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
1. 말씀읽기: 마태5,17-37
예수님과 율법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화해하여라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극기하여라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 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마르 10,11-12 ; 루카 16,18-18)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정직하여라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계명을 지키지 않고, 남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삶, 마음을 다해 \”사랑 안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아가는 삶, 그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어야 함을 명심합시다.
2.1.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생각하고 지켜오던 형태의 안식일 규정이나 정결례 규정”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율법안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간과하고, 오로지 형식과 규정만을 남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기존의 율법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율법을 위해서라면 없어져 버려야 할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근본정신을 바로잡아 주시고, 하느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5,17)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때가 되자 예수님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주셨던 율법의 규정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느님 백성들이 성장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느님 백성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에로 힘차게 나아오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백성들은 율법의 규정 자체만 바라보지 말고 율법이 가르치고 있고 보여주려고 하는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곳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백성들은 율법을 통해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몸소 오시어 율법을 완성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5,18)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율법은 예수님을 통해서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을 통해서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고 어울려야 하는지를 아주 쉽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2.2.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
“뭐~ 이런 것 쯤이야~”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죄들이 모여서 큰 죄를 이루고,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작은 선행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규정들을 기쁜 마음으로 성실하게 지켜 나갈 때, 어느 순간 의로움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지키는 것을 떠나서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통해 형식적으로 살아가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멸망을 확실하게 예약하는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5,19)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은 계명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지켰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 규정이 그렇고, 정결례 규정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제자들은 가장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지키고, 다른 이들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인들이 참되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왜 지켜야 하는지, 그것을 지킴을 통해서 얻게 되는 기쁨은 무엇인지도 잘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가장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도 턱걸이라도 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의미”보다는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소죄라 할지라도 그것을 범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벌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그것을 범하는 것과, 또 그것을 범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모르는 사람이 실수로 범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도할 수 있도록 챙겨주고, 단식과 금육을 할 수 있도록 챙겨주고, 신앙생활을 격려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머니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기도하기도 힘들뿐더러 단식과 금육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평일미사나 주일미사에 참례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부모가 덕이 부족하다면 서로가 큰 소리를 내게 될 것이고,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작은 행동으로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사제나 수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이 있고,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손 하나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만 살아간다면, 그래서 결국 말만 하게 된다면 그도 안 지키게 되고, 남도 그 모습을 통해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것 하나에도 마음 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덕을 실천할 때,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람,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3.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끄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비신자들보다도 못하게 살 때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호를 그으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기도하는 내용과 살고 있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5,20)
의롭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실하고 올바르게 산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면서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아니겠습니가? 그렇게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며 하느님보시기에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보다 더 의롭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성실하게 규정들을 지켰으며, 기도했고, 단식하며, 자선행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착각은 “행위를 통해서 자신들이 의롭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가 의롭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지킨 것처럼 그렇게 기도와 단식과 자선행위는 기쁘게 하면서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며,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규정과 계명들을 충실하게 지키며, 그 지킴을 자랑하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만을 바라본다면 결코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과 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처럼 행위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청하면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또한 그렇게 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2.4. 율법을 완성하시는 예수님
2.4.1. 화해하여라.
