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권 제 14장 헤롯이 아라비아왕에게 쫓겨나 애굽으로 급히 갔고 거기서 또 급히 로마로 간 것에 대하여, 그리고 안토니에게 거액의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여 로마의 원로원과 가이사가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세운 것에 대하여

 


제 14 장



헤롯이 아라비아왕에게 쫓겨나 애굽으로 급히 갔고 거기서 또 급히 로마로 간 것에 대하여, 그리고 안토니에게 거액의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여 로마의 원로원과 가이사가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세운 것에 대하여



1. 아랍왕 말쿠스가 헤롯에게 도움주기를 거절하다



  [㈜ 370-389)와 전쟁, 1권. (274-285) 사이의 병행구에 대해서는 Laqueur pp. 193-199를 보라.]



  그러나 헤롯은 그를 둘러싼 이 큰 위기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악한 일을 시도하는[㈜ 다른 본문에는 \’고안하는\’] 것에 더 예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랍왕 말쿠스에게[㈜ 다른 본문에는 \’말리쿠스(Malichus)\’, 그는 11 :  2(273)에서 언급된 힐카누스의 유대인 조력자와 혼동되지는 않는다. 아랍(나바타이아, Nab-ataean)왕 말쿠스(Malchus)는 아레타스 Ⅲ세(AretasⅢ)의 후계자이다,(14) 이하를 보라. 다음의 사건들 중 몇몇은 디오 카시우스(Diocassius), xlviii. 41에 언급된다.] 가서 이전에 자기가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 전쟁.에 의하면 헤롯의 아버지로부터, 그러나 (372) 이하를 보라.] 이제는 반대로 도움도 받고 또  가장 필요한 돈을 빌리든지 자기에게 신세졌던 사람에게 기부 받으려 하였다. 헤롯은 아직 그의 형제 파사엘이 죽은 줄도 모르고 9,300달란트나 그의 몸값으로 지불하여 적으로부터 그를 구해내려고 서둘렀다. 이를 위해 그는 파사엘의 일곱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가서 아랍인들에게 담보로 내놓으려 했다.[㈜ 전쟁은 두로인 보증자에게 다소 모호한 언급을 첨가하고 있다 참). 앞에 있는 문장을 라틴어로 번역을 한 두로인(Tyrians)에 대 한 언급.]  그러나 그는 말쿠스의 사신들을 만났는데 사신들은 그에게 돌아가라는 명령을 전했다. 또한 파르티아인들이 절대로 헤롯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것은 헤롯의 빛을 갚지 않으려는 핑계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랄의 유력인사들은 그들이 안티파테르에게 빌려쓴 돈을 헤롯에게 갚지 않으려고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헤롯은 자기는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 없으며 다만 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들을 의논하기 위해 온 것일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전쟁. 1권. (277)은 헤롯이 \’자기 감정(to; tavqo\”)을 받아 쓰게 한\’ 대답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고대사\’에서 사용한 것보다 더 거칠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2. 헤롯이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함



  헤롯은 떠나기로 결정하고는 매우 신중하게 애굽으로 향했다. 가던 중에 그는 이전에 많은[㈜ 다른 본문에는 \’많지 않은\’. 성전은 추측컨대 이두매인(Idumaean)의 것으로 생각된다.] 추종자들을 남겨두었던 어떤 신전에서 하릇 밤을 묵었다. 다음날 그는 리노코루라(Rhinocoro-ura)에 도착했는데[㈜ 팔레스틴과 애굽의 국경에 있는 현재의 엘-아리스(el-Ari\’)이다. 참). 고대. 13권. (395).] 거기서 자기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쟁.은 그 소식이 그를 대단히 슬프게 했다고 첨가하고 있다.]  말쿠스는 마음이 바뀌어 급히 헤롯을 뒤쫒았으나 따라잡지 못하였는데 이는 헤롯이 이미 멀리 떠나갔기 때문이었다. 헤롯은 급히 펠루시움(Pelusium)에[㈜ 펠루시움(Pelusium)은 리노코로우라(Rhinocoroura)에서 약 80마일 거리에 있다]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가 거기에 값을 때 거기 정박한 배들은 알렉산드리아로 가려는 그의 승선을 거부했다. 그래서 그는 선장들에게 호소하였으며 결국 그들은 그를 존경하고 복종하면서 그를 그 도시까지 호위해 주었다. 헤롯은 그곳에서 클레오파트라에게 영접을 받았다.[㈜ 전쟁.에 의하면 클레오파트라(Cleopatra)는 \’그녀가 준비한 원정을 명령하여 헤롯에게 희망을 던져 주었다.\’만약 이 진술이 맞다면 이것은 주전 40년초에 파르티아인들을 치기 시작한 안토니(Antony)를 도우려는 그녀의 시도를 언급한 것일 것이다.] 그녀는 그를 머물도록 설득하지 못하였다. 헤롯은 때가 겨울이고 이달리야가 매우 혼란하고 무질서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끝내 로마로 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주전 41-40년에 있었던 옥타비안(octavian)과 안토니의 형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사이에 있었던 페루시네(Perusine)전쟁을 언급한 것이다. 이는 릭키오토(Ricciotto)가 전쟁. 1권(279)의 주에서 지적했다.]



