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통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물통을 판자를 여러 쪽 모아 통을 짜는데 그 크기가 다르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물을 열심히 붓는다 하더라도 물은 낮은 판자까지만 차고 절대로 더 높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사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는 농촌 사람들이랑은 상관이 없으니 수입이든 뭐든 편하고 값이 싸고 좋은 것을 먹자.” “나는 농촌사람이니 내 것에만 농약 안치면 되고 이걸 먹는 사람이야 죽던 말든 비싼 값에 팔기위해서 보기 좋게 만들자.”그렇게 크고 작게 통을 짠다면 결국 사회라는 통에 고인 생명이라는 물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하면 결국 보잘 것 없는 사회가 되고 맙니다.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사는 이야기”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일 중에서 창조적인 것은 농업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업은 있는 물건 팔고 사는 거니까 말할 것도 없지만, 공업도 있는 것을 가지고 모양과 용도만 바꾸는 거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것과 같이 농사도 아무것도 없는데서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니 농사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것들의 가치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즉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파괴사업에 열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농사를 짓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병충해, 가뭄, 비바람도 막아야 하지만, 이젠 외국 농산물까지 막아야 하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논과 밭만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세상의 틀이 잘못되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농민들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곡식이 제대로 자라는 데 질소, 인산, 칼리의 세 요소가 필요하듯 농민이 제대로 된 온전한 농민이 땅도 갈고 자기 스스로도 갈고 세상도 갈아야 합니다. 줄기 자라는 질소만 듬뿍 주고 뿌리 튼튼히 뻗는 인산과 열매 충실히 맺는 칼리를 주지 않으면 결국 벼는 쭉정이만 달리게 됩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쪽만을 바라보고 다른 한쪽을 강조한다면 우리 사회는 빈 물통과 쭉정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해보며, 세상 사람들이 물통의 법칙을 떠 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하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農者天下之愚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