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순교자들의 묘 앞에서
청양 다락골의 줄무덤.
이곳은 이름 없는 순교자 분들이 누워 계신 곳이다. 이곳을 순례하면서 전에는 ‘무덤밖에는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이번 순례에서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무명”이라는 것.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 자신에게 무명을 요구한다면 나는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무명 순교자의 묘”라는 묘비 앞에서 그분들을 생각해 보았다. ‘어떤 분이셨을까? 꼭 신앙 때문에 목숨을 내어 놓으셔야 했을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는데 이곳에 계신 분들은 이름 석자 남기지 못하셨다.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와 선행에 대한 가르침이 바로 ‘무명’이라는 것으로 드러나는지도 모르겠다. 기도할 때는 창문하나 없는 골방에서 남들 보이지 않게 하고, 선행을 할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하라는 말씀이 결국 이분들의 삶을 통해서 드러났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분들의 무덤 앞에 선 나는 무엇을 하게 되면 그것을 내가 했다고 자랑하고 싶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제는 이분들처럼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를 고민하지 않고 하느님 앞에 어떻게 보이느냐를 고민해 보아야겠다.
순교자들이여! 저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