가 달라서 박해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시부모와 며느리가 신앙이 다른 경우에도 갈등은 있습니다. 또 외짝교우들은 배우자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평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당에 다니지 않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성당에 가려 할 때 “공부하라.”고 하면서 못 가게 막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성당에 가려는 모습이 부모님의 눈에는 노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이들은 자신의 삶도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슬기로워야 합니다. 일상생활을 열심히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도 성실하게 하며,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가족중의 비신자들도 신앙생활을 더욱 권장하고, 더 나아가 마침내 그들도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2.3. 박해자들 앞에서의 자세

① 박해자들 앞에서의 신앙 증언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의 손에 넘어갈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마태17,18)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의 통치자들에 의해 박해를 받았고, 그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였습니다. 박해자들은 신앙인들을 없애기 위해 재판대에 세웠지만, 신앙인들은 그 재판대에서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을 당당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서 증거 하였고,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도 그렇게 당당하게 신앙을 증거 하셨습니다.

 

② 나를 이끄시는 분

신앙인들은 박해자들 앞에서 당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당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 당당함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임을 알고 있었고,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그러한 은총을 받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마태10,19)

 

순교자 조 용삼 베드로에 관한 기록에서 순교는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임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순교자 조용삼 베드로는 아버지와 함께 포졸들에게 잡혀서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번에 나는 천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으니, 나는 틀림없이 순교자가 될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자 조용삼 베드로는 “아무도 자기 결심과 자기 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약하고 불쌍한 제가 어떻게 감히 순교하기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관장 앞에 끌려갔는데, 첫 번 신문에서부터 아버지는 그의 어리석은 자만과 자신의 힘을 너무 믿어 결국 슬프게도 굴복하였습니다. 관장은 조용삼 베드로에게 “너도 배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조용삼 베드로는 “저는 배교할 수 없습니다.”하고 단호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관장은 “아니, 네 아비가 목숨을 보전하려고 하는데 너는 죽기를 원한단 말이냐?”하고 묻자 조용삼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늘에는 두 임금이 없고 사람은 두 마음이 없습니다. 이제 제가 원하는 것은 다만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뿐입니다. 제게 더 이상 물어 보시는 것은 무익한 일이며, 저는 다른 말씀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나 잔인하게 매질을 당하였던지 하루나 이틀 후에 옥중에서 세례를 받은 후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예비신자에 불과하였었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실 수 있도록 나를 맡겨 드릴 때, 나는 더 큰 일들을 해 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이끄실 수 있도록 나를 온전히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자만심과 교만은 가장 나약한 이들의 헛된 모습들입니다. 겸손하게 주님께 맡겨 드리는 이가 바로 가장 용감한 사람입니다.

 

③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성령

 

제자들이 박해를 받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의 기록을 보면 아주 연약한 처녀들이나 천진난만한 아이들까지도 박해자들 앞에서 초자연적인 지혜에 가득 찬 답변을 하여 재판관들을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십니다. 그것을 알고 있다면 나를 온전히 내어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을 옹호하고, 말씀을 전하는 힘은 인간적인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힘이나 재능이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을 전하겠습니까? 그분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니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10,20 )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④ 박해를 각오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면서 박해를 각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마태10,21)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천주교 신자인 자녀를 내치는 경우도 있었고, 신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교하고서 다른 신자들을 밀고하는 배교자들도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참고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신 분들은 구원을 받으셨고, 그분들의 신앙은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785년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종교집회를 갖던 중 관헌들에게 적발되어 소위 을사추조적발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승훈 베드로도 형조에 끌려갔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이승훈 베드로의 아버지 이동욱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이 불효막심한 놈아! 네놈이 어째 형조에 끌려갔었더냐? 이 아비의 얼굴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지. 네가 천주학쟁이가 되겠다면 차라리 우리 가족들을 다 죽이고 천주학쟁이가 되거라. 어차피 네가 천주학쟁이가 되어서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거나, 네가 우리를 죽이는 거나 무엇이 다르겠느냐?”

 

“아버님! 천주교는 결코 사학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나쁜 길로 빠지게 하는 것도 아니며, 세상의 정도(正道)를 거스르는 것도 아니옵니다. 제가 믿는 천주교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는 종교이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옵니까?”

 

“네 이놈! 네놈이 창조주를 믿어서 부모와 일가친척이 몰살을 당해도 좋다는 말이냐? 천주학쟁이들은 애미․아비도 몰라본다고 하는데 네가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학을 해서 애미․아비가 죽음을 당한다면 그것이 곧 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로 인해 이 애비가 벼슬을 잃는다면 그것이 이 아비를 위하는 일이겠느냐? 네 어미가 종으로 끌려가는 것이 네 어미를 위한 행동이겠느냐? 너를 낳아서 길러준 은공은 보답하지 못할망정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냐? 이놈아! 어떻게 하겠느냐?”

