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권 3장 히스기야를 이어 므낫게가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가 포로가 되자 어떻게 하느님께로 돌아와 왕권을 회복하고(그의 아들) 아몬에게 넘겨 주었는지에 대하여

 


제 3 장



히스기야를 이어 므낫게가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가 포로가 되자 어떻게 하느님께로 돌아와 왕권을 회복하고(그의 아들) 아몬에게 넘겨 주었는지에 대하여



1. 히스기야의 죽음과 므낫세의 즉위 [왕하 20 : 21, 대하32 : 33]



  히스기야는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던[㈜ 고대. 10권. 2 : 1(27).] 기간만큼 살았었고 그 기간동안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29년간을 통치하였고 54세가 되어 죽었다.[㈜ 왕하 18 : 2=대하 29 : 1에 의해 그는 25세에 왕위를 계승하였으 며, 29년간의 통치기간을 합치면 54세이다.] 그의 아들 므낫세(Manasseh)가[㈜ 헬라어로는 마나세스(Manasses : 거의 모든 70인역 소사본처럼) : 히브리어는 므낫세(Mnasseh).] 그의 후계자가 되었고, 그후 그의  어머니는 도시 출신으로 헵시바(Epsiba)이었다.[㈜ 추측된 형태(참. 루키안) ; 소사본들. 아이키바(Aichiba), 아키바 (Achiba)등 ; 성경에는 헵시바(Hephzibah), 70인역에는 옵세이바(!Oyeibav: 다른 본문에는 !Ayeiba, !Ofsibav), 루키안은 !Eyibav] 그는 자기 아버지의 행한 길과는 반대로 행하였다. 그의 행동은 모든 사악한 면을 여실히 보여주었고불경건한 행위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하느님께 죄를 범하여서 망했던 이스라엘 왕들의 모든 비율법적 행위들을 따라 행하였다.심지어 므낫세는 예루살렘과 전지역에서 했던 것과 같이 하느님의 성전을 심하게 오염시켰다.[㈜ 요세푸스는 불 가운데로 그의 아들을 지나가게 한 마술의 실행에 관 하여 성경적 묘사를 빠뜨리고 있다.] 그는 하느님을 경멸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히브리인들 중에 있는 모든 의로운 사람들을죽였고,[㈜ 다른 본문은 \”잔혹하게\”를 첨가한다.] 심지어는 선지자들조차도 남겨두지 아니하고 매일 살인을 일삼아 예루살렘이 피바다가 되게 하였다.[㈜ 성경은 왕하 21 : 16에서 므낫세(Manasseh)가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려 예루살렘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피로 가득채웠다 고 말한다. 그러나 특별히 선지자들을 포함시키지는 아니했다. 이것 은 추측컨대 요세푸스가 이사야의 묵시문학적 순교에서(참고. R. Charles ed. \’Apocrypha and Pseudepigrapha of the Old Testament\’, ii. 155이하)와 므낫세의 명령으로 \”톱으로 잘라서 두 토막내어\” 참).(히 11 : 37)이사야를 죽인 것에 관한 랍비문학에서. (참). Ginzberg. iv. 278이하)발견된 전승들과 유사한 것으로 언급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이런 일들로 인해 분노하셔서 왕과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이런 일들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업신여겼을 때 그들에게 임했던 동일한 재난이 있을 것이라고 두려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경고를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그 결과로써 경험하지 않았어도 될 뻔한 불행을 자초하여 선지자들의 말들이 진실이었음을 재앙을 겪으면서 깨달아야 했다.



