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전문 커뮤니티 싸이엔지 http://www.scieng.net 에 갔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글. 강추입니다. 자유게시판 김상성님 글.
요즘 여러가지로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메마른 목을 축여주는 소식들이 있다. 쿠웨이트를 4대 빵으로 대파한 축구팀과 줄기세포의 줄기찬 발전 등.
그 소식 속에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희망인 ‘영웅’들이 등장한다. 축구에는 박주영이, 과학계에서는 황우석 교수가 그 주인공들이다. 누가 누가 잘하는지, 누가 진정한 영웅인지 판가름 하는것은 사실 쉽지않은 일이긴 하지만 일단은 누가 보더라도 눈에 뜨게 돋보이면 ‘뛰어나다’, ‘excellent’하다는 찬사를 듣게 된다.
사실 박주영만 하더라도 수비수 서너명은 제치고 가볍게 톡 하고 차넣는 골이 대부분 들어가는 것을 보면 뭔가 다른 패러다임의 축구를 한다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가 연이어 사이언스에 논문이 실리고 국제 언론의 주목을 받는걸 보면 일반인들의 눈엔 정말 잘 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다. 하지만 눈을 잠시 감고 내안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1960년 후반 케네디 정부시절 미국은 닐 암스트롱을 달에 보냈다. 그당시 미국이 우주과학이 발달해 있었다고는하나 그렇다고 대다수의 미국 시민들까지 과학을 잘 알고있는것은 아니었을테고 지금처럼 인터넷은커녕 TV도 완전 보급되지도 않은 시절이었으니 자국민조차도 외국 사람들과 별반 다를바없이 사람이 달에간 상황을 놀랍고도 신기하게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일부 국민은 국민들이 모르는 일들을 국가가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정부를 불신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쨎든 정부에선 국민들에게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과학을 쉽게 이해시키고 그런 친근함을 통해 국민들의 지지속에서 ‘지속적인’ 과학발전을 이루기위해 당시 NASA에 근무하고있던 한 젊은 과학자를 방송에 내보내게 된다.
사람들의 처음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과학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그 ‘젊은 과학자’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보통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과학자란 세상물정 모르고 폭탄머리의 괴팍한 사람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TV에 나온 칼 세이건은 한눈에 봐도 잘생기고 매력적인 쾌활한 젊은이였던 것이다. 어째든 정부의 바램대로 칼 세이건은 국민들에게 과학을 친근하게 다가가게 하였고 그 자신도 ‘코스모스’란 명저를 쓰고 학문적으로도 많은 별倖?남겼다.
이러한 노력들이 현재까지 미국이 과학 발전을 지속하게 했던 요인들 중의 하나, 작지만 중요한 하나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최근들어 우리는 한국의 칼 세이건을 보고있다. 그 유명세는 인기를 넘어 존경을 지나 숭배까지 이를 정도다. 이정도의 인식은 다른 나라에선 노벨상을 두번정도 받아야 생길 수 있지 않을까싶다. 황우석 교수는 같은 바이오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노력도 많이 하시고 참 좋은 성과를 내셨다고 생각한다. 사이언스에 연이어 두편이나 실으신 것이 쉽진 않은 일이니.
물론 그것보다 더 좋은 논문에 더 많이 내신 분들도 없진않긴 하지만… 우선은 테마가 참 좋았다. 기존의 THERAPY의 관점에서 아예 생체 각 기관을 replacement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테마로 잡으셨으니 누구라도 공감대를 가질만하다. 학문적으로도 난치병 치료의 가능성을 열었고 국가적으론 post-science를 리드할 수 있게됐다는 우월감이, 국민들에겐 이 두가지로인해 민족적 자부심까지 들게 되었다.
의도되었던 그렇지않았던 그 파급효과는 실로 크다. 이제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해진다.그 효과중엔 긍정적으로 보이는 여러가지가 있다. 이제부턴 일반인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필드에서 뛰고있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말하고자한다.
우선 학계에선 기존의 권위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정권이 주장하는 개혁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한다. 기존의 교수들은 대부분 서울대 출신이고 학위는 외국, 특히 미국에서 마치신 분들이다. 외국과는 달리 tenure제도가 없는 한국에 돌아오셔서는 말 그대로 정년까지 푹 쉬시다 가시는 교수님들이 많았다. 그에비해 그 권위는 실로 막강하여 각종 학회의 장 자리를 틀어쥐면서 grant를 도식해왔다. 그에비해 황교수는 약간은 밀리는 학과 출신이고 국내에서 학위를 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자신의 말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결과를 내게 된 것이다.
이로인해 이제는 학계에도 서울대, 해외파(미국파) 일변도의 rigid한 분위가 multi-polarization상태로 우연찮게 이동하게 되었다. 이는 이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을 변화임이 틀림없다. 두번째로 기존의 연구들은 대부분 선진구을 모방하는 모델이 대세였다. 교수들 대부분이 미국에서 학위를 했기 때문에 그쪽 랩에서 하던걸 고스란히 가져와 발전시키는 정도라고나할까? 어디 하나라도 우리나라에서 initiative한 분야는 찾기 정말 힘들다.
