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권 제 11장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것과 안티오쿠스 에피파테스에 대하여, 그리고 로마군이 쌓은 토성을 유대인들이 무너뜨린 것에 대하여

 


제 11 장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것과 안티오쿠스 에피파테스에 대하여, 그리고 로마군이 쌓은 토성을 유대인들이 무너뜨린 것에 대하여



 1. 유대인 죄수들이 십자가에 못박힘



 티투스의 지휘 아래 토성을 쌓는 작업은 성벽에서 가해오는 유대인의 기습 방화로 부하들이 어려움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잘진행되어져 갔다. 게다가 티투스는 기병 분대(分隊)를 보내 음식을 구하러 성 안에서 계곡으로 나오는 유대인을 위해 잠복하라고 명령했다. 이런 유대인들 가운데는 약탈하는 것에 더 이상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강도단은 있었으나 대부분은 가난한 계층의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이때까지 가족들 때문에 두려워서 도망치는 것을 단념했던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도망친다 하더라도 강도단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희망은 전혀 없었으며, 처자식을 남겨두고 혼자만 도망간다면 자기대신 가족들이 강도단들에게 처형될 것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기근에 견디다 못해 대담하게 탈주를 하게 되었다. 이들이 들키지 않고 성안을 빠져 도망치더라도 이들이 로마군의 포로가 되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들이 잡힐 때 얼떨결에 저항을 했으나, 그 후에 용서를 구하기는 이미 너무 늦었다. 따라서 그들은 구타당하고 온갖 모든 고문을 당한 뒤성벽 십자가에 처형을 당했다. 티토스는 유대인의 죽음을 불쌍히 여겼으며 매일 500명 혹은 때로는 그 이상되는 유대인들이 붙잡혔다. 한편 티투스는 전쟁 포로들을 그냥 풀어주는 것이 위험한 것이며, 이 많은 포로들을 수용하는 것은 그 만큼 관리자들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티투스가 십자가 처형을 중단시키지 않은 주된 이유는 아마 이 광경을 본 유대인들이 계속적으로 저항하다가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리라는 두려움에서 항복할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병사들은 분노와 증오에 차서 유대인들을 각각 다른 자세로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즐겼다. 십자가에 못박힌 수가 너무 많아서 십자가를 세울 공간도 찾을 수 없을 정도였으며 사람을 못박을 여부의 십자가도 찾아볼수 없을 지경이었다.



 2. 티투스의 권고와 유대지도자들의 반박



 그러나 난동자들(강도떼)은 이러한 고통스런 장면을 보고 누그러지기는 커녕,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꾸며낸 이야기로 남아있던 자들을 속였다. 강도떼들은 로마군의 화평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시민들과 탈주자들의 일가 친척들을 성벽으로 끌고가서 로마군에게 피하러 도망간 자들의 최후가 어떤지를 보여주면서 잡힌 희생자들은 포로가 아니라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자들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진실이 알려질 때 까지는 투항하여 탈주하려는 많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로마군의 손에 죽으나, 기아로 고생하다 죽으나 마찬가지라 여기고, 즉시 로마군에게 도망갔다. 그러나 이제 티투스는 그들의 손을 자르기를 명령했다. 이것은 이들이 탈주자로 착각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또한 손을 잘리는 끔찍한 고난이 이들 증언의 신빙성을 더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투스는 이들을 시몬과 요한에게 보내 이제는 저항을 그만두도록 권고하면서 아울러 티투스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말고, 자신들의 생명과 아름다운 예루살렘을 살리고 성전이 다른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제11시에 회개의 기도를 올리라고 권유의 말을 전했다. 티투스는 토성을 쌓는 주위에 가서 작업하는 병사들을 재촉하여, 마치 행동으로 곧 위협을가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티투스의 권고의 말에 대해 유대인들은 성벽 위에서 티투스는 물론, 그의 아버지를 비난하면서 반박했다. 그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으며, 노예가 되느니 명예롭게 죽는 쪽이 더 좋다고 외쳤다. 그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로마군에게 온갖 손해를 입힐 것이며, 티투스 자신이 말한 것처럼 곧 죽을 사람에게 있어 고향(예루살렘)은 전혀 관심이 없으며, 이곳보다 전 세계가 더 훌륭한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반박했다.[㈜ 참). 바룩서 3:24 \”오. 이스라엘이여! 위대한 하느님의 집이여! 너의 소유를 모아둘 곳이 넓구나!\”등. 주후 70년의 비극 이후에 쓴 바룩서의 저자는 사실 \”하느님의 집은 파괴된 성전이 아니라 광활한 우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덧붙여서 성전에 거하시는 하느님이그 성전을 지킨다고 주장하고, 하느님이 그들의 편에 계시는 한,전쟁에 의한 모든 위협은 두려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결말은 하느님께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유대인들이 욕설을 퍼부으면서 소리질렀다.



