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산리 새터공소와 한정리 공소

내포 일대에서 가장 큰 공소였던 박해시대 교우촌


1850년대 충남 아산군 신평면 지역에 처음 복음이 전파 되었을 때, 이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원머리(한정리)의 초기 신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전교에 의해 이곳 새터(梅山里) 지역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구전에 따르면, 막연히 ‘박해 시대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새터에 살고 있었다’고들 하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원머리에서 순교자가 탄생한 뒤 즉 1868년에 일어난 무진박해 이후가 아니었나 추정된다.

매산리 새터 공소가 처음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1883년이다. 박해 이후 처음으로 충청도 일대의 교우촌을 순방하게 된 두세 신부가 이곳 신자들을 방문한 것이다. 따라서 1883년은 새터 공소가 정식으로 설정된 해라고 할 수 있다. 이듬해 이곳 공소의 신자수가 72명으로 기록되고 있는 사실에서 이미 그 이전에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천주교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소로 설정된 후 새터 공소의 교세는 나날이 증가하였다. 1885년에는 이미 100명을, 1919년에는 160명을 넘어섰으며, 해방 이후에는 더욱 교세가 확대되어 총 신자수가 2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1964년에는 399명을 기록하면서 400명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물론 이 숫자에는 맷돌포의 신자수도 포함되었을 것이지만, 나이 든 신자들의 말을 빌면 당시로서는 내포 일대에서도 가장 큰 공소의 하나였다고 한다.

교세가 확대되는 가운데 새터 공소는 두세 신부에 이어 1890년부터는 퀴를리에 신부의 방문을 받게 되었고, 이때부터 양촌 본당(현 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1899년에 이 본당이 합덕으로 이전되면서 신합덕 본당이 설립되는 1960년까지 여기에 속하였다가 1975년에 신평 본당이 설립되면서 그 관할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새터 공소는 이웃의 원머리 공소와 함께 매우 열심한 공소로 이름이 나 있었다. 퀴를리에 신부나, 그 뒤를 이어 합덕에 부임한 홍병철(루가, 1905년 재임), 크렘프(1906-1913년 재임) 신부의 기록에 새터 공소가 아주 우수한 공소로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페랭 신부는 “새터 공소 또한 교리 교육에서 특히 언급할 만하다. 매 달 문제지를 공소의 교리학교에 보내고 출석을 철저히 점검하도륵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교리 교육에서나 신심면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후 1970년대까지도 이곳 공소에서는 매우 엄격한 교리 교육과 공소 예절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주일이면 공소 예절을 한 뒤 한나절을 의무적으로 교리 교육에 할애 하였으며 공소 예절에 참여하는 신자 수가 300명가량 되었고, 신자들끼리 상부상조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으므로 강당 건립이 가능했다고 전한다. 새터 공소에서는 오랫동안 회장의 사가에서 공소를 치르다가 일제 때 정진욱(시몬), 최중연(시몬) 회장이 앞장서서 첫 강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그때 이웃 송악면에서 나무를 베어다 뗏목을 만들어 운반하고, 초가 8칸의 공소 강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새터 지역은 삽교천 제방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만 해도 바닷물이 가까이 들어왔던 곳이었으니 바다 길로 목재들을 운반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1917년에 “매산리 천주당은 충남 당진군 신평면 매산리에 소재함”이라는 기록 내용은 곧 첫 강당을 지적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후 새터 공소의 신자들은 교세가 확대되면서 첫 강당이 비좁게 되자 1956년에 이르러 새 강당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 상황에서 신자들의 힘으로 강당을 건립하기란 쉽지 않았고, 그 결과 신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완공에는 5년이란 세월이 걸리게 되었다. 강당 건립 운동은 1956년부터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교우들은 기성회를 조직하여 성미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5년 동안 기금을 저축하였다. 이곳 교우들의 정성을 가상히 여기신 대전교구의 라리보 주교께서는 50만환의 원조를 베푸시어 그들의 열성을 북돋아 주었으며, 합덕 본당의 박노열(바오로) 신부도 35만환의 협조를 해주었다. 그 결과 1960년 4월에 건평 36평의 양옥 건물을 완공한 뒤 6월 15일 9시에 강복식 및 낙성식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신자들이 이를 위해 쏟아 부은 열성은 바로 새터 공소의 전통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또 이곳 공소의 신자들은 돈을 모아 13마지기의 논을 마련하였고 여기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공소를 운영하고 불우 이웃 돕기를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터의 두 번째 강당은 마을 초입에 우쪽 서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본당 신부의 방문으로 주일 미사가 이루어지며, 총 신자 수는 220명 정도이지만 학생을 포함하여 150명 정도가 공소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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