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세례자 요한 대축일;세례자 요한의 탄생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오늘을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파견된 엘리야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랬기에 하느님께서는 아이 못 낳는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에게 큰 은총을 베푸시어 늦은 나이에도 아이를 가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세례자 요한)를 특별히 부르시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탄생은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생명의 탄생에 감사하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을 눈으로 볼 수 있어야 만이 하느님의 은총 앞에서 겸손할 수 있습니다. 즈카르야의 이웃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을 알지 못했기에 자기들 마음대로 이름을 지으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볼 눈이 있을 때 교만하지 않을 수 있으며, 볼 눈이 있을 때 상대방을 존중해 줄 수 있습니다.

 

1. 기뻐하는 사람들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엘리사벳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늦은 나이에도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인이 아이를 낳았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클까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기쁨 이 아닐까요? 엘리사벳은 이웃과 친척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또한 아이의 탄생을 기뻐한다면 그가 전하는 메시지도 기뻐해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뻐하는 이라면 세례자 요한이 전한 메시지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굳게 믿으며, 예수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2. 아기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부르려는 사람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아버지의 역할이었고, 그 아버지가 말을 못하면 당연히 어머니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부모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려 하는지, 더 나아가 아이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어 주려고 하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말을 못하니 주변 사람들이 “북 치고 장구 치고” 제 맘대로 하려는 것 같습니다.

 

엘리사벳은 아기 이름이 요한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어머니가 아기 이름을 짓는 것은 아버지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을 했고, 자신들이 지어준 이름이 선택되지 않으니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습니다. 아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지어주려 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모르기에 벙어리 즈카르야를 붙들고 “아기 이름을 무엇으로 할꺼여?”하고 손짓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엘리사벳을 무시하는 행위이고, 즈카르야를 제멋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이 상황을 바라보면서 문득 간섭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 일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기 멋대로 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권위를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그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존중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3. 아기 이름은 요한

즈카르야는 답답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씁니다. 천사가 일러준 이름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부이며,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은 엘리사벳과 즈카르야.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입니다.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고 쓰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을 때, 즈카르야는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루카1,18) 라고 말했고, 천사는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루카1,19-20)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즈카르야는 지금까지 벙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의심했던 즈카르야가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실현했을 때야 비로소 벌로 받게 된 것이 풀리게 됩니다. 즈카르야는 그동안 말을 못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그러나 하느님께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그래서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찬양이었습니다.

 

 

3. 놀라운 일

벙어리였다가 “아기 이름은 요한”이라고 글 쓰는 판에 적은 후에 입이 열려 하느님을 찬미하는 즈카르야를 본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줄도 모르고 아기 이름을 이래라 저래라 하고, 나이들었다고 벙어리라고 무시하던 자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즈카르야는 자신이 성소에서 받은 천사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믿지 않았기에 자신이 벙어리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이야기 해 주면서 이웃 사람들의 부족함과 무시를 탓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이 일은 유다 산악 지방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언제나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소문을 들은 이들도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하며 궁금해 합니다.

 

신앙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저희를 이끄시어 은총 주시는 하느님은 찬미를 받으소서.”라는 감사와 찬미이어야 합니다. 판단하고 비난하고 이간질시키며, 상처를 입히고 모함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말들은 잊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하느님 앞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 가능해집니다. 처음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자신의 처지나 상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고, 그래야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4. 자기 길을 준비하는 요한

한 아기가 태어나 “요한”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부모와 이웃들 모두에게는 놀라운 일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감탄하며 하느님의 이끄심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합니다. 나 또한 태어나 이름을 받았습니다.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를 받았고,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나 또한 하느님의 일을 통해 내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보여주며, 그들을 하느님께로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요한은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입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라고 전해줍니다. 그렇게 굳은 정신은 올바른 믿음을 가지게 하고, 올바른 믿음은 자신의 변화된 삶을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요한은 그렇게 엘리야의 사명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렇게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 군중 앞에 나타날 때까지 요한은 광야에서 자신의 삶을 준비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그렇게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요한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습니다.