 3. 헤롯이 로마에 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음



  헤롯은 그곳을 떠나 밤빌리아(Pamphylia)로 항해하였다.[㈜ 주전 40년 가을에.]   그러나 심한 풍랑을 만나 배의 짐을 다 내던지고서야 겨우 안전하게 로데스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그는 사피누스(Sappinus)와[㈜ 헬라어로는 \’Sappinos\’.다른 본문에는 \’appinas\’;\’전쟁사\’에는 \’Sapphinius\’.] 톨레미라는 두 친구를 만났다. 헤롯은 그 도시가 카시우스와의 전쟁으로 크게 파괴된 것을 보고,[㈜ 주전 42년에.] 자기도 돈이 없었지만 서둘러 도왔으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도시를 복구하였다.[㈜ 로데스(Rhodes)를 헤롯이 회복시킨 것에 대해 전쟁. 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는 배를 한척 지어 친구들과 함께 그곳을 떠나 이달리야로 항해하여 브룬 디시움에 내렸다. 헤롯은 거기서 로마로 가서 먼저 안토니를 만나 모든 것을 이야기하였다.[㈜ 주전 40년 12월로 추정된다. 이는 옥타비안(Octavian)과 안토니 (Antony)사이에 있던 브룬디시움의 계약(the Pact of Brundisium(10월)과 옥타비안의 누이 옥타비아(Octavia)와 안토니와의 결혼(11월) 이후에 곧 있었다.] 즉 유대에서 그가 겪었던 일과 그의형 파사엘이 어떻게 파르티아인에게 붙잡혀 죽었는지, 그리고힐카누스가 갇혀 있다는 것과 파르티 아인들이 5,000달란트와 유대 귀족 계층의[㈜ 즉 \’유대 종족의.\’ 그러나 이것은 \’그의 (헤롯의) 가족의\’를 의미할 것이다.] 여인 500명을 약속받고 안티고누스를 왕으로세웠다는 것, 자신이 그 여인들을 밤에 몰래 적의 손에서 빼내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피신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친척들이 사로잡힐 위기에 처해있으며 자기가 폭풍을 무릅쓰고 항해하여 유일한 소망이자 도움인 안토니에 게 속히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모른다고 말하였다.[㈜ 본문은 약간 확실치 않다. 라틴어로 \’그런 후 그는 그 사실을 몹시 슬퍼했다\’가 될 것이다.]



