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예루살렘에서 폭동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을 속여 함정에 빠뜨렸는지, 또한 티투스가 자기 병사들에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성급함을 나무란 것에 대하여
1. 예루살렘 내부에서 내분이 다시 시작됨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 전쟁이 일시적으로 소강(小康)상태에있는 동안 파당들이 다시 내분을 시작했다. 애굽에서부터 나온첫[㈜ \’평판있는\’, 혹은 \’처음\'(마치 애굽으로부터 일련의 해방중 첫 번째인 것처럼) 비유대인 동료의 도움을 의미한다. 그러나 \”처음\”이란 단어는 아마 차후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을 언급할 것이다.] 해방을 기념하는 유대인의 명절로 무교절인 크산티쿠스(Xanthicus)월[㈜ 히브리 민족의 니산월(3월月-4월月)에 해당하는 마게도냐의 달(月)임.] 14일이 돌아오자 엘르아살과 그의 무리들은 성문을 열고 성전 안으로 경배드리려는 시민들을 받아들였다.그러나 요한은 이 명절을 자신의 반역 음모를 위한 기화로 삼아서 대부분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는 좀 어수룩한 자들을 무기를감추게 하여 무장시켰다. 요한은 그들을 몰래 성전에 들어가게하여 성전을 먼저 장악하도록 하게 했다. 그들은 성전 안에 들어가자 의복을 벗어버리고 갑자기 무장한 군사로 돌변했다. 성소의 주변은 곧 난장판이 되고 극도로 혼란하였다. 주민들은 모두를 무차별 학살하는 줄로 생각했으며, 열심당들이 자기들만 공격하여 죽이는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열심당들은 성문을 수비하지도 않고 난입자들이 가까운 지역으로 오기도 전에 그 싸움터를 떠나 성전의 지하동굴로 도망갔다. 반면 경배드리러 온 자들은 제단 옆에 움추리거나 성소 주위에서 뒤죽박죽 아우성을쳤으며, 발로 짓밟히고 칼과 막대기로 정신없이 맞았다. 아무죄없는 많은 시민들은 증오나 개인적인 유감 때문에 반대 파당의당원으로 오인되어 죽음을 당했다. 또한 과거에 요한 일당을 공격했던 자들은 열심당으로 인식되어 처벌을 당했다. 한편 무죄한 자들은 죄인처럼 심하고 거칠게 다루워졌고, 난입자들은 죄인들에게 휴전을 보장했으며 그 죄인들이 지하동굴에서 나오자그냥 가게 내버려두었다. 성전의 안뜰과 성전에 있던 모든 무기들을 갖게 된 그들은 시몬과 싸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그 후로 3개의 파당의 내분은 다시 2개의 파당의 싸움으로 축소되었다.
2. 티투스는 스코푸스에서 예루살렘까지 땅을 평평하게 할 것을 지시함
티투스는 스코푸스를 포기하고 예루살렘 더 가까이에 진을 치려고 결심하고 유대인의 공격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강한 정예 기병대와 보병대를 배치하였고, 중심에 위치한군대에게 사이사이에 있는 땅을 평평하게 하도록 지시했다. 병사들은 주민들이 정원에 친 울타리와 방책들과 나무들을 전부 휩쓸어 버리고 길에 있던 웅덩이와 도랑들을 모두 메꾸었으며,쇠창살로 울퉁불퉁한 바위를 치우면서 스코푸스에서 뱀의 연못(Serpents\’ pool)이란 곳에 인접해 있는 헤롯의 기념비(Herod\’s monuments)[㈜ 불확실함. 참).전쟁.5권. 7:2(507). 니이제(Niese)는 기념되는 헤롯왕은 대헤롯의 손자이며, 칼키스(Chalcis)의 왕이었다. 대헤롯 자신은 예루살렘 남쪽 60스다디온쯤 떨어진 헤로디안(Herodian)에 묻혔다. 전쟁.1권. 33:9 (673). 뱀의 호수(Serpent\’s pool)는 그 도시의 서쪽에 있는 Birket Mamilla와 일치하는가는 확실치 않다. (G.A. Smith. \’Jerusalem\’. I. 114).]까지의 전 지역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3. 유대인의 계략으로 로마군을 쳐부수다
이러는 동안 유대인들은 로마군을 속이기 위한 다음과 같은 전략을 세웠다. 강경한 난동자들이 여인의 망대(Women\’s Towens)라[㈜ 불확실함 ; 전쟁.5권. 3:3(119)이하에 언급되어 있는 헬레나(Helena)여왕의 무덤의 맞은 편에 있는 것으로 전쟁.5권. 2:2(55)에 나온다.] 부르는 곳에서 나오면서 마치 그들이 평화를 원하는 무리들에 의해 축출당했으며 로마군의 공격이 두려워 위축되어 있는 것처럼 함께 모여있게 만들었다. 한편 그들의 동료들을 주민처럼 꾸미면서 성벽 가까이에서 평화를 외쳤고, 로마군의 보호를 부탁하며 성문을 열어 줄 것을 약속하면서 로마군을 들어오게 했다. 유대인들은 평화를 외치는 소리와 함께 자기 동족에게 돌을 던지면서 연극을 꾸미는 유대인들은 성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쓰는 척 했으며, 성 안에서 돌을 던지는 시늉을 하는 유대인들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리고 로마군 쪽으로 계속해서 공격하고 다시 후퇴하면서 아주 혼란스럽다는 것을 보이도록 연극을 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계략은 로마군의 대열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로마군은 성 밖의 유대인들을 그들 마음대로 처치할 수 있으며, 나머지 성 안의 유대인들도 문을 열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곧 행동개시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티투스는 반대로 이런 갑작스러운 유대인들의환영 즉 성문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의심스럽게 관찰했다. 왜냐하면 바로 하루 전에 요세푸스가 유대인들에게 평화조약을 체결하자고 갔었으나 전혀 그럴듯한 대답을 듣고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티투스는 부하들에게 제자리를 지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앞쪽에 있던 병사들은 명령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무기를 들고 성문쪽으로 달려가 공격을 시작했다. 성문 밖으로 추방된 것 같은 연극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달려드는 로마군 앞에서 우선 후퇴했으나 로마군이 성문망대 사이로 왔을 때 화살을 쏘아대면서 포위를 하고 뒤에서 공격을 했다. 반면 성벽에 있던 자들도 로마군에게 돌과 각종 투석기를 이용해 공격을 퍼부어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더 많은 사람을 부상당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로마군은 뒤에서 공격하는 유대인들 때문에 성벽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마군들은 잘못했다는 수치심과 상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계속 실수를 그대로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로마군들은 창을 가지고 오랜 전투를 하고 유대인들에게 많은 부상을 당한 후에야-물론 로마군도 적잖은 유대인들을 부상당하게 했다-겨우겨우 유대인들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었다. 심지어 로마군이 후퇴할 때에도 유대인들은 계속 추격했으며, 헬레나(Helena) 무덤까지 쫓아오면서 창을 던져서 창 세례를 받게 하였다.[㈜ 전쟁.5권. 2 : 2(55)각주.]
