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권 제 7장 헤롯이 소에무스와 마리암메를 죽인 것과, 조금 후에또 알렉산드라와 코스토바루스를 죽인 것, 그리고 자기의 가장 절친한 친구들과 결국에는 바바스의 아들들까지 죽인 것에 대하여

 


제 7 장



헤롯이 소에무스와 마리암메를 죽인 것과, 조금 후에또 알렉산드라와 코스토바루스를 죽인 것, 그리고 자기의 가장 절친한 친구들과 결국에는 바바스의 아들들까지 죽인 것에 대하여



 1. 마리암메가 자기에 대한 헤롯의 사랑을 의심하다[㈜ 마리암메에 대한 헤롯의 질투와 살로메의 남편 코스



  그러나 헤롯이 유대왕국에 돌아와 보니 그의 집안은 혼란스러웠고 부인 마리암메와 장모 알렉산드라가 아주 불쾌해 있었다. 그들은(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헤롯이 자기들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요새에[㈜ 마사다(Masada)의. 6 : 5(194)를 보라.] 가 있게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일이든 남의 일이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감옥에 수감한것이라고 생각하여 몹시 불쾌해 하였다. 마리암메는 왕이(자신의 유익을 위해) 진실로 사랑하는 척 가장하고 자기를 위선적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여 헤롯의 사랑을 거짓으로 여겼다. 마리암메는 헤롯이 변을 당하게 된다면 자신이 살아날 가망이 없을v것이므로 슬퍼했다. 그녀는 헤롯이 전에 요셉에게 했던 명령을 회상했다.[㈜ 3 : 56(65)를 보라.] 그래서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들 특히 소에무스(So\’mus)를 기쁘게 하려고 애를 썼다. 모든 것이 그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소에무스가 헤롯에게 충성하여서 헤롯이 그에게 한 명령을 하나도 어기지 않았다. 그러나 두 여인이 친절한 말과 많은 선물로 그의 환심을 사자, 소에무스는 점차 그 여자들에게 넘어가 마침내 왕의 지시를 모두 누설했다. 소에무스는 헤롯이 전처럼 권세를 가지고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비밀을 누설한 주된 이유였다. 그는 헤롯에게서 오는 위험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고, 정국이 안정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이 여인들에게 환심을 사두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여자들이나 친척들이 나라를 다스릴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소에무스는 더 깊은 생각도 하였다.[㈜ eiphvlpixe는 투키디데스의 어휘이다(thuc., viii. 1. 1). 이는 고대. 13권. 12 : 2(329)에도 있다.] 만일 헤롯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이 잘 되어 돌아온다 해도 왕이 왕비를 아주 사랑하여 왕비를 배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탈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것이 소에무스가 자기가 받은 지시를 털어 놓게 된 동기이다. 그래서 마리암메는 헤롯에게 당하는 위험이[㈜ eiv mhdevn uevra\” … kinduvnwn e[stai는 또 다른 투키디데스의 어휘이다(Thuc., vii. 42. 2)] 끝이 없음을 알고 마음이 심히 불편하였다. 그리고매우 불쾌하여 헤롯이 [가이사에게]호의를 얻지 못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헤롯과는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후에는 그녀의 증오심을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2. 헤롯이 마리암메의 혐의를 눈치채다



  헤롯이 뜻밖의 대성공을 거두고 기쁨으로 항해하여[㈜ 이것은 로데서(Rhodes)에 있는 옥타비안을 헤롯이 방문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집에 돌와왔다. 그는 당연하듯이 맨 먼저 이 기쁜 소식을 가지고 자기부인에게 갔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두 사람이 아주 친밀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앞에 그녀를 세우고 껴안았다. 그러나 헤롯이 그가 가졌던 좋은 시간에[㈜ 또는 \’성공\’.] 대해 그녀에게 말하자,그녀는 기뻐하기는 커녕 도리어 슬퍼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원한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헤롯을)경멸하는 마음과 명문가 출신이라는 우월감[㈜ 다른 본문에는 \”좋은 평판\”(즉 그녀 자신의).] 때문에 헤롯이 포옹한 상태에서 그녀는 그의 성공을 기뻐하기보다 차라리 슬퍼한다고 신음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헤롯은 그가 의심해오던 것이 불만스러운 행동으로 분명하게 표현되었다는 것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헤롯은 자기 부인이 이유없이 공개적으로 자기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것을 보고 매우 당황했다. 헤롯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이 아파 참을 수가 없었다. 또 어떤 일이든 정신을 오래 집중할 수 없었다. 때로는 그녀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녀와 화해하려 하기도 했지만 항상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그는 불안정하였고, 사랑과 미움이[㈜ 다른 본문에는 \”불운\”(misfortune).] 뒤엉켜 있어 자신에게 무례한 그녀를 처벌하고 싶은 충동이 자주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너무 깊이 사랑하였기에 단념할 수가 없었다.한마디로 그는 그녀를 처벌하고 싶었으나 그녀를 죽이면 그보다더 큰 벌이 동시에 자기에게 가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두려워했다.[㈜ 본문과 의미는 확실치 않다.]



