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16주일, 농민주일

 

물통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물통을 판자를 여러 쪽 모아 통을 짜는데 그 크기가 다르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물을 열심히 붓는다 하더라도 물은 낮은 판자까지만 차고 절대로 더 높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사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는 농촌 사람들이랑은 상관이 없으니 수입이든 뭐든 편하고 값이 싸고 좋은 것을 먹자.” “나는 농촌사람이니 내 것에만 농약 안치면 되고 이걸 먹는 사람이야 죽던 말든 비싼 값에 팔기위해서 보기 좋게 만들자.”그렇게 크고 작게 통을 짠다면 결국 사회라는 통에 고인 생명이라는 물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하면 결국 보잘 것 없는 사회가 되고 맙니다.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사는 이야기”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일 중에서 창조적인 것은 농업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업은 있는 물건 팔고 사는 거니까 말할 것도 없지만, 공업도 있는 것을 가지고 모양과 용도만 바꾸는 거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것과 같이 농사도 아무것도 없는데서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니 농사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것들의 가치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즉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파괴사업에 열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농사를 짓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병충해, 가뭄, 비바람도 막아야 하지만, 이젠 외국 농산물까지 막아야 하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논과 밭만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세상의 틀이 잘못되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농민들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곡식이 제대로 자라는 데 질소, 인산, 칼리의 세 요소가 필요하듯 농민이 제대로 된 온전한 농민이  땅도 갈고 자기 스스로도 갈고 세상도 갈아야 합니다. 줄기 자라는 질소만 듬뿍 주고 뿌리 튼튼히 뻗는 인산과 열매 충실히 맺는 칼리를 주지 않으면 결국 벼는 쭉정이만 달리게 됩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쪽만을 바라보고 다른 한쪽을 강조한다면 우리 사회는 빈 물통과 쭉정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해보며, 세상 사람들이 물통의 법칙을 떠 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하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農者天下之愚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깜씨 이야기

 


깜씨는 성당에서 복사를 열심히 하였고, 다른 친구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평일미사도 열심히 나왔고, 어른들께도 인사를 참 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깜씨를 유혹하는 곰탱이를 만나게 됩니다. 이 곰탱이는 깜씨를 유혹했습니다.



“깜씨! 지금은 시험기간이잖아. 오늘은 학원가서 공부를 하자!”



“안돼! 오늘 학생미사 가야 한단 말야!”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중요하지. 그리고 빠졌다고 고백성사 보면 되잖아!”



그렇게 곰탱이는 깜씨에게 “가라지”를 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깜씨는 부모님께서는 성당에 갔다 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부모님께서도 성당 갔다 왔는지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시험이 끝난 토요일! 깜씨는 성당에 가려고 하는데 곰탱이가 또 깜씨를 유혹했습니다.



“깜씨! 오늘 시험 끝났는데 게임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좀 풀면 어떨까?”



“아냐! 지난주에도 성당 빠졌는데 오늘은 꼭 가야 해!”



“깜씨야! 성당 가봤자 복음나누기나 하고, 미사 하잖아. 또 미사시간에 헌금도 해야 하고. 게임방에서 게임하다가 미사 끝나는 시간에 맞춰 들어가면 헌금 안 해도 되잖아. 그리고 성당에는 갔으니까 너희 엄마도 모르실거야!”



깜씨는 그렇게 곰탱이의 손에 이끌려 게임방으로 갔고, 미사가 끝날 무렵에 성당 뒷자리로 들어와서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집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깜씨의 마음에는 가라지가 자랐습니다.

……,



지금은 가끔 성당에 나오지만 그의 얼굴에서 신앙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미사 시간에는 지겨워하고, 고개 숙이고, 기도문을 외우지도 않고, 성가를 부르지도 않습니다. 전에는 복사를 열심히 했던 깜씨인데 말입니다. 그 깜씨는 어떻게 될까요? 하느님 앞에 그렇게 서게 된다면 어떤 말씀을 들을까요?



사람을 유혹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의 밭에 가라지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유혹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가라지에게 거름을 듬뿍 듬뿍 주는 사람과 같습니다.



혹시 나는 깜씨가 아닙니까?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깜씨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가라지를 뿌리는 사람은 아닙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가해 11-20주일, 연중시기(가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