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무거운 병고, 중풍이란 병마의 선고를 받고
그 좁은 방에서 12년이란 세월을 갇혀 지내시다가 자유로운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님!
그러니까 20년전 시아버님이 갑자기 홧병으로 돌아가셧고
따라서 가세가 기울고 말았다.
그러자 시어머님은 청계천 동대문 육교에서 군밤장사를 시작하셨고
우리는 아이들 셋과 먹고살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 시어머님도 행상이 힘들어서
느닷없이 중풍을 맞고 말았다.그때 어머님의 연세가 50세.
그 젊은 나이에 반신 불수로 왼쪽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또한 우린 살기가 너무 힘들어 난지도 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물도없고 전기도 안들어오는 막막한 생활속에서 시어머님을 모실수가 없었다.
어머님도 우리와 살면 불편하시다고 청계천 창천동에서 돌아가실때 까지 사시겠다고했다.
그렇게 어머닌 그집에서 혼자계셔야만 했고
그렇게 우리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물론 큰아들도 있지만 큰며느리가 어머님을 싫어해서 그나마 중풍걸린 시어머님과는
살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수없이 둘째인 우리가 모셔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역시 빈 털털이로 난지도 로 올수밖에 없는 형편에
쓰레기더미에서 나오는 악취며 파리 모기 바퀴벌레며
바람만 불면 하늘을 까맣게 날리는 먼지와 까만 비닐봉지와
폐수에 의한 공기때문에 항상 두통에 시달려야하는 환경에 ,,
젊은 우리도 살기힘든 이곳에 중풍걸린 시어머님을 모셔올수는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우리가 좀더노력해서 어머님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하자며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남편의 도우며 사흘에 한번 나흘에 한번 반찬을 해서
청계천 어머님 집에가서 이불빨래며 옷가지를 빨아놓고 청소하고
어머님 목욕시켜드리고 손톱발톱 깎아드리고,,
다음 나올때까지 잡수실 김치와 국을 끓여놓고 머리가 흔들리도록 일을 하고
집으로 오곤했다.
그리고 집에오면 년년생인 아이셋의 뒷바라지도 다 나의 몫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 몰래 남편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면서 가슴치며 자책도 했다.
“내가 미쳤지 .. 어머님이 나를 그렇게도 미워할때 살지 말것을 …..”
가슴치며 후회도 했다.
그러나 내 아이들, 저 철없는 애들과 나를 싫어하시던 시어머님이
병들어 서 나만 쳐다보고 있는데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들었다.
처음 시집왔을때 시어머님은 그러셨다.
나의친정이 너무 가난하다는것과 당신아들보다 못생겼다고..
더불어서 일도 못한다고 미워하며 모진 시집살이를 시켰다.
나에게 고운 눈길한번 보내시지 않으셨다.
성격또한 얼마나 무서운지 나는 어머님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하루는 저녁 설겆이를 끝내고 밤인사 올리러 안방에 들어서니,
어머님은 등을 돌리고 벽을 보고 누워서 인사를 하려해도 돌아보지 않으셨고,
그렇게 나는 2시간을 꿇어앉아서 기다려서 겨우 인사올리고
내방에 와서 눈물로 밤을 지샌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렇게도 내가 맘에 안 차셨는지 나를 싫어 하셨던 분이셨다.
솔직히 그래서 난 우리도 사는게 힘들어서 애들 밥도 굶길판인데
어머님에 대한 짐을 무척이나 원망하며 이젠 내가 어머니를 미워했다.
그것은 어머님이 돈이 있을때도 손주가 라면만 먹는다고 해도
쌀 한톨 사주시지 않으셨다. 외손주들만 챙기셨다.
물론 할 도리는 어쩔수 없이 하지만 마음 속으론 어머님이 미웠다.
그렇게 세월이 3년쯤 지났을까…..
내가 이러면 안돼지 “죄받지” 하는 생각에 미워 하는 마음을 접기로 했다.
나 또한 늙어가고 그리고 내 아이들이 뭘보고 배우겠는가…
그리고 가장 마음을 찌르는것은 어머님 자신의 불쌍한 처지가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막혀왔다.
불같은 성격의 이북분이 사각의 방에서 외롭게 살아가시니 얼마나 답답하고
고독하실까.
그렇게 마음먹고나니 편안해졌다.
하지만 중풍환자가 다 그렇듯이 당신 욕심만 부리고 자식의 고생은 아랑곳하지않고
맛 있는 것 안사준다고 늘 불만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어머님은 제 편이 되어 있었고, 모든 것을 이 못난 작은 며느리만 의지하셨다.
물론 제사와 명절에도 우리가 지냈고 어머님께 “저희집이 좁더라도 같이 살아요.녜?”
하면 “내가 왜 여길오냐? 너희 아버님이 돌아가신 청계천이 편해…나도 여기서 죽을거여…”
한사코 싫다고 하신다.
알고보니 우리가 더 힘들까봐 그러셨나보다. 그래서 아무리힘들고 우리가 굶어도
어머님 약값과 용돈은 빌려서라도 해드렸다.
그러면 어머님은 돈을 충분히 안준다고 나에게만 역정을 내셨다.
어쩌다 들리는 큰아들 내외는 물론 용돈은 커녕 손님처럼 앉았다가 가기일쑤였고
어머님께 물 한모금 떠다 주지않고 설겆이하나 손대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님께 큰며느리 좀 시키라고 불평을 하면 어머님은 아무말없이 돌아앉으셨다.