  3. 헤롯의 여동생과 어머니가 마리암메에 대한 헤롯의 의심을 더하게 하다. 헤롯이 애굽에서 옥타비안을 만나다



  헤롯의 여동생과 어머니는 헤롯이 마리암메 때문에 화가 나있다는 것을 알고 마리암메에 대한 원한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헤롯에게 마리암메를 중상모략하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아 헤롯이 미움과 질투로 흥분하여 당장에라도 진노하도록 그를 충동하였다. 헤롯이 그들의이야기를 달갑게 듣기는 했어도 액면 그대로 믿어 아내에게 어떤 조치를 할 용기는 없었다. 그러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마리암메가 헤롯에게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감정을 나타내자,양쪽에서 헤롯의 감정을 자극하여 마리암메에 대한 감정이 점점 악화되어 갔다. 그리하여 헤롯의 그녀에 대한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어갔다. 헤롯이 이 문제를 완전히 처리하려 할 바로 그때,가이사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애굽을 정복하였고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주전 30년 안토니는 7월 말에, 클레오파트라는 8월 말에 죽었다.]는 둘다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헤롯은 집안문제를 미뤄놓고 급히 가이사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본문에서 헤롯이 애굽의 로데스(Rhodes)에서<고대. 15권. 6 : 16(187)> 옥타비안을 본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혼돈이 있는 것 같다. 어떤 학자들이 생각한 것처럼<고대. 15권. 7 : 3(217)의 주>요세푸스는 헤롯의 \’옛 친구\’로서 옥타비안을 애굽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 말은 전부터 그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헤롯이 떠나려 하자, 마리암메는 헤롯에게 소에무스가 자기를 잘 돌보아 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니 그에게 한 지역의 책임자 자리를[㈜ meridarciva는 예를 들어 사마리아 같은 왕국의 일부이다. 고대. 12권. 7 : 10(261)을 보라.]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를 추천하였다. 그리하여 소에무스는 그 직분을 받았다. 헤롯이 애굽[㈜ 고대. 15권. 7 : 3(217)은 전쟁. 1권. 20 : 3(396, 397)에 병행구가 있다.]에 도착하자, 이미 친분이 두터웠으므로 가이사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고 많은 호의를 베풀었으며 문제들을 훨씬 자유롭게 토론했다. 가이사는 헤롯에게 클레오파트라의 경호대였던 골사람(Gauls) 400명을 선물로 주고, 클레오파트라가 차지했던[㈜ 여리고를 포함함. 고대. 15권. 4 : 1, 2(95, 96)과 전쟁. 1권. 18 : 5(361)이하를 보라. 로마에 의해 유대 지역이 반환된 것에 대한 요세푸스 설명의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하는지에 대해서는 Otto의 p.49와 Momigliano의 \’Ricerche\’ pp.349-350을 보라.] 유대 영토를 다시 돌려 주었다. 또한  가이사는 가다라(Gadara), 힙푸스(Hippus),[㈜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와 그의 후계자 치하에서 유대인들이 간단히 장악한 도시인데 트랜스 요르단에 있다. 그때는 그들이 주전 63년 폼페이에게서 그들의 자치권을 되찾기 이전이다. 고대. 14권. 4 : 4(75)를 보라.] 사마리아(Samaria), 그 외에도  해변도시들인 가사(Gaza), 안테돈(anthedon),욥바(Joppa) 그리고 스트라톤의 망대(Straton\’sTower)를[㈜ 나중의 가이사랴(Caesarea), 참). 고대. 15권. 9 : 6(331) 이하를 보라.] 유대왕국에 덧붙여 주었다.