5. 묵상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뻐하는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마음이 되어 봅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엘리사벳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되었고, 오늘 아이를 낳아 할례를 베풀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말을 못하게 되었던 즈카르야는 입이 풀려 말을 하게 되었고,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마음이 되어 이들의 기쁨을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또한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동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뻐하면서도 그들이 아이의 이름을 지으려고 하고,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권리를 침해하며,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혹시 나도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을 대할 때, 눈이 멀어서 이들처럼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사명을 수행할 준비를 광야에서 합니다. 나는 내 사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11-2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나해 세례자 요한 대축일;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즈카르야의 노래

    성령으로 가득 찬 즈카르야는 예언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무일도로 아침기도를 바칠 대 부르는 즈카르야의 노래입니다. 즈카르야는 먼저 이스라엘을 구하시려고 메시아를 보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즈카르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메시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찾아와 속량하시는 것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루카1,68)

     

    찾아와 속량하신다는 것은 그분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을 속량시킬 것임을 미리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을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루카1,69)

     

    외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힘센 구원자이십니다. 힘센 구원자는 구원하실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즈카르야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능력 있는 구세주, 메시아를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대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루카1,70-71)

    즈카르야는 하느님께서 약속에 충실하신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란 말은 다윗 이후를 말합니다. 예언자를 거룩한 자라고 부른 것은 그들이 하느님께 축성되었고, 그 사명을 받았으며,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원수에게서, 미워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구해내실 수 있는 메시아를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자의 손에서, 하느님 나라의 확장에 대항하는 악인의 손에서, 죄인의 으뜸인 악마에게서 구해 주시려고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메시아를 보내 주심으로써 조상에게도 자비를 보여 주셨습니다. 닫혔던 하늘의 문이 열려서 이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창세15,18,22,16-18)과 하신 약속을 다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루카1,72-75)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땅을 약속하셨고, 당신 백성에게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즈카르야는 아들 요한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루카1,76-77)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비를 펼치시어 이 세상에 당신 구원 계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하시려고 합니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1,78-79)

     

    하느님의 크신 자비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입니다. 죄의 종살이를 하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외아드님을 보내십니다. 높은 곳은 하늘을 말하고, 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은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목말라하는 인간 세상에 구원을 빛을 비추시어 구원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메시아께서는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 평화는 생명이고 구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즈카르야가 예언한 대로 그렇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요한을 돌보아 주셨고, 요한은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습니다. 그렇기에 부르심 받은 사람으로서의 자세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알았고, 자신의 사명을 수행할 것입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루카1,80)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만 그곳에는 세상적인 것들의 유혹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불리 울 것입니다.

     

     

  2. 관리자 님의 말: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세례자 요한의 부모님들은 성덕으로 이름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마르1,6)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였고, 그의 어머니의 선조는 첫 대사제인 아론이었습니다. 당시 사제는 반드시 사제의 딸과 결혼해야만 했고, 유대인들에게 있어 사제직은 친자식에게만 이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든 사제들이 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제들은 팔레스티나의 여러 고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되면 성전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제관들은 24조로 나뉘어 한 주간씩 돌아가며 성전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아비야 조는 여덟째 조(1역대24,1-19)입니다. 예수님시대에 그렇게 성전에서 봉사하던 제관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이만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루카1,8-9)

     

    성소는 사제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고, 백성들은 바깥에서 기도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제라 할지라도 제비를 뽑아 당첨된 사람만이 그 안에 들어가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거룩한 예식을 거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성전에서 당신 백성 가까이에 계시지만 하느님 가까이 나아가는 일은 하느님께서 친히 선택하시어 제비뽑기를 통하여 부르시는 사람들에게만 맡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에서는 매일 아침과 오후에 두 차례 정기적 제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각 조마다 제관이 수백 명에 달했기 때문에 제관 대부분은 그냥 참관만 하고, 제비를 뽑아 당첨된 제관들만이 제례를 주관했습니다. 어린양을 잡아 번제를 바칠 제관, 기름으로 반죽한 밀가루와 포도주를 바칠 제관, 분향할 제관, 촛대를 보살필 제관을 추첨으로 선발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제례 가운데 분향을 가장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만일 어느 제관이 당첨되어 한번 분향했으면 자기 조의 제관이 모두 분향할 때까지는 분향 제비를 뽑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제관들은 일생 단 한 번만이라도 분향하는 일을 더없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루카1,10)

     

    분향은 기도의 상징이고(시편 141,2 참조), 하느님을 향해 자신을 태워 버리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즈카르야는 분향을 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있었고, 성소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즈카르야가 거룩한 장소에서 거룩하게 기도할 때 거룩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 기쁜 소식이 하늘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서 있었다고 전해주는데, 오른쪽은 구원을 의미합니다(마태오 25,33-34).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느님은 전적으로 인간과는 다른 분이시고,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게다가 성소라는 지극히 거룩한 곳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천사를 만나게 되니 당연히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인간 앞에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시니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1,13-17)

     

    첫째, 두려워하지 말라.

