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권 제 6장 플라키두스가 요타파타를 점령하려고 시도했으나 패퇴하고 베스파시안이 갈릴리로 진군한 것에 대하여

 


제 6 장



플라키두스가 요타파타를 점령하려고 시도했으나 패퇴하고 베스파시안이 갈릴리로 진군한 것에 대하여



1. 플라키두스(Placidus)가 요타파타(Jotapata)의 공격에 실패함



 베스파시안은 톨레마이스에서 아들 티투스와 잠시 머무르면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한편 플라키투스는 갈릴리를 돌아다니면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약한 주민들은 생포하여 많은 수를 죽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플라키두스는 후에 반항하던 주민들이 항상 요세푸스가 요새화했던 도시로 숨어 버린다는 것을 알고 요타파타(Jotapata)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공격해 들어왔다. 그는급습하면 요타파타를 장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렇게 되면 그의 동료들과 함께 그의 명성도 높아지고 앞으로의 전투에 상당히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강력한 도시가 무너지면 나머지는 공포로 인해 항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크게 빗나갔다. 그가 올 것을미리 알고 요타파타의 주민들은 도시 밖에서 그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로마인들을 기습했던 것이다. 그들은 큰 군대로서 수가 많고 전쟁 준비가 잘되어 있었고, 그들의 고향과 처자식을 위협하는 위기에 처했다는 생각에 급급해서 재빨리 적들을 패배시켰고 많은 로마군을 부상당하게 했다. 그러나 7명 이상의 로마군을 죽이지 못했는데 그것은 로마군이 질서있게 퇴각했기 때문이고, 그 군대는 완벽하게 일체(一體)로써 방어되고 있었으므로 외부에 약간의 상처만 줄 수 있을 뿐이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가벼운 무장만을 하였는데 완전무장한 상대방을 맞아 싸워야 했고, 양편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 로마군에 접근하여 모험을 할수 없었다. 양쪽에 있는 유대인들 중 3명이 죽었고 부상자가 약간 있었다. 그래서 플라키두스는 자신이 요타파타를 공격하기 너무 약한 것을 알고 퇴각하였다.



2. 베스파시안의 갈릴리 침공과 행군에 관한 그의 명령



 그러나 베스파시안은 갈릴리를 공격하고 싶어했으며, 관례에 따라 로마군을 정돈시켜 행군 대열로 톨레마이스를 떠났다. 경무장한 원군들과 궁수들은 앞서갔는데 적의 기습을 격퇴하고 매복이 가능한 은밀한 숲들을 정탐하기 위한 것이다. 그 뒤에 중무장한 보병과 기병이 뒤를 따랐다. 그 뒤에는 100명마다 각각 뽑은 10명으로 된 분대(分隊)가 뒤따랐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배낭과 진영 표시를 하기 위한 필수 장비들을 가지고 다녔다. 그 다음에 따르는 사람들은 행군하는데 구불구불한 길을 닦아 평평하게 하고 거친 곳을 다지고 방해되는 나무들을 잘라서 병사들이 행군에 지치고 피곤하지 않도록 했다. 그 뒤에는 잘 적재된 베스파시안의 짐과 그의 부하들의 짐을 실은 병사들이 그 짐을 잘 호위하며 뒤따랐다. 베스파시안은 선별한 보병, 기병과 호위하는 창병(槍兵)과 같이 그 뒤를 따랐다. 그 다음에는 기병대가 군단별로 따라왔다. 각 군단은 120명의 말이 부속되어 있었다. 다음은 망대를 공격할 무기와 기계를 실은 노새들이 뒤따랐다.[㈜ 성을 파괴하는 무기를 운반하는데 사용함:전쟁. 3권. 7 : 21(230)에서 사용된 단어 ejlevpoli\”(도시 파괴하기)는 파성추 자체를 의미하는 것 같다.] 다음은 정예의 군단사령관(tribune)들과 보병대의 사령관과 대사들(legates)이 뒤따랐다. 다음은 독수리가 그려진 군기를 앞세우고 각 군단이 뒤따랐다. 독수리는 새 중의 왕이고 가장 용감하기 때문에 제국을 상징한다고 생각되었고, 적이 누구이건 간에 승리할 수 있다는 징후로 생각되었다. 나팔수들은 이 신성한 군기의 뒤를 따랐고, 그 뒤는 주력대가 뒤따랐는데 종대(縱隊)가 나란히 행군하여 왔다. 관습에 따라 백부장은 병사들의 대열을 감시하면서 뒤따랐다.[㈜ 라이나흐는 각 군단의 백부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보병 뒤에는 종들이 노새와 다른 짐승에 병사들의 짐을 싣고 각 군단을 따랐다. 종대(縱隊)의 맨 끝에는 용병들이 뒤따랐으며, 안전을 위해 맨 뒤에는 각각 무장한 보병[㈜ 명확히 나머지 보조 보병대임. 그들중 일부만이 전쟁. 3권. 6:2(116)에서 언급되었다. 폴리비우스 vi.40.6-8에서 \”보조 기병대의 우익(右翼)\”은 후미로 출동시켰다라고 유사하게 기록됨: 만일 후미에 적공격이 예상되면 선발기병대가 선봉으로부터 병력의 1/4이 이동된다.]과 상당한 기병들이 뒤따랐다.



 3. 요세푸스의 군대가 디베랴로 퇴각하면서 그를 버려둠



 베스파시안은 그의 군대를 진격하게 하여서 갈릴리 변방에 도달했다. 여기서 그는 싸우기를 바라는 병사들의 열정을 억제시키고 진영을 세웠다. 이것이 적군 병사들이 원한다면 싸우기 전에 자신들의 동료들을 버리고 투항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혹은 아마도 \”보다 나은 정신 구조를 회복하다\”일 것이다.] 동시에 그는 적군의 본거지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 상황에서 베스파시안의 출현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이 되었으며 반역을 후회하게 하였다. 세포리스에서 멀지 않은[㈜ 세포리스로부터 20퍼얼롱임(자서. 71(395). 가리스(Garis)를 한 촌락으로 부름).] 가리스(Garis)라고하는 마을 옆에 막사를 친 요세푸스 휘하의 군대는 전투가 일어나려 한다는 것과 어떤 순간에 로마군들이 그들을 공격하리라고생각하고, 싸우기도 전에, 적들의 모습이 아직 보이기도 전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했다. 요세푸스는 동료 몇과 함께 남았는데 그는 적을 기다리고 있을 만한 충분한 병력이 못된다는 것과 유대인들의 사기가 떨어져 있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적들이 신변보장만 해준다면 기꺼이 항복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미전쟁의 패배를 두려워하였고, 그 순간 전쟁의 위험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도망하기로 결심했다. 따라서 남은 그의 부하들과 같이 디베랴로 피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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