4. 마리암메에 대한 헤롯의 불신이 가중되다



  이러한 영토를 새롭게 얻게 되자 헤롯은 더 의기양양했다. 그리고 그는 안디옥까지 가이사를 안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외교적인 성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헤롯이 믿는 것만큼 국내적인 문제 특히 그의 가정 문제도 더 악화되어 있었는데, 그것은주로 아내 때문이었다. 전에는 헤롯의 가정이 매우 행복했었다. 왜냐하면 마리암메에 대한 헤롯의 사랑이 역사상 부인을 끔찍이 사랑했다고 칭찬받는 사람들 못지 않았고,[㈜ 본문이 불확실함.] 이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리암메는 한편으로는 정숙한 여인이었고 헤롯에게 충성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성격이 좀 거칠었고, 남편이 그녀에게 노예가 될 정도로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남편에게 오만하게 굴었다. 또 그녀는 군주 밑에서 사는 것이 자기에게 적합하지 않고,[㈜ 의미가 전체적으로 불분명함.] 다른 자유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그녀는 헤롯에게 무례하게 행동했지만, 헤롯은 항상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받아 넘기며 참았다.[㈜ 이 번역이 약간 자유스러운 번역이지만 일반적인 의미를 준다.] 그러나 그녀는 헤롯의 이온순하고 착한 성품에 오히려 싫증이 났다. 마리암메는 헤롯의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천민 출신이라고 공개적으로 조롱하였다.그리고 그들에게 말도 고분고분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여인들 사이에는 불화와 용서할 수 없는 증오가 가로 놓여 있었다.그런데 이제 서로 비난하는 것이 전보다 더 거세졌으며 그 빈도가 더 잦아졋는데, 헤롯이 가이사에게서 돌아온 후에도 만 1년을끌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이 불행한 폭풍우가[㈜ \’폭풍우\’라는 번역은 자유스러운 느낌을 주는 번역이다.] 갑자기 다음에 설명하는 사건으로 인해 터지고 말았다. 어느날정오쯤 헤롯 왕이 쉬고 싶어 침대에 누워서 그가 항상 그녀를 사랑했던 것과 같은 강한 애정으로 마리암메를 불렀다. 그래서 마리암메가 왔지만 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헤롯 곁에 눕지 않았다 그대신 오히려 그녀는 그를 경멸하면서 헤롯이 자기 아버지와[㈜ 한 사본과 발췌본은 \”조부.\” 이것은 요세푸스 원본의 실수를 본문에서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언급은 마리암메의 할아버지 힐카누스<고대. 15권. 6 : 2(173)을 보라>에 관한 것이지 그녀의 아버지 알렉산더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는 헤롯이 관여치 않는 상태에서 폼페이의 명으로 수리아의 총독에 의해 처형당했었다<고대. 14권. 7 : 4(125)>.] 남동생을[㈜ 이 사람은 젊은 대제사장 아리스토불루스이다. 지금 사건보다 약 5년 전인 주전 35년 가을에(배반에 의해) 헤롯의 명으로 익사되었다.] 죽게 만들었다고 비난까지 퍼부었다. 헤롯은 이를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빨리 그녀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왕의 여동생 살로메가 헤롯이 전보다 더 흥분해 있는 것을, 알고 오래 전부터 예비해 둔 청지기(butler)을 왕에게 보냈다. 살로메는 그 사람에게 지시하여 왕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왕비님이 폐하를 위해 사랑의 묘약을 준비하는 데 저더러 도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왕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사랑의 묘약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저는 잘 모릅니다.\”[㈜ 본문이 약간 불완전함.]라고 대답하라고 살로메가 일렀다. 왜냐하면 헤롯이 그것을 요구할 때 마리암메가 그 약을 따라주기(had poured)[㈜ 본문의 동사는 사본들에서는 \’가졌었던\'(had had)으로 추정된다.] 때문이다. 그리고 왕이 그 묘약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거든 그 일을 더 이상 말하지 말도록 했다. 그렇게만 하면 그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기회가 오자 살로메는 지시하여 두었던 청지기를 왕에게 보내 그 말을 하게 했다.그는 자기가 말하는 것을 믿게 하려고 침착한 태도로[㈜ 혹은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어갔으나 조금 서두르고 말았다. 그래서 \”마리암메 왕비님이 저에게선물을 주시고 폐하께 사랑의 묘약을 갖다 드리도록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에 왕이 크게 화를 내며 사랑의 묘약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왕비님이 저에게 주신 이 사랑의 묘약의 약효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알려드리며, 저나 폐하께서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헤롯는 이 말을 듣자, 전보다 더 기분이 나빠져서 분노가 치솟았다. 그래서 헤롯은 이 사랑의 묘약에 대해 이실직고 하도록 마리암메의 가장 충성스런 내시를[㈜ 발췌본에는 \’집사\’] 고문하라고 명령했다. 헤롯은 마리암메가 그 내시 없이는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되는 일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시는 극심한 고통속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고문을 당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한 마리암메가 헤롯을 미워하는 것은 소에무스가 그녀에게 한 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내시가 이 말을 하자, 헤롯이 고함치며 말했다.\”소에무스는 지금까지 나와 국가에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였다.마리암메와 보통 이상의 관계가 아니라면 내가 지시했던 것을 발설하여 비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헤롯은 당장에 소에무스를 체포하여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헤롯은 자기부인을 재판에 회부했다.[㈜ 혹은 \’송환했다\’.] 자기 충복들을[㈜ 라이나흐(Reinach)는 다메섹(Damascus)의니콜라스(Nicolas)가 이 세 고문(counsellor)들 중에 한명이라는 데스티논(Destinon)의 생각을 확증한다.] 불러 모으고 단지 사기로 꾸며진 사랑의 묘약 사건을 그녀에게 뒤집어 씌워[㈜ \’비방하여 주장된\’의 뜻인 것 같다.] 장황하게 고발하였다. 헤롯이 이성을 잃고 말을 하며 너무 화를 내서 (차분하게) 재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헤롯의 마음이 어떤지를 간파한 재판관들은 마침내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그러나 막상 사형이 선고되자, 헤롯과 재판관 몇사람은 사형집행을 서두루지 말고 왕국에 속한 어떤 성에 수감하자고 했다. 그러나 살로메와 그녀의 지지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마리암메를 처형하려고 애썼다. 만일 마리암메를 살려두면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경고함으로써 왕으로 하여금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마리암메는 처형되게 되었다.[㈜ 주전 29년 후기. 이것은 헤롯이 옥타비안을 방문한 때로부터 1년동안 마리암메를 의심해 왔다는(221)의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존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 1권(442)에 따르면 마리암메는 주전 34년에 헤롯이 안토니를 만나 후 곧 처형되었다.]



