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권 제 3장 유대인들이 사비누스의 병사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예루살렘은 크게 파괴된 것에 대하여

 


 제 3 장



유대인들이 사비누스의 병사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예루살렘은 크게 파괴된 것에 대하여



 1. 사비누스의 행위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에 또다른 반란이 일어나다



 그러나 가이사가 이 문제들에 관해 결론을 내리기 전에, 아켈라오의 어머니인 말다케(Malthace)가 병에 걸려 죽자, 유대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전보가 수리아에 있던 바루스(Varus)로부터 날아들었다. 이러한 폭동을 예견한 바루스는 아켈라오를 데려다 준 직후 예루살렘으로 가서 폭동의 주동자들을 체포하려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잠잠하지 않을 것이 명백했기 때문에,바루스는 자신이 수리아에서 데리고 왔던 세 군단 중 하나를 예루살렘에 주둔시키고 난 후에야 안디옥(Antioch)으로 돌아갔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반란의 구실이 된 것은 사비누스(Sabinus)가[㈜ 전쟁. 2권. 2:2(16)]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이 장교는 성벽을 지키는 자들에게 그것을 자기에게 넘겨주도록 강요하였고,바루스가 남긴 군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노예들까지 모두 무장시켜서 왕실 보물들을 찾도록 하는 등 자기 탐욕을 채우기 위해 그들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오순절-유대인들은 유월절 이후7주째에 있는 축제를 그렇게 부르는데[㈜ 그런 의미로 쓴 것이 틀림이 없지만 parav의 의미가 그렇게는 잘 쓰이진 않는 표현이다.] 그 이름은 그 사이에 들어 있는 날의 수를 계수해서 붙여진 것이다-이 되자 군중들이떼지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다. 갈릴리(Galilee), 이두매(Idumaea), 여리고(Jericho)와 요단강 위쪽의 페라이아(Per-aea)로부터 수 없이 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숫자나열정에 있어서 다른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보다 확연히 구별되는것은 유대내의 거주민들이었다. 그들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하나는 성전 북쪽에, 다른 하나는 경기장[㈜ 이 곳에서와 고대. 17권. 9:4(225)에서만 언급된 내용.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헤롯이 세운 것 같다.]이 인접한 남쪽에, 그리고 세번째 그룹은 궁전 근처인 서쪽에 포진하여 로마인들을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었다.



2. 성전에서의 결투



 사비누스는, 그들의 수와 결의에 겁을 먹고 바루스에게 잇따라 사신을 보내 그의 신속한 원조를 부탁한다고 하며, 만일 지체되면 군단은 괴멸될 것이라고 재촉하였다. 그는 직접 요새의 가장 높은 곳-파르티아인들(the Parthians)에 의해 살해된, 헤롯의 형의 이름을 따 파사엘(Phasael)이라고 불리는[㈜ 참).전쟁.1권 13:10(271)이하, 파사엘의 탑에 관하여는 전쟁. 1권. 418, 5권. 166을 보라.] 망대의 가장 높은 곳에까지 기어 올라간 후 거기서 적을 공격하라고 로마군대에 신호를 보냈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 겁에 질려서 자기 부하들이 있는 곳에조차 내려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 겁장이 사비누스의 병사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성전 안으로 뛰어들어 유대인들과 힘든 전투를 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이 위쪽에서 공격치않고 가만히 있는 한 그들의 전쟁 경험으로 볼 때 그들을 대항하는 초보자들에 비해 이득을 얻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유대인들의 큰 무리가 회랑으로 올라가고 그들 머리 위로 화살을 퍼부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자, 로마인들은 위로부터 자기들을 공격하는 것을 방어하는 것도, 또한 땅에서 육박전을 벌이는 것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회랑의 소실과 보물창고의 약탈



 이 두 적들에 의해 괴로워진 로마 군인들은 그 화려하고 장엄함으로 인하여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예술품으로 칭송되던 회랑에 불을 질렀다. 그 바람에 그곳을 차지하고 있던 유대인들중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불길에 싸여 죽고 말았다. 그리고 또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적 사이로 뛰어내리게 되어 살해당했으며, 어떤 이들은 뒤쪽 절벽 너머로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또, 절망에 빠진 다른 사람들은 불에 타죽지 않으려고 자살을 하였다.반면 그 벽을 성공적으로 기어 내려와서 로마인들에게 달려들었던 이들이라 할지라도 당황한 상태였기 때문에 쉽게 희생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자기들의 적들이 대부분 살해되거나 흩어지자그 군인들은 하느님의 보물창고를 습격하여 그곳을 경계하던 자들을 죽이고 약 400달란트 정도를 약탈했다. 이것은 전체 중에서 군인들이 약탈하고 남은 것을 사비누스(Sabinus)가 모은 것이다.[㈜ 고대. 17권. 10:2(264)에 의하면 사비누스는 군인들이 약탈한 합계와는 별도로 400달란트를 숨겨두었다. 요세푸스는 타키투스 vii,85를 모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4. 사비누스가 묶고 있는 왕궁을 공격하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건물과 소중한 생명이 로마인들에 의해 전소되고 유린당하자 유대인들은 의분을 품고 전보다 훨씬 강하고 효율적으로 세력을 규합하여 로마인들에게 저항하였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왕궁을 둘러싼 후 만일 그들이 신속히 철수하지 않으면 한명도 남김없이 다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만일 사비누스가 그의 군대와 함께 퇴각할 준비를 했으면, 유대인들은 그에게도 안전을 보장했을 것이다. 이제 이 반란군들은 그들 편으로 투항한 왕실 군대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왕실 군대중 가장 숙련된 부대는 여전히 로마편을 고수했는데, 그들은 왕실 보병을 지휘하는 그라투스(Gratus)와 기병을 지휘하는 루푸스(Ru-련) 밑에 있는 3,000명의 세바스테인들 (Sebastenians)이었다.[㈜ 세바스테, 즉 사마리아 지역으로 파견된 부대. 이 부대는 요세푸스가 다른 곳에서도 가끔 언급하고 있다. 예 전쟁.2권. 4:2, 3(58,63),5:2 74), 12:5(236)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행 27:1에 언급된 세바스테군단(spsiraSebasthv)은 이 부대의 일부일 것이다. Sebasthv= Augusta이며 세바스테니아(Sebastenia)가 아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이 부대의 완전한 명칭은 세바스테의 아구스타부대(Chors Augusta Sebastenorum)일 것이다 (Schurer). ] 이 두 사람은 용감하고 총명하기[㈜ 문자 그대로 \’전세를 뒤집기 충분한\’.] 때문에 그 휘하에 군사가 하나도 없어도, 한 부대 정도와 비견되는 전투를 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요새를 습격하면서 포위망을 좁혀갔다. 한편,유대인들은 사비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동시에 크게 소리쳐 이곳을 떠나고, 훗날 그들이 국가적 독립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방해가 되지 말라고 했다. 사비누스는 아마 몰래 도망쳐 나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약속을 믿지 않고 유순한 그들의 자세는 자기를 유혹하려는 미끼라고 추측했다. 더군다나,그는 바루스가 구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포위된 채로 시간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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