① 살인해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연한 것을 말씀하십니다.“‘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마태5,21)“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연한 것을 넘어서 어떻게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5,22)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신앙인들은 당연한 것을 넘어서 사소한 것에도 마음을 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에게 성내는 것도 살인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사실 우리가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말로, 부주의한 행동으로 수많은 살인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의 부주의한 말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치유가 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치유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② 형제에게 분노하거나 멸시, 매도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5,22)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순절 첫 금요일에 요한은 유다에게 전화를 걸어 성당에 가서 미사도 참례하고 십자가의 길도 바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말했습니다. “야! 네가 뭔데 성당 가자 말자 하냐? 내 마음이 움직여야 성당도 가는 것 아니겠어! 너나 잘해. 그리고 할 일 없으면 집에서 잠이나 자.”신앙을 권면하는 형제에게 화를 내는 유다는 결국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결국 신앙생활에서부터 멀어지게 되니 상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요한은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례하고 십자가의 길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성당에서 이루어진 금요 봉사자 교육에 참례해서 교육을 받고 늦게 들어왔습니다. 다음 날 요한은 유다에게 말했습니다. “어제 미사에 참례하고,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봉사자 교육도 받았는데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날아갈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에이~ 바보야! 집에서 따뜻한 아름 목에 누워서 TV를 보면 얼마나 좋니!”하면서 요한을 멸시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의 삶을 멸시한다면 그 신앙인의 삶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진 그에게 준비된 것은 상은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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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단계 |
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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➀단순한 내적인 분노(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 |
지방 재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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➁멸시(자기 형제를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 |
최고의회에 회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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➂매도(자기 형제더러 멍청이라고 하는 사람) |
지옥 불 |
요한은 사순절 기간 동안 단식과 금육을 지키고, 또 절제의 생활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았더니 100만원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기쁘게 감사헌금으로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요한에게 “이 멍청아! 그 돈 있으면 명품 가방도 살 수 있고, 제주도로 3박 4일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었을 텐데 어찌 그리 멍청한 짓을 했니!”라고 요한의 마음을 매도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를 매도했을 경우 그가 받게 되는 것은 영원한 벌 뿐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살인뿐만 아니라 분노나 모욕, 매도 또한 근본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구약의 율법의 계명은 완성되었습니다.
③ 먼저 화해하여라.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5,23-24)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에 가는 도중이나 제사 도중에는 다른 어떤 일이거나 무시 되었습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행동이 가장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든 것보다도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물론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웃, 친구 등과 소소한 문제 하나 해결 못하고 드리는 제사를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제사를 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러 가기 전에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사보다는 화해가 더 급선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죄를 짓고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내가 억울하게 만든 그 사람이 하느님께 탄식하며 탄원기도를 바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생신에 형제들이 싸우고서 함께 모여서 생일잔치를 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그리 편하시겠습니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싸우고 반목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때, 그것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신앙인이 저래도 되나?”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며,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갈 때, 주변의 사람들은 “역시 신앙인들은 뭔가 다르구나!”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해와 용서의 바탕 위에서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려야지, 온갖 추악함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남편과 싸우고서 미사에 온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백성사를 보고, 미사 전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기쁘게 미사를 봉헌하게 집으로 가겠다고.” 그 후 그 남편도 신앙생활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참 어려운 결심을 했고,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옆에 있는 형제자매와 얼굴 돌리면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그것은 무딘 마음을 가진 행위이지 신앙이 아님을 꼭 명심합시다.
④ 할 수 있을 때 화해하여라.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지나면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화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마태5,25)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화해는 인간과의 화해로도 생각할 수도 있고, 하느님과의 화해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인간과의 화해를 생각해 봅시다. 상대방은 나로부터 실제로 손해를 입은 사람이며, “도중”이란 이 세상을 말합니다. “재판관”은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재판은 최후의 심판을 말합니다. “형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실행하는 존재를 말하며, “감옥”은 징벌을 받는 장소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라는 말씀입니다. 즉, 화해는 할 수 있을 때, 기회가 있을 때 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죄를 지었다면 용서를 청하고, 하느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가기 전에 회개 할 것은 깊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쁘게 살 수 있고, 그래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등을 돌리면 결국 벌을 끌어안으려고 몸부림치는 것과 같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⑤ 반드시 화해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을 때 반드시 해야 함을 강조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5,26)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빚을 지었다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면 결국 구원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결국 구원은 꿈도 못 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기억하면서 나 또한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께로부터 용서받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형제자매들에게 너그럽게 대해 주어야 합니다. 화해를 청할 수 있을 때 청해야 하고, 잘못을 뉘우칠 기회가 있을 때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지 않으면 늦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은총의 시간을 잘 이용하여 주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갑시다. 화해하고 용서를 청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내일이면 늦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합시다.
2.4.2. 극기하여라.
① 나쁜 생각을 버려라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쁜 생각까지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마태5,27) 예수님께서는 행위 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 음란한 생각까지도 죄임을 말씀하시면서 금하십니다.
