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권 제 14장 벨릭스 후임으로 베스도, 베스도 후임으로 알비누스, 알비누스 후임으로 플로루스가 총독이 된 것과 플로루스 정권의 야만성 때문에 유대인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에 대하여

 


제 14 장



벨릭스 후임으로 베스도, 베스도 후임으로 알비누스, 알비누스 후임으로 플로루스가 총독이 된 것과 플로루스 정권의 야만성 때문에 유대인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에 대하여



1. 3명의 최후 총독



 벨릭스를 뒤이은 총독 베스도(Festus)[주후 60-62년]는 그지역의 골치 아픈 주요 현안들을 강압적으로 해결하기 시작했다.그는 수많은 산적들을 체포하여 적지 않는 자들을 사형에 처했다. 베스도를 계승한 알비누스(Albinus)[주후 62-64]의 행정부는[㈜ 포르키스의 베스도(Porcius Festur)는 순직(殉職)하였다.(고대. 20권. 9:1(200)). 그의 후계자인 알비누스(Albinus)에 대한 호평이 전쟁. 보다는 고대. 20권.에 나와 있다.] 또 하나의 강도 단체였다. 그가 저지르지 않은 극악한 행위는 하나도 없었다. 그는 공권력으로 사유 재산을 훔치고 약탈했을 뿐 아니라 전국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그의 선임 총독들이나 지역 위원회가 강도죄로 옥살이하는 자들을 감옥에서 풀어주는 대가로 그들의 친척들에게 보석금을 뜯어냈다. 그리하여 죄수로 감옥에 남게 된 사람들은 단지 보석금을 지불치 못한 사람들뿐이었다. 한편 예루살렘에 있는 모반파는 충동을 받고 대담해졌다. 그들 중 유력자들은 알비누스에게 뇌물을 주어 그들의 선동적인 행위들을 눈감아주겠다는 보장을 받았고, 백성들 중평화롭게 앉아있는 것이 불만인 자들은 모반파들과 손을 잡았다. 우두머리나 독재자 행세를 하는 불량배들은 각각 졸개들과 함께 떼를 지어 다니며 졸개들에게 선량한 시민들을 약탈하게했다. 강도를 당한 희생자들은 불평도 못하고 상해를 피한 자들은 그런 고통을 당할까 두려워서 처벌받아 마땅한 악당들에게 굽신대며 알랑거렸다. 간단히 말해서 악당들이 온통 들끓고 있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이무렵부터 임박한 몰락의 씨앗이 이 성읍에 뿌려졌다.



2. 플로루스의 행적 [주후 64-66년]



 이러한 것들이 알비누스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그의 후임자 게시우스 플로루스(Gessius Florus)는 한술 더 떠 알비누스를 구관이 명관(덕의 전형 paragon of virtue)으로 보이게 행동하였다. 알비누스의 범죄는 대부분 비밀리에 행해졌고 위장된 채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에 비하여 게시우스는 난폭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고, 범죄자의 교수형 집행인처럼 온갖 강도짓과 폭력을 자행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 하면 오히려 그는 가장 잔인하게 대했다. 세상에 그만큼 몰염치한 자도 없었다. 또 일찍이그 만큼 진리를 심하게 모욕한[㈜ 문자적으로는 \”불신\”이란 뜻이다 : \”진리를 탄압하는 데에 있어서 보다 성공적이었다\”(Traill)] 자도 없었고, 그 만큼 교묘하게 범죄 방법을 고안해낸 자도 없었다. 개인 재산을 착취하는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는 모든 성들을 벗겨 먹었고, 모든 주민들을 알거지로 만들었으며 강도들이 약탈물의 일부를 자신에게 뇌물로 바치기만 하면, 전 국토에 걸쳐 자유롭게 약탈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확실히 그의 탐욕 때문에 모든 성읍이 황폐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살던 정든 고향을 떠나 외국으로 피난을 가게 만들었다.[㈜ 고대.에 나오는 병행 구절의 설명이 여기에서 멈춘다.]



