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사랑…..

오늘은 우리의 고유명절인 설날입니다.
오늘
제친구인 주연이와 부모님을 위해 연미사를 드릴겁니다.
저의 인생을 바꿔놓은 소중한 친구 주연이…
………………………..
제가 어렸을 때
저는 거의 쌀이 들어간 밥을 먹어 본적이 드물었습니다.
아버지가 시골에서 남의 집살이로 우리 다섯식구들을 먹이고 가르치셨지만
사는건 언제나 어렵고 고달픔에 연속들이었습니다
오빠가 주인집 아들보다 공부를 더 잘했어도 중학교도 못간체
먹고 살기 위해 어린나이에 일하러 다녀야만 하는 오빠를 보면서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어느땐 깡마른 어깨를 드러내며 이불속에서 흐느끼는 울음도 들었습니다.
끝도 없는 가난속에 미리 얻어먹은 식량과 돈을 갚느라 빚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던 비젼없는 어린시절…
그래서 아버지는 모든걸 정리하고 서울로 왔습니다.
아버지가 고향을 떠나시려 했던것은 차라리 막노동이라도 해서 자식들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서울생활은 더 비참했습니다. 거지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힘겹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도시생활 이었지만 그래도 오빠는 중학교에 입학할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학교에 다닐수 있다는 것 하나만 이라도 모든걸 다 참을수가 있었습니다.
다리 밑에서 거적을 덮고 사는 초라한 우리들의 삶이 였지만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일하던 공사장의 사고로 한 마디 말씀도 없이 저 세상으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목숨은 자기 과실이라는 명목으로 방 한깐의 가치로 환산되었고
힘없는 우리는 한마디 말도 못한체 모습조차 없는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어야 했습니다
무덤하나 만들 땅 한평 없는 우리들의 초라한 모습…
서러움과 힘없는 자에 비애를 절실하게 체험하면서
하얀가루가 되신 아버지를 강물에 묻어야만 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족은 이 생각에 젖을 때면 서러움에 눈물을 흘립니다.
그후
어머니가 남의 집살이를 했습니다.
가끔씩 그 집에서 남은 음식을 가져와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도 먹어 봤지만
그래도 우리는 언제나 굶고 학교를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때 주연이라는 영원히 엊지 못할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애는 공부는 뭇했지만 마음이 착하고 넓었습니다.
우린 서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마음과 마음이 통했었습니다.
주연이는 자기 아버지가 엿장사라며 점심대신 엿을 싸왔습니다.
우린 밥 대신 엿과 물을 먹으며 끼니를 대신했습니다.
우리반에서 가장 초라한 우리들
아마 주연이가 없었다면
나는 항상 내모습에 주눅이 들어 지금가지 피해의식으로 세상을 살아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나와 똑같이 행동했고 나와 똑같이 거지처럼 입었습니다.
신발에 구멍이 나 발가락이 나와도 그애는 창피한줄을 몰랐습니다.
그애의 떳떳함이 나의 창피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당당할수 있도록 그는 내옆에 희망으로 서 있어줬습니다.
그 친구는 가끔씩 더러운 우리집에서 함께 자기도 했고 함께 굶기도 했으며
주워온 시레기로 옥수수죽을 끓여 줬어도 맛있다고 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조심스럽게 주연이네 집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연이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 지더니 그럴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우리들이라 저는 주연이네 집을 꼭 알아 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 주연이가 왜 그랬는지
주연이가 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애의 집은 너무 부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연인 우리 어머니가 일하러 다니던 집에 딸 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연이를 저 보다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주연이 방을 치우다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만 두려고 주연이 어머니께 모든 사실을 말씀드렸는데
주연이가 울고 불고 난리를 피워 모든걸 비밀로 하고 다시 다니기로 했다고 합니다.
친구에게 상처가 될까봐 자신을 숨기고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된 사람
3년 내내 나와 똑같이 굶었으며 영양실조로 쓰러진 사람
거지라고..비웃음을 함께 받았으며 고통과 슬픔도 힘께 해줬던 따뜻한 사람
풍부한 물질로 자신을 드러낼수 있었건만
그는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처럼 나와 함께하려고 눈높이의 사랑을 했습니다.
유별난 사랑이 아니라 평범하고 넓은 사랑으로 나를 이끌어 줬습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이 우리집을 먹여 살렸고
오랬동안 익명의 장학금에 후원자로 우리들을 돌봐준 아름다운 사람들이 었습니다.
그런 친구에게 저는 배은망덕한 친구였습니다.
그가 골수암으로 고통을 받았을 때 전 외국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아니 비행기값이 아까워 한국에 올수 없다고 이유를 댔습니다.
그의 죽음도 그의 모습도 돈이 든다는 이유로 보지 않았던 인간이었습니다.
그의 비보를 받았을 때도 뻔뻔스럽게 하느님을 욕했습니다.
성당에 가서 하느님을 원망했고
그렇게 좋은사람을 데려갈수가 있느냐고 하느님을 저주했습니다.
그 친구가 그렇게 사랑하는 하느님의 힘은 이것밖에 안되는 분 이었다고….
오랫동안 하느님에 대한 의구심이 그날 한꺼번에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할수없는 그저 바라보는 자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란 인간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를 통해 그분을 보내줬어도 눈이 멀어 알아보지 못했고
하느님을 거부한 저를 그분은 친구를 통해 끊임없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느님을 알게 된것도
그의 마지막 편지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편지는 너무 단순하고 간단해서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보고싶은 은경아
건강은 어떤지.. 물론 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널 못보고 죽을것 같구나.
그래서 네게 부탁하나 하려해
꼭 들어줄거지?
내가 죽거든 연미사를 부탁해….꼭…
그럼 잘 있어
안녕”…..
이렇게 간단한 편지를 통해 교만한 나를 또다시 그분앞에 서게한 사람였습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것이라는 걸 옳바르게 깨닫게 해줬고
그분의 사랑은 가이없는 사랑임을 알게 했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말없이 맞아주신 아버지
저는 그분품에 안겨 그분처럼 살다간 친구를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재주가 없어 아름답게 쓸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48년 세월…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런친구가 있었기에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만 줄이면서
오늘은 친구를 위해 기억하는 하루가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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