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문 ll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아브라함에게 내린 하느님의 명령에 대하여

 


논  문  ll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아브라함에게 내린 하느님의 명령에 대하여



고대의 사실들을 현대의 개념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하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명령이 (창22장) 근래에 들어와서 잘못 이해되고 있다. 이 오해는 사건들이 발생했던 당시의 관습, 견해, 상황들을 정당한 이유없이 무시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아브라함의 그러한 행동은 사도 바울(롬4:16-25), 야고보(약 2:21, 22), 히브리서의 저자(히 11:17-19), 필로, 1세기의 요세푸스, 그리고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뛰어난 덕행의 보기 드문 예로써 하느님에 대한 영웅적인 믿음과 경건으로 칭송을 받아왔다. 그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그 행동은 신성한 역사(창 22:15-18)로써 거룩한 계약의 천사에 의해서 명령을 받았고, 하느님 자신의 이름으로 풍성한 보상을 약속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관습, 견해, 상황들에 대한 18세기의 우리들 가운데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반석이 되었고, 심지어는 건전한 신앙심과 종교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알고 싶어하고, 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고대 당시의 조명 아래에서 나는 이 문제를 진리로 굳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은 순서로 다루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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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세속적인 시대 전까지만 해도 다음과 사실들이 자신들을 하느님의 피조물로 인정하는 모든 지혜있고, 분별력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져 왔다. 곧 창조주께서는 그의 모든 이성적인 피조물들에 대하여 다스리실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수명을 그분이 기뻐하시는대로 조정하셔서, 그분이 기뻐하시는 때, 기뻐하시는 도구로써수명을 줄이시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병으로 고통을 주기도 하시고, 또한 이 거대한 우주라는 그분의 궁정 안에서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어느 한 위치나 장소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기신다.모든 이성적인 피조물들은 스스로를 한정지어서 거룩하신 분에게 묵묵히 순종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그들을 향한 하느님의모든 뜻과 선하신 섭리에 이를 수 있도록 자신들을 포기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느님께서는 한 번도 그러하신 적이 없으셨지만, 자신의 임의대로 충분한 이유없이 행하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믿기로는 자연의 모든 의리와 계시된종교를 통하여 볼 때 하느님께서는 그분이 만드신 것 중 아무것도 미워하시지 않으신다(He hateth nothing that he hathmade. 지혜서 11:14).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것들이처음 보기에는 슬픈 일인 것처럼 보이는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분의 피조물들의 유익을 위한 것들이며, 모든 것의 결국에 가서는 그렇다는 것이 완전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분의피조물들에게 그분이 여전히 계속해서 제한받으시지 않는다는사실과 또한 피조물들을 향한 섭리에 대해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신다. 대부분의 경우는 시험의 때에 그들의 믿음과 인내, 헌신, 복종을 시험하시고 단련시키신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마지막날 즉 하느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롬2:5)까지 보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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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시대의 모든 역사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그분의 능력으로 행하셨으며, 행하시되 그분의 그러한 행위에 대한 이유를 즉각적으로는 설명하지 않으시고 행하셨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전 시대를 통하여 가장 지혜로운 자나 선한 자에게, 유대인들이나 크리스찬들뿐 아니라 이교도들에게까지, 족장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마르쿠스안토니우스(Narcos Antonius), 사도바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항상 이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경영에 겸손하게 그들스스로를 복종시켜 왔다. 그들은 받을 수 없는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모든 행복을 누림에 감사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들은 단하나의 행복한 삶이 계속되는 것조차도, 그들 스스로의 의(義)로는 요구할 수 없다고 항상 고백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범죄한어른들뿐 아니라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들까지 포함하여 홍수로 인류를 쓸어버리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흥수 후에도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까지 계속하여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키시기를 기뻐하셨다. 