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28주일;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1. 말씀읽기:루카17,11-19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시다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나병 환자 열 사람. 아홉은 유다인이었고, 하나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하며 믿음을 고백했고, 나머지 아홉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감사하며 믿음을 고백한 이 사마리아 사람은 나병의 치유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게 됩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한없는 은총을 베푸심을 우리는 알아야 하며, 더욱 큰 믿음을 고백하기 위해 언제나 감사하며 기도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2.1. 예수님께 치유를 청하는 나병환자 열 사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과 마주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나병환자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 되었지만 성벽이 있는 고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사람들 가까이에 가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애원하였던 것입니다.

 

① 열 명의 나병 환자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았고, 예수님께 치유를 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의 구성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다인들 속에 사마리아 사람이 끼어있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 돼지’ 취급했는데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나병이라는 비참함이 그들 사이에 공동적인 유대를 형성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간의 민족적 적대감 까지 잊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들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공통적인 신분이 있기에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고 있고, 더욱 친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다른 이들 보다도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조건 때문에, 또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갈라져 서로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17,13)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습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17,13)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 주실 수 있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스승님”이라고 고백하며 자비를 청하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 드리는 청원은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청원과 같습니다. 미사를 시작하며 참회예식 때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이 나병 환자들도 예수님께 자비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의 청원을 들으면서 나는 미사 중에 과연 주님께 자비를 청하는지를 돌아봅시다. 그저 전례적으로 나와 있는 기도문이니까 “자비를 베푸소서.”하는지, 아니면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의지를 가슴 아파 하며 자비를 청하는지를 돌아봅시다. 또한 형식적으로 자비를 청했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자비를 청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의 자비가 넘치지 않는다면 과연 내가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주님의 자비하심의 덕분임을 생각하며 나병환자가 주님께 청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청하는 신앙인이 되어 봅시다.

 

2.2. 나병환자들을 치유해 주신 예수님

①“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루카17,14)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어떠한 조건도 걸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제들에게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사제가 “이 사람 병이 다 나았습니다.”라고 선언해야만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루카17,14)고 말씀 하십니다. 나병환자들을 사제들에게 보내신 것은 결국 “너는 다 나았으니 공동체로 돌아가거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사제들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중에 자신들의 몸이 깨끗하게 치유된 것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기쁘고 놀랐을까요? 만일 내가 그들 중의 한명이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②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사람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자신들의 병이 나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루카17,16) 감사를 드렸습니다. 발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외에 누가 나병을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린 사람은 유다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아홉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감사드릴 것은 당연히 감사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치유 받은 나병환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받고 있는 사랑과 은총에 나는 과연 감사하고 있습니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더 많은 것을 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감사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하면 주어진 것도 어느 순간 빼앗기게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③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루카17,17)

나병을 치유 받은 사람은 열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감사를 드린 이는 한명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루카17,17)라고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을 치유해 주시고 감사를 받고 싶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루카17,8)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잊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치유 받은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아무런 감사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성한 몸을 사제에게 보이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서둘렀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이 집에 가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사를 드림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선물을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치유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하느님의 치유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은총이기에, 그 은총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한번쯤은 감사하다고 여겨 보십시오. 두 눈이 있음을,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음을, 가족이 있음을, 부모가 있음을, 직장에 다니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그렇게 하다보면 모든 것을 감사하는 내가 될 것입니다.

 

살아 가며서 많은 은총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은총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감사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에게 자비를 거두실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④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17,19).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찬양 드리며 믿음을 고백한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17,19)고 말씀을 하십니다. 신앙의 기쁨을 체험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모습이 바뀌게 됩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든 행동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믿음의 은총을 체험했기에 주님 앞에 감사드리며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도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경건함이 표현되어야 하고, 감사함이 표현되어야 하고, 사랑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겸손이 표현되어야 하고, 나눔과 희생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찬미와 감사로 드러나야 하고, 사랑과 자비와 용서로 드러나야 합니다. 내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하기 위해 오늘 구원받은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을 늘 마음 깊이 간직해 봅시다. 그렇게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오지 않은 치유 받은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③ 내가 예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어떤 것을 감사드려야 합니까?