② 단호하게 대처하여라.
예수님께서는 간음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외적인 행동만이 간음이 아니라 마음에서 품는 생각들도 간음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5,29-30)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세상에 온전하게 팔다리와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죄를 짓고 구원에서 멀어지기 보다는 단호하게 죄에 대처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정화의 삶을 살아가야 함도 분명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세상은 좀 더 밝아지고, 안전해지며, 서로가 행복해 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욕구들의 충동을 자제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좋은 친구가 옆에 있는 것이 필요하고, 참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피정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각종 매체를 정화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을 정화하지 않으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안에서 주님께 매달리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보고자 마음이 움직이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려 하면서 죄를 짓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단호하게 대처하며 죄의 유혹을 피하고, 기쁨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 갈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2.4.3. 이혼하지 말라
① 여성을 존중하지 않았던 남성들
예수님 시대에는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들이 남성들로부터 많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있어서 재산의 일부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생각들을 버리게 만들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이고, 그 어떤 재물로도 사고 팔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남성들은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으면 당연하게 이혼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 안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리사이계 율법학자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는데 간음, 풍기문란, 음식을 태우는 것, 계명을 어기는 것,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 따위를 수치스러운 일로 보았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이런 일을 발견하고 버릴 마음이 있으면, 이혼장을 만들어 아내에게 건네주면 그 순간부터 아내는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가 됩니다. 이혼장에 소박 사유를 쓸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내가 무서워서 지붕위에 올라가서 아래에 있는 아내에게 이혼장을 던졌다고도 합니다.
모세는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마태5,31)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이유는 그래야 그 여성들이 다른 남성과 혼인하여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 또한 나름대로 여성을 위한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남성들은 악용했던 것입니다.
② 이혼하지 말라.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혼을 금지하십니다. 이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마태5,32)라고 가르치십니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동등한 존재이고,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 둘이 한 마음이 되어 하나가 되었으면 결코 이혼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배우자에게 부족함이 있다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면서 함께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혼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아내를 버리는 남편들에게 경고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둘을 한 몸으로 엮여 주셨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 큰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너무 쉽게 이혼하는 신앙인들, 배우자에 대한 신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 배우자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배우자를 더 사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내가 어떻게 배우자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귀하게 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배우자는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2.4.4.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
① 맹세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먼저 당연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마태5,33) 거짓 맹세를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거짓을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백색 거짓말이라고 미화시킵니다. 하지만 그것도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그런 상황이라고 해서 거짓을 말해서도 안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맹세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가르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마태5,34-36)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맹세하지 마라.\”입니다. 어릴 적에 친구들에게 자주 했던 말 가운데에서 “천주께 맹세”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즉, 내가 하는 말이 사실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천주께 맹세”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늘을 두고도 맹세를 하지 말고 땅을 두고도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② “예”와 “아니오”를 명확하게 하여라.
맹세를 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믿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믿게 하기 위해서 하느님까지 끌어 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시며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5,37)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신앙인은 “아니오”와 “예”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쉬워 보이지만 너무도 어려운 것입니다. 예전에 고백성사를 볼 때의 일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성사를 보다가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변명을 하면 그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면 된단다.”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핑계를 대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제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 변명 또한 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을 말하는데 상대방이 안 믿어주면 그만입니다. 또한 내가 거짓을 말하는데 상대방을 믿게 하려고 하느님까지 끌어들여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좀 더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상대방이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형제자매들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나의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기도 합니다.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가정 안에서 말로 상처받을 때는 언제이며, 내가 말로 상처를 줄 때는 언제입니까? 특히 자녀들에게 나도 모르게 주는 상처는 무엇이 있을까요?
③ 가까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요, 많은 이들에게 화를 내며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 분노하거나 멸시하고, 더 나아가 매도하는 나를 보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그렇게 하면 용서할 수 있을까요? 나의 그런 모습은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요? 그리고 나는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요?
4. 알림 및 공지
① 내가 지키고 있는 계명들의 의미를 살펴보고 더 잘 지키려고 노력하기
②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③ 내 옆에 있는 이들의 말을 믿어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