하늘로부터 내린 불과 유황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고, 가나안 땅의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관영하여지자(창 15:6), 그들을 내어 쫓으실 때 하느님께서는 완악한 어른 죄인들뿐 아니라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들까지 포함하여 심판하셨다. 히스기야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185,000명의 앗수르인들(이 숫자는 성경뿐만 아니라 갈대아인인 베로수스(Berosus)에 의해서도 증명되었다) 죽이기를 기뻐하셨을 때,그 앗수르 군인들은 전쟁에 참여하는 평범한 군인으로서 왕인산헤립과 장군들과 지휘관들에게 복종한 것 외에는 어떤 특별한다른 죄를 지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테네, 런던, 마르세이유 등에서 수많은 의로운 남자들과 여자들이, 무죄한 어린아이들과함께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순식간에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하늘의 섭리로 죽어갔다. 그러나 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하느님께서 피조물들을 부당하게 취급하셨다고 불평하는 것을들어본 기억이 없다. 겉보기에 너무 가혹하게 보이는 하늘의 섭리가 정말 그렇게 가혹한 것인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고 인간의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 때때로 가장 큰 축복이 될 수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죄가 더커지는 것을 중단시켜 막음으로 해서, 오는 세상에서 더 큰 재앙으로부터 막아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와 같이 미천하고, 약하고 무지한 피조물들이 현재의 상태에서, 우리의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모든 선이 풍성하신 창조주요 보호자께그러한 상황들을 설명해 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우리가 오직 아는 것은 우리를 지으신 이는 우리가 아니요, 그 분이시며(시100:3),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요, 하느님을 떠나서는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우리 자신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 그 분으로부터 말미암았고, 우리로서는 받을 수 없는 값없이 주신 그 분의 은혜로부터 왔으므로 그가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에게서 취하여 가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한 경우 모든 지혜롭고 선한 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경건한 시편 기자나 욥과 같이 고백한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시 39:9). \’우리가 하느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아니 하겠느뇨? 주신 자도 야훼시요, 취하신 자도 야훼시오니 야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2:10). 그러므로 만약에 이 인간의 수명을 단축하거나 취하는 것이 그러한 목적을 위한 하느님의 명령에 대항하게 하는 난점이 된다면,그것은 현 세계의 돌아가는 방식과 일반적인 하느님의 섭리의행위에 대항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그러한 섭리의 정의에 기초하여 있는 자연 종교에도 대항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계시종교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아브라함의 사건에 대해서도 별다른 방법 없이 대항하게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아브라함의 시대 이후 곧 완전하게 해결되었는데, 욥과 그의 친구들의토론 후에, 엘리후의 영감과 하느님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였다.하느님의 섭리가 마침내 온 세계 앞에서 완전하게 명백해지고정당함이 증명되어졌던 곳에서 마지막 심판의 때에 더 이상의 의심의 여지없이 더욱 명백하게 정당함이 증명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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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같은 세속적인 시대 이전에는 하느님의 명령은 그렇게 행하라는 것으로, 확실히 전달만 되면 어느 누구의 생명이라도 취할 수 있는 충분한 권위라고 모든 건전한 사고를 가진 사람에 의해서 널리 인정되어져 왔었다.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군주들과 군대의 장군들, 재판관들과 심지어평판이 좋은 사람들까지도 감히 대담하게도 충분한 권위없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모험을 하여 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대의 회의론자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권위를 직접적으로 부인하지는 않고 더욱 그럴싸한 방법으로 반대한다. 그렇지만 역시 효과는 같아진다. 그들은 어린아이들을 살육하라는 명령에서 볼수 있는 것과 같은 하느님의 도덕적 속성에 명백하게 불일치되는 명령은 아무리 계시같이 보여도 역시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명령이 아니라는 것을 불일치 자체가 확실하게 증명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 하느님의 계시는 중단되었고, 현재로써는 그 계시가 인간에게 전달되었던 과정을 잘 모르므로, 하느님의 도덕적 속성에 명령이 명백하게 불일치한다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러한 거짓 계시에 의해서 행동하는 것을 막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옛 선지자들의 시대나, 하느님의 친구였던 아브라함의 시대에는 이러한 불확실함이 없었는데(사41:8), 이는 그들이 모든 계시를 완전히 확실하게 받았었다고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계시 후에 응답된 사건들과 결과들은그들이 속지 않았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들은이로써 하느님의 계시라는 진리에 계속 머무를 수가 있었던 것이 다.