4. [유대인의 계략으로 패배한 병사들을 티투스가 꾸짖음]
유대인들은 그들의 계략으로 로마군이 그 계략에 속은 것을 조롱하고, 방패를 휘두르면서 춤을 추고 기쁨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로마병사들은 상관들과 가이사 티투스의 무서운 질책을 받았다. 티투스는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유대인들은 단한명의 지도자를 위해 신중하고 사려깊게 모든 일을 필사적으로 실행했소. 그들의 전략과 매복을 조심성있게 계획되었고, 그들의 전술은 명령과 상호 존중과 신념으로 더 더욱 훌륭해 보였소. 반면 여러분들은 조직적인 훈련과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해서 유대인을 운좋게도 노예삼은 적도 있었는데, 이제 그 정반대의 행동으로 이렇게 비통한 지경에 이르러 유대인들의 호전적인 공격으로 대패하였소-그것도 가장 비참한 참패를 당한 것이오. 이것은 이 가이사의 눈 앞에서 지휘관 없이 전투함으로써 이루어진 일이요. 이제 군대 질서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참).요타파타(Jotapata)에 있는 동굴속에서 요세푸스의 동료들에 의해서 사용되어진 같은 문구. 전쟁.3권. 8 : 4(356). ] 내 아버님께서 이런 소식을 듣는다면 얼마나 실망이 크시겠소. 아버님은 전투 속에서 평생을 보내셨지만, 이와 같은 재난은 결코 만나지 않으셨소- 군대질서는 아무리 사소한 조항이라도 어기면 언제나 사형에 처하고 있소. 그런데 여러분들은 군단전체가 대열을 이탈하고 있음을 보지 않았소! 그러나 이러한 무모한 여러분의 행동은 앞으로 로마군 사이에서 심지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승리한다 해도 그것은 불명예스러운 것임을 교훈으로 배워야만 할 것이요? 이러한 단호한 훈시를 통해 티투스는 군법을 모두에게 적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명령을 어긴 로마 병사들은 잠시후에 당연히 죽음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실망이 컸다. 그러나 군단들이 티투스를 에워싸면서 그들을 위해 중재하면서 군단들은 모두 명령에 복종한 것으로 생각하고, 소수의 몇 명이 저지른 무분별한 행동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으며, 그들은 앞으로 이와같은 경우에는 지금과 같은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을 확약했다.
5. [티투스는 복수를 위해 파헤쳐진 땅을 평평하게 함]
가이사 티투스는 이러한 간청을 듣고 처형하려는 생각을 바꾸었다. 왜냐하면 그는 군법대로 처리 할 경우 처형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해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병사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티투스는 병사들에게 앞으로 좀 더 현명하게 행동하라고 강력한 훈시만을 했다. 티투스는 유대인을 복수할 가장 좋은 방법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했다. 4일동안 성벽까지 땅을 평평하게 다 만들었다. 티투스는 물품 수송과 진영을 따르는 자들을 안전하게 통과하게 하려고 정예군사를 뽑아 성벽의 북쪽 문과 서쪽 문 정면에 3열로 배치시켰다. 앞쪽에는 보병을, 뒤쪽에는 기병을 각각 배치했으며, 궁수들은 가운데 7열로 배치했다. 유대인의 공격이 이러한 로마군의 질서정연한 대열에 제지당하자, 개개의 군단에 속하는 짐을 운반하는 동물들과 그밖에 무리들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티투스 자신은 성벽에서 2퍼얼롱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진을 쳤다.[㈜ 칸티쿠스(Xanthicus)4일에. 전쟁. 5권. 13 : 7(567)에서 나온다.] 그곳은 프세피누스(Psephinus)라는 탑 맞은 편 모퉁이에 위치한 곳이다. 프세피누스 탑은 성벽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꺽이는 지점에 있다. 로마군의 나머지 군단은 히피쿠스(Hippicus)라는 탑과맞은 편 즉 예루살렘에서 2퍼얼롱의 거리에 있는 곳에 진을 쳤다. 제10군단은 감람산에 진을 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