 

4. 알림 및 실천사항

① 예수님께 감사드릴 것 5가지 생각해 보기

② 부모님께 감사드릴 것 10가지 생각해보기

③ 감사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내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다해(말씀과놀이,2),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다해 연중 제 28주일;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1. 말씀읽기:루카17,11-19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시다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나병 환자 열 사람. 아홉은 유다인이었고, 하나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하며 믿음을 고백했고, 나머지 아홉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감사하며 믿음을 고백한 이 사마리아 사람은 나병의 치유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게 됩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한없는 은총을 베푸심을 우리는 알아야 하며, 더욱 큰 믿음을 고백하기 위해 언제나 감사하며 기도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2.1. 예수님께 치유를 청하는 나병환자 열 사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과 마주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나병환자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 되었지만 성벽이 있는 고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사람들 가까이에 가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애원하였던 것입니다.

     

    ① 열 명의 나병 환자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았고, 예수님께 치유를 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의 구성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다인들 속에 사마리아 사람이 끼어있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 돼지’ 취급했는데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나병이라는 비참함이 그들 사이에 공동적인 유대를 형성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간의 민족적 적대감 까지 잊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들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공통적인 신분이 있기에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고 있고, 더욱 친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다른 이들 보다도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조건 때문에, 또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갈라져 서로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17,13)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습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17,13)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 주실 수 있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스승님”이라고 고백하며 자비를 청하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 드리는 청원은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청원과 같습니다. 미사를 시작하며 참회예식 때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이 나병 환자들도 예수님께 자비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의 청원을 들으면서 나는 미사 중에 과연 주님께 자비를 청하는지를 돌아봅시다. 그저 전례적으로 나와 있는 기도문이니까 “자비를 베푸소서.”하는지, 아니면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의지를 가슴 아파 하며 자비를 청하는지를 돌아봅시다. 또한 형식적으로 자비를 청했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자비를 청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의 자비가 넘치지 않는다면 과연 내가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주님의 자비하심의 덕분임을 생각하며 나병환자가 주님께 청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청하는 신앙인이 되어 봅시다.

     

    2.2. 나병환자들을 치유해 주신 예수님

    ①“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루카17,14)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어떠한 조건도 걸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제들에게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사제가 “이 사람 병이 다 나았습니다.”라고 선언해야만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루카17,14)고 말씀 하십니다. 나병환자들을 사제들에게 보내신 것은 결국 “너는 다 나았으니 공동체로 돌아가거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사제들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중에 자신들의 몸이 깨끗하게 치유된 것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기쁘고 놀랐을까요? 만일 내가 그들 중의 한명이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②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사람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자신들의 병이 나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루카17,16) 감사를 드렸습니다. 발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외에 누가 나병을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린 사람은 유다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아홉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감사드릴 것은 당연히 감사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치유 받은 나병환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받고 있는 사랑과 은총에 나는 과연 감사하고 있습니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더 많은 것을 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감사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하면 주어진 것도 어느 순간 빼앗기게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③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루카17,17)

    나병을 치유 받은 사람은 열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감사를 드린 이는 한명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루카17,17)라고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을 치유해 주시고 감사를 받고 싶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루카17,8)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잊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치유 받은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아무런 감사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성한 몸을 사제에게 보이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서둘렀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이 집에 가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사를 드림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선물을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치유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하느님의 치유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은총이기에, 그 은총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한번쯤은 감사하다고 여겨 보십시오. 두 눈이 있음을,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음을, 가족이 있음을, 부모가 있음을, 직장에 다니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그렇게 하다보면 모든 것을 감사하는 내가 될 것입니다.

     

    살아 가며서 많은 은총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은총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감사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에게 자비를 거두실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④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17,19).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찬양 드리며 믿음을 고백한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17,19)고 말씀을 하십니다. 신앙의 기쁨을 체험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모습이 바뀌게 됩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든 행동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믿음의 은총을 체험했기에 주님 앞에 감사드리며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도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경건함이 표현되어야 하고, 감사함이 표현되어야 하고, 사랑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겸손이 표현되어야 하고, 나눔과 희생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찬미와 감사로 드러나야 하고, 사랑과 자비와 용서로 드러나야 합니다. 내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하기 위해 오늘 구원받은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을 늘 마음 깊이 간직해 봅시다. 그렇게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오지 않은 치유 받은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③ 내가 예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어떤 것을 감사드려야 합니까?

     

    4. 알림 및 실천사항

    ① 예수님께 감사드릴 것 5가지 생각해 보기

    ② 부모님께 감사드릴 것 10가지 생각해보기

    ③ 감사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내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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