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신 정리 번호 : 1922 연말보고 1922, 논산


제 2 신 정리 번호 : 1922 연말보고

발신일 : 1922, 논산

수신자 : 뮈텔 주교

논산본당 보고서





사목 방문 때 주교님께서 논산 본당에 관한 간단한 보고서를 요청하셨습니다. 아래 간략하게 보고 드립니다.





1. 여러 공소들의 평가

가을에 논산읍을 제외하고 13개 공소를 방문했습니다. 한 공소는 저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13개 공소 가운데 2개의 큰 옹기 마을이 있는데도 그것도 오래 갈 수 없을 것입니다.

4개 공소는 지금은 아주 작지만 8~10년 전에는 매우 중요한 공소였습니다. 3개 공소는 하루 공소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2개 공소는 이틀 공소이고, 3개 공소는 3일 공소입니다.

논산읍으로 말하면 교우 수가 100명 가량입니다. 현재 전체 교우 수는 1,120명인데 여기에 이주자와 봄에 나타날 이입자를 고려한다 해도 최대한 1,200명밖에 안될 것입니다.

과거의 유물인 3개 작은 공소 그룹은 각각 3일 공소를 치렀는데, 즉 독각골 (東山里), 무동(金谷里), 죽평(山陽里)입니다. 네 번째 하리(下里) 공소에는 세 교우 가족이 있는데 사흘 공소였습니다. 그런데 몰락이 10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5리 거리의 3일 공소에도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고 10리 거리의 2일 공소에도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고 그런데 10리 거리의 4, 5일 공소에는 두 집만 남아 있습니다. 몰락은 8~10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부의 물질적 도움이 불충분했거나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리와 그 부근의 한 교우 마을이 마름이 면직 당하자 회장을 선두로 해서 무더기로 교회를 떠났고 두 마을이 3년밖에 가지 않았습니다. 베르모렐 신부는 그 수가 1,000명에서 1,500명은 될 것이라고 하는데 교회로 돌아올 큰 희망은 없다고 합니다. 다른 공소에도 여전히 몇몇 냉담한 가족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경에는 그 수가 상당하고 나머지도 비록 마음속으로는 배교하지 않았다고 해도 교우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강경, 그리고 논산은 프로테스탄트가 많고 영향력도 큽니다. 다른 곳은 모르겠습니다. 특히 남녀 전도사들이 큰 손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2. 수계하는 신자들에 대한 평가

교우들이 외인들에 섞여 사는 공소는 하나도 없습니다. 평야 지대의 교우들은 산악 지방의 교우들만 못합니다. 현재의 지역은 모두 평야입니다. 도덕성이 약하고 성격이 지나치게 허약합니다. 아직 나쁜 정신의 흔적이 있고 주일도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3. 물질적인 상태

잘사는 사람은 겨우 세 집뿐이고 빚은 없는 집은 기껏해야 12가구이고 나머지 교우 집들은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경에는 교우의 절반이 집이 없습니다. 성당 건축 기금 모금에서 그들은 관대함을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필사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강경의 한 부자만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의 신입금 10엔을 거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그의 이름으로 한다면 그렇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옹기 마을을 제외하고는 모두 논을 경작하고 있는데 겨우 그날 그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각출금은 거의 3,000엔에 달합니다. 대단한 노력입니다. 대부분은 받았습니다.

루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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