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권 4장 므낫세를 대신하여 아몬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아몬후에 정직하고 경건한 요시야가 어떻게 다스렸는지,또한 여선지자 훌다에 대하여

 


제 4 장



므낫세를 대신하여 아몬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아몬후에 정직하고 경건한 요시야가 어떻게 다스렸는지,또한 여선지자 훌다에 대하여



 1. 요시야의 개혁 [왕하 21 : 20, 대하 33 : 22]



  암몬은 자기의 아버지가 젊었을 때 무분별하게 저질렀던 그행위를 모방하였다. 그는 자기 신하들의 모반에 의해 통치 2년되던 24세의 나이에 자기 집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왕하 21 : 19, 대하 33: 21에 보면 22세에 왕위를 계승하여 치리한 2년을 더하면 24세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그의 살인자들을 처형하고 그의 아버지와 함께 암몬을 묻어주었다. 그후 그들은 그의 아들 요시야에게 왕권을 넘겨 주었다.[㈜ 헬라오로는 요시아스(J?sias), 히브리어는 요시야후(Yosiyahu), 70인역은 요세이아스(!Iwseiva\”)]



 [요시야의 승계 왕하 22 : 1, 대하 34 : 1]



  그는 8세의 소년이었고 어머니는 보스갓(Bosketh)[㈜ 성경에는 보스갓(Boscath). 70인역은 바수롯(Basourwvq). 그곳은 수 15 : 39에 나오는 라기스, 에글론과 함께 모여 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태생인 여디다(Jedis)였다.[㈜ 성경에는 duel다(Jedidah), 70인역 예데이아(!Iedeiva) 혹은 여디아( !Isddiva).] 그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였고 선량하고 덕성있는 사람이어서[㈜ \’경쟁적인\’이란 추측상의 보충이다. 니이제(Niese0는 \’미덕\’ 다음에 본문에서 누락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윗의 삶의 태도를 모범으로 삼아 열심히 따르려고 하였다. 그가 12살이 되었을 때[㈜ 성경에는(대하 34 : 3)\’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 지 8년만에 그 조상 다윗의 하느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12년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하며\’. 요세푸스가 말한 \’열두살\’이라는 것은 이 절을 오해한 것이 분명하다.]그는 자기의 경건과 의로움을 증명하였다. 그는 백성들에게 정신을 차려서 자신들이 믿고 있는 우상들을 폐기하라 하면서 우상들은 참신이 아니므로 선조들의 하느님을 섬길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는 마치 그가 가장 원로이고 그런 일을 행하기에 필요한 것들을 아는 가장 적임자처럼 행하여 그의 선조들의 행위를 다시 되새겨서 그들이 행했던 실수를 현명하게 바로 잡았다. 그가 찾아내어 실행하였던 것은 어떤 것이든지 선한 것이었고 그가 지키고 모방했던 것은 어떤 것이든지 적절한 것이었다. 그는 전통과 원로들의 자문과 타고난 분별력으로 이와같은 일들을 잘 수행해 나갔다.[㈜ 이문(異文)에는 \’장로들에 의해 인도받은\’이 누락되어 있다.] 그가 정부의[㈜ 이문(異文)에는 \”도시\”임.] 질서를 바로 잡고 하느님께 대해 신실할 수 있었던 것은 율법을 잘 준수했기 때문이었다.



[요시야의 경건행위 대하 34 : 3]