 이 명령을 이행치 말라고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하늘로부터 내려온 첫번째 기적의 음성과(창 22:11, 12), 그 명령에 대한 그의순종의 댓가로 두번째 음성에 의해서 이루어진 그 유명한 약속들(창 22:17, 18)을, 그가 받았던 계시가 전적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었다는 것과, 이 문제에 대한 그의 행동이 옳았음을 웅변적으로 입증해준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첫번째 음성에 대해서는 더 적합한 장에서 장차 다루어질 것이다.

 여기서는 창세기 22:I5-18절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약속된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인하여 두번째 음성으로 세워진 영광스런약속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야훼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다시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야훼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온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그 대적의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하셨다 하니라.\” 이 모든 약속들은 확실하게 모두 성취되었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로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약속들 중에 가장 주가되는 놀라운 약속은 그 전에 한번도 약속된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그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것이니라고 그에게 두번 약속하셨을 따름이었던 것이다(창 12:3, 18:18). 이 축복은 미래에 속한 것이었고 그래서 아브라함의위대한 아들이요 씨인 그의 후손 중의 하나인 메시야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것은 전에는 한번도 계시되지 않았었다가, 독자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놀라운 그의 믿음과 순종으로 말미암아 그제서야 처음으로 약속되어진 것이었다. 이약속은 결국 이 자리에서 바로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마 1:1)이신 나사렛 예수의 탄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선하고 애정이 많은아버지였던 아브라함이 그 명령은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명확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이 주는 위로를 뿌리치고, 이삭으로 인하여 갖게 될 수많은 자손들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리면서까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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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 시대 훨씬 이전부터 귀신들과 이방인들은 인간 제물을 요구하였고, 또 받았는데 특별히 그 중에서도 어린아이들을 요구하였다. 이는 대홍수 전후를 막론하고 일어난 현상이었다. 애굽에서는 이 관습이 오래 전에 사라져서 대신 짐승을 제물로 바쳤다. 그래서 헤로도투스(Herodotus) 시대에는 거의 인간을 제물로 바치지 않았으므로 그는 애굽인들이 인간 제사를드렸었다고는 전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헤라클레스(Hercules)가 애굽에서 쥬피터(Ju-piter)에게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과 같은 신화는 그리스인들에의해서 꾸며 내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애굽인들의 성품이나 법률을 잘 알지 못하였다. 수퇘지, 황소, 송아지, 수컷 거위들 같은이성없는 짐승들만 예외적으로 제물로 바쳐질 수 있었고, 그 외에는 모두 불법으로 되어 있었던 것을 애굽인들이 어떻게 인간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다는 말인가?\” 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제사들이 베니게(Phoenicia)와 애굽에서 매우 빈번히 있었다는 사실은 산코니아토(Sanchoniatho), 마네토(Manetho),파우사니아스(Pausanias), 디오도루스 시클루스(Diodorus Sic-uius), 필로(Philo), 플루타르크(Plutarch) 그리고 포피리 (Por-phyry)등에 의해서 확실하게 증명된다. 그러한 제사가 아브라함 시대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는 것은 존마샴경(Sir JohnMarsham)과 컴버랜드 감독(Bishop Cumberland)에 의해서충분하게 증명된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에 의하면 다른 장소에서도(애굽에서 뿐 아니라) 이 잔인한 제사가 아브라함 이후 계속되었었으며, 법적으로 완전히 폐기되기 직전까지인 주후 3세기까지와 특별히 크리스챤의 시각으로 보면 주후 5세기까지도 존재했었다. 이제 영어로 된 원저자들의 말을 살펴보자. 이것의 대부분은 주로 존 마샴경의 \’연대기\'(Sir John Marsham\’s Chrohicon)의 p. 76~78, 300-304에 있는 것들이다. \”기근과 전염병이 퍼지자 크로누스(Chronus)는 그의 외아들을 번제물로써그의 아버지인 우라누스(Uranus)에 게 바쳤다.\” \”베니게인(Ph-eonicians)들이 이스라엘(Israel, 일(I1)이라고 불러야 된다]이라고 부르는 크로누스(Chronus)는 사후에 토성(Saturm)에 바쳐졌다. 그가 왕으로 있을 때, 그 나라의 여자 정령 아노브렛(Anobret)과 사이에서 제우드(Jeud, 베니게인들은 지금까지외아들을 이렇게 부른다)라는 그의 외아들을 낳았다. 크로누스는 나라가 전쟁과 같은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제우드에게 왕복을 입히고 제단을 쌓고 그 독자를 제물로 드렸다.\” \”베니게인들은 전쟁이나, 기근이나 전염병과 같은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공공투표를 통하여 그들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선출하여토성에서 제물로 바쳤다. 산코니아토스가 쓴 \’베니게의 역사\'(Sanchoniato\’s Phoenician history)에는 이러한 제물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

