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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종씨가 15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청소년들과 함께 불 밝힌 초를 들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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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궐기대회 사회 김태종씨 학살자에 대한 분노 ‘광우병 분노’로 이어져
“촛불 보면서 희망 봅니다”
28년이 흘러 찾아온 5월에 그가 다시 광장에 섰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그 때처럼 애국가가 흘러나왔지만, 엄숙함이나 비장함 대신 발랄함이 있었다. 또 총 대신 촛불과 손팻말이 자리했다. 곳곳에서 10대들이 “미친소 너나 먹어”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1980년 5월23일부터 항쟁이 끝난 27일까지 시민들과 호흡하는 ‘시민 총궐기대회’의 사회자였던 김태종(49)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은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시민들은 ‘국민 세금을 받는 군인이 어떻게 시민을 학살할 수 있느냐’며 분노했다”며 “지금도 시민들이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어떻게 우리에게 미친 쇠고기를 강요할 수 있느냐’며 떨쳐 일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정부에 대한 분노가 시민들을 광장으로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때 실망한 적도 있지만 여전히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대학을 떠나 학원강사 생활을 하면서도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90년대 들어 광주 민주화운동의 보상을 둘러싼 반목이나, 정치권에 들어간 386세대의 행태에 대해 실망도 했다. 하지만 “역사는 굴곡은 있지만 계속해서 발전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촛불집회에 젊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본다. 젊은 세대에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하지만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세상과 우리라는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어떤 학생이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고) 내가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내 가족, 내 친구가 죽는 것은 못 참겠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이 공동체로 확대되는 것을 뜻한다.”
큼직한 집회를 자주 치른 그는 조언도 있지 않았다. “1980년 5월23일 폭우가 내렸는데, ‘돌아가신 영령들이 흘리는 눈물’이라며 말해 모두 우산을 접고 자리에 않기도 했다”는 김씨는 “요즘 집회에는 10대가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공연 등 흥미거리도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76학번인 김씨는 10년만인 1985년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강사, 학원장을 거쳐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 와플을 구우며 카페와 소극장을 운영하는 그는 18일에는 영화 ‘화려한 휴가’를 상영하면서 그날을 보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