  이리하여 선(先)왕들의 불법한 행위들의 흔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뿌리채 뽑혀 완전히 조절되었다.[㈜ 본문이 약간 불분명하다.] 도시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왕은 이방신들에게 헌납한 목상들을 잘라버렸고 그들의 제단들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그의 선조들에 의해 세워져서 우상들에게 헌납된 헌납물이 무엇이든지 그는 경멸하였고 허물어 뜨렸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이방신들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하느님을 섬기도록 바꾸어 놓았으며, 하느님의 제단위에서 전통적인 희생제사와 온전한 번제물을 드리게 되었다.[㈜ 성경에는 제사와 제물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는 사사로운 일들을 조정하도록 재판관과 감독자들을 임명하여 이들로 하여금 위에서 기록한 것 이외의 것들을 재판할 수 있도록 하였고 소송사건을 자기들의 삶처럼 조심스럽게 다루도록 하였다.[㈜ 성경에는 요시야의 사사 임명에 관해서 아무 언급이 없다. 요세푸스 가 여기서 여호사밧과 그를 혼동하였을까? 참). 고대. 4권. 1 : 1(2) 이하(대하19: 5이하).] 그런 후 그는 전국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성전을 수리할 것이니 금과은을 가져오도록 하였다. 돈이 모여지자 그는 성전의 감독권과 그에 상당한 비용을 총독인 아마샤(Amasias)와[㈜ 루키안도 마찬가지임. 성경에는 마아세아(Maaseiah), 70인역은 마아사(Maasav) 혹은 마아시아스(Maasiva\”).] 서기관 사반(Sapha)과[㈜ 성경에는 \’사반(Shaphan)\’. 70인역의 왕하에는 \’삽판\'(Saffavn)혹은 (\’셉판\'<Seffavn >, \’삽판<Sapfavn>.루키안의 왕하와 70인역의 대하에는 \’사판(Safavn).] 기록의 관리자인 요아(Joakes)와[㈜ 성경에는 \”요아(Joah, Yoah), 70인역은 유악(!Iouavc ), 다른 본문에는 요아스 (!Iwav\”).] 대제사장 엘리아김(Eliakias)에게[㈜ 성경에는 힐기야(Hilkiah), 70인역은 켈케이아스(Celkeiva\”)] 임무를 맡겼다. 이들은 지연시키지 않고[㈜ \’지체하지 않고\’ (mhde; ajnabolh\’ dovnte\”)의 구절은 이문(異文)들과 함께 투키디데스 7 : 15의 회고담이며 고대, 17권 – 19권에 자주 나온다. 참) Thackeray의 4권. p14이하에 나오는 서문. ] 수선하기 위해 건축가들과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하여 사역을 마치었다. 그래서 성전은 이런 모습으로 수리되었고 왕의 경건함은 확연히 밝혀졌다.



2. 힐기야(엘리아김)가 성전에서 모세의 율법책을 발견함 황하 22 : 3, 대하 34 : 8] \’



  요시야가 그의 통치 제18년에 대제사장 엘리아김(Eliakias)을 불러 성전올 수리하고,[㈜ 이문(異文)에는 \’흑은 \’] 남을 금과 은을 잘 녹여 성전에서 사용할 대접 (mixing-bowls)과 잔(盞 : bation-cups)과 접시를 만들라고 하였고, 덧볼여 금과 은, 무엇이든지 창고 안에 있는 것을 사용하여[㈜ 혹은 \’그것을 사용하다\’ 참). 다음의 주.] 대접과 그릇들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성전 그릇구매에 대한 언급은 왕하 22 : 9의 오해에서 근거하고 있 다. 70인역은 \’그들이 성전에 있는 은을 용해했다(히브리사본은 \”그 들이 쏟아붓다\”로,흠정역 \”그들이 함께 모았다,\’그리고 탈굼도 마찬 가지임). 그러나 성경은 그돈(혹은 은)이 석재와 목재를 사들이는데 사용되었다고 명확이 언급하였다. ] 그러나 금을가지러 갔던 대제사장 엘리아김은 성전안에 있었던 모세의 거룩한 책들을[㈜ 이 장 전체에서 성경은 \’책들\'(books)에 관해서가 아니라 모세(혹은 야훼) 율법에 관한 \’책\'(a book)에 대해 얘기한다. 요새푸스는 성 경을 모세오경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학자들은 여기서 의미하는 것이 신명기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신명기에 나오는 종교적인 개혁이 요시야에 의해 설행 된 것으로 봄으로써 신명기의 현재 형태는 요시야가 왕위에 오르기 직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 우연히 발견했다.



 [요시야가 여선지자 훌다에게 자문을 구하다 왕하 22 : 11, 대하 34 : 19]