 (이제부터는 노아 홍수 이전의 내용들이 다루어진다)

 \”아라비아에서는 두마티인(Dumatii)들이 매년 이를 제물로 바쳤다. \” \”그들은 고대의(애굽) 왕들이 티포(Typho)와 피부색 같은 사람들을 오시리스(Osiris)의 묘에서 제물로 바쳤다고진술한다.\” \”마네토(Manetho)에 의하면 이디티아(Idithyia 혹은 일리터아(lithyia)라는 도시에서는 살아있는 베나게인들이 번제로 바쳐졌으며, 그 재는 키질하여 가려내어진 겨같이 뿌려졌다. 이것온 공공연히 삼복 더위 중 한 시기를 정하여 행해졌다. \”

 \”야만국들에서는 신들에게 바쳐지는 신성한 제물로서 유아살해를 오랫동안 허용하였다. 이것은 적당한 시기에, 평시민들이 개인적으로 행하거나 왕들, 또는 전 국가적 차원에서 행하여졌다.\” \”파우사니아스가 쓴 아카악스(Achaics, 헬라인들)중에 나오는 코레수스(Coresus)와 칼릴로에(Calirrhoe)의 비극적인 이야기 부분에 보면,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가 도도니안신탁(Dodonean oracle)에 의해서 명령되어졌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애굽에서 모든 야만적인 풍습을 제거한 아모시스 (Amosis)시대 이전에 베니게와 애굽의 제사장들이 이 도도니안 신탁을 세웠음을 충분히 암시해 주고 있다. \”



– Isque adytis hoec tristia dicta reportat Sanguine placastisventos, et virgins coesa, cum primum lliacas Danai venistisad oras ; Sanguine quoerendi reditus, animaque litandumArgolica – 버 질(Virgil)의 \’AEN.\’ii. 115



그는 신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두려운 응답을 받아왔다. 오 그리스인들이여, 너희가 두로인의 땅을 얻으려고 애쓸 때, 너희의 길이 처녀의 피를 통해서 열렸도다!그러므로 너희의 안전한 귀향도 역시 사야만 한다.그리고 그리스인의 피가 다시 한번 역시 광대한 죄를 속죄하리라.

  드라이든(Dryden)



