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권 제 4장 이스라엘 백성이 18년간 모압인들에게 지배당하고 에홋이 그 압제에서 해방시킨 후 80년 동안 집권한 것에 대하여

 


제 4 장



  이스라엘 백성이 18년간 모압인들에게 지배당하고 에홋이 그 압제에서 해방시킨 후 80년 동안 집권한 것에 대하여



 1. 모압 땅 에글론의 지배하의 이스라엘 [삿3:12]



  그나스가 죽은 이후, 이스라엘의 사정은 더욱 어려워져 무정부 상태가 되다시피 하였으며 하느님을 예배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준행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무질서하고도혼돈한 이스라엘을 얕본 나머지 모압 왕 에글론(Eglon)이 공격해 오기에 이르렀다. 에글론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여러번 승리를 거두었고,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가장 출중한 자들을무찌르고 이스라엘 전체를 장악한 후에는 자기에게 조공을 바칠 것을 명령하였다. 그는 여리고에 왕궁을 세우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이스라엘을 수탈해 갔다. 에글론의 18년 동안의수탈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져 갔다.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고 불쌍히여기시고, 그들이 부르짖는 애원을 듣고 모압인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자유를 주신 경위를 다음과 같다.



  2. 에훗이 에글론을 살해하다 [삿3:15]



  베냐민 지파의 한 젊은이 가운데 게라(Gera)의 아들 에훗(Judes)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용맹스러웠고 그가 목표한일은 반드시 완수하고야 마는 강한 체력을 지닌 사람으로서 왼손잡이였다. 그는 에글론 왕이 사는 여리고 성에 살고 있었다.[㈜ 성경에서는 에훗이 여리고에 거주했다는 것고 에글론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왕에게 선물을 바침으로써 왕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였다. 결국 그는 에글론 왕과 친숙해 질 수 있었으며 에글론에게호의를 베풀어 에글론의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까지도 신임을 얻게 되었다. 기회를 엿보던 에훗은 왕에게 선물을 드릴 때를 이용하기로 결심하고, 두 종을[㈜ 삿3:18에서는 시종을 언급하는데,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은 이것ㅇㄹ 바친 후 내보내지며 \’두사람\’이라는 것은 \’두 날 선 \’단검을 표현한 것을 잘못 읽은데서 나온 숫자이다.] 거느리고 오른 쪽 넓적 다리에 칼을 숨긴채 왕에게 나아 갔다. 때는 여름 한 낮이었다. 따라서 날씨가 무더운데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느라고 왕에 대한 경비가 그리 삼엄하지 않았다 에훗은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작은 접견실에 앉아 있는 에글론 왕에게 다가가 선물을 드린 후, 단 둘이서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왕이 에훗과 대화를나누기 위하여 다른 측근들을 물러가라고 명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에훗은 왕이 보좌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칼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빗나가게 되면 에글론에게 치명상을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는 몸을 일으키면서 하느님께서 왕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신 꿈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왕은 그가 전해줄 꿈 이야기가 하나 있다는 말에 그만 기뻐서 보좌 위에서 벌떡 일어 났다. 그 순간 에훗은 칼로 에글노의 가슴을 찌르고 칼이 몸에 꽃힌  채로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왕의 시종들은 왕이 주무시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죽은 것을 뒤 늦게야 알게 되었다.



 3. 모압의 패배와 에훗의 통치 [삿3:26]



  한편, 에훗은 그 즉시 이 사실을 여리고 주민들에게 은밀히 알리고[㈜ 성경에는 그가 앞서가며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그들이 해방을 요구할 것을 권면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백성들은 몹시 기뻐하며, 모두 싸우기 위해 무기를 들었고,온 나라에 전령들을 보내어 양뿔로 나팔을 불어 신호로 삼으라고 알렸다. 이 양뿔은 전통적으로 백성들을 회집시키는데 이용한 도구였던 것이다. 에글론 신하들은 한 동안 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였다. 저녁 때가 다 되어서야 불길한 예감이 든 그들은 접견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접견실에 들어가서왕이 죽은 사실을 안 그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군대를 동원하기 전에 벌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결국 이들의 일부는 이스라엘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일부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압 땅을 향해 도망을 쳤다. 이때 도망한 모압인의 수는 10,000명이 넘었으며, 이스라엘인들은 요단강 나루를 지키고 있다가 도망하는 모압인들을 잡아 죽였다. 이 때 많은 모압인들이 나루터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결국은 한 명도 빠져 나가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히브리인들은 모압인들의 굴레에서 빠져 나갈 수 있었다. 에훗은 이 일로 인해 백성을 다스리는 자리에 앉게 되었으며 80년간이스라엘을 다스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삿3:30, \’그 땅이 팔십년동안 태평하였더라\’. 칠십인역은 거기에 덧붙여서 \’그리고 에옷은 그가 죽기까지 그들을 다스리고\’. 히브리 사본에서는 그가 통치했다는 언급이 없다.] 그는 앞서 언급한 용맹한 행위 외에도 칭찬할 만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죽은 이후에 아낫(Anath)의 아들 삼갈(Sanagar)이[㈜ 히브리 사본은 삼갈. 칠십인역은 사메갈( Samegavr 혹은 Semegavr등).] 지도자로 선출 되었으나 1년도 채 되지 못하여[㈜ 부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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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제 4 장


