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권 제 5장 로마 군대와 진영에 대한 설명과 로마인들이 칭찬받아야 할 것에 대하여

 


제 5 장



로마 군대와 진영에 대한 설명과 로마인들이 칭찬받아야 할 것에 대하여



1. 로마 군대에 대한 여담



 특히 로마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일하는 데뿐 아니라 전쟁에 대비하여 노예들을 유용하게 부리는 점은 모두가 감탄할 뿐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전체적으로 로마의 군대 조직을 연구해 본다면,[㈜ 1세기 로마군에 대한 일급 권위서인 이러한 특기할 만한 장은 아마도 그것을 제시하고 있는 본문과 비교되어야만 한다. 3세기 초기의 로마군에 관해서는 폴리비우스(Polybius)의 보다 상세한 여담(v : 19-42)이 있다.] 그들의 광대한 제국이 행운의 선물이 아니라 용감함에 대한 보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로마는 무기들 들고 첫 수업을 쌓기 위해 전쟁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나라는 아니다. 또한그들은 평화시에는 팔짱끼고 앉아 있고 필요시에만 거동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반대로 그들은 손에 무기를 들고 태어났다고 생각하였고 훈련을 쉬는 적이 없었으나 비상사태가 터지길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화시에도 그들의 기동훈련은 실전보다 더 격렬하다. 각 병사들은 매일 훈련에 마치 실제에서 처럼 그들의 온힘을 쏟는다. 그래서 전쟁의 충격을 견디는 대단한 담력을 가질수 있었다. 아무리 혼란해도 그들의 평상시의 대형(隊形)을 흩뜨리지 않으며 혼란도 없고 지칠 줄도 모른다. 그들의 적들은 이런로마 군에 대항할 수 없었고, 승리는 변함없이 계속적으로 로마군에 뒤따랐다. 실로 그들의 훈련은 무혈의 전투와 같으며 그들의전투는 피나는 훈련과 같다고 묘사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로마군은 갑작스런 공격도 방어할 만큼 준비하였다. 그들이 어떤 적지(敵地)에 침입하더라도 그들의 진영을 요새화 하여야만 공격에들어갔다. 그리고 이 진영은 아무렇게나 세우지 않았다. 로마군은한꺼번에 모든 작업을 하지 않았으며 무질서하지도 않았다. 땅이 평평치 않았으면 처음에 고르게 했으며, 진영을 만들 부지는 정방형 형태로 조성되었다.[㈜ 폴리비우스 VI. 42, 진영을 조직함에 있어서 헬라군과 로마군의 관례를 비교.] 이 목적을 위해서 많은 노동자들과 축조에 필요한 도구들이 군대에 동원되었다.



 2. [로마군의 장비와 야전 사령부]



 진영의 내부는 장막(tent)들이 열을 지어 잘 구별된다. 외부의 둘레는 벽 모양을 띠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망대가 세워져있었다. 그리고 그 망대 속에는 속사포(速射砲), 돌던지는 투석기(投石機),[㈜ ojxubelei\’\”katapevltai는 일종의 석궁으로 된 권양기로 화살을 발사하는 기적장치 : liqobovla는 노포(弩砲)로, 고각(高角)으로 돌을 발사하는 장치이다.] 다양한 전투(artillery engine) 장비 등 필요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벽 주위에는 각 면에 하나씩 성문이 4개 있었고, 짐 실은 짐승들이 어려움 없이 들어가기에 충분하고, 비상시에 군대가 출격할 만큼 충분히 넓었다. 진영은 도로를 중심으로 하여 대칭적으로 나눠졌다. 중앙에는 장교들의 막사가 있었고, 한 가운데에 총 지휘관(the commander in thief)의[㈜ 집정관.] 본부가 마치 소신전(a small temple)처럼 위치해 있었다. 이것은 마치 즉석 도시(an improvised city)가 솟아오른 것처럼[㈜ 참). 폴리비우스 vi. 31.] 시장, 공인(工人)들의 막사, 우두머리와 연대장들(captains andcolonels)이[㈜ 아마도 백부장과 군단지휘관일 것이다(Reinach). 그러나 taxivarcoi(백부장)는 cilivarcoi(군단지휘관)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보인다(전쟁.2권. 87과 고대. 7권. 26).] 발생하는 분쟁을 판결하기 위한 재판석도 있었다. 외부 벽과 내부의 모든 성은 많은 기술자들로서 생각보다 빨리 완성되었다. 또한 필요시에 진영 둘레에 깊이와 넓이가 4 규빗이나 되는 호(濠)를 파기도 했다.



