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27주일;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저자는 상속자다. ! 저자를 죽이자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통해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악의를 품고 있는 유다인들을 향하여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포도밭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종들은 예언자들이며, 아들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소작인들은 포도밭 주인을 인정하지 않고(하느님을 경배하지 않고), 도조를 내기 싫어하는(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을 싫어하는) 유다인들 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심판을 받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에 따른 벌이 주어집니다. 살인자 소작인들은 벌을 받게 되고, 포도원은 다른 충실한 소작인의 손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 나라는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리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 돌(예수님) 밑에 깔리는 사람(죄인으로 단정 받는 사람)은 가루가 되고 말 것입니다(지옥에 떨어져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소작료(찬미와 감사와 영광)를 드려야 합니다. 불의한 마음을 품지 않고, 하느님의 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 삶 안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고 생활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나의 삶의 중심에서 나를 이끄시어 행복에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1. 소작료를 요구하는 주인

어떤 밭 임자는 바로 하느님이시고, 포도밭은 세상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인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유의지라는 크나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제 알아서 하기를 바라십니다. 물론 책임은 내가져야 합니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주인은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습니다. 포도 철은 바로 결실을 맺는 시기이고, 주인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시기입니다. 주인은 당연히 받을 권한이 있고, 소작인들은 당연히 소작료를 바칠 의무가 있습니다. 종들은 몇 세기를 지나는 동안에 차례차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진 예언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도조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 억만금을 바치라는 말씀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적어도 포도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감사하고, 그것을 혼자만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쳐야 할 도조는 바로 그것입니다.

 

2. 소작료를 거부하는 소작인들

매질과 살인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소작인들은 도조를 낼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주인이 보낸 종들을 매질하고, 더 나아가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도조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사람들이 그 도조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을 보내어 도조(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오히려 종(예언자들)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아들)까지 보내신 것입니다.

 

반복되는 매질과 살인

소작인들이 종에 대한 태도는 상식 밖의 일입니다. 이 세상에 땅 주인의 종을 이처럼 잔인하게 다룰 소작인은 없습니다(예전에 공산당들이 그랬던가요?). 그런데 종들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이라면 당연히 못된 종들을 응징할 수 있는 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들이 이스라엘 예언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주인이 복수를 안 하셨는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기회를 주셨습니다. 돌아오기만을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소작인들()이 예언자들을 박해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들(예언자들)도 참 불쌍해 보입니다. 박해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께서 전하라고 하시니 가서 전하는 그들의 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어떻습니까? 신자들한테 가기 귀찮아서 주저앉아 있고, 누가 성당에 나오지 않아도 관심도 없고…, 그래도 돌로 쳐 죽이지는 않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 종(예언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힘내서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아들을 보내는 주인

이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아들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종들의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아들까지도 보냈습니다. 런데 이 주인에게는 자기 아들의 목숨보다도 밭의 도조가 더 중요했을까요? 아들보다도 밭에다 더 애정을 쏟았던 것일까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바라본다면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주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도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을 죽이는 소작인들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라고 저희끼리 모의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붙잡아 죽여 버렸습니다.

 

빛을 싫어하는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자꾸만 어둠 속으로만 들어가려 하고, 빛을 꺼 버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유다인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기회를 주십니다. 이제 내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하고 응답하고 구원의 길을 걷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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