 5. 알렉산드라는 마리암메를 배신하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다



  사태의 추이를 유심히 지켜 본 알렉산드라는 헤롯이 딸에게 했던 것처럼 자기를 취급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전처럼 도도하고 버릇없게 행동하지 않고 조용하게 행동하였다. 알렉산드라는 마리암메가 범했다고 하는 죄에 대해 자신은 전혀 아는  바가 없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벌떡 일어나 자기 딸을 모든 사람이 들을 수있게 비난하였다. \”저 애는 버릇없는 아이였어. 남편에게 감사할 줄도 모르고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더니 벌을 받은 거지. 저애는 우리 모두의 은인이신 폐하께 합당한 보답을 하지 않았어.\”라고 소리켰다. 알렉산드라는 몇번 이렇게 위선적인 행동을 하며 마리암메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까지 했다. 예상되는 바와 같이 이런 추태는 구경꾼들조차도 크게 비난을 하였다. 그러나 가장 크게 비난한 사람은 곧 처형당할 가련한 여인(마리암메)이었다. 처음에 마리암메는 어머니인 알렉산드라에게 아무말도 불평도 하지 않고 단지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자신을 추잡하게 비난하는 어머니의 잘못을 참다 못한 그녀는 힘을 다해 어머니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마리암메는 안색을 변화시키지 않고 마음의 동요도 없이 죽음으로써 생애의 최후 순간까지도 명문 귀족의 고상함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6. 마리암메의 성품