 3. 로마군 진영의 일상생활



 한번 참호를 파면 병사들은 그들 부대의 막사 안에서 동료들과 조용히 질서를 지키면서 지냈다. 그들은 진영내의 고된 임무도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훈련과 같은 비중을 두고 수행하였다. 필요시에 각 부대는 나무, 식량, 식수를 조달하는 등 할당된일을 하였다. 아침 저녁 식사시간은 개인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함께 식사하였다. 취침, 교대, 기상시간은 나팔소리로 알렸고,지휘관의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각 부대들은 각각 백부장(centurion)들에게 보고했으며, 백부장은 사령관에게[㈜ 참).폴리비우스 v.i.36.(새벽에 야간보초의 검열관은 군단지휘관에게 보고한다).] 인사하러 가서 그때 모든 장교(the officer)들과[㈜ taxivarcoi은 일반적으로 백부장과 호민관을 포함한 지휘관들이다(라이나흐), 혹은 아마도 \”사절,\” 즉 군단 사령관일 것이다.] 함께 총사령관을 기다렸는데, 거기서 관례에 따라 암호(the wat-chwood)와 하부 대열들에 전달될 명령들을 주었다. 이와 같은 정밀성이 전장(戰場)에서도 유지되었다. 군대는 진격하든지 퇴격하든지 필요한 방향으로 민첩하게 움직였고, 모든 행동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체(一體)로써 움직였다.



 4. 진영의 해체와 군대의 진격



 진영이 해체될 때 나팔이 처음 울린다.[㈜ 폴리비우스 v. 40에서는 행군 전에 부는 세 번의 집합 나팔에 대해 유사하게 기술하고 있다 : (1) 천막을 내리고 수하물을 모으는 나팔. (2) 짐승에 짐을 적재하는 나팔, (3) 행군 나팔] 그때는 아무도 늑장부리며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은 곧 이 신호를 듣고 장막을 철거하고 모든 출발 준비를 했다. 두번째 부는 나팔 소리는 진군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는데, 그들은 나귀나 그밖에 다른 짐승 위에 짐을 싣고 마치 출발선에 있는 경주자들처럼 출발을 위해 도열해 있다. 그때 그들은 진영에 불을 질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바로 그곳에 다른 진영을 쉽게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진영을 적이 사용하기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세번째 부는 나팔은 출발을 위한 신호인데 어떤 이유에서 지체되었건 늑장부리고 있는 사람들을 재촉하기 위해서이고, 아무도대열에서 그의 위치를 이탈하지 않고 확실히 보호되도록 하기위해서였다. 그때 전령관(the herald)이 장군의 오른편에 서서그들에게 전쟁에 대한 준비가 되었는지 그들의 모국어로 세 번물었다. 그러면 그들은 세 번 크게 \”준비완료\”라고 외쳤는데, 예상하고 있던 질문인 것처럼 대답했다. 그들은 전쟁에의 기대감으로 진군하면서 소리치고 흥분하여 그들의 오른손을 쳐들기도했다.



5. 보병의 무기와 장비



 그들은 그때 진군하는데 일사불란하게 행군하며 마치 적을 대하는 것처럼 각 병사들은 대열에서 자기 위치를 지켰다. 보병은 흉배를 붙이고 투구를 쓰고 양쪽에 칼을 지녔는데, 왼쪽 것은 장검이었고 오른쪽에 찬 칼을 한 뼘도[㈜ 약 9인치. 비문에는 단검이 왼쪽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어 좌우가 바뀌었다 : 단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은 폴리비우스는 칼을 오른쪽에 지녔던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vi. 23. 6).] 안되는 단검이었다. 선별한 정예보병들은 장군을 호위했는데, 창[㈜ 창(hasta).]과 원형 방패(roundShield)를[㈜ (왼손에 드는) 둥근 방패(parma).] 가졌고, 던지는 창(javelin)과[㈜ 던지는 창(pilum).] 긴 방패(lblongbuckler)[㈜ 커다란 네모꼴의 방패(scutum).]를 지녔으며, 보병대의 장비는 톱, 바구니, 곡괭이, 가죽끈은 물론 갈고리, 쇠사슬과 삼일분의 식량 등이었다. 따라서 보병 한 명의 짐은 노새 한 마리에 전부 실을 만한 무게였다. 기병들은 오른쪽에 긴 칼을 차고 손에 긴 창을 들었으며 말 옆구리에 비스듬하게 방패를 걸고 창(spear)만큼 길고 끝이 넓은 3개 이상의 창이 든 통(a quiver)을 옆에 차고 있었다. 보병들과 마찬가지로 기병들도 투구와 흉갑을 착용했다. 선발된 정예 기병들은 장군을 호위했는데, 일반 부대와 같이 무장을 하였으며 선봉부대는 항상 제비뽑았다.[㈜ 폴리비우스 vi. 40. 9에 따르면 행군 순서는 매일 교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6. 로마군의 전술에 관하여



