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롭게 한 해를 맞이하는 새해의 첫머리이다.
설이라는 말은 묵은 해에서 새해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다소 익숙지 못한 시간 인식을 드러내는 ‘설다’,
‘낯설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기술하기도 한다.
‘낯설은 날’을 시작하며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날 우리나라는 조상 제사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하는 전통이 있다.
교회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전통을 받아들여 조상들을 위한 미사를 드린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설날을 한 해의 첫날이라 하여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조상들과 웃어른께
인사를 올리면서 한 해의 축복을 기원했습니다.
우리도 오늘 주님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우리 민족을 통해
섭리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합시다.
말씀의 초대
축복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주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당신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제1독서).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인생이란 한 줄기 연기처럼 덧없이 지나간다.
사람의 앞날은 오직 주님의 뜻에 달려 있고,
그분께 의탁하며 살아야 한다(제2독서).
등불은 길을 찾아 나설 때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위치를 알려 줄 때도 필요하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니,
우리는 등불을 켜 들고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복음).
제1독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6,22-2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4,13-15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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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2/03)
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롭게 한 해를 맞이하는 새해의 첫머리이다. 설이라는 말은 묵은 해에서 새해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다소 익숙지 못한 시간 인식을 드러내는 ‘설다’, ‘낯설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기술하기도 한다. ‘낯설은 날’을 시작하며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날 우리나라는 조상 제사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하는 전통이 있다. 교회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전통을 받아들여 조상들을 위한 미사를 드린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설날을 한 해의 첫날이라 하여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조상들과 웃어른께 인사를 올리면서 한 해의 축복을 기원했습니다. 우리도 오늘 주님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우리 민족을 통해 섭리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합시다.
말씀의 초대
축복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주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당신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제1독서).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인생이란 한 줄기 연기처럼 덧없이 지나간다. 사람의 앞날은 오직 주님의 뜻에 달려 있고, 그분께 의탁하며 살아야 한다(제2독서). 등불은 길을 찾아 나설 때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위치를 알려 줄 때도 필요하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니, 우리는 등불을 켜 들고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복음).
제1독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6,22-2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4,13-15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들에게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해 왔습니다. 하루 일을 끝냈을 때,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잎을 볼 때, 냇가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때,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바라볼 때, 작은 칭찬을 들을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등 ……. 사람들의 행복은 큰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물결처럼 잔잔히 흐르는 삶을 바라보고 느끼며 경탄할 때 행복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깨어 산다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거창한 삶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 삶의 순간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주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날을 열어 주신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오늘 하루 주님께서 어떻게 내 삶을 이끌어 주셨는지 살피며 감사의 마음을 주님께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깨어 있는 종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등불을 켜고 살아가는 깨어 있는 사람은 주님의 큰 부르심이 있을 때도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나설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렇게 등불을 켜고 깨어 사는 신앙인들이 여전히 참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있어 교회가 아름답고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