 

“아버님! 그것은 조정에서 천주교를 금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지어낸 모략입니다. 어찌 자식 된 도리로서 부모를 몰라라 해서야 되겠습니까? 천주교의 계명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사옵니다. 또한 임금을 몰라본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사옵니까? 다만 세상 모든 만물은 천주님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우선적으로 천주님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하게 대하고자 하는 것은 천주님 앞에서는 모든 이가 평등하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이런 신분체제를 유지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서 천주교를 박해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이놈아! 너는 어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더냐? 내가 천주학을 반대하는 이유는 천주학이 나빠서가 아니라 천주학을 하면 결국 멸문지화를 입으니 하는 말 아니겠느냐? 지금 이 나라에 천주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 벽파 사람들이 있더냐? 대부분 시파나 남인들이 아니더냐? 그러니 천주학쟁이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곧 유교 윤리를 받든다는 명분도 얻을 뿐더러, 반대파인 정적을 제거하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세상이 그렇게 흐르고 있거늘 네놈이 어찌 천주학을 한다는 것이냐?”

 

“아버님! 남자로 태어나서 자신의 소신대로 살지 못한다 함은 그것이 어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사옵니까? 부디 제가 천주님을 믿는 것을 말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네 이놈! 그렇게 말해도 못 알아듣는단 말이냐? 네놈이 이 집안을 풍지박살 나는 꼴을 보고서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여봐라 이놈을 당장 묶어라. 내가 저놈의 목을 치리라….,”

<소설 신유박해 중에서>

 

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한 토막 밤과도 비슷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고통과 시련이 끝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끝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 계십니다.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박해자들의 눈에는 신앙인들이 흘리는 피와 처절한 고통소리와 죽음이 보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굳은 믿음을 가진 순수한 영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십니다. 그래서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10,22)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비울 때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지금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고,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버릴 때, 더 큰 것으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은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하게 만듭니다.

 

또한 옳은 것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련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 속에서 그만두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끝까지 성실하게 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혹자들은 그 일을 그만두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신앙생활도 그만두기를 원합니다.

 

신앙생활은 기쁨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요?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주님께 대한 믿음이고,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의 시작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내가 버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 유혹을 물리치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처럼 그렇게 변함없는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모욕을 당하거나, 거부를 당한 적이 있으십니까? 가령 “너나 잘해. 나는 나를 믿어. 하느님이 계시다면 내 앞에 나타나 보시라고 해봐. 이 다음에…\” 이런 때는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③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맛보고 있는 기쁨은 무엇입니까? 그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4. 알림 및 공지

①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생애를 알아보기

② 당당하게 신앙생활 하기

③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뻐하고, 그 기쁨을 전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다해(말씀과놀이,2),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다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1. 말씀읽기: 마태10,17-22 박해를 각오하여라 (마르 13,9-13 ; 루카 21,12-17)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말씀연구

    2.1.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7월 5일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축일을 지내며 순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신앙인들은 박해나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주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고, 주님을 증거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① 신학생으로 선발 및 사제서품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1821년 충청남도 당진의 솔뫼에서 태어나 부모의 깊은 신앙을 물려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는 16세 때 파리 외방 전교회 모방 신부에게 발탁되어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6개월 만에 마카오에 도착하여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인근의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나바위 인근의 바닷가로 입국하셨습니다.

     