 로마군이 행군할 때나 진영에 머물 때의 모습과 그들이 지닌 무기들은 이와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전투할 때 그들은 작전없이 되는 대로 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늘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하였다. 따라서 로마군은 실수가 드물었고, 그들이 실수했다 할지라도 실수를 쉽게 교정할 수 있었다. 더우기 그들은 작전을 세워 실패했을지라도 그것은 운이 좋아 승리한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승리하면 경솔하게 되기 쉽고 반면에 비록 가끔 실수가 따를지라도 신중한 작전은 전철을 밟지 않게 하는 유익한 교훈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또한우연히 얻어진 행운은 신용할 수 없는 반면, 많은 계획을 세웠어도 그 반대로 실패하는 경우에는 아무리 작은 실수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최소한 남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7. 훈련 방법



 로마군은 전쟁 훈련을 받음으로써 신체뿐 아니라 그들의 정신도 점점 담대해져 갔다. 역시 훈련 중에 공포도 한 몫을 담당했는데, 그것은 대열을 이탈하지 않고 단지 근무를 태만히 하는 경우에도 법대로 사형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의 장군들은 법보다 더 가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용맹스런 병사들에게는 포상을 했으며 범법자들에게는 심하게 처벌하였다. 이런완벽한 훈련은 평화시에는 장식품일지 모르지만 전시에는 전체가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끼쳤다. 그들의 대열은 매우 탄탄했으며 좌우 이동하는데 아주기민했으며, 모든 명령을 아주 빨리 수행했고, 신호와 손짓을 따라 행동했다. 계속해서 그들은 즉각적으로 행동했고 고통을 견디어냈다. 로마군에게 있어 계략이나 인원이나 지형의 어려움때문에 패배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으며 심지어 운이 나빠 패배했다는 것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운보다 더한 승리의 확신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행동을 개시하기 이전에 심사숙고했고, 지휘관들의 전쟁 계획에 걸맞게 효율적인 작전회의가 따랐다. 따라서 로마제국이 동쪽으로는 유브라데(Euphrates)강까지, 서쪽으로는 대양과 남쪽으로는 가장비옥한 지역인 리비아(Libya)까지, 북쪽으로는 이스테르(Ister)와 라인(Rhine)까지 그 경계를 확장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아니다. 그들의 영토는 광활했고 여전히 아직도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과언이 아닐 것이다.



 8. [로마군의 상황(형편)을 기록한 목적]



 내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길게 서술하는 것은 로마군을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정복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다른 사람들이 반란을 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주장하는 동기는 중요하다. 그밖의 다른 곳(1권. 서문. p.11)에서 언급한 것처럼, 베스파시안의 연금수령자(요세푸스, 한역자 주)에 의해 베스파시안의 이전 궁정에서 기록된 유대전쟁사는 아마도 로마의 후원자에 의해 고무된 선언문의 성질을 띠고 있으며, 장래의 적대행위가 동족들에게 무익하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하여 기록되었을 것이다. 파르티아인들과 바빌로니아 유대인들(전쟁.2권. 16:4 (388)이하)의 반란의 위험은 지속적인 위협이었다.] 또한 그러한 문제에 익숙하지 않은 교양있는 독자들이[㈜ tw\’n filokaloivntwn(선을 사랑하는 자들의) : 참). 폴리비우스 vi. 26.] 로마군의 조직에 대해아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 이야기가 지업적으로 흘렀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이 글은 카테고리: josephus, TN-catholicdictionary3-C2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