3.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와 그의 용맹스러운 \’마게도냐인들\'(Macedonians)



 한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 콤마게네(Comnagene)의 왕 안티오쿠스 4세의 아들 ; 그는 전쟁. 7권. 7:2(232)에 자기 형 에피알테스(Ephialtes)와 함께 다시 나오는데, 부친의 왕국을 방어하기 위해 싸운다.]는 수많은 다른 병력 외에 \’마게도냐부대\’라 부르는 호위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이 호위대는 나이도 같고 키도 같은 사춘기를 갓벗어난 사람들로 구성되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마게도냐인이아니었지만 마게도냐 식으로 무장하고 훈련받았기 때문에 마게도냐부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로마에게 충성하는 모든 군주들 중에 콤마게네(Commagene)의[㈜ 유브라데(Euphrates)강 위쪽에 아주 작은 왕국으로 길리기아(Cilicia)와 아르메니아(Armenia)사이에 있고, 수도는 사모사타(Samosata)이다. 디베료(Tiberius)통치하에 있던 로마에 의해 합병되었던 이 왕국은 가이오(Gaius)에 의해 되찾게 된다. 그러나 끝내는 베스파시안(Vespasian)에 의해 수리아에 합병되었다. 이때 안티오쿠스는 로마에 반역죄로 고발되었다. 전쟁. 7권. 7:1(219).] 왕이[㈜ 안티오크수 IV세. 그는 이전에 케스티우스(Cestius)를 원조했으며<전쟁.2권. 18:9(500)>, 갈릴리에 있던 베스파시안(Vespasian)을 도왔다. 전쟁. 3권. 4:2(68).] 쇠퇴하기전에는 가장 번성하였다. 어떤 사람도 죽기 전에는 행복하다고 평가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보여주었다.[㈜ 솔론의 연설에 대한 언급, 헤로도투스 i.32] 그의 아들 안티오쿠스는 아버지가 그 당시 최절정에 있을 때, 예루살렘에 와서 로마군대가 성벽공격을 주저하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안티오쿠스는 무인(武人)적인 데가 있었고, 모험적인 성격에 아주 호전적이어서 그의 대범한 행동은 거의 실패하지 않았다. 이에 티투스가 웃으면서 \”싸움판은 열려 있소\”라고 응수하자, 안티오쿠스는 더 이상 고심하지 않고 마게도냐부대와 함께성벽을 공격했다. 안티오쿠스의 힘과 기술은 유대인들의 화살을피할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으나, 그의 젊은 마게도냐부대는 소수를 제외하고 거의 다 유대인들이 쏘아대는 화살에 힘이 버거웠다. 그들은 참전하는 것을 중요시 했기 때문에 악착같이 전투를 고집했다. 그러나 결국 많은 병사들이 부상당한 뒤 후퇴했다.진짜 마게도냐인들 조차도 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알렉산더대왕과 같이 행운이 따라야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4. 로마군 토성의 완성