 4. 안토니와 옥타비우스가 헤롯을 돕기로 약속함



  안토니는 헤롯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으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불쌍한 생각이 들면서 모든 것이 운명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안토니는 한편으로는 안티파테르의 호의를 기억하고,[㈜ (326)을 보라.] 다른 한편으로는 헤롯이 이전에 분봉왕에 임명되었을 때에도 약속했듯이[㈜ (326)을 보라.] 만약 자기가 왕이 된다면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었기[㈜ 두번째 동기로서 전쟁. 은 헤롯의 용기(ajrethvn)에 대한 안토니의 칭송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에게 뇌물을 주지는 않았다. 이런 대체에 대해서 Laqueur, p.194는 \’전쟁사\’과 비교하여 \’고대사\’의 반-헤롯(anti-Herod) 정신에 대한 또 다른 예를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헤롯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안토니가 헤롯이 요청한 도움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동기는 반역을 잘하는인물이요 로마의 적인 안티고누스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다. [㈜ 적어도 안티고누스는 로마의 위험스런 적 파르티아(Parthia)와 함께 동맹을 맺었다. (384)을 보라.] 가이사에 관해서 말한다면[㈜ 옥타비안(Octavian), 후에는 아구스도( Augustus).] 안티파테르가 자기 아버지를[㈜ 옥타비안의 양부, 율리우스 가이사(Jullus Caesar) . 이 원정에 대해서는(127-136)을보라.] 도와 주려고 애굽에 군사를 끌고 왔고, 항상 그에게 호의와 선의로인하여 헤롯을 위하는데 매우 열정이었던 안토니의 입장에서 헤롯의 지위를 높여주었고, 원하는 모든 것들을 협력하였다.[㈜ 전쟁.은 옥타비안이 안토니에게 호의를 베풀려는 열망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대신 옥타비안은 헤롯의 \’오락적인 성격\’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Laqueur, pp. 194-195는 (383)에 나오는 eJtoimovtero\”을 잘못 해석하고있는데(Post 교수의 주처럼) 여기서 그는 \’고대사\’가 왜 옥타비안이 헤롯을 위해 안토니보다 더 열정적으로까지 자신을 보여 주었는지를 분명히 설명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메살라(Messala)와[㈜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M. Valerius Messalla Corvinus). 참). 전쟁 1권. (243)에 있는 Dr. Thackeray의 주.] 아트라티누스(Atratinus)는[㈜ 라틴어와 \’전쟁사\’사본에서 추정된 것으로 \’아그리티누스\'(Agratinus) 또는 \’사트라피누스\'(Satrapinus)이다. 라이나흐에 의하면, 그는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L. Sempronlus Atratlnus)를 의미한다.] 그 뜻을 따라 원로원을 소집하고 헤롯을 소개하면서 헤롯의 아버지의 공적을 한참 이야기하였다. 또한 헤롯이 로마에 보여준 충성심을 되새기면서 동시에 그들은 안티고누스를 비딘하고, 그가 자기들을대적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 아리스토불루스 Ⅱ세(Aristobulus Ⅱ)를 도움. (125) 이하를 보라] 로마를 무시하고 파르티아인의 도움을입어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그는 로마의 적이라고 선언하였다. 원로원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크게 흥분할 때 안토니는 앞에 나 와 헤롯이 왕이 되는 것은 파르티아와의 전쟁에 있어 큰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제안은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것이어서 그들은 찬성표를 던졌다.[㈜ 안토니와 옥타비안이 왕으로 헤롯의 이름을 부른 것은 Strabo, xvi.    765, Appian,\’Bell. Civ\’. v. 75와 Tacitus,\’Hist\’, v.9들도 언급하고 있다.]



5. 로마의 통치자들이 헤롯을 높임



  이것은 안토니가 헤롯을 얼마나 아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14 : 5(386, 387)은 전쟁. 에 병행구가 없다. 주 623을 보라.] 헤롯은 생각지도 않았던 왕위를 얻게 되었다. 그는 왕위를 구하기 위해 로마에 온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로마인들이 왕위를 자기에게 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왜냐하면 왕족에게 왕위를 계승토록 하는 것이 로마인들의 관습이었기 때문에, 왕위는 그가 아니라 그의 처남,[㈜ 소사본들은 \’알렉산더\’를 첨가한다. 이는 추측천대 서기관들의 실수인 것 같다. 아리스토불루스 Ⅲ세(Aristobulus Ⅲ)를 의미한다.] 즉 아버지쪽으로는 아리스토불루스의 손자요, 어머니쪽으로는 힐카누스의 손자인[㈜ 그의 아버지는 아리스토불루스 Ⅱ세의 아들 알렉산더, 어머니는 힐카누스 Ⅱ세의 딸 알렉산드라였다.] 그의 처남이 마땅히 차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안토니는 헤롯이 겨우 7일만에 이 뜻밖의 왕위를 받아 이달리야를 떠날 수 있도록 하였다.[㈜ Otto는 \’Heodes\’, p.28에서 헤롯이 그렇게 짧은 기간 이달리야(Italy)에 있었다는 것에 근거하여 자신이 아니라 아리스토불루스의 왕좌를 요구하는 헤롯의 원 의도에 대해 회의를 표한다. 그는 본 절에서 강한 야심으로 가득찬 헤롯의 시도를 본다. 반면 Laqueur는 그의 책 pp.195-159에서 고대에 반헤롯적인 변조와 첨가에 관한 그의 이론에 흥미를 나타내며 본문에서 헤롯이 분명치 않음을 강조하기 위해 고대에 나오는 부수적인 변화들에 관한 다소 인위적인 설명에 호소한다. 즉 요세푸스는 왕정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로마정(-政)이 자신을 왕으로 임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으며 아리스토불루스를 사용하여 그를 비판하고 있다고 한다. Laqueur는 (386-388)과 (403-405), (489)를 요세푸스 자료에 대한 반헤롯적인 것으로 수정된 것으로서 결합시킨다. 본문은 헤롯의 언행록에 근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헤롯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 이 젊은이, 즉 그의 처남에 대해서는 적당한 때에 다루게 될 것이다.[㈜ 고대. 15권. 3 : 3(53)이하.] 원로원이 파하게 되자 안토니와 가이사는 헤롯을 데리고 나섰다. 집정관들과 행정관들이 길을 앞장서서 쥬피터 신전에서 제사지내고 법령을 새겨놓게 하였다. 그리고 안토   니는 헤롯의 즉위 첫날을 축하하는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헤롯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Gnaeus Domitius Calvinus)와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Gaius Asinius Pollio)가 집정관으로 있을 제184회 올림피아드 기간에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 이것은 약간 부정확하다. 이는 184번께 올림피아드(Olympiad)가 여러 달 전에 끝났었다 (주전 40년 7월).]