  이렇게 해서 마리암메는 죽었다. 비록 그녀는 이성적으로는 좀 부족하고 본성이 투쟁적이었으며 정숙함과 법은 마음에서는 그리 뛰어나지 못했지만, 그녀는 뛰어난 미모를 가졌고 타고난 위엄이 다른 동료들보다 월등하였다. 그녀가 헤롯과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불행하게 된 대부분의 원인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왕이 그녀를 사랑하여 너무 관대하게 하였고 그녀는 왕이 그녀에게 엄하게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였기 때문에 왕에게 함부로 말했었다. 그런데 그녀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헤롯이 그녀의 친척들[㈜ 그녀의 조부 힐카누스와 동생 아리스토불루스. (222)률 보라. 참). 전정. 1권. (437), 여기서는 아리스토불루스의 다른 이름 즉 요나단으로 나온다.] 에게 했던 일들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헤롯이 그들에게 고통스럽게 했던 것들을 과감히 말했던 것이다. 이에 헤롯 왕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매우 화가 나서 마리암메와 원수가 되었으며, 끝까지 최후 처벌을 면하게 해줄 수 있었던 헤롯까지 어쩔 수 없이 그녀와 원수가 되었다.



 7. 헤롯의 후회와 발병



  일단 마리암메가 처형되고 나자, 그녀를 향한 헤롯의 애정은 전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불타 올랐다. 헤롯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는가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 본문이 다소 수정됨. \’우리가 이미, 살펴 보았듯이 그가 가졌던 그런 감정으로\’.] 그녀에 대한 헤롯의 사랑은 차분한 일반적인 남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시작부터 열정적이었다. 오랫동안 같이 자유롭게 생활하면서도 사랑이 점점 더 강렬해지는 것을 헤롯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녀를 죽인 것에 대한 천벌이라도 내리는 듯이, 마리암메에 대한 헤롯의 사랑의 감정이 그를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 그리하여 헤롯은 아주 보기 흉한 태도로 늘상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그녀를 그리워하면서 탄식하였다. 그래서 헤롯은 그녀에 대한 생각을 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끌어 모아도 아무것도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헤롯은 국정을 돌보지 않고 격정에 사로잡혀 마치 마리암메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처럼 종들에게 마리암메를 불러오라고 명령했다. 헤롯이 이 지경이 되어 있을 때 전염병이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백성들과 헤롯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모든 사람들은 마리암메를 불의하게 처형한데 대한 하느님의 진노하심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이러한 상황은 왕에게 고통을 가중시켰다. 그래서 헤롯은 사냥을 가는 척하면서 광야로 나가 고통을 달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못되어 헤롯은 아주 위험한 병에 걸리고 말았다.염증이[㈜  異文에는 \’화농\’. Otto는p.55에서 헤롯이 전염성 종기로 고통받았다고 추측한다.] 생기고 뒤통수에는 통증이 있는데다 가끔 광기까지 있었다. 약도 전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이리하여 헤롯은 깊은 절망 속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헤롯을 치료하던 의사들도 모두 낙심하고 있었다. 이는 약이 전혀 병세를 호전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식이요법을 써서 병세를 호전시킬 한가닥 희망으로 무엇이든지 많이 먹이고 싶었지만 병 때문에 식사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제 그의목숨을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부분적인 병행구인 전쟁. 1권. 22 : 5(444)에서는 이 역병과 헤롯의 병을 마리암메의 죽음과 관련시켜 언급하지 않는다.  마리암메의 사형 집행에 관한 랍비 전설에 대해(Bab. Talmud,\’Baba Batra\’, 3b,\’eiddushin\’70b)Derenbourg의 책 pp.151~152를 보라.]  헤롯은 (후에) 세바스테(Sebaste)[㈜ 그 도시는 마리암메의 사형 집행 2년 후인 주전 27년경에 아구스도를 기념하여 다시 이름 붙여졌다(헬라어로는 Sebastos). 고대. 15권에 나오는 연대기에 관해 Schurer의 1 : 366, 주 8과 (259, 296)을보라.] 라고 부르는 사마리아에 있는 동안 이렇게 병을 앓고 있었다.



 8. 헤롯이 알렉산드라를 처형하다.



