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제24주일: 신자들의 단체활동

“신자들의 단체활동”
1. 유유상종(類類相從)
사람들은 여러 사람과 어울립니다. 그런데 어울리는 사람들인 ①내가 좋아 하는 사람 ②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③ 내가 필요한 사람 ④ 나를 좋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그런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 “고만고만한 사람”사람들이 모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합니다. 독수리가 참새와 놀지 않고, 참새가 독수리랑은 놀지 않습니다. 독수리가 닭장 안으로 들어가서 어릴 적부터 살게 되면 닭들을 독수리로 만들까요? 아니면 스스로 닭이라고 생각하게 될까요?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사람은 결국 같은 무리끼리 사귄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과 같지 않지만 내가 그들을 내 생각대로 바꾸기 위해 그들과 함께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비슷하니까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들을 바꾸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그들에 의해서 바뀌게 됩니다. 신앙인이 신앙가로, 독수리가 닭으로……,
그렇다면 내가 누구를 만나야 내 신앙이 커지고, 내가 누구를 만나면 신앙이 흐려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부족하다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나보다 열심한 사람을 찾아서 그와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신자단체
교회 안에는 많은 신자들의 단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든 단체들은 그 단체들에서 신앙과 도덕이 온전히 보전되도록 보살피고 교회의 규율에 남용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감시하며 따라서 법과 정관의 규범에 따라 단체들을 순시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는 교회의 관할권자의 감독에 예속된다.”(교회법 305조 1항)

신앙인의 단체는 보통 신심단체와 활동단체로 구분이 됩니다. 그런데 신심단체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대부분 잘 되는 활동단체는 신심단체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이 단체 활동을 하는 이유는 ①내 신앙을 키우기 위해서 ② 단체를 통해서 형제 자매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③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니라면 그 단체는 사회에서 말하는 “계(契)”가 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내가 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들어가고, 그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들어갑니다. 다단계를 하는 사람의 경우 신자들을 고객으로 삼기위해 신자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고, 마침내는 신자공동체를 깨버리게 됩니다. 그들은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드러납니다.

신앙인의 단체가 신앙을 키우지 못하고, 형식적인 모임에만 치중한다면 그것은 신앙인들의 단체가 아닙니다. 신앙가들의 단체입니다. 신앙가와 비신자는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일 수 있습니다.

3. 계(契)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계는 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사전에서는 계에 대한 풀이를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설명을 합니다. ①계가 깨지다. ②계 타고 집 판다 곗돈을 탔다고 마구 쓰다가 나중에는 집까지 팔아먹는다.
이 계에는 돈이 오고가기 때문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계를 통해서 여러모로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계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끼리 돈거래를 하는 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를 하다가 깨지면 사람 잃고, 돈 잃고, 신앙을 잃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경험을 통해서 신자들끼리는 돈 거래를 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본당 내에서 신자들이 계하다가 “떼먹고 도망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신자들은 신자들을 향해서 “어떻게 성당 다니는 사람들이 남의 돈을 떼먹고 도망갈 수가 있어? 성당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나보지?”하면서 조롱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전교는 어렵게 됩니다.

4. 신자단체의 “계모임”화
신앙인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활동하다가 어느 순간 그 모임이 사회의 계가 됩니다. 즉,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비신자들과 어울려서 함께 어울리는 것과, 신자들이 냉담자들과 함께 어울려서 노는 것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자들이 비신자들과 어울리는 것은 ① 함께 하는 사람들 ② 취미가 같은 사람들 ③ 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그들과 만날 때 “저 사람들을 어떻게 신앙으로 이끌어 줄까? 내가 어떻게 모범을 보여야 할까?”를 고민합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이 냉담자들과 만날 때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여러 관계에 의해서 그들을 만나게 되지만 신앙인들은 냉담자들 안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① 신앙생활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② 다니다가 좀 냉담해도 되나보구나. ③ 나도 힘든데 좀 쉬어 볼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동화되어 버립니다.

대부모와 대자녀가 만나는 것도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대부와 대자는 영적으로 맺어진 관계이니 신앙 안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기 위해서 하느님 앞에서 서로 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모는 대자녀를 신앙적으로 끌어주고, 대자녀는 대부모의 영적인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모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대자녀는 대부모와의 만남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이끌어 주기 위해서 그를 대부모로 삼고 본받으려고 하는 것이지, 사회에서 만나서 친교를 맺기 위해서 대부모로 삼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단체가 ①기도 안하고 ② 봉사안하고 ③ 전교 안 하면 그런 단체는 고려되어야 하고, 사목자에 의해 지속적으로 교육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관계가 형성되다보면 잘못된 것을 발견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계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목자의 지도를 간섭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가 속한 신심단체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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