  그는 그것을 가져다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다. 사반은 이것들을 읽고, 왕에게 가서 왕이 하라고 명령했던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마쳤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사반은 왕에게 큰 소리로 그 책들을 읽어 주었다. 왕은 읽는 것을 듣고 자기의 겉옷을 찢으며, 대제사장 엘리아김을 불러 그와 서기관 자신과[㈜ 즉 사반 : 성경은 다른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반의 아들 아히감 (Ahikam)도 언급된다. ] 그의 절친한 친구 몇명을 여선지자 훌다(Oolda)에게 보냈다.[㈜ 성경에는 훌다(Huldah). 70인역은 흘다(O$lsa).] 훌다는 명성이 있고 좋은 집안의 사람인[㈜ 성경에는 그가 \’예복의 보관자였다\’고만 말한다. ] 살룸(Sallumos)의[㈜ 성경에는 살룸(Shallum).70인역은 셀렘 (Sellhvm).] 아내이다. 요시아는 이들을 훌다에게 보내 하느님께 아뢰어 하느님의 은총을 얻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 선조들이 모세 율법을 어기고 죄를 범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쫒겨날 위기에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고국에서 모든 것이 빈곤한 이국땅으로 쫒겨난 후에 불쌍하게 그곳에서 그들의 삶을 마칠 것을[㈜ 본문이 불분명 함.]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요시야는 말하였다. 여선지자는 왕이 보낸 메세지를 이 사람들을 통해 듣자[㈜ 추방에 대한 요시야의 두려움은 첨가된 내용이 다. ] 왕에게 돌아가 이렇게 전하라고 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미 백성들의 운명을 선언하셨고 기도를 통해 그것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아무도 없습니다. 그 내용은 백성들을 멸망시켜 고향에서 쫒아내고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빼앗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들이 현명하게 행동할 것을 권고해 주었고 불경건한 행위들로 인해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해 주었는데도 백성들은 율법을 범하였고 오랜 기간동안 회개하지도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하느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임을 믿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하느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벌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 요시야 왕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재난을 즉시 주시지 아니하고 왕이 돌아가신 후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선포하신 대로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내보내실 것입니 다. \”[㈜ 요세푸스는 훌다의 대답에 관한 성경상의 본문을 강조하고 있다. ]



 3. 모세율법 책을 백성들 앞에서 읽음 (왕하 23 : 1, 대하 34 : 29 ]



  여선지자가 예언한 후 그들은 돌아가 그녀의 말을 왕에게 보고하였다. 그러자 왕은 전국에 사람을 보내 제사장과 레위인은물론 노소를 불문하고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모이라고 명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먼저 거룩한 책들을 그들에게 읽어주었다. 그런후 백성들 가운데 있는 단에[㈜ 성경에는 \”주석 (柱石)곁에서\”로 표기.] 올라서서 그들에게 진실로 하느님을 섬길 것과 모세의 율법들을 지킬 것을 맹세하도록 강요하다시피 종용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열렬히 환영하며왕이 자기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행하기로 단연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희생제물을 드리고는 거룩한 찬송으로[㈜ \’칼리 에룬데스\’ ( kallierounte\”)의 뜻은 여기서 불분명 하다(주로 \’경사스럽게 제사하다\’의 뜻) 참). 고대. 9권. 13 : 3(268) 각주 383.] 찬양을 하면서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은총과 은혜를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런 후 왕은 대제사장에게 선조들이 우상과 이방신들에게 드리려고 신전에 두었던 그릇들을 내오라고 명령하였다. 그릇들이 많이 모여지자 왕은 그것들을 태우고 그 재를 흩어 버렸다. 그리고그는 아론의 후예가 아닌 이방신의 제사장들을 죽여버렸다. [㈜ 성경에는 \’그가 우상을 섬겼던 제사장들을 폐하였다\’로 표기. 요세 푸스는 상기한 요시야 개혁의 설명에 있어서 왕하 23 : 4이하에 있 는 묘사의 대부분을 생략하였다. ]



 4. 요시야가 거전 선지자들의 뼈를 불사르다 (왕하 23 :15]



  그는 예루살렘에서 이와같은 개혁을 단행한 후에 지방으로 내려가 여로보암이 이방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세운 모든 것들을 완전히 파괴시켰다. 그리고 그는 여로보암이 제일 먼저 세웠던 제단위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배를 불태워 버렸다. 이것은 어떤 선지자가 여로보암에게 와서 모든 백성이 듣는 가운데서 당신이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거짓 선지자들의 뼈를 불태우는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즉 다윗의 후손중 요시야라하는 사람이 위에 기록한 대로[㈜ 고대.8권. 8 : 5(231)이하(왕상 13 : 1이하).] \”이 일을 이를 것이다 \”라고하였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났고 이 예언은 361년[㈜ 현대의 계산에 따르면 실제적 기간은 근 300년이 된다. 더구나 요 세푸스의 수치는 보다 먼저 주어진 연대기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고대. 9권. 14:1(280)에 따르면 여로보암(Jeroboam)의 즉위로부터 히스기야(Hesekiah)제7년(고대. 9권. 14:1(277)) 멸망할 때까지 이 스라엘 왕국은 240년(7개월7일을 가산)을 지속했다. 요세푸스는 히스기야의 치세(고대. 10권. 3 : 1(36))를 22년으로, 므낫세의 치 세(고대. 10권. 3 : 2(46))를 55년으로, 아몬의 치세(고대. 10권. 3 : 2(47)를 2년으로, 그리고 모세율법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요시야 의 치세(고대. 10권. 4 : 2(57))를 18년으로 보았다. 따라서 240년 에 97년을 가산함으로 꼭 여로보암의 치세로부터 제단에 관한 예 언의 성취 사이의 간격이 337년이 되는 것이다. ]후에 성취되었다.