  그 때 알렉산드라는 예루살렘에 있었다. 헤롯이 병 중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의 두 요새를 차지하려고 애썼다. 하나는 예루살렘 시를 지키는 요새였고, 다른 하나는 성전을 지키는 요새였다. 두 요새를 장악하는 사람이 전국을 지배하였는데, 둘다 지배하지 못하면 제사를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낫다고생각하였으며 그 정도로 하느님께 정기적으로 경배드리는 것이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조차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알렉산드라는 만일 헤롯이 죽으면다른 사람들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자기와 헤롯의 아들에게 동시에 두 요새를 넘겨주는 것이 좋겠다고 두 요새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만약 헤롯이 회복되는 경우를 생각하더라도, 자신들은 헤롯의 가죽이므로 누구보다도 그 요새를 안전하게 보호할 적임자라고 하였다. 그들은 이 말을 전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헤롯에게 충성했던[㈜ 대부분의 사본들은 \’신실치 못한\’으로 나와 있다.] 자들로서 알렉산드라를 미워하기도 했고, 또 헤롯이 아직 살아있는 데도 회복되지 못하리라고 단념하는 것은 불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보다 더 요새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헤롯의 죽마고우로 그 중에 하나가 헤롯의 친사촌인 아키아 부스(Achiabus)였다.[㈜ 아키압(Achiab)은 나중에 헤롯이 자살하려는 것을 막았다. 고대. 17권. 7 : 1(184)를 보라.] 그래서 그들은 알렉산드라의 계획을 헤롯에게 알리기 위해 사자를 보냈다. 헤롯은 지체하지 않고 알렉산드라를 살해하라고 명령했다. [㈜ 주전 약 28년.] 헤롯은 크게 고통을 당하고 나서야 병이 나았는데, 아주 힘든 일이었다. 헤롯은 아직도 몸과 마음이 괴로웠다. 그는 매우 불안하여 누구든지 걸리기만 하면 쉽게 처형시켰다. 헤롯은 가장 친한 죽마고우인 코스토바루스(Costobarus),[㈜ 주 217을 보라.] 리시마쿠스(Lysimachus)라고도 부르는 안티파테르 가디아(Gadia),[㈜ 가디아(Gadia)라는 아람어 (Aramaic) 이름은 \’어린이\’나 \’행운\’을 뜻한다.] 그리고 도시데우스(Dositheiis)를[㈜ 힐카누스를 배반한 동일인일 것으로 추정됨, 고대. 15권. 6 : 2(168) 이하를 보라. 니이제(Niese)가 편집한 요세푸스의 \’인명 색인\'(Index nominum)에 보면 본문에 나오는 도시데우스(Dositheiis)는 에베소에 있는 유대인들의 군역을 면제해 달라고 로마 집정관 렌툴루스(Lenttulus)에게 호소한 알렉산드리아인으로 본다. 고대. 14권. 10 ; 18(36翼)을 보라.] 다음과 같은 이유로 처형하였다.



 9. 이두매의 통치자인 코스토바루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충성하였으나 헤롯은 이를 묵인하다.