    성경에서 보면 하느님의 천사가 인간에게 말을 건넬 때면 언제나 용기를 북돋우는,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두려움을 갖게 하기 위해서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짓누르려 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힘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려 하십니다.

     

    둘째, 아들을 낳을 것이다.

    즈카르야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아이를 얻기를 소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고 말씀하시면서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고 전해줍니다. 즈카르야의 기도가 받아들여 진 것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그 아기의 이름을 지어 주시고 아울러 그 아기에게 사명을 내려 주시며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셋째, 요한의 탄생을 많은 이가 기뻐할 것이다.

    요한의 탄생을 기뻐할 사람은 부모만이 아닙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이들,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들도 요한의 탄생을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원역사 안에서 엘리야로서의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다른 예언자들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구원이 오기를 고대하였을 뿐이지만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나라와 구원이 다가왔음을 선포하였고(루카 7,28참조), 예수님께서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고백하였고,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넷째,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세례자 요한을 생각하면 철저한 금욕생활과 엄격한 기도생활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들은 결코 독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삼손(판관기 13,2-5.7)과 예언자 사무엘(사무엘 상 1,15-16)의 경우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벌꿀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또한 성령으로 충만한 요한은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모태에서부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증거한 예언자였습니다. 성령께서는 태중에서부터 요한을 이끄시어 주님을 알아 뵐 수 있도록 하셨고, 주님을 증거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다섯째,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와서 회개를 요구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할 것을 요구하였고, 그 표징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세례자 요한에게로 몰려와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렸고,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이 요한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말라키 3,1.24)

    요한은 죄에 떨어진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합당하게 메시아를 맞아들을 준비를 시키고, 이 백성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리는 엘리야의 사명을 가지고 탄생한 것입니다.

     

    즈카르야는 자신이 듣고 싶었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아들을 보기에는 나이가 너무도 많고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루카1,18)

    불가능할 것 같기에 즈카르야는 이렇게 천사에게 표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나 불가능이 있지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표징을 보여 주실 수도 있지만, 당신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표징을 보여 주실 때까지 내가 기다리기를 원하십니다. 나아가 비록 표징이 없다 하더라도 기꺼이 믿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고 말씀하십니다.

     

    즈카르야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믿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나 또한 하느님께 기도할 때 조건을 달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고 있지만 믿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은 버려야 합니다. 응답

  3. 관리자 님의 말:

    세례자 요한의 탄생

    세례자 요한의 부모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마르1,6)이었고, 그렇게 하느님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았습니다. 즈카르야는 사제였고, 엘레사벳의 선조는 첫 대사제인 아론이었습니다. 당시 사제는 반드시 사제의 딸과 결혼해야만 했고, 유대인들에게 있어 사제직은 친자식에게만 이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봉헌된 거룩한 사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그의 아버지가 하느님을 섬기던 일과는 매우 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즈카르야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할 때 거룩한 주님의 천사를 만나게 되고, 세례자 요한의 탄생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루카1,18)

    불가능할 것 같기에 즈카르야는 이렇게 천사에게 표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표징을 요구하는 즈카르야의 말에 가브리엘 천사는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루카1,19-20)라고 말씀하십니다. 즈카르야는 아들을 얻게 되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부족으로 표징을 요구하여 벙어리가 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즈카르야의 닫힌 입은 요한이 태어나 이름을 지을 때 다시 열리게 될 것입니다. 내가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일을 하십니다. 내가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일은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 뒤에 엘리사벳이 세례자 요한을 잉태하였고, 하느님께 이렇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루카1,25)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아기는 태중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본 아기입니다. 이 아기는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메시아 보다 먼저 오시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이 못 낳는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에게 큰 은총을 베푸시어 늦은 나이에도 아이를 가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세례자 요한)를 특별히 부르시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을 보살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습니다.(루카1,80) 그러므로 모든 탄생은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생명의 탄생에 감사하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4. 관리자 님의 말:

    아기 이름은 요한

    아이가 태어나면 여드레 만에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여드레째 되는 날, 동네 사람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습니다.(루카1,59) 그런데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아버지의 역할이었고, 그 아버지가 말을 못하면 당연히 어머니가 해야 합니다.