이러한 피의 제사는 확실히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불경건한 행위와 포악과 잔인함을 보여주는 실례였다. 악한 마귀와인간은 인간을 만들지도, 보호해 주지도 않으므로 인간을 다스릴 권한이 없다. 또한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손해나 고통을 오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보상해 줄 능력도 없다. 그런데도 죄도없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고, 더구나 제공자 자신들의 아이들을요구한다. 내가 생각하기로 이것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 바로그로부터 오는 증오의 행위로써 진실로 큰 범죄요 악마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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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전능하신 하느님 자신이 이 죄악에 대하여 유대 통치제도 아래에서도 이방인들을 격렬하게 책망하셨고 때때로 유대인들도 책망을 받았다. 이러한 가증스러운 죄악들 속에 있는우상 숭배 국가들을 (때때로 유대인들도) 팔레스틴 밖으로 쫓아내셨다. 이제 여기서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구약 속의 본문들을살펴보자.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자녀로 통과케 말아서…\”레 18:21),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레 18:24),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레 20:2), \”너는 스스로 삼가서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틀 밟아 올무에 들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위하였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네 하느님 야훼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야훼의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느니라.\”(신 12:30, 31, 18:10, 왕하 17:17),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하며\” (왕하 16:3), \”또 힌놈의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은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 자녀를 (요세푸스에서는 그 아들을) 불사르고\”(대하28:3),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사림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드렸으며\”(왕하 17:31), \”왕이 또 힌놈의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사람으로 물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그 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고\”(왕하 23:10),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에 더러웠도다\”(시 106:37, 38, 참조. 사 57:5), \”야훼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은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힌놈의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하지 아니하였고내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렘 7:30, 31), \”이르기를 너는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야훼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야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무릇 그것을 듣는 자의귀가 진동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불결케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말하거나뜻한 바가 아니니라\” (렘 19:3-5),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의 불에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범죄케 한 것은 나의 명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렘 32:35),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겔 16:20, 21, 참조. 20:26, 고전10:20), \”주님은 주님의 거룩한 땅에 살던 옛 사람들도 미워하셨다. 그들이 하는 짓은 가증스러웠고, 푸닥거리와 우상에게제사 지내기를 좋아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어린아이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인육의 향연에서 창자를 먹이며 피비린내 나는 잔치가 진행되는 가운데 입교 의식을 시작하였다. 부모들은 저항하지 못하는 제 자식들을 제 손으로 죽였다\” (지혜서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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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전 유대 역사를 통틀어서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자신에게 그런 인간 제사를 허용하신 예가 한번도 없다. (그러나 만약 그 분이 기뻐하신다면 그 분은 얼마든지 요구할 권한이 있으시다), 그러나 당시 고대 유대 인간 제사에는 다양한 종류의 제사들이 많았다. 인간들은 인간 제사가 죄사함을 얻고,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덕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것은 고대이교 국가들의 기록들이 증명하여 준다. 이를 산코니아토(San-ehoniatho)의 글로부터, 필로 비블리우스(Philo Biblius)의 번역으로 직접 살펴보자. \”큰 재앙이나 위험이 닥쳐오면, 도시나국가의 통치자들은 큰 파괴를 피하기 위하여 응징 (또는 복수)의신들에게 그들의 사랑스런 아들들을 속죄의 값으로 바쳤다. 그리고 바쳐진 자식들은 신비한 의식이 있은 후 살해되었다. 이것은 고대인들의 관습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유다와 전쟁을하다가 큰 위험에 직면한 모압 왕의 이야기에서 잘 나타난다.\”이에 자기 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드린지라.\”(왕하 3:27). 이것은 또한 유대의 선지자 미가의물음 속에서도 암시되어 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야훼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느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야훼께서 천천의 수양이나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야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느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6-8),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이 이방인들이 그들의 우상과 귀신들에게 바치는 것만을 강한지 시험하셨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기적 같은 간섭으로 명령의 실행을 막아서 효과적으로 돌보셨다. 그리고 이삭 대신에 자신에게 바치도록 수양을 대용물로 보내셨다. \”야훼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활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22:11-13), 많은 사람들은 입다(삿 긴:36-39)가 처녀인 그의딸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맹세하였고, 그의 맹세는 하느님의 율법(레 27:28, 29)에 의한 의무 때문에 집행되어졌다고 생각해오고 있다. 나도 또한 한 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좀더 숙고 하다보면 때때로 나는 이러한 행위가 실수였고, 그의 맹세는그저 그의 딸을 하느님의 장막이나 그밖에 다른 곳에서 영원히처녀로서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게만 해도 지킨 것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율법은 인간을 제물로 드리는 어떠한 제사도 명하고 있지 않으며, 우리도 또한 이런 의미에서 시행된 어떠한 예도 찾아볼 수 없다. 요세푸스뿐 아니라 필로(Philo)도 그러한 율법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요세푸스는 입다가 그 같은 서원을 하고 시행한 것은 하느님의 율법에 순종한다는 것에서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율법에 거역하는 행동이었다고 그를맹렬히 비난하였다. \”입다의 봉헌은 율법 합치하는 것도, 하느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행동에 관하여 들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깊히 숙고해 보지 않은 행동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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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세푸스와 그의 견해를 따르는 대주교 어셔(Usher)에 의하면 이 당시에 이삭의 나이는 적어도 25살은 되었고, 그렇다면 당시의 아브라함은 125살이 된 노인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기 위하여 강제로 묶을 수는 없었을 테고, 오직 이삭 자신의 동의하에서만 묶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해 볼 수있다. 고난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자발적인 동의가 전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인다. 한편, 요세푸스뿐 아니라 클레멘트(St. Clem-ent)도 이 경우에 있어서 자유의지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래서 성 클레멘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삭은 자신이 알고있는 바가 실현될 것을 확실하게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을 기꺼이 제물로 바쳤다. \”