  코스토바루스는[㈜ 이 에돔(이두매)인의 이름은 H. Wuthnow의 \’Die semitischen Menschennamen in griechischen Tnschriften u. Papyri d. vorderen Orion-ts\'(Leipgig, 1930)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는 클라우스너(Klausner, iv ; 9 주 2, 26)가 고대 비명(碑銘)에 근거하여 코스게베르(Qozgeber)라는 셈어투로 바꾼 것(그러나 그것은 다른 신 카오스, 즉 Qaw\’를 언급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코스토바로스(Kostobaros)라는 형태는 원래의 코스가바로스(Kosgabaros)의 착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S. A Cook이 \’The Religion of Ancient Palestine in the Light of Archaeology\'(London, 1930) pp.203-204에서 주장한 것이다.] 이두매(Idumena) 태생이었다. 그는 이두매인들이 신으로 여기던 코제(The Koze)의[㈜ 신의 궁수인 북 아랍의 신 코자(Qozah)일 것이다. 이는 헬라 로마 시대의 아폴로를 연상시킨다. 아피.2권.9(112, 117)을 보라.] 제사장의 후손이었으며, 헤롯의 친구들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힐카누스가[㈜ 요한 힐카누스 I세(John Hyrcanus I ). 고대. 13권. 9 : 1(257, 258)을 보라.] 이두매의 생활습관을 바꾸고 이두매인들에게 유대관습과 율법을 받아들이게 했었다. 헤롯이 왕권을 잡은 뒤, 코스토바루스를 이두매와 가사의 총리로 임명하고 자기 동생 살로메를 그의 부인이 되게 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참). 전쟁 22 : 5(443). 코스토바루스와 살로메의 결혼은 주전 34년경 일 것이다.]살로메의 전 남편 요셉을 죽이고, 그가 다스리던 곳을 코스토바루스에게 준 것이다. 코스토바루스는 기대이상으로 높게 승진하  자 매우 기뻐서 의기양양했다. 조금 지난 후에는 그는 자기 분수를 모르고 헤롯이 그의 지배자로서 그에게 하는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거나 이두매인들이 유대인들의 풍습을 따르거나 거기에 복종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사신을 보내, 이두매인들은 항상 그의 선조들에게 지배되어 왔으므로 안토니에게 부탁하여 이두매를 자기가 다스릴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클레오파트라에게 충성하겠다고 했다. 코스토바루스가 이렇게 제안한 것은 클레오파트라 지배하에 있는 것이 더 좋아서가 아니라 헤롯의 세력이 약해질 때 이두매에 대한 정권과 그 이외의 지역까지도 획득하기 쉬울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는 항상 더러운 이익에 관심을 가졌으므로 많은 재산을 모았을 뿐 아니라 출생신분도 좋은 편이었으므로 숨기지 않고 더 높아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렇게 요청하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 mikro;n oude;n djpeinovei은 투키디데스 ii, 8 :1에 있는 ojlivgon te ejpenovoun ouvden을 기억나게 한다.] 한편,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에게 간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헤롯에게까지 들리게 되었다. 그러자 헤롯은 코스토바루스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헤롯의 여동생(코스토바루스의 부인 -역자주)과 어머니의 간청으로 그를 완전히 사죄하게 한 다음 용서해 주었다. 그렇지만 헤롯은 그후로도 이 사건 때문에 계속 그를 의심했다.[㈜ 이 본문의 뒤섞인 연대기에 관해 Schurer의 i . 366주 8을 보라.]