      이스라엘 백성이 18년간 모압인들에게 지배당하고 에홋이 그 압제에서 해방시킨 후 80년 동안 집권한 것에 대하여


     1. 모압 땅 에글론의 지배하의 이스라엘 [삿3:12]


      그나스가 죽은 이후, 이스라엘의 사정은 더욱 어려워져 무정부 상태가 되다시피 하였으며 하느님을 예배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준행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무질서하고도혼돈한 이스라엘을 얕본 나머지 모압 왕 에글론(Eglon)이 공격해 오기에 이르렀다. 에글론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여러번 승리를 거두었고,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가장 출중한 자들을무찌르고 이스라엘 전체를 장악한 후에는 자기에게 조공을 바칠 것을 명령하였다. 그는 여리고에 왕궁을 세우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이스라엘을 수탈해 갔다. 에글론의 18년 동안의수탈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져 갔다.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고 불쌍히여기시고, 그들이 부르짖는 애원을 듣고 모압인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자유를 주신 경위를 다음과 같다.


      2. 에훗이 에글론을 살해하다 [삿3:15]


      베냐민 지파의 한 젊은이 가운데 게라(Gera)의 아들 에훗(Judes)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용맹스러웠고 그가 목표한일은 반드시 완수하고야 마는 강한 체력을 지닌 사람으로서 왼손잡이였다. 그는 에글론 왕이 사는 여리고 성에 살고 있었다.[㈜ 성경에서는 에훗이 여리고에 거주했다는 것고 에글론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왕에게 선물을 바침으로써 왕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였다. 결국 그는 에글론 왕과 친숙해 질 수 있었으며 에글론에게호의를 베풀어 에글론의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까지도 신임을 얻게 되었다. 기회를 엿보던 에훗은 왕에게 선물을 드릴 때를 이용하기로 결심하고, 두 종을[㈜ 삿3:18에서는 시종을 언급하는데,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은 이것ㅇㄹ 바친 후 내보내지며 ‘두사람’이라는 것은 ‘두 날 선 ‘단검을 표현한 것을 잘못 읽은데서 나온 숫자이다.] 거느리고 오른 쪽 넓적 다리에 칼을 숨긴채 왕에게 나아 갔다. 때는 여름 한 낮이었다. 따라서 날씨가 무더운데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느라고 왕에 대한 경비가 그리 삼엄하지 않았다 에훗은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작은 접견실에 앉아 있는 에글론 왕에게 다가가 선물을 드린 후, 단 둘이서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왕이 에훗과 대화를나누기 위하여 다른 측근들을 물러가라고 명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에훗은 왕이 보좌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칼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빗나가게 되면 에글론에게 치명상을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는 몸을 일으키면서 하느님께서 왕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신 꿈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왕은 그가 전해줄 꿈 이야기가 하나 있다는 말에 그만 기뻐서 보좌 위에서 벌떡 일어 났다. 그 순간 에훗은 칼로 에글노의 가슴을 찌르고 칼이 몸에 꽃힌  채로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왕의 시종들은 왕이 주무시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죽은 것을 뒤 늦게야 알게 되었다.


     3. 모압의 패배와 에훗의 통치 [삿3:26]


      한편, 에훗은 그 즉시 이 사실을 여리고 주민들에게 은밀히 알리고[㈜ 성경에는 그가 앞서가며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그들이 해방을 요구할 것을 권면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백성들은 몹시 기뻐하며, 모두 싸우기 위해 무기를 들었고,온 나라에 전령들을 보내어 양뿔로 나팔을 불어 신호로 삼으라고 알렸다. 이 양뿔은 전통적으로 백성들을 회집시키는데 이용한 도구였던 것이다. 에글론 신하들은 한 동안 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였다. 저녁 때가 다 되어서야 불길한 예감이 든 그들은 접견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접견실에 들어가서왕이 죽은 사실을 안 그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군대를 동원하기 전에 벌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결국 이들의 일부는 이스라엘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일부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압 땅을 향해 도망을 쳤다. 이때 도망한 모압인의 수는 10,000명이 넘었으며, 이스라엘인들은 요단강 나루를 지키고 있다가 도망하는 모압인들을 잡아 죽였다. 이 때 많은 모압인들이 나루터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결국은 한 명도 빠져 나가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히브리인들은 모압인들의 굴레에서 빠져 나갈 수 있었다. 에훗은 이 일로 인해 백성을 다스리는 자리에 앉게 되었으며 80년간이스라엘을 다스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삿3:30, ‘그 땅이 팔십년동안 태평하였더라’. 칠십인역은 거기에 덧붙여서 ‘그리고 에옷은 그가 죽기까지 그들을 다스리고’. 히브리 사본에서는 그가 통치했다는 언급이 없다.] 그는 앞서 언급한 용맹한 행위 외에도 칭찬할 만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죽은 이후에 아낫(Anath)의 아들 삼갈(Sanagar)이[㈜ 히브리 사본은 삼갈. 칠십인역은 사메갈( Samegavr 혹은 Semegavr등).] 지도자로 선출 되었으나 1년도 채 되지 못하여[㈜ 부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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