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신 정리번호 : 1928 연말보고
발신일 : 1928, 논산
수신자 : 뮈텔 주교
주교님,
지난 한 해 동안의 수치 계산을 끝냈습니다. 외교인 개종자 수는 많지 않습니다. 성인 영세자 수가 14명이고 임종 대세자가 21명, 모두 35명입니다. 본당에서 만도 더 많은 영세자를 기대했었습니다만 외교인들을 가르쳐야 했을 교우들이 너무 무기력하고 나태했던 탓에 영세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부가 연기되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속 공부하여 성신 강림 첨례나 성모 몽소 승천 때를 위해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는 소성당이라고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성당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성당은 루르드의 성모께 봉헌되었는데, 본당의 설립자이신 루블레 신부가 루르드의 성모를 주보 성인으로 정하고 그 성모님께 지금 성당의 부지 매입 성공을 부탁했었습니다. 성당 건립은 무세 신부가 설계해 준 덕분에 완공되었습니다만,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된 일이라 많은 근심을 자아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근심도 없어졌습니다. 교우들이 관대함을 보였고 그래서 저는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을 칭찬하고 축하할 따름입니다. 이제 그들은 평일에도 아름다운 성당 안으로 찾아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 첨례 때는 성당이 비좁을 뻔했으나 교우들이 서로 자리를 좁혀 겨우 성당 안에 모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 전 첨례 때보다 더 많은 더 많은 수가 멀리서 왔습니다.
교우들은 일반적으로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만 제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교리에 무지하다는 것이며 배우는데 취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당에서는 공립 학교에 갈 수 없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 그리고 교리 문답을 가르치는 본 학교 외에도, 주일에는 가톨릭 청년들이 모여 교리 풀이를 하고 함께 외우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학습에 꾸준한 반면 청년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교리 풀이가 더욱 유용할텐데 그들은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아니면 돌아다닙니다. 그것은 그들을 충분히 단호하게 단속하지 않는 부모들 탓입니다. 차라리 ‘노인회’라고 해야 할 가톨릭 청년회는 꾸준하게 회합을 갖고 있습니다. 회합은 종종 미적지근하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유대감을 주는 유일한 것이라 가능한 한 장려하고 유대를 강화하려 합니다. 청년회에서는 매달 첫 금요일에 월례 고해 성사 시간을 마련해 놓았는데 저는 그렇지 못한 청년들에게 계속 이러한 독실한 습관을 기르라고 틈이 날 때마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이러한 신앙심은 많이 상실되었습니다. 제가 집에 있을 때나 교우들 일이 그렇게 바쁘지 않을 11시경에 시작하는데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가 그때 교리 문답을 가르치고, 평일에는 여교사가 맡아 가르칩니다.
공소들 가운데 회장들의 피정이 있은 후 가톨릭회를 구성한 곳은 강경이뿐입니다. 현재 그들은 아주 열심이며 단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부활 첨례 일에는 거의 전부가 논산에 와서 미사에 참석했고(나바위11)
로 가는 대신) 20여명이 왔습니다. 그들은 그들끼리 단결하여 필요할 때 서로 도와주며 특히 불행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주일마다 나바위 미사에 참석하며, 돌아가서는 복음을 읽고 교리 공부를 하는 모임을 갖습니다. 이러한 열풍은 제가 지난 가을에 임명한 신임 회장 덕분인데, 그는 활동적인 젊은이이고 올해 처음으로 회장 피정에 참석했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종종 그들에게 좋은 생각들을 마련해 주시고 또 그것을 실천하게 하신 후에는 변함없는 의지를 주십사 하고 기도합니다. 또한 그들은 본당 처녀들보다 더욱 외교인들에게 접근하기를 원합니다. 대부분이 상인들인 이 젊은이들은 동료 상인들과 구매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곳에는 아직 교리 학교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젊은이들의 선의를 살릴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20세에서 40세까지의 젊은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불암 지역에서는 아이들의 무지함이 실로 대단합니다. 저는 그곳에도 신임회장을 임명했으니 그가 주일마다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것입니다. 공소는 아주 작으며 교우들은 가난하지만 착합니다. 아이들에게 교리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은 가난 탓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들은 매일 강경이로 품을 팔러 나가 그 삯으로 조나 쌀을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경작한 농작물은 매년 침수되어 잃게 됩니다. 대전 군에 남은 또 하나의 공소(오리동)에서는 지난가을부터 무언가를 해 보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 공소는 좋지 못한데 노름이나 여자 혹은 술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저는 그들을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그들은 회장의 말도 안 듣고 순명도 하지 않으며 교무금을 내는 일에도 악의를 표했습니다. 그런데 봄에 가 보니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몇몇 젊은이가 매일 저녁 모여서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고, 다른 아이들은 교리 문답과 기도문을 배우고 교리서를 읽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4~5명이며 다른 이들은 순번대로 맡아서 합니다. 그 결과 주일은 더 잘 지켜지고 복음 실천이 더욱 잘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남아들에게 해 주는 것처럼 여아들에게도 해 줄 수 있는 신심 있는 여자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갈매올에도 역시 그곳의 처녀가 교리 교사를 맡아 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일을 해 오고 있습니다. 남아들을 위해서는 아무도 없는 형편입니다. 예전에 청년 한두 명이 교리 학교를 시작하여 저도 그들을 도와주었는데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본당에는 논산의 가톨릭 청년회와 앞서 말씀드린 강경이에서 새로 형성되고있는 청년회 외에 다른 단체는 없습니다. 제가 외교인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한 일들은 이루 다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외교인들에게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청년회에 그렇게 주입시키는데, 청년회에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니 외교인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 점에 관해 몇몇 교우들에게 말하면, 그들이 종교에 대해 말을 꺼내면 사람들이 수긍은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거나 아니면 논쟁을 벌이고 그 다음에는 선의의 각오가 없으므로 흐지부지되고 만다고 대답합니다. 극소수의 장사꾼들과 난봉꾼과 어려운 형편의 모꾼들 몇 명만이 있는 논산은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장사꾼들은 접근할 수조차 없으며, 난봉꾼들은 웃고 빈정거리며, 일꾼들은 시간이 없습니다. 따라서 적당한 보수를 주는 조건으로 이 사업에 헌신할 수 있는 전교 회장 몇 명을 두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제들이나 선교사들은 보수를 지불할 능력이 없습니다. 남자 회장 한 명과 여자 회장 한 명이 필요하지만 꼭 한 명밖에 둘 없다면 여자 쪽을 택하겠습니다. 여자는 보다 더 쉽게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여자나 남자들을 더 잘 다룰 줄 알기 때문입니다.