 요세푸스는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하느님의 명령을 가슴 아파하며 전해주었으며, 그로 하여금 인내와 즐거움으로 이 명령에 순종할 것을 열심히 권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삭은 매우 즐겁게 동의하였다\” 라고 말한다. 이삭은 짧지만 매우 경건하게 대답을 하고 순순히 순종하였다.

 요세푸스는 여기에 덧붙여 \”그는 즉시, 준비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 구축된 제단으로 나아갔다\” 입다(삿 11:36, 37)도 그의 딸이 동의한 후에야 경솔했던 그의 맹세를 실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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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기에 비록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가운데 만반의 준비를 다 했을 때까지라도 그는 이삭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간섭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이것은 제 삼일째 되는 날 하인에게 한 아브라함의 말에서 볼 수있는데, 그 날은 그의 아들 이삭을 드리기로 한 산이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날이 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우리가 즉 나와 아이가)너회에게 돌아오리라. \”또한 그의 아들에게 한 그의 대답에서도 그와 같은 기대를 엿볼 수 있다. 이삭이 그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를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하느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창 22 : 5, 7-8).

 이상과 같은 구절들이 아브라함이 그와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음을 엿보게 해주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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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컨대 아브라함은 만약 하느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정말 원하신다면 그 분은 분명히 다시 이삭을 살려내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미 인용된 창세기의 말씀인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와 히브리서 말씀인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더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느니라 하셨으니 저가 하느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생각한지라\”(히 11:17-19)가 확실한 증거가 된다. 뿐만 아니라 진리 자체라고 믿은 하느님께서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내가 너와 내 언약을세우리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 17:2, 4-6, I5, 16),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 21:12)라고거듭 약속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추호의 의심없이 그렇게믿었던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생각도 해 볼 수있다. 곧 이삭은 결혼 전이었고 또 자녀를 두기 전에 제물로바쳐져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이삭을 다시 살리셔야만 했던 것이다. 이것이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에서 언급된 신앙의 빛나는 실례였다. 만약 하느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도륵 하셨더라도, 히브리서 기자가 정확히 지적한 대로 하느님은 틀림없이 그리고 재빨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되,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히 11:19) 같이 해 주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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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께서 부활시키시리라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신뢰의 굳고 정확한 기초는 일반적인 하느님의 진실성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75세때 갈대아 혹은 메소보다미아에서 부르심을 받은 후(창 12 : 4), 가나안과 애굽과 같은 낯선 땅에서 살던 기간 동안 끊임없이 체험하였던 그를 향하신 특별하시고 친절하시며, 영광스런 하느님의 섭리의 끊임없는 체험에 있었던 것이다. 그의 나이 125세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생각을 뛰어 넘어선 축복으로 그에게 내리셔서, 그를 부유하게 하셨고, 그전에는 하갈을 통하여 첫아들 이스마엘을 주셨으며 후에는 \”자기 몸이 죽은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룹 4:19), \”사라 자신도 나이늙어 단산\” (히 11:11)하였으며, \”사라의 경수는 끊어진\”(창18:11) 상태에서 이삭을 약속하시고 주셨다. 그리고 50년의기간 동안에 그에게 한번 하신 약속은 아무리 이루어질성 싶지않은 것이라도 모두 이루어 주셨다. 