 로마군이 토성을 쌓는 일을 아르테미시우스(Artemisius)월12일[주후 70년 5월 30일경]에 시작했는데, 17일 동안 고된 작업을 계속하여 27일[6월 16일경]에야 완성되었다. 왜냐하면 네개의 토성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다. 네 개의 토성 중 첫 번째 토성은 제 5군단에 의해 스트루티온(Struthion)이라[㈜ M. Clermont-Ganneau는 소위 쌍둥이 못(Twin Pools)으로 동일시 한다. 이것은 안토니아(Antonia)의 북서쪽 모퉁이에 인접해 있다(G.A. Snmith, \’Jerusalem\’, i.116).] 부르는 연못 중앙 맞은 편에 세워졌고, 두 번째 토성은 약 20규빗 떨어진 곳에 제 12군단에 의해 세워졌다. 이 두 개의 토성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제 10군단은 북쪽지역과 아미그달론(Amy-gdalon)이라는[㈜ 추측컨대 \’족장들의 목욕탕\'(Pool of the Patriarch\’s Bath)과 같다고 생각된다. 이는 야파문(Jaffa Gate)근처에 있다. G.A. Smith의 \’Jerusalem;, 115.] 연못 맞은 편 지역에 세 번째 토성을 쌓았다. 제 15군단은 제 10군단과 30규빗 떨어진 곳에서 대제사장의 기념비(high prest\’s monuments) 반대편에 네 번째 토성을 쌓아올렸다.[㈜ 전쟁.5권. 6:2(259).]



 [요한이 굴을 파고 토성 일부를 태워 무너뜨리다]



 한편 공격무기들이 토성 위에 설치되자, 요한은 예루살렘 성벽 안에서 땅속으로 안토니아 망대에서 토성에 이르는 땅굴을 팠으며, 버팀목으로 잘 받쳐놓았다. 그리하여 로마군의 토성쌓는 작업을 지연시킬 수 있었는데 요한은 나무에 송진과 역청을 잔뜩 발라서 땅굴 속에 넣고서는 쌓아놓은 나무위에 불을 질렀다. 나무들은 타버리고 땅굴이 무너져 내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토성도 무너져 내렸다. 처음에는 짙은 연기와 먼지가 파편 더미가 내려앉으며 꺼지는 듯 했으나 파편조각까지 타면서 맹렬한 불꽃이 솟아 올랐다. 로마군은 갑작스런 이러한 재난에 당황하였고 유대인의 감쪽같은 작전에 풀이 죽었다. 게다가 로마군은 승리를 쟁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마당에, 이러한 불의의 일격을 당하자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이 꺾여버렸다. 불이 꺼진다 해도 토성이 무너질 것이므로 진화작업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5. 시몬은 다른 토성을 공격하다



 이틀후 시몬 일당은 다른 토성들을 공격하는 일에 착수했다. 왜냐하면 로마군이 토성 위로 공성장비를 이동시켰고 벌써 성벽을 때려 부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갈릴리에 있는 가리스(Gar-is)시(市) 출신인, 게프다이우스(Gephthaeus)와, 왕에게 소속된 병사이자 마리암메(Mariamme)의 종인[㈜ 또는 \’마리암메(Mariamme)의 충실한 부하 중 한 명\’. 마리암메는 아그립바 1세의 딸이고 아그립파 2세 \’왕\’의 누이였다. 전쟁.2권. 11:6(220) ; 그 사람은 도망자 이었어야 한다.] 마가사루스(Ma-gassarus)와 나바타이우스(Nabataeus)의 아들인 아디아베네(Adiabene)출신 케아기라스(Ceagiras), 이 세 사람은 횃불을 낚아 채 들고서 로마군의 공성장비를 공격하려고 앞으로 달려갔다. 케아기라스라는 이름은 \’절룩거린다\’라는[㈜ 아람어 haggera는 \’불구자\’라는 뜻이다.] 의미로 그의 불운에서 연유된 이름이다. 이번 전쟁을 통해 이 세 명보다 더대담하게 성 밖으로 나가 공격하거나 더 큰 두려움을 불러 일으킬 자는 없었다. 이 세 사람은 적군의 진지로 달려가는 것이아니라 마치 아군의 대열속에 진군하는 것처럼, 속도를 줄이거나 옆으로 빗나가지도 않고, 적군의 중앙에 뛰어들어서 공성장비에 불을 질렀다. 이 세 사람은 사방에서 창과 칼로 공격을 받았지만 그들은 공성장비가 완전히 불붙을 때 까지 위험한 곳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불꽃이 치솟자 로마군들은 공성장비를 구출하려고 진영에서 달려 나왔다.