3. 수리아의 총독 갈루스에 대한 유대인들의 불평



 케스티우스 갈루스(Cestius Gallus)가 계속 수리아에 머무르며 그의 지역 담당자로서의 의무들을 수행하는 한 어느 누구도감히 대표자를 그에게 파견해 플로루스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지 못하였다. 그러나 갈루스가 무교절[주후 65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자, 3,000,000만명[㈜ 불가능한 숫자임.] 이상의 군중들이 그를 에워싸고,그 나라가 겪는 재앙을 보고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간청하였다.그리고 나라를 이 지경으로 황폐화시킨 원흉이 플로루스라고 큰소리로 비난하였다. 그러나 케스티우스 옆에 앉아 있던 플로루스는 백성들의 외침을 오히려 조롱하였다. 케스티우스는 군중들의 흥분을 가라앉힌 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앞으로는 플로루스가 좀더 자비로운 관용과 절제를 그들에게 보이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한 후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극악 무도한 범죄를 위장하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있던 플로루스는 케스티우스를 가이사랴까지 전송해 주면서 케스티우스가 아무 말이나 쉽게 믿어버리는 약점을 이용하여 속으로 유대인들과 전쟁을 치를 궁리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평화가 지속된다면, 유대인들이 가이사 앞에서 그를 고발하게 될 것을 예상하였고, 반면에 그가 그들의 반란을 촉발시킬 수만 있다면, 자기가 범한 이큰 범죄는 덜 심각한 반란 사건으로 관심을 돌리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그는 매일 그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4. 로마와의 전쟁을 촉발시킨 가이사랴의 봉기



 가이사랴의 헬라인들이 가이사의 법정 소송에서 승소함에 따라,[㈜ 전쟁.2권. 13:7(270).] 가이사로부터 그 성의 통치권을 얻어냈다. 그들은 그 판결문을 가지고 왔지만, 네로의 통치 12년, 아그립바의 통치 17년, 아르테미시우스(Artemisius) 달에 양측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주후 66년 약5월].[㈜ 네로의 결정은 이미 수년 전에 내려 졌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주후 62년에 사망했던 팔라스(고대.20권.8:9(182)가 이 일에 있어서 주요 임무를 감당했었기 때문이다(타키투스 연대기, xiv. 65). 그러나 이러한 결정으로 인하여 혼란은 가중되었으며, 마침내 전쟁으로까지 치닫게 되었던 것이다(고대.20권. 8:9(184)). 아르테미시우스(Artemisius)는 요세푸스가 전 전쟁 기간 동안 사용하였던 마게도냐력(歷)의 봄, 혹은 초여름에 끼인 달(月)을 의미한다.] 전쟁의 표면적 구실은 전쟁이 몰고온 엄청난 재앙과는 비교도 안되는 사소한 것이었다. 가이사랴에 사는 유대인들은 회당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회당 옆에그 성의 한 헬라인이 소유하고 있는 땅이 있었다. 이 땅은 그들이 매입하려고 무척 애를 썼던 땅이어서 그것의 실제 가격보다엄청나게 많은 웃돈까지 주고라도 사려고 하였다. 그러나 소유주는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비웃듯이 그 자리에 작업장을 세워 유대인들에게는 협착하고도 드나들기 거북한 길만을 남겨 놓았다. 그러자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건축자들을 공격하여 작업을 중단시키기 시작했다. 플로루스는 그들의 폭력을 중지하게 하였고, 세리 요한과 함께 명망있는 유대인들은 다른 방책이 없었으므로, 그 작업장 만드는 일의 중지를 보장해 주도록 플로루스는 그들에게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한 후, 돈이 들어오자 즉시 가이사랴에서 세바스테로 떠나면서 마치 그가 유대인들에게 그 문제를 싸워서 해결하도록 허가장을 판 것처럼, 그지역을 소요 자유 지역으로 방치해 두었다.