 2. 므낫세의 회개 [대하 33 : 11]



  이들이 자기 길을 고집하자 하느님께서는 바벨론과 갈대아(Chaldaea)왕을[㈜ 성경에는 \”앗수르의 왕\”. \”바벨론과 갈대아의왕\”으로의 요세푸스의 변경은 성경의 진술 즉 앗수르의 왕이 므낫세를 바벨론으로 데려갔 다는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실제로 앗수르왕 에살핫돈(Esarhaddon) 임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자극하여 전쟁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그래서이들은 군대를 유다로 보내어 황폐하게 하고 므낫세왕을 교묘하게 사로잡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벌 줄수 있도록 자기에게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마침내 므낫세는 자기가 어려운 곤경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이 모든 원인이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적들이 자기에게 인도적으로 그리고 자비심을 갖고 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하느님은 그의간구를 들으시고 은혜를 주시어서 므낫세는 바벨론 왕에게 자유롭게 되었고 그의 국가도 안전하게 회복되었다. 



 [그의 후회와 경건행위 대하 33 : 18]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그는 가능하다면 자기 마음속에서 이전에 범한 죄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버리려고 노력하게되었고, 전적으로 회개하면서[㈜ 본문이 분명치 않음.] 하느님에게 최고의 경배를 보여드렸다. 그는 성전을 정결케 하였고 도시를 깨끗하게 하였다. 그런 후 그의 유일한 마음은 하느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에게 동일하게 행하도록 가르쳤다. 이는 자기가 반대로 사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 인해 어떻게 재난을 당하게 되었는가를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는또 제단을 수리하고 모세가 명령했던 것과 같이 전통적인 희생 제물을 드렸다. 그리고 그가 적절한 방법으로 예배의 형식을 율례에 맞게 한 후 그는 예루살렘의 안전을 위해 준비하여 세밀한주의를 기울여 낡은 성벽들을 수리하였다. 그리고는 높은 탑들을 세우고 도시앞에 강력한 요새를 세웠다. 특히 식량을 비축해두고 자기들이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어 두었다.[㈜ \”가져옴으로\”라는 말은 추측하여 첨가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마음의 변화를 겪고 자기의 나머지 생애를 그런 방법으로 살아갔다. 그가 하느님께 경건함을 보여준 그시간 이후[㈜ 본문은 확실치 아낳음 ; 만약 우리가 니이제(Niese)의 수정을 채택 한다면 이것은 \”그 시간부터 계산되는 축복받은 것과 부러워하는 것에 관하여\”(\”그런 방법\”이후에)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는 축복스럽고 명예로운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55년간을 통치하고 67세에 세상을 떠났다.[㈜ 왕하 21 : 1=대하 33 : 1에 의하면 그는 12세에 왕위를 계승하여 55년간을 통치한 것을 합하면 67세이다.] 그후 그의 시신은 자기 정원에 안장되었고,[㈜ 왕하 \”그는 웃시야(Uzzah)의 동산 자기 묘실에 장사되고\” ; 대하 \”그리고 그들은 그의 집에 그를 묻었다\”(70인역은 \”그의 집 정원 에\”).] 그의 아들 암몬(Ammon)이[㈜ 성경에는 아몬(Amon ;\’Amon), 70인역에는 !Amwv\” (다른 본문에는 !Ammwvn)루키안.(왕하) !Amwvn]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욧바(Jatabate)[㈜ 異文에는 야자바테, 야바테로 표기. 성경에는 욧바(Jotbah), 70인역은 예세발(!Iesebavl )혹은 예테발(!Ietebavl), 예테바(!Ietebav). 루키안은 에테바다(!Ietebavqa). 그 장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주로 유대지역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나는 욧바가 갈릴리 지역의 도시인 요타파나(Jotapata, 전쟁. 3권. 7 :7(158))의 원명(原名)이라고 생각 하며 원래 히브리어 형태가 아니고 헬라어 형태를 반영하는 이름 요 데밧(Jodephath)이라는 이름의 탈무드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여기 나온 욧바가 반드시 요타파타와 같다는 말은 아니다. 이 이름을 가진 도시가 두 곳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와같이 똑같은 이름의 지명들은 고대 팔레스틴에 드물지 않다.]에서 태어난 므술레멧(Emaselme)이었다[㈜ 성경에는 므술레멧(Meshullemeth), 70인역에는 Mesollavm(다른 본문에는 Massslavmeiq ktl), 루키안. Masqalavm 등)] [왕하 21 : 18, 대하 33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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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권 3장 히스기야를 이어 므낫게가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가 포로가 되자 어떻게 하느님께로 돌아와 왕권을 회복하고(그의 아들) 아몬에게 넘겨 주었는지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3 장


