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34주일; 저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 그리스도왕 대축일 –

1. 말씀읽기: 루카 23,35-43

35 백성들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교황 비오 11세는 1925년에 연중 마지막 시기를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제정하였습니다. 이날은 온 세상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따라 새롭게 되도록 온 힘을 기울이며, 그분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며,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왕들처럼 그렇게 권력과 힘으로 통치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으로 통치하시며 인간에게 참된 자유와 구원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섬기면서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2.1.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들

① 백성의 눈먼 지도자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위하여 모욕과 채찍질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인간구원을 위하여 몸소 희생제물이 되시어 하느님 아버지께 희생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이렇게 조롱하였습니다.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23,35)

 

그런데 이 눈먼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합니다.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는 틀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그들 눈에는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이었고, 당연히 없어져야 할 존재였습니다. 아마도 이 눈먼 지도자들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직접 나타나신다 할지라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할 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바로 최후의 유혹임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② 조롱하는 이들을 용서하시는 임금님

온 세상의 임금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도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하고 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까지도 유다인들을 위해, 특히 백성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편협함과 어리석음과 무지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위치와 명예를 흔들어 놓는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일은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못본척 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고통 속에서 죽어 가시는 예수님을 향해 조롱을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고 조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실 계획이 있으셨다면 결코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③ 옹졸한 행동들

알면서도 행하는 잘못들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하면 결국 옹졸한 모습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고, 그와 함께 할 수 없으며,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이 나보다 잘한다면 인정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나도 변화되고 그도 변화가 됩니다. 내가 겸손하게 나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상대방도 나를 통해서 겸손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능력이 없는 이들은 결코 다른 이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칭찬하지 않습니다. 배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조롱하는 옹졸한 백성의 지도자들처럼 말입니다.

 

공동체에서 봉사자들도 옹졸해 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형제자매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댑니다. 그리고 자신이 봉사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열심한 봉사자의 잘못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한 번은 한 형제가 봉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신앙생활을 하면 기뻐야 하는데 함께 봉사하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님! 저는 형제님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 형제님도 우리 본당에 꼭 필요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를 불편하게 하는 이들은 옆에서 함께 봉사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둘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얘기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저 두 분이 그만 두시면 자매님들이 하세요.” 그러자 그들은 “저는 못해요.”라며 펄쩍 뛰었습니다. “못 할거면서 왜 잘 하는 사람을 분심들게 만들어서 주저앉히려고 합니까? 당신들은 안 할 것이면서 왜 상대방들을 마음 아프게 합니까?”

누군가가 잘 하고 있다면 그를 칭찬해주면 됩니다. 질투에 눈이 멀면 그 사람의 그림자까지 미워지게 됩니다. 결국 옹졸한 마음은 자신도 망치고 공동체도 망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④ 예수님을 조롱하는 군사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한 병사가 십자가에 달려 몹시 괴로워하시는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군사들은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루카 23,37) 하면서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군사들은 “만일 예수님께서 왕이시라면 자신과 같이 하찮은 사람에게 조롱을 당하겠는가?”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왕이 아니오!”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 이가 어떻게 유다인들의 임금이냐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군사들은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참된 왕으로서 당신의 백성(세상 모든 이)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수난을 당하시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사들의 조롱은 성실하게 봉사하는 이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를 통해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 형제자매들이 봉사하고 있는데, 그들의 수고를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다면 나는 눈 뜬 장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③ 죄명 패(INRI)

온 세상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온갖 조롱을 참아 받으시며 최후의 유혹을 이겨내십니다. 조롱자들은 예수님을 비웃기 위해 예수님의 머리 위에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INRI)”(루카23,38)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조롱과는 달리 온 세상의 임금이십니다. 그들은 비웃고 조롱하기 위해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루카23,38)라고 써 놓았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의 임금이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예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예수님의 통치방식에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통치방식은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가 오른 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대는 것입니다.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기꺼이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면 미워할 사람이 하나도 없고, 용서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시기 질투할 사람도 하나 없게 될 것입니다. 함께 웃으며 함께 기뻐하고, 서로 위해주고 사랑하며 아낌없이 내어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늘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왕”이시라는 것이고, 만일 내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면 예수님의 통치방식에 기꺼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④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수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 옆에는 두 명의 죄수가 함께 달려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모독합니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23,39)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런가 봅니다. 극단적인 상황에 닥치면 자신의 본성이 드러납니다. 이 죄수는 마지막 발악을 예수님께 하고 있습니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살아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도 괴로워서 그의 본성은 그렇게 예수님께 모독을 퍼 붓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통이 닥친다 할지라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독하는 이 죄수는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내 모습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이 죄수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때,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 태어나지 않을까요?