5. 가이사랴 사람들의 폭동에 대한 플로루스의 대응



 그 다음날은 안식일이었는데 유대인들이 회당에 모였을 때, 장난을 좋아하는 가이사랴인 한 사람이 회당 입구 옆에서 항아리를 엎어놓고 그 위에다 새들을 번제로 드리고 있는 것을 유대인들이 보았다.[㈜ 렐란트(Reland)가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이 행위는 유대인들이 문둥이들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들을 위해 율법에 따라 새들을 질그릇 안에서 잡도록 하였다(레위14:4이하). 모세와 그가 애굽으로부터 이끌어냈던 이스라엘 민족이 문둥이들이었다는 사실이 아피온 반박문에 끊임없이 기록되어 있다(예:아피온.1권.31(279).] 유대인들은 이 광경을 그들의 율법을 범하고 하느님을 모독한 것으로 간주하고 참을 수 없을 만큼 격노하였다. 회중 가운데 침착하고 평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당국에 호소할 것을 원하였지만, 당쟁을 일삼는 사람들과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견딜 수 없었다. 가이사랴 사람들도 모종의 행동을 준비하였는데, 그들은 구체적 계획 아래 유대인을 조롱하는 번제를 드리라고 그 사람을 보냈었던것이다. 그들은 곧 싸움을 시작하였다. 중재를 위해 파견된 기병대장 유쿤두스(Jucundus)가 와서 그 항아리를 제거하고 폭동을 진압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가이사랴 사람들의 폭력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율법의 사본을 움켜쥐고 나르바타(Narbata)까지 물러갔는데, 이곳은 가이사랴에서 60퍼얼롱 떨어진 유대인 지역이었다.[㈜ 나르바타(Narvata)의 분봉왕에 대하여서는 나중에 언급된다. 전쟁.2권. 18:10(509).] 요한을 수뇌로 하는 12명의 지도자들은 세바스테에 있는 플로루스를 방문하고 이러한 일들에 대해 심히 불평하면서 그에게 주었던 8달란트의 뇌물을 상기시키고 그의 도움을 간청하였다.[㈜ 전쟁.2권. 14:4(287).] 플로루스는 오히려 그들을 체포하고 가이사랴에서 율법의 사본(the copy of the Law)을 가져왔다는 혐의로 족쇄를 채웠다.



 6. 플로루스는 성전을 약탈하고, 예루살렘에서 소요를 일으켰다



 비록 시민들은 여전히 그들의 감정을 자제하고 있었지만 이소식은 예루살렘에 큰 분노를 유발시켰다. 그러나 전쟁의 발발을 유도했던 플로루스는 성전 창고에 사람들을 보내어 17달란트를 끌어내고, 제국에 대한 의무 이행을 그 구실로 둘러대었다.[㈜ 아마도 그들의 조세의 납부가 늦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2권.16:5(403)(라이나흐).]이 불법 행위에 진노한 사람들은 즉시 한 덩어리가 되어 성전으로 뛰어갔고, 찢어지는 목소리로 가이사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에게 플로루스의 학정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불만을 가진 자 중 몇몇은 가장 상스러운 말로 그 총독을 욕하였으며, 양동이를 들고 다니면서 가난한(?) 총독을 위해 동전을 구걸하고 다녔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은 그의 탐욕을 결코 제지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에게 공금횡령을 촉발시켰다. 따라서 이미 발발하고 있는 전쟁의 불을 끄기 위해 그가 가야 할 가이사랴에 가는 대신에 그가 돈을 받고 묵인해 주었던 무질서의원인을 근절하기 위해 그는 기병과 보병을 이끌고[㈜ 분명 그는 일개의 부대만을 거느리고 있었다.(전쟁.2권. 15:6 (332)).] 예루살렘으로 진군해 갔는데, 이는 로마군대의 지원을 받고, 위협과 무력시위에 의해 그 성을 빼앗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7. 예루살렘에서의 플로루스



