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

 

아담과 하와의 죄: 원죄

(창세기 2,7-9;3,1-7)

안토니오 신부

살아가면서 한번쯤 그런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누구로부터 오는가?”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느님과 나는 어떤 관계인가?” 이 물음은, 우리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입니다. 오늘 독서는 창세기의 말씀으로써,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줍니다.



오늘 독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간 존재는 무엇인지?” “인간 존재와 하느님과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7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셨다는 것은, 인간 존재가 결국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른 여타의 피조물과 인간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는 하느님께서 불어 넣으신 “숨”에 있습니다. 즉 인간의 생명력이 하느님의 생명력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에덴이라고 하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는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을 하느님께서 몸소 마련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터전은, 인간이 살기에 무척 풍요롭고 좋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과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는 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서 “어떤”은 관련되는 대상이 특별히 제한되지 아니할 때 쓰는 말입니다. 제한된 것이 없기 때문에 사실은 “모든”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 뱀이 한 말은,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과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는 완전히 상반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유혹하는 자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는데…”라면서, 마치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인 양 포장을 해서 자신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뱀의 질문에 여인은,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실상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인용해 보면 이렇습니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6-17)”



여인은 하느님의 말씀이라면서,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먹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는 것”과 “먹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결국 여인도 역시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마치 하느님의 말씀인 양 포장을 하지만, 실상 자신의 말로 대답을 합니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자신의 말(뱀)에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말(여인)로 대꾸하자, 뱀은 자신이 목적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 합니다.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느님처럼 될 거라.”고. 그러니 “따서 먹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뱀의 말은, 하느님의 말씀과는 정 반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죽는다.(창세 2,17)”고. 그러니 “따 먹으면 안 된다.(창세 2,17)”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의 숨을 받아 살아 숨쉬는 존재이기에 이미 “하느님처럼 되어진 존재”였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뱀은, 하느님의 말씀과 정 반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완전히 뒤집어서 유혹을 합니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만약 하느님의 말씀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면, 그 열매를 보면서, “죽을까봐 두려운 마음”이 앞섰을 텐데, 여인이 보기에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이고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여인의 눈과 마음이 하느님의 말씀보다도 뱀의 유혹하는 말에 더 쏠려 있음이 드러납니다. 결국 여인은 뱀이 유혹하는 대로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건네줍니다.



뱀의 유혹이 여인에게, 그리고 여인의 선택이 남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나의 사건은,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열매를 먹음으로써 눈이 열렸다는 것은, 그 열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얻은 지혜(슬기)는, 다름 아니라 자신들이 알몸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신을 가리고 숨겨야 할 만큼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자신을 가리느라 정신이 없게 됩니다.



하느님처럼 되기를 갈망하며 모험을 감행하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하느님과 완전히 다른 존재(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어 버립니다.



오늘 독서를 통해서 보는 것처럼, 유혹하는 이도 그렇고, 그에 반응하는 이도 그렇고, 자신의 말(뜻)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표방할 때, 그것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참여 혹은 연대성”라고 하는 문제를 도외시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가치인 “진리, 자유, 정의, 생명”과는 전혀 무관한 순전히 정치적인 문제를, 경제적인 문제를, 학문적인 문제를, 대사회적인 문제를, 마치 하느님의 말씀인 양 포장을 하여 자신의 말을 한다면, 그것 역시 하느님의 말씀인 양 포장하여 자신의 말을 했던 유혹자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표방하여 자신의 말을 했던 여인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우리들 자신은 그런 모습을 취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성찰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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