    ② 체포

    페레올 주교님께서는 김대건 신부님께 선교사가 해로를 통해 입국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님은 1846년 5월 14일에 신자들과 함께 서해안으로 나가 5월 29일에 관리들의 감시망을 뚫고 백령도에 도착하여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의 선원들과 접촉하여 페레올 주교님의 편지와 자기의 편지(조선 입국을 대기하고 있는 베르뇌 신부와 메스트르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조선지도 등을 전달하고 황해도 순위도에까지 무사히 돌아왔으나 이곳에서 6월 5일에 체포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다섯 명의 신자들과 함께 해주 감영에 끌려가 네 차례에 걸쳐 심문을 받으면서 배교를 강요받았고, 다시 한양의 포도청에 이송되어 40차례에 걸친 심문과 고문을 받으셨습니다. 재판관들과 대신들은 김대건 신부님의 외국어(중국어, 라틴어, 불어 등) 실력과 폭넓은 서양 지식에 놀랐고, 어떤 대신들은 김대건 신부님께 지리서 편술과 세계 지도(영국제)의 번역을 부탁하여 옥중에서 두 장의 지도를 채색하여 한 장은 국왕에게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재능은 조정의 인정을 받아 일부 대신들은 김대건 신부님을 위한 구명운동을 벌여 그에 대한 판결이 3개월이나 연기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846년 6월에 세실 제독이 세 척의 군함을 이끌고 충청도 홍주에 나타나 기해박해 중에 세 명의 프랑스 선교사(앵베르 범 주교님, 모방 신부님, 샤스탕 신부님)들을 처형한 사실을 항의, 문책하는 서신을 주민들을 통해 조정에 전달했습니다. 이는 조선 정부가 천주교와 김대건 신부님께 대해 강경책을 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③ 순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1846년 6월 5일 붙잡혀 그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때 나이가 26세의 젊은 나이셨습니다. 순교하시기 전에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셨습니다.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였으니 여러분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한 것은 나의 하느님과 종교를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으며 이제 내게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후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신봉하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신부님께서는 형리에게 편하게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자세를 묻고 그의 주문대로 자세를 취해 주셨습니다.

     

    ④ 시복시성

    1949년 11월 25일에 교황 비오 12세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한국의 모든 성직자의 특별 수호자로 선정하였으며, 돌아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5월 6일에 성인으로 시성하였습니다. 삶의 가치를 하느님께 두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하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축일을 맞이하여 나 또한 세상 것 보다는 하느님을 위한 것에 조금 더 마음 쓰는 그런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2.2. 박해자들을 조심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마태10,17)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내가 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나를 갖은 말로 유혹하여 내 신앙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입니다. 내 신앙을 흐려 놓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에서 종교가 달라서 박해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시부모와 며느리가 신앙이 다른 경우에도 갈등은 있습니다. 또 외짝교우들은 배우자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평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당에 다니지 않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성당에 가려 할 때 “공부하라.”고 하면서 못 가게 막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성당에 가려는 모습이 부모님의 눈에는 노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이들은 자신의 삶도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슬기로워야 합니다. 일상생활을 열심히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도 성실하게 하며,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가족중의 비신자들도 신앙생활을 더욱 권장하고, 더 나아가 마침내 그들도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2.3. 박해자들 앞에서의 자세

    ① 박해자들 앞에서의 신앙 증언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의 손에 넘어갈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마태17,18)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의 통치자들에 의해 박해를 받았고, 그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였습니다. 박해자들은 신앙인들을 없애기 위해 재판대에 세웠지만, 신앙인들은 그 재판대에서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을 당당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서 증거 하였고,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도 그렇게 당당하게 신앙을 증거 하셨습니다.

     

    ② 나를 이끄시는 분

    신앙인들은 박해자들 앞에서 당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당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 당당함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임을 알고 있었고,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그러한 은총을 받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마태10,19)

     

    순교자 조 용삼 베드로에 관한 기록에서 순교는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임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순교자 조용삼 베드로는 아버지와 함께 포졸들에게 잡혀서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번에 나는 천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으니, 나는 틀림없이 순교자가 될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자 조용삼 베드로는 “아무도 자기 결심과 자기 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약하고 불쌍한 제가 어떻게 감히 순교하기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관장 앞에 끌려갔는데, 첫 번 신문에서부터 아버지는 그의 어리석은 자만과 자신의 힘을 너무 믿어 결국 슬프게도 굴복하였습니다. 관장은 조용삼 베드로에게 “너도 배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조용삼 베드로는 “저는 배교할 수 없습니다.”하고 단호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관장은 “아니, 네 아비가 목숨을 보전하려고 하는데 너는 죽기를 원한단 말이냐?”하고 묻자 조용삼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늘에는 두 임금이 없고 사람은 두 마음이 없습니다. 이제 제가 원하는 것은 다만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뿐입니다. 제게 더 이상 물어 보시는 것은 무익한 일이며, 저는 다른 말씀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나 잔인하게 매질을 당하였던지 하루나 이틀 후에 옥중에서 세례를 받은 후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예비신자에 불과하였었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실 수 있도록 나를 맡겨 드릴 때, 나는 더 큰 일들을 해 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이끄실 수 있도록 나를 온전히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자만심과 교만은 가장 나약한 이들의 헛된 모습들입니다. 겸손하게 주님께 맡겨 드리는 이가 바로 가장 용감한 사람입니다.