비록 줄기세포의 시작이 우리나라라곤 할 수 없으나 인간 배아세포로한 실험은 세계 최초라고 할만하다. 왜냐면 다른 나라에선 안하니까.(못해서라기보단) 이런면에선 기존의 통념을 깨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만하다.
하지만 정작 우려되는건 바로 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구호이다. 그동안 너무 찌그러져 있어서인지 너무 이 구호에 집착한다. ‘우리는 할 수 없어’라는 근본에 깔린 열등감의 역설적인 발로라는 생각이 들기까지한다.
문제는 ‘기본적으론(절대적으로는 아니라)’ 순수해야할 과학이 시작부터 민족주의적 색채를 띄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가들의 좋은 먹이감이 될 수 있다.
과거 냉전시절 동유럽에서 자기들 체제의 우수성을 입증하기위해 올림픽 메달에 집착했던것처럼.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한 줄기세포 분야가 무슨 마술인양 만병통치약처럼 포장해서 말하는 언론이나 이를통해 국민들을 안심시켜 떨어진 인기를 만회해보려는 약삽한 정치가들이 너무나 많다.
정말 큰 문제는 이럴수록 더욱 말을 삼가해야할 과학자 자신이 갈수록 더 이런 현상을 부채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진리 그 자체를 밝히는 것이고 그 성과는 인류 전체의 것이 되어야하며 결코 정치가들의 선전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또다른 우려는 줄기세포 연구 자체에 있다.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약 십년전에 미국에서 획기적인 가능성을 발견하고 정부의 큰 기대와 막대한 투자와 함께 시작된다. 그 후 영국에선 최초로 복제양을 만들었고 한국에선 그 프로토콜을 그대로 들여와 소를 복제하였다. 그리고 끝-. 갑자기라 할 정도로 줄기세포 연구가 정체되기 시작했다.
신나게 쏟아졌던 논문들이 마르기 시작하고 가끔 나오는 논문의 제목은 ‘줄기세포의 성장가능성의 한계’류의 부정적인 논문이었다. 그런 침체기에 한국에선 인간 배아복제를 이용한 기술까지 선보였으니 전 세계가 놀랄수밖에.
하지만 왜 갑자기 줄기세포가 정체되었으며 다른 과학자들은 뭐하고 있었을까?
선진국에서, 특히 기독교 국가에선 인간을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종교를 떠나서라도 무엇으로도 분화 가능한 세포로 연구를 한다는 것은 물리학에서 핵무기를 연구하는것과 같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할 분야이고 관련 규정과 체계가 정비되기 전에는 본격적인 연구가 불가능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서는.
우리나라는? 법규정?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성인 여자의 몸에서 난자를 수백개씩이나 채취했는지 말도 없다. 그 피험자가 난자 채취수술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이나 들었을까 싶다.
도대체 먼저 저질러보고 만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것일까? 이상태로 계속가다간 인간 줄기세포의 실험용 나라가 될 뿐이다. 마치 핵무기를 자국에서 처음 터트려 본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 결과를 토대로 보다 정교한 핵무기를 만들테지.
다음으로 황우석 신드롬이 과학계에 끼치는 어두운 그림자다. 정부에선 황교수를 위해 없던 ‘최고 과학자’연구비까지 만들고 엄청난 연구비를 올인하고 있다.
후원회까지 만들면서.
문제는 그 몇백억의 연구비가 새로 추가된 예산이 아니라 기존 연구비에서 빼돌린 것이라는 점이다. 그 공백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만큼 상대적으로 다른 과학자들에게 돌아갈 연구비가 줄었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기존에 자리를 굳힌 교수들이야 끄떡 없겠지만 새로 시작하는 과학자들은 단돈 천만원 따기도 그렇게 힘들다고 한다. 이런 연구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해져 줄기세포 외의 다른 중요한 연구분야들은 연구비 가뭄에 시달려 고사될지도 모른다.
한사람이 노벨상 받는다고 달라질게 뭐가 있겠는가? (그것도 받으면 몰라도)
이와 더불어 전체 과학자들의 사기 문제 또한 달려있다. 사실 일반인들은 몰라도 이제 우리나라에선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많아지고있다. 비록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만한 분야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학문적으로 중요한 분야고 결국엔 새로운 변화의 근본이 될 분야들이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실제적으론 더 우수한 분들이 초야에 묻혀 지내는데 사람인이상 상대적인 박탈감은 없겠는가? 그리고 황우석 박사의 말중에 라면 스토리나 월화수목금금금 이라는 말을 들으며 현재 고등학생들이 누가 연구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될까? 이는 더욱 탈 이공계 현상을 부추킬 것이다.
아직 시작단계의 연구에 너무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되있고 그것도 학문적으로가 민족주의적 색채를 띄며 포장되고 있다. 이는 분명 칼 세이건이 불러 일으킨 과학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과학자가 일반인과 직접 연결되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연구가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섣부른 기대는 그만큼 큰 실망을 가져올 수도 있으며 더구나 delicate한 연구를 하는 사람은 보다 신중해져야한다. 앞으로 이런 선례를 mimic하여 스스로를 포장하고 선전하는 ‘대중 과학자’의 출몰이 걱정된다. 결국엔 과학은, 과학자들은 정치가들에 의해 이용되어서는 안되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