 

2.2. 세상의 평화와 구원을 주시는 온 세상의 임금님

① 회개한 죄인의 눈 뜸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23,39)라고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수를 다른 죄수가 꾸짖습니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루카23,40-41) 참으로 옳은 말 입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죄 없으신 분이심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같이 십자가형에 처해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 차원이 다른 분이심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그의 눈은 보아야만 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수를 꾸짖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대부분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자신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고, 남이 나의 고통을 몰라준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곁에서 죽음을 맞이한 죄인들의 고통은 무죄하신 예수님,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겪으시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죄가 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라는 이 죄인의 꾸중을 마음속 깊이 기억하면서 나 또한 그렇게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하고, 죄로 떨어지는 이들에게는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하고 꾸짖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여줄 수 있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보낸 사람 아니세요?”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혹시 신앙인 아니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② 회개한 죄인의 고백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고 있는 그 죄인은 예수님께 이런 청을 합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23,42) 그는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알았기에 “선생님의 나라”라는 말을 합니다. 예수님의 왕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눈이 열려 비록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그래서 함께 죽어가고 있지만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힘이 넘치고 부러울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나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죽어갈 것인가?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죽어갈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면서, 믿음을 고백하면서 죽어갈 것인가? 분명한 것은 내가 선택한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클라라 성녀가 고백한 것처럼 “저를 창조하신 주님, 찬미 받으소서.”하면서 죽을 수 있을까요? 시편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주님, 제가 깨어날 때 주님 모습으로 흡족 하리이다.”(시편 17,15) 라고 고백하면서 눈을 감을 수 있을까요?

 

주님을 찬미하면서 마지막 숨을 내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찬미하면서, 주님께 영광을 드리면서 눈을 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 내가 선택할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굳게 믿고,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③ 회개한 죄인에게 하늘나라를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고통 중에도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 나라를 청하는 죄인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23,43) 이 회개한 죄인은 엄청난 복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죄인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어 천국을 허락하셨습니다. 회개한 죄인에게 은총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통치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닫혔던 하늘나라의 문을 활짝 여시고, 회개한 죄인을 맞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기회를 스스로 놓쳐버린 다른 죄인은 그저 고통 속에서 멸망해 갈 뿐입니다. 만일 내가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이 죄인처럼 그렇게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④ 예수님을 “그리스도왕”으로 섬기는 나의 희망

회개한 죄인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바라보면서 내가 기쁘게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예수님께 믿음을 드린다면 나 비록 죄인이지만 그분의 자비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모시는 나의 희망이고, 기쁨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한 죄인의 구원 소식은 기쁜소식이 됩니다. 자비롭고 사랑 넘치신 왕께 희망을 걸면 나도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참된 왕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왕으로서 섬겨야 하고, 왕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통치방식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통해서 당신 백성을 통치하십니다. 그렇다면 왕이신 예수님을 따라 나 또한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베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부족한 나를 통해서 당신 나라를 통치하실 수 있도록 예수님의 훌륭한 신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멸망으로 떨어지는 그 죄인의 말로가 나의 말로가 됨도 명심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왕이신 예수님”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또한 왕이신 예수님을 나는 어떻게 섬기고 있습니까? 내가 왕께 해 드릴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③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한 죄인의 구원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내가 마지막 숨을 내 쉴 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4. 공지사항

① 예수님을 참된 왕으로 섬기기

② 어떤 처지에 있든지 지킬 것은 지키기

③ 사랑하고 용서하며, 자비를 베풀 때 구원받음을 명심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다해(말씀과놀이,2),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다해 연중 제 34주일; 저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주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 그리스도왕 대축일 –

