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
(마태4,1-12)
미사 웹진 편집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유혹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나는 늘 유혹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달콤한 사탄의 유혹을 선택할 것인지, 하느님을 선택할 것인지. 하지만 그 달콤한 유혹도 선택 후 막상 지나가 보면 절망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유혹을 당하십니다. 이 세 가지 유혹은 내가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를 알아보면서, 나 또한 내게 밀려오는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1. 빵에 대한 유혹: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예수님께서는 3년간의 공생활을 준비하시기 위해 광야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40일간 단식을 하시며 기도하시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악마는 예수님의 계획을 망치려고 합니다. 악마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라고 유혹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을 빵으로 만들어서 드실 계획이 있으셨다면 차라리 단식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악마는 예수님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인가? 이 메시아는 하느님의 아드님인가? 또 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악마는 “하느님의 아드님만이 할 수 있는 기적을 하도록 시켜보자. 그리고 그것을 행한다면 자신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과의 신뢰가 깨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명을 역행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분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먼저 악마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증거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아들인데,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한다 해서 내가 증거를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유전자 검사를 해야만 되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증명 그 자체가 죄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 생애를 아버지의 섭리와 뜻에 맡겨야 함을 확신하셨고 갈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굶주림에 대해서도 아버지의 사랑에 맡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표현으로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십 일을 단식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와 사랑 안에 머물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내 육신을 채워주는 빵에만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런 유혹을 당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신앙이 밥 먹여 주냐?”하고 하느님을 등지지는 않았을까요?
2. 명예에 대한 유혹: 성전 아래로 몸을 던져 보시오
악마는 예수님을 거룩한 도시로 모시고 갑니다. 이 높은 탑 아래에는 성전의 광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광장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악마는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몸을 던지시오.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 군중 속으로 뛰어 내려 보시오! 그리고 ‘그대들을 로마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실 그리스도, 구세주는 나다!’ 하고 그들에게 외쳐 보시오. 그들은 환호하며 당신을 환영할거요. 또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당신을 시중들게 하시지 않겠소? 성경에도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하시지 않았소? 그러니, 자! 뛰어 내려 보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강제로 회개시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세상의 권력을 가지고 세상의 임금들이 그러하듯이 힘으로 평화를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모욕과 고통과 죽음을 통하여 세상 모든 이들을 죄의 종살이에서 속량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임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하고 단호하게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신명6,16)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인용한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가르쳐주십니다. 사람 편에서 하느님께 억지로 기적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인간이 하느님께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이들은 결코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결코 하느님을 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하느님을 떠보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탄의 모습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이것을 해 주신다면 제가 믿겠습니다.”라는 기도가 바로 악마가 예수님께 했던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재물에 대한 유혹: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시오.
악마는 한편의 영화를 보여주듯 그렇게 세상을 보여주며 유혹을 합니다.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언제나 써먹는 유혹이요 거짓말입니다. 악마는 이런 약속을 실행할 힘이 없습니다. 악마는 아담과 하와에게도 그렇게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만들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악마는 자기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감히 예수님께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제 부하로 삼아 보겠다는 이 무모한 악마의 계획을 보면, 그가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님의 참된 신비를 몰랐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만일 악마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참으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에게 경배하라. 그러면 세상 모든 것들을 주겠다.”고 유혹할 용기를 내지 못 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계획조차 떠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끔 뉴스에 부동산 업자들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마치 거대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여 사기를 치고, 그것에 현혹한 투자자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즉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듯하여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유혹은 유혹일 뿐임을 명심하며, 내 것이 아닌 것에는 관심 기울이지 말고, 헛된 것에 욕심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대신 악마에게 절하라는 유혹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하지만 나는 얼마나 많이 그 유혹에 넘어가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말 못하고 얼마나 많은 절을 올리고 있습니까?
하느님 대신에 악마에게 절하는 것. 이것은 큰 죄입니다.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악마를 섬기는 사람들의 종말을 우리는 종종 목격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 있음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악마는 완패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완승을 올리고 있습니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께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있도록 예수님의 모범을 본받아 유혹을 물리칩시다.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단호하게 “사탄아 물러라가.”라고 하든지, 요셉이 포티파르의 아내의 유혹에서 “냅다 튀든지.”하지만 예수님처럼 단호하기는 쉽지 않으니 유혹이 밀려올 때, “냅다 튀는” 연습을 많이 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