10. 살로메는 코스토바루스와 이혼하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살로메와 코스토바루스가 다투게 되자, 살로메는 이혼증서를[㈜ gravmmata (문서)라는 딘어는 칠십인역에 나오는 이혼서 (bivblion avpostasivou) 대신으로 고대. 4권. 8 : 23(253)에도 쓰인다. 이것은 히브리어 \’세페르케리를\'(sepher k\’ritut)을 번역한 것으로 영어 성경 흠정역에서는 \’이혼 증서\'(bill of divorcement)라고 번 역했다. 람비들은 겟(ge\’)으로 부른다.] 코스토바루스에게 보내고 파혼했다. 이것은 유대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유대 율법에 의하면, 남편이 그렇게 하는 것은 합법적으로 되었지만, 남편이 동의하지 않는 한 부인이 먼저 이혼을 선연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는 없게 되어 있었다.[㈜ 신 24 :1 에서는 남편이 이혼 증서를 써주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미쉬나 \’Gi\’\’in\’ 9 : 1-3에 보면 이혼 증서의 필수적인 형식은 \’보라, 너는 어떤 남자라도 결혼해도 좋다\’이지만 어떤 권위들이 타당하다고 인정한 예외가 있다. Moseh Maisels가 히브리어로 번역한 Louis Epstein의 \’The JewishMarriage Contract\'(뉴욕. 1954), p.128에는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된다\’고 한다 즉 그에게 문서(writ)를 써서 보냄으로써 선수를 쓰는 것이다. 막 10 : 12에 관한 본문의 태도에 대하여 Ral-ph Marcus의 \’Harvard Theological Review\’27권(1934) 220-221에 나오는 \’복음서를 번역한 토레이 역본에 관한 주\'(Notes on Torrey\’s Trans-lation of the Gospels)를 보라] 그러나 살로메는 자국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파혼을 선언하고서,[㈜ 랍비들은 \’이혼\'(repudium)을 통한 아내가 제정한 이교도 이혼의 타당성을 인정한다. Boaz Cohen의 \’미유대연구학회회보\'(Proceedings of theAmerican Acacemy for Jewish Research) 21(1952), 3-34에 나오는 \’유대와 로마법에 나타난 이혼에 관하여\'(Concerning Divorce in Jewish and Roman Law)를 보라.] 오빠 헤롯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빠를 좋아하기 때문에 남편을 버렸어요. 저는 그이가 안티파테르와 리시마쿠스, 그리고 도시데우스와 함께 반란을일으키려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증거는 바바(Baba)의[㈜ P사본에는 \’Sabba(s)\’. 니이제(Niese)가 후자를 선호한 것에 대해 클라우스너 (Klausner, iv : 26 주 50)가 반박한다. 참). Schurer의 i : 386 주 54.바바 벤 부타(Baba ben Buta)는 헤롯의 고문이며 나중에 그에게 손발을  잘린 사람으로 랍비 전승에 나온다(Derenbourg, pp.152-153을 보라).] 아들들을 그이가 보호해 주어서 12년 동안이나 목숨을 부지하고있는 것을 보면 확실합니다.\”[㈜ 코스토바루스는 주친 37년경 이두매의 통치자가 된 후 곧 바바의 아들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고 추정된다<고대. IS권. 7 : 9(254)를 보라>. 이 사건은 주전 25년경에 일어났다. 그러나 옷토(Otto)는 p.55에서 \’12년\’대신 \’10년\’ 이라고 한다. 그러면 알렉산드라가 처형된 곧바로 후인 주전 28(27)년이 된다.] 헤롯은 이런 예기치 않은 이야 기를 듣고 매우 놀랐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들이 서로 관계를갖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바(Baba)의 아들들에 관련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전에 바바의 아들들이 헤 롯의 정부를 적대했기 때문에 헤롯이 그들을 처형하려고 애를썼었다. 그러나 그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헤롯은 그들을 잊고 있었다. 헤롯이 바바의 아들들을 미워하 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안티고누스가 왕으로 유대를 다스리고있을 때,[㈜ 주전 40-37년.] 헤롯이 군대를 동원하여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였다. 포위된 예루살렘 백성들은 고통과 괴로움을 더이상 견디기 어려 워 했다. 그래서 백성들 대부분은 헤롯에게 희망을 갖고 헤롯이 입성하기를 원했다. 그 때 바바의 아들들은 높은 지위에 있었으 므로 백성들에게 영향력이 었었다. 그들은 안티고누스를 지지하 였으므로 항상 헤롯을 어려움에 빠뜨렀다. 그들은 대를 이어온 왕가와 정부를[㈜ 하스모네안 왕조.] 보호하자고 백성들을 설득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로우리라 생각하고 그렇게 정치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헤롯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때에 헤롯은 그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거나 채무 중에 있는 자들이[㈜ \’헤롯에게\’로 추정됨.]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성문을 통제하는 자리에 코스토바루스를 임명하였다. 코스토바루스는 모든 백성이바바의 아들들을 흠모하여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보호해 주면 나중에 정권이 바뀔 때 자기에게 아주 유리하리라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바바의 아들들을 빼내어 자기 농장에 숨겨주었다. 그 후에 그가 바바의 아들들을 때내었다는 의심을 받게 되자, 그는 헤롯에게 그 사실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맹세함으로써 왕으로부터 받고 있는 혐의에서[㈜ \’왕의 마음\’이란 말은 문맥에서 나왔다.] 벗어났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헤롯 왕이 그들을 찾는 자에게 현상금을주겠다고 공포했는데도 그 사실을 고백하지 않고 자기가 빠져나갈 궁리만을 했다. 그늘 처음에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었기 때문에 만일 그들이 발견된다면 자기도 벌을 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안전 때문에도 비밀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헤롯은 자기 여동생의 밀고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바바의 아들들이 숨어있다고 연락받은 곳에 사람들을 보내 그들과 범죄자로 고소된 사람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그리하여 힐카누스의친척[㈜ 코스토바루스와 관계된 사람들이 얼마나 하스모네안 가문과 연관이 있는지 알려 있지 않음. \’힐카누스의 가족\’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쉬러(Schurer,  i : 387 주 55)는 요세푸스가 남자들만을 생각했어야 한다고 한다. 고대. 17  권. 5 : 2(92)에 보면 안티고누스의 딸은 몇 년 후에 헤롯의 아들 안티파테르와 결혼했다.] 들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대 왕국은 완전히 헤롯의 권세하에 있게 되었다. 이제 헤롯이 유대의 율법을 범한다 해도 그것을 제어할 만한 실력자가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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