    1. 말씀읽기: 루카 23,35-43

    35 백성들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교황 비오 11세는 1925년에 연중 마지막 시기를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제정하였습니다. 이날은 온 세상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따라 새롭게 되도록 온 힘을 기울이며, 그분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며,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왕들처럼 그렇게 권력과 힘으로 통치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으로 통치하시며 인간에게 참된 자유와 구원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섬기면서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2.1.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들

    ① 백성의 눈먼 지도자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위하여 모욕과 채찍질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인간구원을 위하여 몸소 희생제물이 되시어 하느님 아버지께 희생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이렇게 조롱하였습니다.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23,35)

     

    그런데 이 눈먼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합니다.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는 틀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그들 눈에는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이었고, 당연히 없어져야 할 존재였습니다. 아마도 이 눈먼 지도자들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직접 나타나신다 할지라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할 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바로 최후의 유혹임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② 조롱하는 이들을 용서하시는 임금님

    온 세상의 임금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도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하고 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까지도 유다인들을 위해, 특히 백성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편협함과 어리석음과 무지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위치와 명예를 흔들어 놓는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일은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못본척 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고통 속에서 죽어 가시는 예수님을 향해 조롱을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고 조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실 계획이 있으셨다면 결코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③ 옹졸한 행동들

    알면서도 행하는 잘못들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하면 결국 옹졸한 모습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고, 그와 함께 할 수 없으며,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이 나보다 잘한다면 인정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나도 변화되고 그도 변화가 됩니다. 내가 겸손하게 나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상대방도 나를 통해서 겸손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능력이 없는 이들은 결코 다른 이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칭찬하지 않습니다. 배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조롱하는 옹졸한 백성의 지도자들처럼 말입니다.

     

    공동체에서 봉사자들도 옹졸해 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형제자매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댑니다. 그리고 자신이 봉사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열심한 봉사자의 잘못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한 번은 한 형제가 봉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신앙생활을 하면 기뻐야 하는데 함께 봉사하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님! 저는 형제님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 형제님도 우리 본당에 꼭 필요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를 불편하게 하는 이들은 옆에서 함께 봉사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둘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얘기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저 두 분이 그만 두시면 자매님들이 하세요.” 그러자 그들은 “저는 못해요.”라며 펄쩍 뛰었습니다. “못 할거면서 왜 잘 하는 사람을 분심들게 만들어서 주저앉히려고 합니까? 당신들은 안 할 것이면서 왜 상대방들을 마음 아프게 합니까?”

    누군가가 잘 하고 있다면 그를 칭찬해주면 됩니다. 질투에 눈이 멀면 그 사람의 그림자까지 미워지게 됩니다. 결국 옹졸한 마음은 자신도 망치고 공동체도 망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④ 예수님을 조롱하는 군사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한 병사가 십자가에 달려 몹시 괴로워하시는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군사들은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루카 23,37) 하면서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군사들은 “만일 예수님께서 왕이시라면 자신과 같이 하찮은 사람에게 조롱을 당하겠는가?”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왕이 아니오!”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 이가 어떻게 유다인들의 임금이냐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군사들은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참된 왕으로서 당신의 백성(세상 모든 이)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수난을 당하시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사들의 조롱은 성실하게 봉사하는 이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를 통해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 형제자매들이 봉사하고 있는데, 그들의 수고를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다면 나는 눈 뜬 장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③ 죄명 패(INRI)

    온 세상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온갖 조롱을 참아 받으시며 최후의 유혹을 이겨내십니다. 조롱자들은 예수님을 비웃기 위해 예수님의 머리 위에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INRI)”(루카23,38)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조롱과는 달리 온 세상의 임금이십니다. 그들은 비웃고 조롱하기 위해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루카23,38)라고 써 놓았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의 임금이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예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예수님의 통치방식에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통치방식은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가 오른 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대는 것입니다.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기꺼이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면 미워할 사람이 하나도 없고, 용서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시기 질투할 사람도 하나 없게 될 것입니다. 함께 웃으며 함께 기뻐하고, 서로 위해주고 사랑하며 아낌없이 내어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늘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왕”이시라는 것이고, 만일 내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면 예수님의 통치방식에 기꺼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④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수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 옆에는 두 명의 죄수가 함께 달려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모독합니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23,39)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런가 봅니다. 극단적인 상황에 닥치면 자신의 본성이 드러납니다. 이 죄수는 마지막 발악을 예수님께 하고 있습니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살아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도 괴로워서 그의 본성은 그렇게 예수님께 모독을 퍼 붓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통이 닥친다 할지라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독하는 이 죄수는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내 모습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이 죄수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때,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 태어나지 않을까요?