    히스기야를 이어 므낫게가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가 포로가 되자 어떻게 하느님께로 돌아와 왕권을 회복하고(그의 아들) 아몬에게 넘겨 주었는지에 대하여


    1. 히스기야의 죽음과 므낫세의 즉위 [왕하 20 : 21, 대하32 : 33]


      히스기야는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던[㈜ 고대. 10권. 2 : 1(27).] 기간만큼 살았었고 그 기간동안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29년간을 통치하였고 54세가 되어 죽었다.[㈜ 왕하 18 : 2=대하 29 : 1에 의해 그는 25세에 왕위를 계승하였으 며, 29년간의 통치기간을 합치면 54세이다.] 그의 아들 므낫세(Manasseh)가[㈜ 헬라어로는 마나세스(Manasses : 거의 모든 70인역 소사본처럼) : 히브리어는 므낫세(Mnasseh).] 그의 후계자가 되었고, 그후 그의  어머니는 도시 출신으로 헵시바(Epsiba)이었다.[㈜ 추측된 형태(참. 루키안) ; 소사본들. 아이키바(Aichiba), 아키바 (Achiba)등 ; 성경에는 헵시바(Hephzibah), 70인역에는 옵세이바(!Oyeibav: 다른 본문에는 !Ayeiba, !Ofsibav), 루키안은 !Eyibav] 그는 자기 아버지의 행한 길과는 반대로 행하였다. 그의 행동은 모든 사악한 면을 여실히 보여주었고불경건한 행위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하느님께 죄를 범하여서 망했던 이스라엘 왕들의 모든 비율법적 행위들을 따라 행하였다.심지어 므낫세는 예루살렘과 전지역에서 했던 것과 같이 하느님의 성전을 심하게 오염시켰다.[㈜ 요세푸스는 불 가운데로 그의 아들을 지나가게 한 마술의 실행에 관 하여 성경적 묘사를 빠뜨리고 있다.] 그는 하느님을 경멸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히브리인들 중에 있는 모든 의로운 사람들을죽였고,[㈜ 다른 본문은 “잔혹하게”를 첨가한다.] 심지어는 선지자들조차도 남겨두지 아니하고 매일 살인을 일삼아 예루살렘이 피바다가 되게 하였다.[㈜ 성경은 왕하 21 : 16에서 므낫세(Manasseh)가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려 예루살렘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피로 가득채웠다 고 말한다. 그러나 특별히 선지자들을 포함시키지는 아니했다. 이것 은 추측컨대 요세푸스가 이사야의 묵시문학적 순교에서(참고. R. Charles ed. ‘Apocrypha and Pseudepigrapha of the Old Testament’, ii. 155이하)와 므낫세의 명령으로 “톱으로 잘라서 두 토막내어” 참).(히 11 : 37)이사야를 죽인 것에 관한 랍비문학에서. (참). Ginzberg. iv. 278이하)발견된 전승들과 유사한 것으로 언급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이런 일들로 인해 분노하셔서 왕과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이런 일들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업신여겼을 때 그들에게 임했던 동일한 재난이 있을 것이라고 두려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경고를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그 결과로써 경험하지 않았어도 될 뻔한 불행을 자초하여 선지자들의 말들이 진실이었음을 재앙을 겪으면서 깨달아야 했다.