그래서 그가 갈대아 혹은메소보다미아에서 처음 나왔을 때는 불신앙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었으나, 50년 동안에 끊임없이 한 경험에 의해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룹 5:20,21)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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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비록 하느님께서 이삭을 죽이도록 허락하셨다 할지라도, 반드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이 확신이 부활에 대한 약속이나 전망이 조금도 없는 거짓 신에게 바치는 다른 모든 인간의 제사 경우와 참되신 하느님께 이삭을 드리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크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아브라함의 순종 가운데 있는 모든 비인간적이고 잔인함의 요소와 하느님의 명령 가운데 있는 불법같이 보이는 요소를 제거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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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에게 내려진 이 명령과 이에 따르는 그 후의 모든 사건들은, 사랑하시는 독생자 곧 먼 훗날 나타나실 아브라함의 위대한 아들이시요 씨이며, 아브라함이 그 분의 때에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마침내 보고 기뻐한(요8:56) 하느님 아버지의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이삭 안에서 미리 전형적으로 상징하려는하느님의 의도로 볼 수 있다. 즉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예루살렘에서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을 상징하신것이 다 (행 2:22-32).

 그리고 그 사이에는 하느님께서 동일한 도시인 예루살렘에 서 수양이나 그밖의 동물 등을 제물로 받으실 것도 상징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적용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은 것들은 왜 아브라함이 굳이 모리아 땅 곧 예루살렘으로가야만 했는가를, 제물을 드리고 다시 돌아오는 날이 삼일째라고 즉 왜 삼일째였다(창 22:2, 4)라고 언급되었는가를, 또한 왜 제물로써 육신을 따라 난 이스마엘이 아닌 약속을 따라난 이삭이어야 했는가를, 당시에 이스마엘이 있었음에도 왜 이삭은 아브라함의 독생자(히 11:17)로 되어 있었는가를, 왜이삭 자신이 자기가 바쳐질 번제 나무를 지었는가를(창 22:6,요 19:17), 왜 장소로써 다른 곳이 아닌, 아마도 하느님의 영광(Shechinah)과 메시야가 나타났었고, 지금도 살아계신 메시야의 모형인 멜기세덱(아브라함이 제사 드릴 때 거기서 있었을 수도 있다)에 의해 하느님이 경배받으셨던 곳이라 여겨지는 모리아산 혹은 환상의 땅이어야 했는가를, 그리고 이 제사가 요세푸스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성전이 세워지고 모든 모세의 제사가 드려졌으며 메시야 자신이 제물로 드려졌던 갈보리 산의 바로 이웃 산인 모리아 산에서 드려졌는가를 잘 설명하여 준다. 또한 이것이 이삭 대신 수양이 대속 제물로 바쳐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들은 내게는 매우 특별하고 비상하게 보이는데, 왜냐하면 현재의 가정들을 명확히 가늠하게 하여 주는 상황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앞에서 인용하였듯이 성 클레멘트(St. Clement)가 \”이삭은 자신이 알고있는 바가 실현될 것을 확실하게 확신하고 있었고\” 그러므로 \”자신을 기꺼이 제물로 바쳤다\” 라고 한 것도 이러한 것을 의미한다. 이 장소의 명칭이 모세 시대까지 불리웠던 대로, \’하느님께서 보실 것이다\’ 또는 \’하느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다\’라는 뜻의 \’야훼 이레\’라고 아브라함에 의해서 명명되어진 것은, 사실 그 어떤 이유보다도 그 곳에서 때가 차면 하느님께서그 자신이 번제로 드릴 어린양(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요 1:29)을 준비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하신 것이었다.그러나 이에 대하여 여전히 다음과 같은 이의가 있을 수있다. 아무리 아브라함과 이삭의 상황이 특별하며, 특유의 상징적인 의미를 띠고 있고, 또 그래서 도저히 이방인들은 생각지도 못할 뜻이 들어 있다 해도,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은 이방인들에게는 매우나쁜 예로 작용해서 그들의 자녀들을 우상에 대한 제물로 바치는 악한 행위의 근거가 되거나 조정하는 경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고찰을 통하여 이에 답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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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것은 진실에서 멀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내리신 이 명령(사실 명령 자체는 이방인들에게는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이 보통하는 풍습과같았기 때문이다)과 이에 따른 실행을 공개적으로,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 막으신 것과 다른 대속 제물을 준비하신 사실을 즉각적으로 테드모시스(Tethmosis) 혹은 아모시스(Amosis)에 의해서 당시 이웃 국가이던 애굽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그와 같은 악한 제사들을 폐지시키게 하였고, 대신에 덜 악한 제사로 대치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 폐지의 시기가, 유명한 애굽의 역사가요 연대 학자인 마네토(Manetho)의 글을 인용 보존한 포피리(Porphyry)를 통해서 보면,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제물로 드리려던 시기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에 주목하라. 이글은 포피리(Porphyry)로부터 유세비우스(Eusebius)와 데오도렛(Theodoret)에 의해서 다시 인용되었다.