 5. 요시야가 이스라엘인들을 개혁함 (대하 34 : 6)



  이런 사건이 있은 후 요시야왕은 앗수르의 침입때 포로나 종으로 잡혀가는 것을 면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찾아가 불경건한 행실과 이방신 섬기는 것을 포기하라고 권하면서 대신에 조상들의 전능하신 하느님을 잘 믿으라고 종용하였다. 그리고 그는 집과 마을과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사람들이 우상을 가지고 있지나 않은가 의심하여 찾아보기도 하였다.[㈜ 앞의 내용은 성경의 강조이다. 성경에는 그가 므낫세(Manasseh), 것에브라임(Ephraim),그러고 시므온(Simeon)의 도시들을 그 도시 부근과 함께 정화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을 파괴 하였다고 만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우상을 찾기 위하여 가택수색을 하는 것 은 랍비 전승에 언급되어 있다, 참) Ginzberg iv :282.] 한편 그는 선왕들이 군대장관들을 위해 세워놓은 병거들과 이방신들을 섬기기 위한 많은 것들을 모두 제거했다[왕하 23 . 11].[㈜ 문자적으로는 \”통치자들을 위하여\” :본문에 있는 Basileyomevnoi\”의 번역은 요세푸스가 \”또 유다 열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 렸으니 이 말들은 야훼의 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시증(흠정 역 \”chamber-lain\”) 나단멜렉(Nathan-moloch)의 집 곁에 있었던 것이며\”라고 기록된왕하 23: 11을 부주의하게 의역하였다는 가정에 근거되었다. 베이(Weill)의 주장대로 basileuomevnoi\”Basileivoi\” \”왕궁\” 의 전화(轉化)라고 가정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 이렇게 전국을 깨끗하게 한 후 그는 예루살렘에 모든 백성을 불러모아 무교병 즉 유월절(Pascha)이라 하는[㈜ 혹은 아마도 \”또한 ~로 볼렀다\”일 것이다. 참). 두개의 축제가 명시 된 고대. 20권. 5 : 3(106). 한편 요세푸스는 고대. 3권. 10:5(249) 에서 무교절과 바로 앞에 있었던 유월절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두 절기가 역대하=에스드라1서에서 언금된 반면 역대하에서 는 유월절만을 언급하고 있다. 요세푸스 저서에 나오는 제사에 관 한 묘사는 역대하=에스드라1서의 설명에 근거 하고 있다. ] 절기를 지켰다 [왕하 23 :21, 대하 35 : 1, 에스드라 I서 1 : 1].그리고 그는 백성들에게 유월절 선물로 30,000마리의[㈜ 이문(異文)에는 20으로 표기.] 어린 염소와 양을 주었고 온전한 번제물을 위해 3,000마리의 수소를 주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도[㈜ 참). 성전을 맡은 요시야(Hilkiah)와 다른 제사장들을 포함한 요시 야(Jos-iah)의 방백들이 백성들과 제사장들에게 회생을 준 것을 언 급한 대하 35 : 8=에스드라1서 1 : 8. 그러므로 요세푸스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을 허드슨(Hudson)과 나버(Naber).가 제안한 것 과 같이 \”최고의 유대인들\”이 나 \”최고의 히브리 인들\”로 수정 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다. ] 마찬가지로 제사장들에게 유월절을 위해 2,600마리의 어린 양을 주었고[㈜ 성경은 \”300마리의 수소\”를 첨언한다. ] 레위지파의 죽장들이 레위인들에게도 5,000마리의 어린 양과 500마리의 수소를 주었다. 이렇게 희생제물이 풍성해지자, 이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희생제사를 드리면서 제사장들은 제사 절차를 지시하였고[㈜ 혹은 \”모두에게 설명 하여\” : 이문(異文)에는 \”각 제사장들이 설명 하여\”등. 이러한 표시는 에스드라 i :10의 루키안 수정본에 근거하 고 있는 것 같다. ] 백청들을 지도하였다. 사무엘시대 이후에 이런 모습으로 히브리인들이 절기를 지킨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율법과 선조들의 고대적 관습에 따라 수행되었다. 이 일 후에 요시야는 평화롭고, 풍성하고, 부를 누리며,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살았으나, 다음과 같이 그의 생애를 마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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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권 4장 므낫세를 대신하여 아몬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아몬후에 정직하고 경건한 요시야가 어떻게 다스렸는지,또한 여선지자 훌다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4 장


