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본당의 초대 황혜중 루블레 신부

 

논산본당의 초대 황혜중 루블레 신부

 -1876년 6월 29일생

 -1921년 6월 말 ~ 1923년 5월까지 봉직



1911년 4월 8일자 교황 비오 10세의 소칙서를 통해 조선 대목구로부터 전라도와 경상도를 분리시켜 대구 대목구를 설정 하고, 조선 대목구를 서울 대목구로 개칭하였다. 이때, 대구 대목구 나바위(화산)본당에 위임되었던 논산지역이 서울교구에 반환됨으로써, 대구 대목구 나바위(화산)본당 ????주임신부 2대 소세덕(험브리트)????에서 분리되어 서울교구 논산 본당으로 1921년 6월 말에 설립되었으며 논산 본당 초대 신부로는 황혜중(헨리고:Henri Philippe Rouvlet) 신부를 임명하였다.



황혜중 신부는 파리의 방전 교회 소속으로1876년 6월 29일생이며 본명은 Rouvelet(루블레) 신부이다. 1900년 10월 9일 한국에 도착. 개성 본당에 사목을 시작으로 공주 본당 신부를 역임하시다가 1921~1923년까지 논산 본당 사목을 하시게 되었다.

1921년 6월, 루블레 신부는 전경현(베드로)과 다른 복사와 함께 공주에서 논산으로 왔다. 처음에는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아 공소로 사용하고 있던 박준호의 집에서 살았다. 여기서 1922년 6월까지 머무르면서 성당과 사제관 건립에 필요한 부창리의 땅 2,046평을 매입하였다. 과수원이었던 이 땅의 주인은 일본인이었고, 매입 과정에서 박준호와 박준철, 두 사람이 특히 많은 애를 썼다. 비용은 뮈텔 주교가 4,000원(25,000프랑)을 보내 주었다. 3개 필지로 된 이 땅은 식산 은행 구좌에서 인출한 돈으로 신부와 교우들에 의해서 사들여졌다. 이 매입은 논산 게시란에 192일간 게시되었다.



그 후 즉시 사제관 60평을 신축했고, 은행 창고를 사서 그 재목으로 강당을 현재의 성당 아래 길 옆에다 지었는데, 강당이 강풍으로 인해 파괴되어 다시 한국식으로 사제관과 본당을 지었다. 사제관은 현재의 위치에 있었고, 본당은 북쪽 지방의 지붕 형태로 밭 한가운데에 있었다.

루블레 신부는 병약했지만 유퀘한 성격으로 이웃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가지고 신앙 전도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건물을 세울 때 돈이 부족하여 본인의 자전거를 팔기도 하였다.

황해중 신부는 1923년에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 교수로 전임되었다. 이 무렵부터 그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1924년 6월 27일 한적한 목동 본당 주임으로 임명을 받게 되었다.

※표1:논산(1921~1922년)1922.04.16 논산 루블레 신부(<천주교대전교구 통계자료집>, p.384~387)















 

 

 

 





 

 

 

 






 

 

 







 

 





 

 

 

 






 

 

 








 


사성

망인

자대

 세

 자

 

 


또교

는우

보자

례녀

자영

 세

 자


대외

세교

자인

 자

 녀

 

 





 

 

 

 





 

 

 

 






 

 

 





 

 

 

 





 

 

 

 





 

 

 

 






 

 

 





 

 

 

 


논산


논산


87


87


1184


2161


2


 


2


3


 


5


4


2


129


4


2


 2



동산


15


14


 


 


 


1


1


 


 


 


 


 


27


 


 


 



무동


13


13


2


2


 


 


 


1


 


 


이 글은 카테고리: TN-history-C1, 교회 역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