     

    2.2. 세상의 평화와 구원을 주시는 온 세상의 임금님

    ① 회개한 죄인의 눈 뜸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23,39)라고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수를 다른 죄수가 꾸짖습니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루카23,40-41) 참으로 옳은 말 입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죄 없으신 분이심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같이 십자가형에 처해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 차원이 다른 분이심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그의 눈은 보아야만 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수를 꾸짖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대부분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자신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고, 남이 나의 고통을 몰라준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곁에서 죽음을 맞이한 죄인들의 고통은 무죄하신 예수님,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겪으시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죄가 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라는 이 죄인의 꾸중을 마음속 깊이 기억하면서 나 또한 그렇게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하고, 죄로 떨어지는 이들에게는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하고 꾸짖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여줄 수 있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보낸 사람 아니세요?”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혹시 신앙인 아니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② 회개한 죄인의 고백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고 있는 그 죄인은 예수님께 이런 청을 합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23,42) 그는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알았기에 “선생님의 나라”라는 말을 합니다. 예수님의 왕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눈이 열려 비록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그래서 함께 죽어가고 있지만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힘이 넘치고 부러울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나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죽어갈 것인가?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죽어갈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면서, 믿음을 고백하면서 죽어갈 것인가? 분명한 것은 내가 선택한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클라라 성녀가 고백한 것처럼 “저를 창조하신 주님, 찬미 받으소서.”하면서 죽을 수 있을까요? 시편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주님, 제가 깨어날 때 주님 모습으로 흡족 하리이다.”(시편 17,15) 라고 고백하면서 눈을 감을 수 있을까요?

     

    주님을 찬미하면서 마지막 숨을 내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찬미하면서, 주님께 영광을 드리면서 눈을 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 내가 선택할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굳게 믿고,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③ 회개한 죄인에게 하늘나라를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고통 중에도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 나라를 청하는 죄인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23,43) 이 회개한 죄인은 엄청난 복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죄인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어 천국을 허락하셨습니다. 회개한 죄인에게 은총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통치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닫혔던 하늘나라의 문을 활짝 여시고, 회개한 죄인을 맞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기회를 스스로 놓쳐버린 다른 죄인은 그저 고통 속에서 멸망해 갈 뿐입니다. 만일 내가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이 죄인처럼 그렇게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④ 예수님을 “그리스도왕”으로 섬기는 나의 희망

    회개한 죄인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바라보면서 내가 기쁘게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예수님께 믿음을 드린다면 나 비록 죄인이지만 그분의 자비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모시는 나의 희망이고, 기쁨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한 죄인의 구원 소식은 기쁜소식이 됩니다. 자비롭고 사랑 넘치신 왕께 희망을 걸면 나도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참된 왕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왕으로서 섬겨야 하고, 왕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통치방식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통해서 당신 백성을 통치하십니다. 그렇다면 왕이신 예수님을 따라 나 또한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베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부족한 나를 통해서 당신 나라를 통치하실 수 있도록 예수님의 훌륭한 신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멸망으로 떨어지는 그 죄인의 말로가 나의 말로가 됨도 명심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왕이신 예수님”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또한 왕이신 예수님을 나는 어떻게 섬기고 있습니까? 내가 왕께 해 드릴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③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한 죄인의 구원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내가 마지막 숨을 내 쉴 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4. 공지사항

    ① 예수님을 참된 왕으로 섬기기

    ② 어떤 처지에 있든지 지킬 것은 지키기

    ③ 사랑하고 용서하며, 자비를 베풀 때 구원받음을 명심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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