왜냐면 어머님이 한마디하면 수십마디하며 대드니까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당신을 이해하면서도 야속했다.
그러고 나면 어머님께 미안해서 손과 다리를 주무르며
“어머님 더 이상 아프시지 마세요, 이 반쪽만이라도 움직이는게 어디예요,조금만 참으시면
아범이 돈벌어서 어머님 잘 해드릴게요”
이 말을 들으시더니 어머님은 나의 손을 잡고 한없이 우셨다.
내 자신은 어머님을 한집에 모시지 못해서 자식된 도리를 못하는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항상 죄스런 마음에 가슴이 답답해서 어머님 몰래 부엌에서 울었다.
그리고 어머님 방문을 열때마다 혹시 잘못되시지나 않으셨나,
마음을 조이면서 문을 열었고 어머님은 “너 왔냐?”하시며 한쪽으로돌아가는 입을
더 치우치면서 웃으신다.
그리고 머리 감겨드리며 “어머님 저는요 아범하고 인연이 아니라 전생에
어머님께 많은 빚을 졌나봐요.그치요? 그렇지 않고서야 아범이 저의 고생을
그렇게 몰라줄수 있을까요?”
어머님은 아무 없이 천정만 올려다 보았다.듣기 싫으셨던 게다.
그렇게 나는 난지도와 청계천을 발을 동동거리며 12년을 다녔다. 막내가 두살때
어머님이 중풍을 맞으셨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해 아주 무덥던 여름이 지나갈 무렵 평소 손주들을 이뻐 하시지 않던 어머님이
그날은 막내 손자에게 축구공을 사주라며 베게 밑에 꼬깃꼬깃 모아 둔 돈을 꺼내어
궂이 손에 줘어 주시며 ” 너 돈 이 없다고 쓰지말고. 꼭 용호 축구공 사줘라…”
하신다.
나는 차마 그 돈을 받을수가 없어서 ” 어머님 우리가 보약도 잘 못해 드리는데
어떻게 이 돈을 받아요. 잡숩고 싶은것 사 드세요.”
하니까 화를 내시며 한사코 주시길래 할수없이 받아서 아들 아이 축구공을 사 주었다.
그리고 며칠뒤 아이 공을 사주었냐고 확인하시고 또 이번엔
아범에게 보신탕을 사주고 싶으니 돈 7만원을 가져 가라는것이다.
이번엔 도저히 그 돈 을 받을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후 어머님은 사족을 다 못 쓰고 자리에 누우셨다.
그래도 그 동안은 혼자서 대 소변을 보셨고 지팡이를 의지해서 걸어다니셨기 때문에
혼자 계셨는데 이젠 단칸방인 우리집으로 모셔야했다.
그래서 혹시 큰아들에게 가고싶어 하시지 않으실까 해서 “어머님 형님네로 가실래요?
저희집으로 오실래요?” 도리상 여쭸더니 “유미네 ….”
그런데 갑자기 어머님은 혀가 굳어졌고 대변을 옷에다 보셨다.그리고 곡기를 끊으셨다.
하루는 깨끗한 수건으로 온 몸을 씻어드리며
“어머님 밥을 잡수세요, 그래야 일어나지요. 똥이 나올까봐 그러세요?괜찮아요.
제가 있잖아요, 유미에미가 다 할께요….”
사실 난 어머님 대 소변 받아낼 일이 항상 두렵고 걱정이었다.
그런데 마음을 먹고나니 전혀 더럽지도 않고 역겹지도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러자 어머님은 이미 굳어가는 손으로 나의 다리를 어루만지시며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말도 못하시며 한참을 눈물을 글썽이며 이 못난 둘째 며느리를 쳐다 보셨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시던 냉면이 먹고 싶다고 하셔서 어머님 입에 젖가락으로
한 공기쯤 먹여 드렸고 나머지는 나에게 먹으라셔서 남은 것은 내가 다 먹었다.
그것이 이승에서의 어머님과의 마지막 식사였다.
그렇게 12년이 걸린 병고의 세월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롭고 온화 하셨다.
그리고 상여 나오는날 다시 못올 이 길을 떠나오며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것은 내 설움이었을 게다.
아이 셋을 끌고 12년간을 비가오면 비 맞고 눈이오면 눈 맞으며 힘겹게 다녔던
이 길을 말이다.
또한 지팡이에 의지해서 걸어다니시던 어머님의 모습도 이제는 영영 볼수없게 되었고,
아니 나의 자책감에서 더 오열 했는지도 모른다.
왜 잘 해 드린 것은 생각안나고 , 좀 더 친절하게 해 드릴것을 하는 후회와 더불어
어머님의 그 애처로운 모습과 고독하고 외롭던 人生이 불쌍해서
내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다.
왜 인간은 부모님 살아 계실때 효도를 못하는지 …
그 누가 말했던가 , “돈 과 부모는 있다고 생각마라,있다고 안심하면 어느샌가 없어진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편 즉 몸이 약한 둘째 아들에게 보신탕 사주고 싶었던 마음을
안 받아드린 것이 얼마나 죄송스러운지
둘째 며느리가 끝까지 미웠으리라 .
어머님 의 그 깊은 마음을 받아 드릴것을 하는…
이제 와서야 회한의 눈물을 닦아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