    므낫세를 대신하여 아몬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아몬후에 정직하고 경건한 요시야가 어떻게 다스렸는지,또한 여선지자 훌다에 대하여


     1. 요시야의 개혁 [왕하 21 : 20, 대하 33 : 22]


      암몬은 자기의 아버지가 젊었을 때 무분별하게 저질렀던 그행위를 모방하였다. 그는 자기 신하들의 모반에 의해 통치 2년되던 24세의 나이에 자기 집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왕하 21 : 19, 대하 33: 21에 보면 22세에 왕위를 계승하여 치리한 2년을 더하면 24세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그의 살인자들을 처형하고 그의 아버지와 함께 암몬을 묻어주었다. 그후 그들은 그의 아들 요시야에게 왕권을 넘겨 주었다.[㈜ 헬라오로는 요시아스(J?sias), 히브리어는 요시야후(Yosiyahu), 70인역은 요세이아스(!Iwseiva”)]


     [요시야의 승계 왕하 22 : 1, 대하 34 : 1]


      그는 8세의 소년이었고 어머니는 보스갓(Bosketh)[㈜ 성경에는 보스갓(Boscath). 70인역은 바수롯(Basourwvq). 그곳은 수 15 : 39에 나오는 라기스, 에글론과 함께 모여 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태생인 여디다(Jedis)였다.[㈜ 성경에는 duel다(Jedidah), 70인역 예데이아(!Iedeiva) 혹은 여디아( !Isddiva).] 그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였고 선량하고 덕성있는 사람이어서[㈜ ‘경쟁적인’이란 추측상의 보충이다. 니이제(Niese0는 ‘미덕’ 다음에 본문에서 누락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윗의 삶의 태도를 모범으로 삼아 열심히 따르려고 하였다. 그가 12살이 되었을 때[㈜ 성경에는(대하 34 : 3)’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 지 8년만에 그 조상 다윗의 하느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12년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하며’. 요세푸스가 말한 ‘열두살’이라는 것은 이 절을 오해한 것이 분명하다.]그는 자기의 경건과 의로움을 증명하였다. 그는 백성들에게 정신을 차려서 자신들이 믿고 있는 우상들을 폐기하라 하면서 우상들은 참신이 아니므로 선조들의 하느님을 섬길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는 마치 그가 가장 원로이고 그런 일을 행하기에 필요한 것들을 아는 가장 적임자처럼 행하여 그의 선조들의 행위를 다시 되새겨서 그들이 행했던 실수를 현명하게 바로 잡았다. 그가 찾아내어 실행하였던 것은 어떤 것이든지 선한 것이었고 그가 지키고 모방했던 것은 어떤 것이든지 적절한 것이었다. 그는 전통과 원로들의 자문과 타고난 분별력으로 이와같은 일들을 잘 수행해 나갔다.[㈜ 이문(異文)에는 ‘장로들에 의해 인도받은’이 누락되어 있다.] 그가 정부의[㈜ 이문(異文)에는 “도시”임.] 질서를 바로 잡고 하느님께 대해 신실할 수 있었던 것은 율법을 잘 준수했기 때문이었다.


    [요시야의 경건행위 대하 34 : 3]