 허를 찔러 그의 의도를 부끄럽게 하고픈 시민들은 환호하며 군대를 영접하러 나갔고, 플로루스에게 아첨하며 환대할 준비를하였다. 그러나 플로루스는 백부장 카피토(Capito)와 함께 50명의 기병을 선발대로 보내 유대인들에게 흩어질 것을 명하고 그들이 그토록 심하게 모욕을 주었던 그에게 정중한 체하는 이런모욕적인 거짓 인사치레를 그만두라고 했다. 그는 그들이 용기있고 솔직한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의 말대로) 플로루스 앞에서그를 조롱했어야 했고, 자유에 대한 사랑을 단지 말로써가 아니라 손에 무기를 들고 나타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전갈을 듣고또 무리를 향해 진군하는 카피토의 기병들을 보고 낙담한 군중들은 플로루스를 맞이하고 병사들에게 복종 의사를 나타낼 기회를 갖기도 전에 흩어졌다.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공포와절망 속에 그 밤을 보냈다.



8. [플로루스의 재판]



 플로루스는 왕궁에 거처를 정하고 다음날 그 건물 앞에 재판정을 설치케 하고 재판장 자리에 앉았다. 그때 주요 제사장들과 귀족들, 그리고 가장 저명한 시민들이 스스로 재판정 앞으로 나아왔다. 플로루스는 그들에게 자기를 모욕한 자를 넘겨주도록 명하고 그들이 그 범인들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들 자신이 그의복수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에 답하여 지도자들은 백성들이 평화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공손치 못하게 말한 자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간청하였다. 그들이 말하기를 그토록 많은 무리 중에서 부주의하고 어리석은 젊은이들이 있다는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사람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처벌이 두려워 그가 행한 사실을 부인할 것이기 때문에 범행자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플로루스가 그 나라의 평화를 원하고, 로마 사람들을 위해그 성의 보존을 바란다면, 몇명 불량배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기보다는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을 위해 몇 안되는 범죄자를 용서해야 한다고 말했다.



9. 플로루스는 예루살렘에 군대를 보내 약탈과 살육을 하게 했다



 이 말은 플로루스를 더욱 화나게 만들어 그는 병사들에게 소리쳐 \”상부 시장(upper market)\”이라고[㈜ 도시 고지대, 혹은 높은 지대의 광장. 즉, 다시 말하자면 그 도시의 남서부지역. 도시의 언덕들에 관하여는 전쟁. 5권 4:1(137)을 보라(1)도시 고지대(남서부) (2)도시 저지대, 혹은 아크라(Akra)(남동부) (3)세번째 지역으로서 요세푸스의 시대 때 사라져버렸던 곳(아마도 북동부). G.A.Smit의 저서, \’Jerusalem\’, ii:448을 각주와 함께 참조하라.] 불리는 광장을 약탈하게 하였고, 그들이 만나는 누구든지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전리품에 눈이 먼 군인들은 그들이 공격하도록 보내어진 지역뿐아니라 모든 집에 들어가 약탈하고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좁은협곡으로 달아나다 잡힌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온갖 종류의 물건을 다 약탈당하였다. 무죄한 많은 시민들이 체포되어 플로루스 앞에 끌려오자, 먼저 그들을 채찍으로 때린 후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날의 희생자의 총수는 여자와 아이들뿐 아니라 심지어 어린 아기들까지도 자비를 얻지 못하고 죽어, 약 3,600명에 이르렀다. 이 재앙은 로마 사람의 선례가 없는 잔인성에 의해악화되었다. 왜냐하면 플로루스는 일찍이 어느 누구도 자행하지않았던 일을 그날 행하려 하였다. 즉, 로마에 의해서 기사단 단원의 지위를 받았다 해도 출생시부터 유대인이라면 재판 전에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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