 포피리(Porphyry)는 말한다. \”아모시스(Amosis)는 애굽의헬리오폴리스(Heliopolis)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법을 폐지하였다. 이것은 마네토(Manetho)가 그의 저서인 \’고대성과 경건\'(Antiquity and Piety)에서 증거한다. 사람들은 주노(Juno)에게 바쳐졌는데, 그들은 마치 흠없는 송아지처럼 검사를 받고,도장이 찍혔다. 그리고 하루에 세명씩 바쳐졌다. 그러나 아모시스(Amosis)는 사람 대신에 같은 수의 밀랍 인형을 만들어 대신바치도록 명령하였다. \”

 나는 최근에 이 애굽인들이 아브라함을 깊이 존경했었고, 모세가 배웠던 모든 애굽인들의 지혜는 바로 아브라함으로부터 기인했음을 증명하였다. 이제 다음의 사실들이 앞의 인용문들에의해 다시금 명백해진다. 인간 제사를 폐지하고 대신에 밀랍 인형으로 대체시킨 첫번째의 장소는 특별히 애굽의 북동지역에 있는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였다 그런데 이곳은 아브라함이살았던 팔레스틴 남부의 브엘세바의 근접지역으로서 약 120마일 곧 하루 거리 정도가 떨어진 장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명령을 내린 테드모시스(Tethmosis) 또는 아모시스(Amosis)는 베니게 양치기들을 축출한 후 애굽의 첫 왕이 된 자였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테드모시스(Tethmosis) 또는 아모시스(Amosis)가 살았던 시기를 알아보고,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던시기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

 1721년에 간행된 나의 연대기표를 보면 아브라함이 125세, 즉이삭이 25세였던 때는 AM. 2573 혹은 테드모시스(Tethmosis)또는 아모시스(Amosis)의 25년간의 통치기간 중 중간 시기인13년째의 시기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인간 제물을 폐지시키고 대신 밀랍 인형으로 제물을 살은 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인간 제물에 대한 하느님의 엄숙한 금지령과대신에 수양을 바치도록 한 명령에 의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현대인들의 근거없는 의심을 제거해 준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명령이 인간을 제물로 드리는애굽인들의 야만성을 중지시키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후대에 가면서 많은 세대에 이러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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