      이리하여 선(先)왕들의 불법한 행위들의 흔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뿌리채 뽑혀 완전히 조절되었다.[㈜ 본문이 약간 불분명하다.] 도시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왕은 이방신들에게 헌납한 목상들을 잘라버렸고 그들의 제단들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그의 선조들에 의해 세워져서 우상들에게 헌납된 헌납물이 무엇이든지 그는 경멸하였고 허물어 뜨렸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이방신들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하느님을 섬기도록 바꾸어 놓았으며, 하느님의 제단위에서 전통적인 희생제사와 온전한 번제물을 드리게 되었다.[㈜ 성경에는 제사와 제물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는 사사로운 일들을 조정하도록 재판관과 감독자들을 임명하여 이들로 하여금 위에서 기록한 것 이외의 것들을 재판할 수 있도록 하였고 소송사건을 자기들의 삶처럼 조심스럽게 다루도록 하였다.[㈜ 성경에는 요시야의 사사 임명에 관해서 아무 언급이 없다. 요세푸스 가 여기서 여호사밧과 그를 혼동하였을까? 참). 고대. 4권. 1 : 1(2) 이하(대하19: 5이하).] 그런 후 그는 전국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성전을 수리할 것이니 금과은을 가져오도록 하였다. 돈이 모여지자 그는 성전의 감독권과 그에 상당한 비용을 총독인 아마샤(Amasias)와[㈜ 루키안도 마찬가지임. 성경에는 마아세아(Maaseiah), 70인역은 마아사(Maasav) 혹은 마아시아스(Maasiva”).] 서기관 사반(Sapha)과[㈜ 성경에는 ‘사반(Shaphan)’. 70인역의 왕하에는 ‘삽판'(Saffavn)혹은 (‘셉판’<Seffavn >, ‘삽판<Sapfavn>.루키안의 왕하와 70인역의 대하에는 ‘사판(Safavn).] 기록의 관리자인 요아(Joakes)와[㈜ 성경에는 “요아(Joah, Yoah), 70인역은 유악(!Iouavc ), 다른 본문에는 요아스 (!Iwav”).] 대제사장 엘리아김(Eliakias)에게[㈜ 성경에는 힐기야(Hilkiah), 70인역은 켈케이아스(Celkeiva”)] 임무를 맡겼다. 이들은 지연시키지 않고[㈜ ‘지체하지 않고’ (mhde; ajnabolh’ dovnte”)의 구절은 이문(異文)들과 함께 투키디데스 7 : 15의 회고담이며 고대, 17권 – 19권에 자주 나온다. 참) Thackeray의 4권. p14이하에 나오는 서문. ] 수선하기 위해 건축가들과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하여 사역을 마치었다. 그래서 성전은 이런 모습으로 수리되었고 왕의 경건함은 확연히 밝혀졌다.


    2. 힐기야(엘리아김)가 성전에서 모세의 율법책을 발견함 황하 22 : 3, 대하 34 : 8] ‘


      요시야가 그의 통치 제18년에 대제사장 엘리아김(Eliakias)을 불러 성전올 수리하고,[㈜ 이문(異文)에는 ‘흑은 ‘] 남을 금과 은을 잘 녹여 성전에서 사용할 대접 (mixing-bowls)과 잔(盞 : bation-cups)과 접시를 만들라고 하였고, 덧볼여 금과 은, 무엇이든지 창고 안에 있는 것을 사용하여[㈜ 혹은 ‘그것을 사용하다’ 참). 다음의 주.] 대접과 그릇들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성전 그릇구매에 대한 언급은 왕하 22 : 9의 오해에서 근거하고 있 다. 70인역은 ‘그들이 성전에 있는 은을 용해했다(히브리사본은 “그 들이 쏟아붓다”로,흠정역 “그들이 함께 모았다,’그리고 탈굼도 마찬 가지임). 그러나 성경은 그돈(혹은 은)이 석재와 목재를 사들이는데 사용되었다고 명확이 언급하였다. ] 그러나 금을가지러 갔던 대제사장 엘리아김은 성전안에 있었던 모세의 거룩한 책들을[㈜ 이 장 전체에서 성경은 ‘책들'(books)에 관해서가 아니라 모세(혹은 야훼) 율법에 관한 ‘책'(a book)에 대해 얘기한다. 요새푸스는 성 경을 모세오경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학자들은 여기서 의미하는 것이 신명기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신명기에 나오는 종교적인 개혁이 요시야에 의해 설행 된 것으로 봄으로써 신명기의 현재 형태는 요시야가 왕위에 오르기 직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 우연히 발견했다.


     [요시야가 여선지자 훌다에게 자문을 구하다 왕하 22 : 11, 대하 34 : 19]


