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5주일: 세상의 빛과 소금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1. 말씀읽기: 마태5,13-16

세상의 소금과 빛 (마르 9,49-50 ; 루카 14,34-35)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런 저런 말들을 듣고 살아갑니다. 칭찬도 듣고, 충고나 꾸중의 말씀도 듣고 살아갑니다.

 

문제 1: 다음 중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은 무엇일까요?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단다.

왜 태어났니?

 

예수님께서는 나를 칭찬해 주시고, 나에게 큰 사명을 부여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과 소금은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소금이 없으면 음식의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빛과 소금을 묵상하면서 빛으로서의 삶, 소금으로서의 삶에 대해 깊이 묵상해 봅시다.

 

문제 2: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마태5,13)고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고, 동시에 부패를 막아 줍니다. 또 사람이 소금을 먹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결국 소금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내가 세상의 소금\”이니 나는 정말로 소중한 존재이고, 막중한 사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금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음식에 들어가야 하고, 보관하고자 하는 것에 들어 있어야 하며, 사람이 섭취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소금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소금인 이유는 \”나를 통해 맛을 내고, 부패를 막고, 살리기를 원하는 주님의 손\”에 들려져서, 주님께서 뿌리시는 곳에 가서 내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뿌리시면(보내시면), 그곳에서 나는 내 삶(말과 행실)으로써 신앙인의 맛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뿌려도 말과 행실로 신앙인의 맛을 내지 못한다면 결국 주님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내가 주변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그 신앙을 살아갈 때 내 주변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 해 줄 수 있고, 보여줄 수 있고, 인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소금으로서의 삶입니다.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 비록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신앙을 선택하고, 진리를 향해 나아갈 때, 세상은 올바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몸에 소금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신앙이 없는 이들을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하여 생명을 얻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소금의 역할입니다.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소금은 아무 소용이 없는 소금인 것입니다.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신앙인은 아무 소용이 없는 신앙인입니다. 세상을 바꿀 수도 없고, 진리를 보존할 수도 없으며, 사람을 살릴 수도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나라면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도구)을 찾으셔야만 합니다.

 

 

문제 3: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마태5,13)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의 소금인 내가 제 맛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만일 내가 가지고 있는 소금이 음식의 맛도 내지 못하고, 부패도 막아 주지 못하고, 나를 살리지 못한다면 그 소금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으로 살지 않는 것이 바로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맛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인답지 못한 행동들은 많이 있습니다. 기도생활을 하지 않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지 않으며,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소금은 물(유혹, 믿음을 빼앗아 가는 것 등)을 조심해야 합니다. 물에 닿아 형체를 잃어버리고, 짠맛을 모두 빼앗기게 되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신앙인들이 믿지 못하고,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 불신의 삶을 살거나 모범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들에 붙잡힌다면(유혹에 빠진다면) 소금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문제 4: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마태5,14)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빛은 어둠을 비추어 주고 주변을 환하게 밝혀 줍니다. 신앙인은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인 빛인 우리들은 어둠(, 죽음, 악행 등)이 무엇인지를 알고, 주님께서 주신 빛으로 그 어둠(, 죽음, 악행 등)을 몰아내며 생명에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인들은 세상의 빛입니다. 빛이 비추고 있으면 사람들은 자기 앞에 펼쳐진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게 됩니다. 선인지 악인지, 의로움인지 부당함인지, 생명인지 죽음인지를 보게 됩니다. 신앙인들은 세상의 빛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알기에 옳게 행동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의 모습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그들의 앞을 밝혀 줍니다.

 

문제 5: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가 없듯이 신앙인들도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믿는 이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무엇이 다르기에 \”산 위에 있는 고을\”처럼 감출 수가 없을까요?

먼저 신앙인들은 주일이면 성당에 갑니다. 모든 일을 뒤로 하고 하느님께로 나아와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비신자들은 신앙인들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모습을 통해서 \”! 저 사람은 신앙인이구나. 그리고 주일에는 저렇게 지내야 하는 것이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은 계명을 지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을 지킴으로써 세상에 평화와 안정과 기쁨을 줍니다. 그래서 비신자들은 신앙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감동\”을 받고, 자신들의 마음도 움직여 함께 동참하려고 합니다. \”역시 천주교 신자들은 다르구나!\”하는 말을 비신자들이 많이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인들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인내합니다. 비록 물질적인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신앙을 선택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다 할지라도 신앙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은 자선과 봉사를 통해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용서할 줄 알며, 배려할 줄 알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압니다.

 

그런데 믿는 이들의 모습이 믿지 않은 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면 믿지 않는 이들은 무엇을 보고 생명에로 나아갈까요?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 멀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나아가서 등불을 꺼버리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키십시오.”(필립비2,15-16).

 

문제 6: 예수님께서는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마태5,15)고 말씀하십니다. 등불을 켜서 함지 속에 넣어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방을 환하게 비추기 위해 등경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것이 바로 등불을 켜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빛으로서의 나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나를 빛으로 세우신 것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비추고자 하시는 곳을 비추기 위해 나를 빛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 신앙생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 절망 속에서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을 밝게 비추어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생명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며, 힘과 위로를 주기 위해 나를 빛으로 세우셨고, 나를 통해 비추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등불이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주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빛을 발산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멋진 등잔이라 할지라도 기름이 아니라 물이 들어가면 타지 않는 것처럼, 훌륭한 신앙생활을 통해 믿음의 기름을 준비하고 늘 빛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빛으로서의 삶은 결국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삶이며, 그 드러내는 삶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입니다. \”역시 신앙인은 멋있어~\”라는 칭찬을 들을 때, 주님 마음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문제 7: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는 것입니다. 내 착한 행동을 통해서 사람들이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4가지만 적어 봅시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으로 나 자신을 밝게 빛낼 때, 사람들은 생명으로 나아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어둠의 행실들을 벗어 던져 버리며, 하느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나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주님 손에 들려 빛으로서의,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언제나 기도하고, 굳은 믿음을 간직하며 삶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3. 나눔 및 묵상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빛으로서의 삶과 소금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 주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빛으로서의 삶과 소금으로서의 삶은 어떤 삶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주변에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칭찬해 보고, 내 행실을 통해서 하느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4. 공지사항

하느님께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

친구들이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 3가지 결심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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