 6. 헤롯의 동생 요셉이 성공적으로 마사다를 지킴



  그 동안 내내 안티고누스는 마사다 요새를 포위공격했는데,[㈜ 390-438)과 전쟁. 1권. (286-320) 사이에 있는 병행구에 관해 laqueur, pp. 199-205를 보라. 이는 \’고대사\’에서 요세푸스가 헤롯에게 한 것만큼  안티고누스에게 적의가 있다는 것에 의한 것이다.] 요새사람들은 다른 생필품은 갖추고 있었으나 물이 부족해 고전했다.[㈜ (362).] 이때문에 헤롯의 동생 요셉은 200명의 무리들과 아랍으로 달아날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말쿠스가 헤롯에게 한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370-375)를 보라.] 그러나 간밤에 신이 내려준 비로 우물의 물이 가득차고 넘치게 되자 더이상 도망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은 용기백배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단지 전에 부족했던 것을 풍성히 가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일이 신의 섭리의 손길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의 섭리(Providence)에 대한 이런 반응은 전쟁.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은 안티고누스(Antigonus)의 군대를 때로는정면대결하고 때로는 기습 공격하여 많은 수를 살상하였다.[㈜ 전쟁. 에는 헤롯측들이 때때로 실패를 하여 강재로 퇴각해야 했다고 첨가 한다.] 한편 파르티아군을 쫓아내기 위해 수리아에서 온 로마장군 벤티 디우스(Ventidius)는[㈜ 벤티디우스 밧수스(p. Ventidius Bassus)는 주전 40년에 안토니가 아시아에 보낸 사람이다.] 파르티아군을 몰아낸 후에[㈜ 주전 39년에 벤티디우스는 라비에누스(Labienus)와 파르티아인들의 연합군을 대패시켰다. 참). 고대 자료에 대해서는Debevoise, pp.114-116.] 유대로진격하면서 겉으로는 요셉을 돕는다고 하였으나 사실 그의 의도는 안티고누스로부터 돈을 뜯어내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는예루살렘 가까이에 진을 치고 그가 원하는 만큼 안티고누스에게서 돈을 뜯어내었다. 그리고는 부대의 주력을 거느리고 철수하고는 자기의 소행이[㈜ 다른 본문에 는 \’그의 염치없는 행위.\’] 드러나지 않도록 병력의 일부를 실로에게[㈜ 그의 이름은 디오 카시우스(Dio Cassius)의 xlviii. 41에는 푸페디우스(Pupedius, 다른 본문에는 Pompedius, Poppedius) 실로(Silo)로 되어 있다] 맡겨 뒤에 남게하였다. 안터고누스는 한편으로는 실로 (Silo)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그의 비위를 맞추면서, 한편으로는 파르티아군이 한번 더 자신을 도와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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