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호스피스 봉사자의 글입니다.
사순절이때…
묵상하게 만드는 글이기에 여기에 실어봅니다
님들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요…
*2003년 1월9일
유방암 말기라는 같은 병명을 가지고 같은 시간대에
이 ㅇㅇ님(60)과 전 ㅇㅇ소화데레사님(66)이 꽃마을에 입소 하셨다
같은 병명을 갖고 입소하신 분들이기에 그렇게 한방에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랄까?..
서로의 아픔을 같이 나누었던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다.
이ㅇㅇ 님이 그 방에 같이 못 있겠다고 4인실로 옮겼다.
혼자 계신 전ㅇㅇ 소화데레사님의 방에
새로 입소한 환자 분들이 오시면 배정을 해드렸다
소화 데레사님은 자만심과, 교만과, 욕심과, 이기심으로 무장된 분이셨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살고 싶다고
이 병이 빨리 나아지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늘 그렇게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자궁경부암 강ㅇㅇ 마리아님(56)이 새로 입소하시게 되어
전ㅇㅇ 소화 데레사 님의 방으로 모시게 되었다.
움직일 수 없는 강ㅇㅇ 마리아님은
소 대변이 한곳에서 그렇게 쉴새 없이 흘러나오는 분이셨다.
강ㅇㅇ님의 귀저기를 갈아 드릴 때면 전ㅇㅇ님은 아예 밖으로 나가 계시곤 했으며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방향제를 뿌리고 들어오시곤 하신 분이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웠고 마음이 아팠다.
얼마가 안가서 당신의 모습일수도 있는데…
며칠 가지 못해서 다시 방을 옮겨달라는 전ㅇㅇ님의 요청에 의해서
비어 있는 침상으로 옮겨 드렸다.
몇 번에 의해서 그렇게 같은 방의 환자 분들과 잘 지내지 못하시고
결국은 전ㅇㅇ 소화 데레사님을 혼자 쓸 수 있는 방으로 옮겨 드려야 했다.
그리곤 봉사자들이 오면 마치 시녀 부리듯이 하였다
그러니 봉사자들은 그 방을 찾지를 않게 되었고
나도 어느 때부터인가 그 방을 자주 드려다 보지 않게 되었고
그냥 형식적인 인사만 했었던 것 같다
전ㅇㅇ님의 유방 암 악화는 돌덩이처럼 양쪽으로 전이되며
곧 터져 버릴 것처럼 점점 더 자라고 있었다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냥 부어있는 손을 잡아주며 팔을 주물러 주며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나는 자식들이 너무 밉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자식들을 용서할 수 없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줄 아느냐
다 저네들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 내가 어떻게 자식들을 용서 할 수 있냐고
전ㅇㅇ님은
자식들에게 너무나 서운한 감정이 많았다
아마 자식들에게 기대치가 너무 컸던 것 같다.
자제분들을 많이 사랑하시나봐요
그러니까 서운하시지요
응- 맞아 내가 이렇게 많이 저네들을 사랑해
그런데 저네들은 그게 아닌가봐 내가 이러고 있는데도
내가 암과 죽음 속에서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데도 나의 고통은 관심 밖이야
자제 분들이 어떻게 해 주길 원하세요
내가 큰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야
작은 것 따뜻한 손길과 따뜻한 말 한마디
엄마 힘들지!.. 엄마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엄마 사랑해요…
이말 하기가 그렇게 힘드냐고…
아~~ 그랬었구나
젊어서 혼자되어 자식들 키우고 공부시키고 결혼시켜 놓았지만
병이 깊어지니 자식들이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 심리이었으리라
자식들과의 대화 단절 그것이 전ㅇㅇ님은
다른 누구와도 융화 할 수 없는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걸게 만들었나보다
닫혀있는 전ㅇㅇ님의 마음을 풀어줄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도 자제분들이 전ㅇㅇ님을 미소짓게 한 일들이 있을 거예요.
자제분들 때문에 잠 못 들게 한 일들과 미소짓게 한 일들을 떠올려 보실래요?..
전ㅇㅇ님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잠시 머물고 갈 것들에게 너무 많이 마음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간호사님이 드레싱 하는 것을 도와주게 되었다
전ㅇㅇ님의 병이 악화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지난 토요일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또 한번 마음이 아프다
암 덩이가 양쪽 유방을 전부 덮고 있으며 농이 짖게 드리워 졌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팔을 들 수도 없고 누울 수도 없고 24시간을 그렇게 앉아서만 있어야 한다.
그것도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자신의 몸 일부가 썩어가고 있는 것을 고통속에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몸에서도 이렇게 냄새가 나는데
다른 이들을 조금 더 사랑으로 바라보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라고 나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전ㅇㅇ님 자제 분들을 용서하셨나요?..
용서?!.. 그 것들 내 전화도 안받아…
용서를 할 수 없어… 힘들게 말씀을 하신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라는 성경구절을 생각해 보며
내가 먼저 다가가 날 용서해 줄 수 없겠니?!..라고
한마디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지금의 이 상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지난 토요일 3/8일에
온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전ㅇㅇ님 2인 실의 다른 병실로 옮겼다
누울 수도 바로 앉을 수도 없는 전ㅇㅇ님의 피 묻은 옷을 갈아 입혀드리며
잠깐 이었지만 전ㅇㅇ님께 정성으로 다가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전ㅇㅇ님이 앉아 계시기 불편하지 않게 자리를 살펴드렸다.
아직도 전ㅇㅇ님은 자만심과, 교만과,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분의 마음에는 왜 사랑이 없을까?..
마음이 아프다 내가 그동안 전ㅇㅇ님의 호스피스를 하긴 한 걸까?..
정서적 돌봄과, 영적 돌봄이 전혀 되지를 않았다 전ㅇㅇ님에게는…
이 분을 이렇게 보내드려야 하나…
조금이라도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 져야 할텐데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하나…
근심 어린 마음으로 돌아왔었다.
전ㅇㅇ 소화데레사님은 2003년 3월8일 늦은 밤에 주님의 품으로 가셨다고 한다.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았었지만
주님의 품으로 가실 때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주님의 품으로 가셨을거라고 믿어보며…
전ㅇㅇ 소화 데레사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기도 드립니다.
언제나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너그러이 용서하시는 하느님,
이 세상을 떠난 전ㅇㅇ 소화 데레사님을 기억하시어
영원한 기쁨을 얻게 하소서.
전ㅇㅇ 소화 데레사님께 해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정작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느끼고 살 수 있는
시간은 오늘 밖에 없답니다.
더구나 삶의 즐거움은 오늘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있다 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