      그는 그것을 가져다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다. 사반은 이것들을 읽고, 왕에게 가서 왕이 하라고 명령했던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마쳤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사반은 왕에게 큰 소리로 그 책들을 읽어 주었다. 왕은 읽는 것을 듣고 자기의 겉옷을 찢으며, 대제사장 엘리아김을 불러 그와 서기관 자신과[㈜ 즉 사반 : 성경은 다른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반의 아들 아히감 (Ahikam)도 언급된다. ] 그의 절친한 친구 몇명을 여선지자 훌다(Oolda)에게 보냈다.[㈜ 성경에는 훌다(Huldah). 70인역은 흘다(O$lsa).] 훌다는 명성이 있고 좋은 집안의 사람인[㈜ 성경에는 그가 ‘예복의 보관자였다’고만 말한다. ] 살룸(Sallumos)의[㈜ 성경에는 살룸(Shallum).70인역은 셀렘 (Sellhvm).] 아내이다. 요시아는 이들을 훌다에게 보내 하느님께 아뢰어 하느님의 은총을 얻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 선조들이 모세 율법을 어기고 죄를 범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쫒겨날 위기에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고국에서 모든 것이 빈곤한 이국땅으로 쫒겨난 후에 불쌍하게 그곳에서 그들의 삶을 마칠 것을[㈜ 본문이 불분명 함.]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요시야는 말하였다. 여선지자는 왕이 보낸 메세지를 이 사람들을 통해 듣자[㈜ 추방에 대한 요시야의 두려움은 첨가된 내용이 다. ] 왕에게 돌아가 이렇게 전하라고 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미 백성들의 운명을 선언하셨고 기도를 통해 그것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아무도 없습니다. 그 내용은 백성들을 멸망시켜 고향에서 쫒아내고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빼앗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들이 현명하게 행동할 것을 권고해 주었고 불경건한 행위들로 인해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해 주었는데도 백성들은 율법을 범하였고 오랜 기간동안 회개하지도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하느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임을 믿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하느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벌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 요시야 왕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재난을 즉시 주시지 아니하고 왕이 돌아가신 후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선포하신 대로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내보내실 것입니 다. “[㈜ 요세푸스는 훌다의 대답에 관한 성경상의 본문을 강조하고 있다. ]


     3. 모세율법 책을 백성들 앞에서 읽음 (왕하 23 : 1, 대하 34 : 29 ]


      여선지자가 예언한 후 그들은 돌아가 그녀의 말을 왕에게 보고하였다. 그러자 왕은 전국에 사람을 보내 제사장과 레위인은물론 노소를 불문하고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모이라고 명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먼저 거룩한 책들을 그들에게 읽어주었다. 그런후 백성들 가운데 있는 단에[㈜ 성경에는 “주석 (柱石)곁에서”로 표기.] 올라서서 그들에게 진실로 하느님을 섬길 것과 모세의 율법들을 지킬 것을 맹세하도록 강요하다시피 종용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열렬히 환영하며왕이 자기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행하기로 단연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희생제물을 드리고는 거룩한 찬송으로[㈜ ‘칼리 에룬데스’ ( kallierounte”)의 뜻은 여기서 불분명 하다(주로 ‘경사스럽게 제사하다’의 뜻) 참). 고대. 9권. 13 : 3(268) 각주 383.] 찬양을 하면서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은총과 은혜를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런 후 왕은 대제사장에게 선조들이 우상과 이방신들에게 드리려고 신전에 두었던 그릇들을 내오라고 명령하였다. 그릇들이 많이 모여지자 왕은 그것들을 태우고 그 재를 흩어 버렸다. 그리고그는 아론의 후예가 아닌 이방신의 제사장들을 죽여버렸다. [㈜ 성경에는 ‘그가 우상을 섬겼던 제사장들을 폐하였다’로 표기. 요세 푸스는 상기한 요시야 개혁의 설명에 있어서 왕하 23 : 4이하에 있 는 묘사의 대부분을 생략하였다. ]


     4. 요시야가 거전 선지자들의 뼈를 불사르다 (왕하 23 :15]


      그는 예루살렘에서 이와같은 개혁을 단행한 후에 지방으로 내려가 여로보암이 이방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세운 모든 것들을 완전히 파괴시켰다. 그리고 그는 여로보암이 제일 먼저 세웠던 제단위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배를 불태워 버렸다. 이것은 어떤 선지자가 여로보암에게 와서 모든 백성이 듣는 가운데서 당신이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거짓 선지자들의 뼈를 불태우는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즉 다윗의 후손중 요시야라하는 사람이 위에 기록한 대로[㈜ 고대.8권. 8 : 5(231)이하(왕상 13 : 1이하).] “이 일을 이를 것이다 “라고하였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났고 이 예언은 361년[㈜ 현대의 계산에 따르면 실제적 기간은 근 300년이 된다. 더구나 요 세푸스의 수치는 보다 먼저 주어진 연대기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고대. 9권. 14:1(280)에 따르면 여로보암(Jeroboam)의 즉위로부터 히스기야(Hesekiah)제7년(고대. 9권. 14:1(277)) 멸망할 때까지 이 스라엘 왕국은 240년(7개월7일을 가산)을 지속했다. 요세푸스는 히스기야의 치세(고대. 10권. 3 : 1(36))를 22년으로, 므낫세의 치 세(고대. 10권. 3 : 2(46))를 55년으로, 아몬의 치세(고대. 10권. 3 : 2(47)를 2년으로, 그리고 모세율법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요시야 의 치세(고대. 10권. 4 : 2(57))를 18년으로 보았다. 따라서 240년 에 97년을 가산함으로 꼭 여로보암의 치세로부터 제단에 관한 예 언의 성취 사이의 간격이 337년이 되는 것이다. ]후에 성취되었다.