     2. 므낫세의 회개 [대하 33 : 11]


      이들이 자기 길을 고집하자 하느님께서는 바벨론과 갈대아(Chaldaea)왕을[㈜ 성경에는 “앗수르의 왕”. “바벨론과 갈대아의왕”으로의 요세푸스의 변경은 성경의 진술 즉 앗수르의 왕이 므낫세를 바벨론으로 데려갔 다는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실제로 앗수르왕 에살핫돈(Esarhaddon) 임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자극하여 전쟁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그래서이들은 군대를 유다로 보내어 황폐하게 하고 므낫세왕을 교묘하게 사로잡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벌 줄수 있도록 자기에게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마침내 므낫세는 자기가 어려운 곤경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이 모든 원인이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적들이 자기에게 인도적으로 그리고 자비심을 갖고 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하느님은 그의간구를 들으시고 은혜를 주시어서 므낫세는 바벨론 왕에게 자유롭게 되었고 그의 국가도 안전하게 회복되었다. 


     [그의 후회와 경건행위 대하 33 : 18]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그는 가능하다면 자기 마음속에서 이전에 범한 죄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버리려고 노력하게되었고, 전적으로 회개하면서[㈜ 본문이 분명치 않음.] 하느님에게 최고의 경배를 보여드렸다. 그는 성전을 정결케 하였고 도시를 깨끗하게 하였다. 그런 후 그의 유일한 마음은 하느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에게 동일하게 행하도록 가르쳤다. 이는 자기가 반대로 사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 인해 어떻게 재난을 당하게 되었는가를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는또 제단을 수리하고 모세가 명령했던 것과 같이 전통적인 희생 제물을 드렸다. 그리고 그가 적절한 방법으로 예배의 형식을 율례에 맞게 한 후 그는 예루살렘의 안전을 위해 준비하여 세밀한주의를 기울여 낡은 성벽들을 수리하였다. 그리고는 높은 탑들을 세우고 도시앞에 강력한 요새를 세웠다. 특히 식량을 비축해두고 자기들이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어 두었다.[㈜ “가져옴으로”라는 말은 추측하여 첨가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마음의 변화를 겪고 자기의 나머지 생애를 그런 방법으로 살아갔다. 그가 하느님께 경건함을 보여준 그시간 이후[㈜ 본문은 확실치 아낳음 ; 만약 우리가 니이제(Niese)의 수정을 채택 한다면 이것은 “그 시간부터 계산되는 축복받은 것과 부러워하는 것에 관하여”(“그런 방법”이후에)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는 축복스럽고 명예로운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55년간을 통치하고 67세에 세상을 떠났다.[㈜ 왕하 21 : 1=대하 33 : 1에 의하면 그는 12세에 왕위를 계승하여 55년간을 통치한 것을 합하면 67세이다.] 그후 그의 시신은 자기 정원에 안장되었고,[㈜ 왕하 “그는 웃시야(Uzzah)의 동산 자기 묘실에 장사되고” ; 대하 “그리고 그들은 그의 집에 그를 묻었다”(70인역은 “그의 집 정원 에”).] 그의 아들 암몬(Ammon)이[㈜ 성경에는 아몬(Amon ;’Amon), 70인역에는 !Amwv” (다른 본문에는 !Ammwvn)루키안.(왕하) !Amwvn]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욧바(Jatabate)[㈜ 異文에는 야자바테, 야바테로 표기. 성경에는 욧바(Jotbah), 70인역은 예세발(!Iesebavl )혹은 예테발(!Ietebavl), 예테바(!Ietebav). 루키안은 에테바다(!Ietebavqa). 그 장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주로 유대지역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나는 욧바가 갈릴리 지역의 도시인 요타파나(Jotapata, 전쟁. 3권. 7 :7(158))의 원명(原名)이라고 생각 하며 원래 히브리어 형태가 아니고 헬라어 형태를 반영하는 이름 요 데밧(Jodephath)이라는 이름의 탈무드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여기 나온 욧바가 반드시 요타파타와 같다는 말은 아니다. 이 이름을 가진 도시가 두 곳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와같이 똑같은 이름의 지명들은 고대 팔레스틴에 드물지 않다.]에서 태어난 므술레멧(Emaselme)이었다[㈜ 성경에는 므술레멧(Meshullemeth), 70인역에는 Mesollavm(다른 본문에는 Massslavmeiq ktl), 루키안. Masqalavm 등)] [왕하 21 : 18, 대하 33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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