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신 정리번호 : 1927 연말보고
발신일 : 1927. 4, 논산
수신자 : 뮈텔 주교
주교님,
막 끝난 지난 한 해 동안의 공소 방문 중 복음을 전파하고 혹은 그것을 저해하는 일에 있어서 특별히 두드러진 일은 없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외교인 무리 속에 침투되고 또한 일본 세력의 확산을 쉽게 한 프로테스탄트 때문에 어려운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사람들의 정신이 오로지 돈벌이로만 향해 있어서 복음의 진리에 대한 숙고의 시간을 갖지 못하며 또 그것이 일상사가 되어 버려 복음의 진리를 강조해도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학교들도 그 교육이 아주 많은 분야에서 위조되어 있기에 좋은 씨앗을 돕지 못하고, 이러한 정신이 우리의 선한 교우들에게까지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 자신의 언행이 가져다 줄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은 채 거의 충동적으로 발설하고 행하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신부를 거역하고자 하는 의향은 없습니다. 그 근본이 가톨릭적이 아닌 언행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점을 그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외교술과 요령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단 한 번에 그들을 설득시키려 다 가는 오히려 이해력이 없고 뒤떨어진 신부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작년 저의 교우 수는 1,224명이었는데 올해는 39명이 증가하여 1,263명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오로지 사망자 수가 감소한 반면 지난해에 비해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출생자 수가 증가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통계표가 더욱 상세한 설명을 해 줄 것입니다. 작년 보고서에는 65명의 출생과 51명의 사망이 기록됨으로 인해 큰 수확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55명의 출생자에 비해 사망자는 겨우 28명이므로 출생자 수 27명이 초과된 셈입니다. 또한 9명의 성인 영세자를 첨가시키면 36명이 됩니다. 다른 3명의 교우는 조선에서 아주 흔한 ‘이사’온 사람들입니다. 어떤 공소에서는 교우 수가 현격하게 감소되었는데, 예를 들어 쇠목에서는 105명에서 87명으로 줄었습니다. 본당 밖으로 3가구가 전출해 갔고, 작년까지만 해도 셈에 넣었던 몇몇은 아직 돌아올 가능성이 있기에 교우 수에 포함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미신을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결국 제외될 것입니다.
본당인 논산은 적지 않은 교우 수가 증가하여 230명에서 273명이 되었으며 금년에는 2가구가 기별을 보내왔고 또 잇따라 더 올 것입니다. 이 가구들은 거의가 산악 지대에서 담배 농사를 해 오던 파르트네 신부의 본당에서 왔습니다. 전매령이 포고된 이후 이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 평야 지대로 이주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받은 담배 값으로 생활비를 조달하며 근근히 생활했던 사람들마저도 이제는 타 지역으로 떠나려고 하여 여러 가구가 이곳의 친지들을 통해, 혹은 영향력이 좀 있는 교우들이 그들에게 경작할 토지를 쉽게 제공해 줌으로써 이곳으로 옵니다. 따라서 본당의 교우 수가 증가하여 평일에는 적당한 성당이 주일이나 첨례 때에는 콩나물 시루가 되어 버립니다. 더구나 이곳은 회장들과 자도자들 덕분에 형제애와 순명심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떤 희망을 말하거나 지시를 내리기만 하면 모두가 그것을 따릅니다. 단 한 가지 그들에게 힐책할 것이 있다면, 그들이 좀더 열의를 내어 이제 배우기 시작했거나 배우기를 원하는 외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만일 제가 부탁한 대로 몇 명이 지난겨울에 열성을 보였더라면 본당에서만도 10명의 성인 영세자를 얻었을 것입니다. 예비자들도 계속 고해 문답이나 영세 문답 또는 십이단만을 배우고 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점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 첨례일의 가톨릭 청년회 회합에서 그들의 회장이 그 점에 대해 언급하며 신부로부터 늘 지적 받는 일이 없도록 동료들에게 행동으로 옮겨 줄 것을 권고했기 때문입니다.
연서리 공소에는 열심인 회장이 있는데 교우들이 그의 말을 잘 듣습니다. 그곳은 완전한 타락은 아니고 조금 타락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요소가 있는 곳입니다. 오리동 공소는 잘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곳 회장은 충분한 권위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좋은 교우입니다만 지도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을에서 더 나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술꾼들과 노름꾼들이 판을 치고 가난이 뿌리박혀 있기에 지난 가을에는 약 15명의 교우들이 성사를 받지 않았는데 그들은 봄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슬픈 공소입니다.
인구 증가에 따라 온갖 비참에도 불구하고 강경이는 조금은 중요한 교우 중심지입니다. 소수의 열심한 교우들이 있고 헌신적인 회장이 모든 가련한 영혼들을 모으느라 열심인데, 이 가련한 사람들은 겨우 생활을 꾸려 나가거나 아니면 일본인 집의 하인으로 전락하여, 그 결과 주일을 늘 지키지 못하며 특히 장날이면 주일을 궐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회가 닿는 대로 그들을 훈계합니다만 그들은 공소 때 겨우 고해성사를 받으러 올뿐이며(그것도 회장이 두세 번씩이나 찾아가야 합니다). 문답을 찰고 받으러 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는 이튿날 영성체를 하느라 대거 몰려오는데, 그때서야 저는 그들에게 간단한 훈계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공소들은 그럭저럭 되어 가고 있으며 악의는 없으나 세속 정신과 특히 교리의 무지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이러한 연유로 더욱 저는 주교님께 그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의 가련한 목자를 위해 강복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공베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