회장들의 피정은 2월초에 시작되어 성당의 주보 성인인 루르드의 성모 첨례날에 마쳤습니다. 강〔姜道永〕신부가 피정 강론을 맡아 주어 잘되었습니다.
이 구역의 피정은 1912년 혹은 1913년부터 행해져 왔습니다. 그래서 회장들은 피정에 익숙해 있고 모든 이로운 이야기들을 들어 왔습니다. 피정을 하는 회장들은 거의 같은 사람들이라서 하기는 잘하지만 성과에 있어서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젊은이들에게는 마치 회초리와 같은작용이 되어 그들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저는 첫 피정이거나 혹은 세 번째 네 번째 피정을 하게 되는 신임 회장 두세 명을 보고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당 신부가 아닌 다른 신부가 피정을 지도할 때면 효과가 훨씬 큽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너무 들었다거나 바쁜 이유로 지도 신부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니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좋은 묘안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금년 피정 때에 가톨릭 청년회에서 회장 한 명과 부회장 한 명 그리고 사무처장 및 경리부장 셋을 뽑았습니다. 그 효과는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더 큰 헌신과 열의와 신심을 피정에 쏟았습니다.
수고와 근심을 많이 하고도 얻은 결과를 보면 너무 한 일이 없고 성과가 적다고 생각되어 오히려 실망하게 됩니다. 겸손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겸손이라고 하려면 두 번은 더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앞에 말씀드렸듯이 특히 도시에서 외교인들에게 포교하기란 어렵습니다. 복음화에 적합한 곳은 아직은 농촌입니다.
예전에 교우 가정이었다가 아들들이 30여 년 동안 냉담해 온 한 가구가 있는 마을에서 다시 신앙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냉담자가 회두하기를 원했고 그로 인해 오래 전부터 프로테스탄트였던 그의 가까운 친적들이 천주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열렬한 프로테스탄트였던 한 과부는 천주교가 무엇인가를 알고서는 교우가 되기를 원했고, 그녀의 식구 전체와 교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여름 저는 가끔 일요일에 가톨릭 청년회 회원 한 명을 보내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게 했습니다. 외교인 남녀의 수는 약 30명입니다. 가을에는 그들과 섞여 사는 논산의 한 교우가 그들에게 초대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 후 그 외교인들은 더욱 열심이었고 더 부지런히 수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심에 불을 당긴 것은 한 성인의 임종 대세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프로테스탄트였던 가정의 할머니가 사순절 초 임종 직전에 대세를 받고 사망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냉담자와 신입 교우들이 사제관과 2~3명의 교우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래서 본당의 영구차를 동원했고 사방에서 교우들이 모여 왔는데, 이것이 외교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장례식은 엄숙하면서도 소란스럽지 않게 치러졌습니다.그 날 이후 신앙심이 돈독해졌으니 부활 첨례 때에는 한 가족 네 식구가 모두 영세했고, 10세부터 42~43세까지 수계하지 않았던 냉담자의 처와 아이들이 영세했고, 또 다른 한 청년은 그 마을로 이사 온 논산의 한 교우 집에 양자로 들어가 어른 아이 등 모두 8명이 영세를 했습니다. 현재 예비자 수는 10명이 넘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가을 전에 4~5명이 더 영세할 것이며 공소 때에는 그들 자체 내에서 공소를 치를 것입니다. 공소 집은 이미 마련되었습니다. 부디 주님께서 그들에게 인내를 주시고 그들을 축복하시도록 이 신입 교우들의 공소를 위해 주교님의 기도를 부탁드리며 아울러 보잘 것 없는 이 선교사에게도 주교님의 강복을 청합니다.
공베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