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상(16)

나는 이 곳에서 일상사 안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허겁지겁 뛰는 나를 보고 수사님들은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한다.
내가 바쁘게 서두르면 수사님들은 천천히 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내가 걱정했었던 일들이 부질없고 불필요한 걱정이었음을 알아간다.
지난 주 죤 에우데스 수사님에게
내가 어떻게 잘하고 있는 것 같냐고 물었었다.
수사님은 “괜찮은 것 같은데요.
아직 아무도 신부님에 대해서 말하는 겊 못 들었으니까 말이죠.”
하고 대답했다.
사회에서 같으면 이 정도의 평가가 썩 좋은 평가는 아니었을 텐데
수사님은 그저 그렇게만 대답했다.
내 생활의 표면에 쉬임없는 일상사의 파문이 일고 있지만
그 밑에는 도도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마르셀러스 신부님께서 저녁 식사 동안
베에토벤이 그의 친구를 위해
새로 작곡한 소나타를 연주했었을 때의 일화를 읽어주었다.
연주가 끝났을 때 베에토벤의 친구가 베에토벤에게
방금 연주한 곡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단다.
그러자 베에토벤은 아무 말 없이 피아노로 가서
방금 연주했던 곡을 한 번 더 연주하고는
“그 소나타의 뜻은 바로 이거야”라고 대답했었다는 것이다.
‘관상 생활이 어떤 생활입니까?’ 혹은
‘수도생활이란 어떤 생활입니까?’라는 질문에는
아마 이런 식의 답변만이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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