     

    엘리사벳은 아이(세례자 요한)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명을 부여하시기 위해 늙은 부부에게 주신 아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기는 사람들이 이래라 저래라 할 인물이 아닙니다. 이 아기는 하느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아기 이름을 요한으로 계시를 받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루카1,13)

     

    그래서 엘리사벳은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루카1,60)라고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즈카르야는 답답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이렇게 씁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루카1,63)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벙어리가 입을 열어 하느님을 찬미한 것입니다. 벙어리였다가 아기 이름은 요한이라고 글 쓰는 판에 적은 후에 입이 열려 하느님을 찬미하는 즈카르야를 본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줄도 모르고 아기 이름을 이래라 저래라 했고, 나이 들었다고, 벙어리라고 무시하던 자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즈카르야는 자신이 성소에서 받은 천사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믿지 않았기에 자신이 벙어리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이야기 해 주면서 이웃 사람들의 부족함과 무시를 탓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이 일은 유다 산악 지방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언제나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소문을 들은 이들도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1,66)하며 궁금해 하였습니다.

     

    신앙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희를 이끄시어 은총 주시는 하느님은 찬미를 받으소서.”라는 찬미와 감사이어야 합니다. 판단하고 비난하고 이간질시키며, 상처를 입히고 모함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말들은 잊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하느님 앞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 가능해집니다. 처음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자신의 처지나 상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고, 그래야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5. 관리자 님의 말:

    세례자 요한의 생애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께서 오실 것을 선포하면서 그분의 길을 준비한 예언자입니다. 요한은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였으며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의로움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을 세례자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요한은 서기 28년경부터 팔레스티나를 무대로 세례 활동을 하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한 3047일보다 훨씬 전에 정치적인 이유로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성채에서 처형되었습니다. 탄생 대축일은 624일이며, 수난 기념일은 829일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부 유대인들에게 헤로데의 군대를 멸망시킨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례자라고 불리는 요한에게 헤로데가 한 일을 복수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정당하게 그를 책벌하셨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헤로데는 요한이 선한 사람이었고,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그들이 덕을 함양하고 상대방에 대한 정의와 하느님께 대한 신심을 기르도록 하였을 뿐인데도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평범한 유대인들이 요한 주위에 모였을 때 그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 흥분이 절정에 달했으므로 헤로데는 군중들을 설득하는 요한의 놀라운 능력이 모종의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군중들은 요한이 권고하는 것은 무엇이나 할 것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이 폭동에 불을 붙이기 전에 먼저 공격하여 그를 제거하려고 작정하였다. 헤로데는 이렇게 하는 것이 상황이 악화되어 위기에 빠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헤로데의 음모로 인해 요한은 앞서 언급한 마캐루스 성채로 사슬에 묶여 압송되었다. 거기서 그는 처형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헤로데 군대가 패배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벌하시고 요한의 원수를 갚아 주시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상과 같은 요세푸스의 진술은 죄의 용서를 위한 유일회적인 세례를 베풀었기에 별칭으로 세례자라고 불렸다는 점과 요한이 많은 군중들을 매혹시켰고 이를 두려워한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점은 복음서와 서로 일치합니다.

    아울러 일부 유대인들은 헤로데가 서기 36년 나바테아 왕국의 아레타스 4세에 의해 군사적으로 패한 사실을 요한의 부당한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으로 해석하였을 만큼 요한의 죽음 후에도 그를 흠모하는 군중들이 있었음에도 신약성경과 일치합니다. 또한,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요한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요한의 제자들과의 경쟁 관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 1장은 요한이 즈카르야라는 사제의 외아들로 태어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요한이 사제직의 계승을 거부하고 광야로 나가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죄의 용서를 거부하고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은 분명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요한의 성장 과정을 언급하는 루카 복음 180절은 요한과 쿰란 공동체와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에세네파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입양하여 에세네의 관습에 따라 교육을 시켰던 것처럼, 어린 요한은 쿰란 공동체에서 종교적 훈련을 받고, 유대의 광야에서 독자적인 예언자요 금욕주의자로 처신하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세상을 기피하고 광야에서 탈속의 삶을 살면서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정(), 부정(不淨)의 기준에 따라 차별했던 쿰란 공동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6. 관리자 님의 말:

    교황주일

    교황이라는 명칭의 어원 Papa(아버지)는 본래 지역 교회의 초고 장상(주교, 대수도원장, 총주교)를 부르던 말이었는데 중세 초기부터 차츰 로마의 주교에게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교황은 로마교구의 교구장 주교이며 세게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입니다

    교황은 이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교회를 세우신 다음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 가운데 베드로를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아 교회를 다스리도록 위임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들이 곧 교황입니다.

    교황은 1059년부터 추기경단의 비밀 투표로 선출되었으며, 새 교황은 착좌할 때 관습에 따라 새 이름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현재 교황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66대 교황입니다. 교황은 로마의 주교,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서방 교회의 최고 지도자, 바티칸 시국 원수 등 여러 가지 직함으로 불립니다.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29)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내면서, 교황이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훌륭하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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