     

    ③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성령

     

    제자들이 박해를 받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의 기록을 보면 아주 연약한 처녀들이나 천진난만한 아이들까지도 박해자들 앞에서 초자연적인 지혜에 가득 찬 답변을 하여 재판관들을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십니다. 그것을 알고 있다면 나를 온전히 내어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을 옹호하고, 말씀을 전하는 힘은 인간적인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힘이나 재능이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을 전하겠습니까? 그분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니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10,20 )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④ 박해를 각오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면서 박해를 각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마태10,21)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천주교 신자인 자녀를 내치는 경우도 있었고, 신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교하고서 다른 신자들을 밀고하는 배교자들도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참고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신 분들은 구원을 받으셨고, 그분들의 신앙은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785년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종교집회를 갖던 중 관헌들에게 적발되어 소위 을사추조적발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승훈 베드로도 형조에 끌려갔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이승훈 베드로의 아버지 이동욱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이 불효막심한 놈아! 네놈이 어째 형조에 끌려갔었더냐? 이 아비의 얼굴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지. 네가 천주학쟁이가 되겠다면 차라리 우리 가족들을 다 죽이고 천주학쟁이가 되거라. 어차피 네가 천주학쟁이가 되어서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거나, 네가 우리를 죽이는 거나 무엇이 다르겠느냐?”

     

    “아버님! 천주교는 결코 사학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나쁜 길로 빠지게 하는 것도 아니며, 세상의 정도(正道)를 거스르는 것도 아니옵니다. 제가 믿는 천주교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는 종교이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옵니까?”

     

    “네 이놈! 네놈이 창조주를 믿어서 부모와 일가친척이 몰살을 당해도 좋다는 말이냐? 천주학쟁이들은 애미․아비도 몰라본다고 하는데 네가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학을 해서 애미․아비가 죽음을 당한다면 그것이 곧 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로 인해 이 애비가 벼슬을 잃는다면 그것이 이 아비를 위하는 일이겠느냐? 네 어미가 종으로 끌려가는 것이 네 어미를 위한 행동이겠느냐? 너를 낳아서 길러준 은공은 보답하지 못할망정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냐? 이놈아! 어떻게 하겠느냐?”

     

    “아버님! 그것은 조정에서 천주교를 금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지어낸 모략입니다. 어찌 자식 된 도리로서 부모를 몰라라 해서야 되겠습니까? 천주교의 계명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사옵니다. 또한 임금을 몰라본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사옵니까? 다만 세상 모든 만물은 천주님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우선적으로 천주님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하게 대하고자 하는 것은 천주님 앞에서는 모든 이가 평등하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이런 신분체제를 유지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서 천주교를 박해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이놈아! 너는 어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더냐? 내가 천주학을 반대하는 이유는 천주학이 나빠서가 아니라 천주학을 하면 결국 멸문지화를 입으니 하는 말 아니겠느냐? 지금 이 나라에 천주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 벽파 사람들이 있더냐? 대부분 시파나 남인들이 아니더냐? 그러니 천주학쟁이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곧 유교 윤리를 받든다는 명분도 얻을 뿐더러, 반대파인 정적을 제거하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세상이 그렇게 흐르고 있거늘 네놈이 어찌 천주학을 한다는 것이냐?”

     

    “아버님! 남자로 태어나서 자신의 소신대로 살지 못한다 함은 그것이 어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사옵니까? 부디 제가 천주님을 믿는 것을 말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네 이놈! 그렇게 말해도 못 알아듣는단 말이냐? 네놈이 이 집안을 풍지박살 나는 꼴을 보고서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여봐라 이놈을 당장 묶어라. 내가 저놈의 목을 치리라….,”

    <소설 신유박해 중에서>

     

    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한 토막 밤과도 비슷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고통과 시련이 끝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끝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 계십니다.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박해자들의 눈에는 신앙인들이 흘리는 피와 처절한 고통소리와 죽음이 보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굳은 믿음을 가진 순수한 영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십니다. 그래서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10,22)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비울 때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지금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고,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버릴 때, 더 큰 것으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은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하게 만듭니다.

     

    또한 옳은 것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련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 속에서 그만두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끝까지 성실하게 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혹자들은 그 일을 그만두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신앙생활도 그만두기를 원합니다.

     

    신앙생활은 기쁨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요?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주님께 대한 믿음이고,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의 시작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내가 버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 유혹을 물리치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처럼 그렇게 변함없는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모욕을 당하거나, 거부를 당한 적이 있으십니까? 가령 “너나 잘해. 나는 나를 믿어. 하느님이 계시다면 내 앞에 나타나 보시라고 해봐. 이 다음에…” 이런 때는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③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맛보고 있는 기쁨은 무엇입니까? 그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4. 알림 및 공지

    ①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생애를 알아보기

    ② 당당하게 신앙생활 하기

    ③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뻐하고, 그 기쁨을 전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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