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대림 제 2주일

세례자 요한처럼

대림시기는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기이고, 그 노력을 통해 신앙인들의 삶이 언제나 주님께로 향하게 만드는 자세를 형성하는 시기입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삶을 살아가면서, 회개를 선포하고, 오시는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광야는 아무도 없는 곳, 버려진 곳이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이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뿐만 아니라 생활의 개선, 마음의 개선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는 미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 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선포했습니다.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통해 신앙인들은 정신을 번쩍 차려야 하며, 요한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하여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나는 내 삶을 의롭게 바꾸어야 합니다. 참된 회개의 삶으로, 겸손하게 섬기는 삶으로,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는 삶으로 바꾸어 의로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소아시아의 관습에 따르면 위대한 인물이 올 때에는 특별히 그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한 전령이 일행에 앞서서, 사막의 길을 닦고 작은 길을 평평하게 고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것은 바빌론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히브리인의 기쁨을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소리는 온 세상의 구원을 알리는 기쁨의 소리로 바뀌게 됩니다. 인간의 참된 해방은 죄의 종살이에서의 해방이고, 그 행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또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왕의 행차 길을 준비하도록 촉구하였는데, 요한은 온 세상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선포하였고, 그 맞이할 준비는 회개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를 미리 알리는 선구자로서 사람들을 회개시켜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바로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메시아의 사자입니다. 그리고 길을 곧게 낸다는 것은 굽어 있다는 것입니다. 굽어 있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있어서 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의 끊임없는 변덕과 나약함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삶을 통하여 굽은 마음을 곧게 피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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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대림 제 2주일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메시아를 기다리는 삶의 자세

    대림시기는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기이고, 그 노력을 통해 신앙인들의 삶이 언제나 주님께로 향하게 만드는 자세를 형성하는 시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삶을 살아가면서, 회개를 선포하고, 오시는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1. 세례자 요한의 외침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통해 신앙인들은 정신을 번쩍 차려야 하며, 요한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하여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 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 곧 예수님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선포하고 있습니까? 내 모습은 내가 선포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까?

     

    이사야 예언자는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마르1,2)라고 예고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원래 유배지에서 귀환하던 사람들에게 건네졌던 메시지인데, 이 메시지가 예수님께 새롭게 해석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바빌론에서 구해 내어 고국으로 인도하시면서 앞장서서 행진하셨습니다. 그 길은 광야로 나 있었는데,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유배에서 해방된 기쁨을 알리는 소리였으며, 이제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실 메시아의 오심을 선포하는 곳입니다. 엘리야는 메시아의 길을 미리 준비하는 사자이고, 세례자 요한은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길을 미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왕의 행차 길을 준비하도록 촉구하였는데, 요한은 회개의 삶을 통하여 온 세상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를 미리 알리는 선구자로서 사람들을 회개시켜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바로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메시아의 사자입니다.

     

    소아시아의 관습에 따르면 위대한 인물이 행차할 때는 특별히 그 길을 준비합니다.“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르1,3)는 말씀처럼 한 전령(사자)이 일행에 앞서서, 사막의 길을 닦고 작은 길을 평평하게 고르라고 외칩니다.

    요한은 그 해방을 위하여 오시는 예수님을 알리는 사자였으며 사람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며, 굽은 마음을 곧게 잡아 주는 사명을 띠고 있었습니다. 곧게 낸다는 것은 굽어 있는 것을 곧게 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굽어 있는 인간의 마음을 곧게 펴서 주님께로 향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굽어있는 마음이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마음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아닙니다. 그 모습 안에는 자신도 모르는 여러 가지 변덕과 불신, 교만 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척 하긴 하지만 돌아서면 다른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다양한 욕망들이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고, 주님을 등지게 만들며,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삶은 굽어 있는 마음을 곧게 펴고, 변덕과 불신을 몰아내며 겸손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마르1,4)를 선포하였습니다. 광야는 아무도 없는 곳이고 버려진 곳이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회개하라는 요한의 외침에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마르1,5)

    예루살렘은 어떤 형태로든 메시아 운동에 관련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의 선포에 대한 소문을 넓게 전파한 것도 예루살렘 사람들이었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점점 온 유다로, 곧 팔레스티나로 퍼져 갔습니다.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요한에게 와서 자기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레위기의 규정에 따라서 유다인들은 세례를 깨끗이 씻어 주는 수단, 또는 고행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요르단 강물에 몸을 담금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이 세례는 죄 고백과 함께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회개하겠다는 결심을 드러내는 표시였습니다. 동시에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용서를 보증하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요한의 세례는 다가올 심판을 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뿐만 아니라 삶의 변화와 주님을 향한 마음의 변화를 당연히 포함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회개를 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활에서 돌아서는 것이 바로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 온 마음을 다해서 돌아서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하느님 앞에서 걸으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참된 회개의 삶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것을 선포하였고, 사람들은 이 선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이 회개는 미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실한 회개와 함께 생활 태도도 참되게 바꾸는 삶은 주님의 길을 잘 준비하는 삶이고, 하느님 백성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세례를 받았는데, 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고해성사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하라는 외침에 대한 올바른 응답입니다. 또한 형제자매의 따뜻한 권고나 아름다운 삶으로, 사제의 훈화나 강론으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회개의 메시지가 나에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면서, 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바꾸는 것이 바로 대림시기에 요청되는 삶임을 명심합시다.

     

    세례자 요한은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지금 나는 여기에서 듣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이 대림시기에 내 삶을 더욱 의롭게 변화시켜 봅시다.

  2. 관리자 님의 말:

    형제자매들의 권리

    우리 모두는 하느님 백성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고,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평화롭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 주는 곳, 그곳이 바로 하느님께서 계신 곳 아니겠습니까? 그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 아니겠습니까?