     5. 요시야가 이스라엘인들을 개혁함 (대하 34 : 6)


      이런 사건이 있은 후 요시야왕은 앗수르의 침입때 포로나 종으로 잡혀가는 것을 면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찾아가 불경건한 행실과 이방신 섬기는 것을 포기하라고 권하면서 대신에 조상들의 전능하신 하느님을 잘 믿으라고 종용하였다. 그리고 그는 집과 마을과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사람들이 우상을 가지고 있지나 않은가 의심하여 찾아보기도 하였다.[㈜ 앞의 내용은 성경의 강조이다. 성경에는 그가 므낫세(Manasseh), 것에브라임(Ephraim),그러고 시므온(Simeon)의 도시들을 그 도시 부근과 함께 정화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을 파괴 하였다고 만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우상을 찾기 위하여 가택수색을 하는 것 은 랍비 전승에 언급되어 있다, 참) Ginzberg iv :282.] 한편 그는 선왕들이 군대장관들을 위해 세워놓은 병거들과 이방신들을 섬기기 위한 많은 것들을 모두 제거했다[왕하 23 . 11].[㈜ 문자적으로는 “통치자들을 위하여” :본문에 있는 Basileyomevnoi”의 번역은 요세푸스가 “또 유다 열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 렸으니 이 말들은 야훼의 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시증(흠정 역 “chamber-lain”) 나단멜렉(Nathan-moloch)의 집 곁에 있었던 것이며”라고 기록된왕하 23: 11을 부주의하게 의역하였다는 가정에 근거되었다. 베이(Weill)의 주장대로 basileuomevnoi”Basileivoi” “왕궁” 의 전화(轉化)라고 가정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 이렇게 전국을 깨끗하게 한 후 그는 예루살렘에 모든 백성을 불러모아 무교병 즉 유월절(Pascha)이라 하는[㈜ 혹은 아마도 “또한 ~로 볼렀다”일 것이다. 참). 두개의 축제가 명시 된 고대. 20권. 5 : 3(106). 한편 요세푸스는 고대. 3권. 10:5(249) 에서 무교절과 바로 앞에 있었던 유월절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두 절기가 역대하=에스드라1서에서 언금된 반면 역대하에서 는 유월절만을 언급하고 있다. 요세푸스 저서에 나오는 제사에 관 한 묘사는 역대하=에스드라1서의 설명에 근거 하고 있다. ] 절기를 지켰다 [왕하 23 :21, 대하 35 : 1, 에스드라 I서 1 : 1].그리고 그는 백성들에게 유월절 선물로 30,000마리의[㈜ 이문(異文)에는 20으로 표기.] 어린 염소와 양을 주었고 온전한 번제물을 위해 3,000마리의 수소를 주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도[㈜ 참). 성전을 맡은 요시야(Hilkiah)와 다른 제사장들을 포함한 요시 야(Jos-iah)의 방백들이 백성들과 제사장들에게 회생을 준 것을 언 급한 대하 35 : 8=에스드라1서 1 : 8. 그러므로 요세푸스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을 허드슨(Hudson)과 나버(Naber).가 제안한 것 과 같이 “최고의 유대인들”이 나 “최고의 히브리 인들”로 수정 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다. ] 마찬가지로 제사장들에게 유월절을 위해 2,600마리의 어린 양을 주었고[㈜ 성경은 “300마리의 수소”를 첨언한다. ] 레위지파의 죽장들이 레위인들에게도 5,000마리의 어린 양과 500마리의 수소를 주었다. 이렇게 희생제물이 풍성해지자, 이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희생제사를 드리면서 제사장들은 제사 절차를 지시하였고[㈜ 혹은 “모두에게 설명 하여” : 이문(異文)에는 “각 제사장들이 설명 하여”등. 이러한 표시는 에스드라 i :10의 루키안 수정본에 근거하 고 있는 것 같다. ] 백청들을 지도하였다. 사무엘시대 이후에 이런 모습으로 히브리인들이 절기를 지킨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율법과 선조들의 고대적 관습에 따라 수행되었다. 이 일 후에 요시야는 평화롭고, 풍성하고, 부를 누리며,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살았으나, 다음과 같이 그의 생애를 마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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