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데가 없어” 덜컹대는 노후…지하철로 몰리는 노인들

 

“갈데가 없어” 덜컹대는 노후…지하철로 몰리는 노인들




“지하철 인생이지 뭐.”서울 용산에 사는 박모씨(86·여)는 28일 오전 10시 인천행 지하철 전동차에 몸을 실으면서 “나의 하루는 지하철에서 시작해 지하철로 끝난다”고 말했다. 박씨의 ‘출근’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다. 평일뿐 아니라 토·일요일에도 인천행 전동차에 오르기 때문에 주5일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박씨는 ‘경로석’에 우두커니 앉은 채 여느 때처럼 창밖을 내다본다. 매일 보는 바깥 풍경이어서 새로울 것도 없다. 이내 고개를 떨군 채 잠이 들었다.




옆자리에 한 노인이 앉는 바람에 잠을 깬 박씨는 “동네 경로당에도 가끔 가지만 지루해. 이렇게 바깥바람을 쐬어야 하루가 금방 가지. 전동차 안이 따뜻해서 시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야”라고 말했다.




경기 안양에 산다는 이모씨(75)도 이날 오전 며느리로부터 3,000원을 받아들고 천안행 전동차를 탔다. 그는 “추위를 피하기에는 은행이 좋지만 경비 직원의 눈치를 받게 되고, 백화점에는 앉을 자리가 없고…. 지하철을 타면 표도 공짜이고 난방도 잘 돼 있고,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제일 좋은 노후 생활이야”라며 웃었다.




가정도, 경로당도 마다한 채 지하철에 의지해 노후를 보내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전동차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떠도는 현실이 2005년 대한민국 노인들의 세밑 풍경이다. 직장 은퇴 이후 달리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천안역 전동차에서 만난 유모씨(73·서울 거주)는 기자에게 “천안에 아들이 살고 있어 아들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들이 사는 동네 이름은 얼버무렸다. 시간 때우기 위한 여행으로 비쳐지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서울에 살면서 유씨와 같은 전동차를 탄 이모씨(80)는 “여행은 무슨 여행…. 매일 아침 8시30분 집을 나와 3시간쯤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천안행 전동차를 타는 거야. 천안역 근처 중국집에서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어. 오후 3시쯤 다시 전동차를 타, 4시30분에 서울에 도착하면 하루가 다 가는 거야”라고 밝혔다.




천안역의 한 직원은 “가을에는 하루 3,000장, 겨울에는 2,500장 정도의 노인 무임승차권이 나간다”며 “임시로 쓰고 있는 역사여서 노인들이 쉴 공간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봄·여름·가을에는 임시역사 인근의 등나무 쉼터나 분수대 부근에서 쉴 수 있지만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노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내년 7월쯤 첫삽을 뜨게 되는 천안 민자역사에 노인 쉼터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역에서도 하루 1,000여장의 무임승차권이 나간다. 인천역 앞의 인천종합관광안내소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자주 오시는 것을 보면 서글퍼진다. 차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면 아주 좋아하시는데, 얼마나 외로웠으면…”이라고 말했다.




천안역 서부광장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올해 1월 전철이 개통된 이후 노인 손님이 많이 늘었다”며 “보통 인근 온천이나 독립기념관, 천안시장 등지로 가자는 노인들도 있지만 대부분 역광장 주변을 맴돌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전했다.




천안행 전동차를 탄 윤모씨(75)는 “젊었을 때 건축 시공을 하느라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며 “은퇴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 죽을 것 같아 서예나 인터넷에 취미를 붙여보려 했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고 말했다.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며 정부 연금으로 살고 있다는 문모씨(61)는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에 가면 비슷한 연배의 친구도 새로 사귈 수 있지만 ‘쓸모없는 사람’으로 인식될까봐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닌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박승희 교수(사회복지학)는 “사회 경험이 많은 노인들이 역전이나 전동차에서 무작정 시간을 보내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급속히 고령화사회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지역별 노인복지시설을 확충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인 인력 활용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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