    만군의 주님 당신의 거처가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시편84,2)

     

    우리 모두에게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권리만 더 큰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권리도 내 권리만큼 똑같이 큽니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시작해서 젊은이, 노인, 더 나아가 이제 나이가 들어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이에게까지 똑같은 가치와 똑같은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권리는 뺏을 수도 없고, 빼앗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인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인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은 존엄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자녀인 우리가 존엄하게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바로 자유권과 평등권입니다. 그리고 이 자유권과 평등권은 신앙공동체 안에서 보장되어야 하고, 펼쳐져야 합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완전한 자유권과 평등권을 누리는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은 바로 이것입니다.

     

    행복합니다, 당신의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늘 당신을 찬양하리니. 행복합니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을 생각할 때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시편84,5-6)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자유와 평등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형제자매들을 섬기며,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유는 나만의 자유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자유이며, 이 평등은 나만의 평등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평등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 안에서는 배려와 존중이 반드시 따라와야 하고, 섬김과 봉사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 자녀인 우리들은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하느님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들의 권리요 의무입니다.

    나의 권리와 나의 자유, 나의 존엄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 모두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의 권리와 우리 모두의 자유, 우리 모두의 존엄과 평등만을 생각하는 사람들뿐입니다.

    인권주일을 맞이하여 형제자매들의 인권을 더욱 귀하게 여기며,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섬길 것인지,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배려할 것인지를 깊이 있게 고민해 봅시다. 그렇게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립시다.

    만군의 주님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시편84,13)

  3. 관리자 님의 말:

    과달루페의 성모님

    후안디에고는 1474년에 쿠아토아친(인디언 이름으로 말하는 독수리라는 뜻) 이름으로 쿠아우틀리트란(현재 멕시코시티 일부)에서 태어났습니다. 50살이 되던 해,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초기에 파견한 신부였던 피터 다간드 신부로 부터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된 후안디에고는 1531129일에 멕시코시티 끝자락에 있는 테페약 언덕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게 됩니다.

    1531129일 이른 아침,아침 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자신의 집에서 수 킬로 떨어진 수도회 성당으로 걸어가고 있던 후안 디에고는 테페약 언덕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체험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찬란한 빛이 무릎 위를 비추고 있었으며 천상의 음악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부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부인은 후안의 이름을 부르며 후안이 사용하던 인디언 언어인 나후탈(Nahuatl)어 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들아, 내가 평생 동정녀이며, 아니 계신 곳이 없이 곳곳에 계신 천상천하의 주인이시며 만물의 창조주로서 생명의 창조주이신 참 하느님의 어머니로 알려지기를 원한다. 나는 너와 네 모든 민족에게 자애로운 내 사랑을 베풀어주며, 나에게 정성을 다하며 어려울 때에 나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따뜻한 동정심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 그러니 주교관에 찾아가 내가 너에게 말한 바를 주교에게 알려라. 이 자리에 나를 공경하기 위한 성당을 짓기를 원하는 나의 소망을 전하여라.”

     

    놀란 후안디에고는 성모님으로 부터 받은 메시지를 당시 이 지역의 주교였던 주마라가주교님께 전하였습니다. 주마라가 주교는 인디언인 후안디에고의 말은 모두 듣기는 하였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후안 디에고는 주교관을 나오며 주교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는 생각하였습니다. 주교의 반응에 실망한 후안디에고는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던 언덕으로 다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성모님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지극히 사랑하올 여왕이시며, 존귀하올 부인이시여, 당신이 명하신 대로 모두 했습니다. 하지만 주교님은 저를 안 믿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교님이 저에게 돌아가 있으면 시간을 갖고 이 문제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검토해 볼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교님은 성모님께서 성당을 짓기를 원하신 다는 것이 제가 꾸며낸 것이거나 환상일 것이며,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께 청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좀 더 고귀하고 훌륭한 사람을 보내셔야겠습니다. 저는 너무나 천하고 가난한 촌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일에 합당한 자가 아닙니다. 여왕이신 성모님, 저의 경솔함과 거칠음을 용서하십시오. 만일 어떤 면에서 제가 성모님의 위대함에 얼마나 인정받을 만한 점이 있다 해도 저는 저의 잘못으로 성모님께 실망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자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바로 언덕 위로 올라가거라. 너는 거기에 장미꽃이 만발하여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너의 틸마(망토) 위에 담을 수 있는 대로 장미를 모아가지고 내게로 가지고 오너라.”

     

    그 곳은 언제나 돌투성이에 가시 돗힌 선인장만 무성한 곳이었기에, 후안은 성모님의 말씀에 의아했지만 시키는 대로 바위 언덕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엔 전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장미꽃들이 후안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후안은 성모님의 지시대로 자신의 망토를 벋어 그 위에 한 가득 장미꽃을 담아 성모님께 돌아왔습니다. 성모님은 그 꽃들을 가지런히 옷자락에 놓아주시고는 주교에게 가지고 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모님으로 부터 증표를 얻은 후안은 기쁨에 겨워 망토를 감싸 안고 주교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주마라가 주교는 성모님께서 자신에게 증표를 꼭 보여 주기를 청하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후안디에고는 주교 앞으로 가서 자신의 망토안의 장미꽃들을 마루 위에 쏟아 부었습니다. 주교님은 후안이 멕시코시티 인근에서 볼 수 없는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에서 나는 장미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장미를 담아온 후안의 망토(틸마)에 귀부인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망토에 성모님의 모습이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의 발현을 통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후안디에고의 삶은 변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심장을 태양신에게 바치던 그들도 변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변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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