[유대인들이 로마 진영을 공격하다]



 그때 유대인들은 성벽 위에서 로마군의 진화를 방해하다가 성에서 나와, 불을 끄려고 애쓰는 로마군들과 목숨을 내어놓고 백병전을 벌였다. 한쪽에서는 로마군이 공성무기의 가지로 엮어만든 방패가 모두 화염에 휩싸이자 화염 속에서 공성무기를 끌어 내려고 애썼다. 한편 유대인들은 화염 속에서도 공성무기를 붙잡고 늘어졌으며, 새빨갛게 달아오른 쇠를 꼭 잡고 공성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불길이 공성무기에서 토성에까지 번지자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었다. 로마군은 화염에 휩싸여서 토성을 수호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의 진영으로 후퇴하였다. 반면 유대인들은 맹렬히 추격했으며, 그들의 숫자는 성에서 계속 다른사람들이 나와 가세함으로써 계속 늘어났으며, 승리로 인해 의기양양해져서 막무가내로 성급하게 로마군 진영까지 밀고 들어가 결국 로마군 보초병들과 맞붙어 싸웠다. 로마군에는 교대로 보초를 서는 수비대가 있었는데, 이들은 각 진영 앞에서 보초를서는 자들로 어떤 변명이나 이유를 불문하고 자기 자리를 이탈하는 자는 엄격한 로마군법에 따라 처벌받는 자들이었다. 수비대대원들은 자리를 이탈하여 처벌받는 것 보다 영웅처럼 용감히 싸우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꿋꿋히 버텼다. 많은 로마군 도망병들은 동료들의 이런 어려움을 보자 매우 수치심을느끼고 되돌아 왔다. 로마군들은 진영을 따라 일렬로 속사포(quick-firers)를 배치하여, 자신의 안전이나 개인적인 방어에 대한 생각없이 성에서 쏟아져 나오는 유대인 무리들을 저지하였다. 왜냐하면 유대인은 닥치는 대로 맞붙어 싸웠으며, 모두가 겁도 없이 로마군 창 끝에 자신들의 몸을 내던지면서 적과 싸웠다.유대인들의 우수한 점은 전투력보다는 대범함에 있었으며, 로마군은 그들이 받은 피해 때문이라기 보다는 유대인들의 대범함에 굴복한 것이다.



6. 로마군을 견책하는 티투스



 한편 티투스는 안토니아 망대에서 돌아왔다. 그는 또 다른 토성을 쌓을 장소를 살펴보려고 그곳에 갔었던 것이다. 티투스는 호되게 병사들을 나무랐다. 적의 요새를 거의 다 정복하고도 자기 진영을 위태롭게 만들어 도리어 포위를 당한 로마 병사들을 맹렬히 꾸짖었는데, 이것은 감옥과 같은 예루살렘 성에서(공격하러)나오는 유대인들을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티투스는 병사들을 꾸짖은 후 정예부대와 함께, 직접 그가  선두에 서서 적을 속이고 우회하여 적의 측면을 공격하였다. 유대인들은 정면에서 공격을 받았지만 측면으로 방향을 돌려 티투스와 팽팽히 맞싸웠다. 접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먼지 때문에 보이지도 않고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들리지도 않아서, 어느 쪽이 아군인지 누가 적군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계속 싸웠는데 용감해서라기 보다는 살 희망이 없자 사력을 다해 싸운 것이었다. 반면 로마군은 승리의 영광과 로마군의 무기에 대한 자주심과 무엇보다도 위험을 무릎쓰고 이끄는 티투스 때문에 열심히 싸웠다. 내 생각으로는, 만일 유대인들이 전투의 추이를 예견하고 성안으로 후퇴하지 않았더라면, 머리끝까지 화가 난로마군들이 그 많은 유대인들을 모두 싹 쓸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군은 토성이 무너져 버린 것을 보고 심한 낙담에 빠졌다. 그리하여 로마군은 오랜 작업의 결실을 순식간에 잃어버렸으며, 보통 일반적인 공격 무기로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 하리라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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