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대림 제 1주일; 깨어있음


“대림시기”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시기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축일을 준비하고 종말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깨어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대림절은 보속보다는 기쁨을 강조하는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한 생을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 왔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주님께서 오심은 기쁨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시기는 축제기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법은 사순절과 달리 대림절 동안은 단식과 금육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례력은 대림 첫 주일부터 12월 24일까지를 포함하는 4주간을 대림절로 정하고 있습니다. 태양력에 의해 예수님의 성탄 대축일인 12월 25일이 무슨 요일이 되느냐에 따라 대림절은 가장 빠르면 11월 27일부터, 가장 늦으면 12월 3일부터 시작됩니다.

대림절의 특징은 대림환과 대림초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림환은 전나무 가지와 같은 푸른 나뭇가지를 둥글게 엮은 환에 4개의 초를 꽂아 만듭니다. 푸른 나뭇가지와 둥근 환은 생명과 공동체를 상징하며 4개의 초는 東․西․南․北, 곧 온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생명을 얻고 있는 공동체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들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는 말씀처럼 그렇게 주님의 빛으로 세상을 비출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빛이 온 세상에 비추어질 때 주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십니다. 그러므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깨어 있는 신앙인들에게” 대림시기는 기쁨의 시기입니다.

 

1. 우리가 해야 할 일들

① 힘을 내어라.

하루하루 신앙생활 하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우리에게 밀려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렇게 시름에 젖어서 고개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보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 힘들어했던 그 모든 수고와 땀방울을 예수님께서는 구원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21,28)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그것이 멸망의 표징이겠지만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던 이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그렇게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힘을 내야 합니다. 확실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② 깨어 있어라.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깨어 있는 신앙인들은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 삶을 위해 바오로 사도가 다음과 같이 권면하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밤이 거의 새어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진탕 먹고 마시며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로마서 13,12-13)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덫처럼 갑자기 덮친다”는 말씀은 언제나 긴장감을 줍니다. 그러나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갑자기 나타난다 할지라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붙잡는 덫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말로만 사랑하고 말로만 봉사하는 것, 용서하지 않고 화해하려 하지 않는 것,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 세상살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신앙생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덫이 되어 나를 멸망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그러므로 이 대림시기를 성실한 신앙인의 자세로 보낸다면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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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대림 제 1주일; 깨어있음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공동체가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티모테오를 테살로니카로 보냈습니다. 테살로니카 공동체의 힘을 북돋아 주고 공동체의 믿음을 격려하여, 환난 속에서 아무도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티모테오로부터 테살로니카 형제자매들이 굳건히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종말을 넘어선 희망과 믿음을 가질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테살로니카 전서를 쓰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먼저 세 가지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 둘째,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 셋째, 테살로니카 공동체에 대한 바오로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먼저 주님 때문에 주님 안에서 생겨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랑에 머물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사랑과 자비를 베풀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가지고 있기에 그 마음은 사랑의 불꽃이 되어 다른 쪽으로 불타오르게 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어떤 대상을 매우 좋아해서 아끼고 즐기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상대방을 향하여 마음을 열게 하고, 끌리게 하고, 좋아하게 하고, 아끼게 하여 줍니다. 그리고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이 사랑이 지나쳐 나 자신을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하셨고, 사랑 안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 안에 담긴 사랑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1테살3,12-13)

     

    그런데 하느님 아버지 앞에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선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이라는 것은 한자를 보면 하품 흠()자를 사용합니다. 하품이라는 것은 사람이 피곤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하품이라는 것은 같은 종류의 물건 중에서 가장 품질이 낮은 물건을 말합니다. 그래서 흠은 먼저 그 사물의 불완전하거나 잘못된 점을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것들 중에 완벽한 것이 얼마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들에는 몰라서 그렇지 다 조금씩 흠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흠은 보기 나름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꽃은 예쁘지만 너무 빨리 자는 것이 흠이라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것이 있으면 그 불완전함을 극복할 수 있는 이들이 그것을 완전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불완전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둘째로 흠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인격이나 언행 따위에 나타나는 결점을 말합니다. 약속을 잘 안 지키는 것도 흠이 될 수 있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흠이 될 수 있고, 부정적으로 접근하여 상대방의 흠을 잡아내고 상대방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들이 그의 흠이 될 수 있습니다. 또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 순간에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개인의 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흠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고, 나 또한 흠이 있는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흠은 물건이 깨어지거나 상해서 긁힌 자리를 말합니다. 어떤 것의 아주 미세한 흠이나 결함이 있으면 그것의 가치는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동차가 무엇인가에 부딪쳐서 흠이 생긴다면 속이 상할 것입니다. 아주 귀한 도자기가 바닥에 떨어져서 이가 빠지고 금이 갔다면 그 가치는 뚝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흠이라는 것은 다른 것은 안 그렇지만 그것만 정상적인 것보다 질이 떨어지거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내가 보기에 흠이 없는 그도 나 자신이 흠이 많다고 분명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만이 흠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우리는 테살로니카 서간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테살로니카 공동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를사도들로부터 배웠습니다. 그리고 테살로니카 공동체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고하고 당부합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1테살4,1)

    배운 것을 살아가는 삶, 사랑을 실천하는 삶. 그 삶이 바로 흠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리고 흠 없이 살아간다.”는 것보다 그 흠을 메꾸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 그렇게 살아갑시다. 흠을 메꾸며 살아갑시다. 그럴수록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거룩하게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2. 관리자 님의 말:

    전례주년이란?

    교회는 그리스도의 전 신비를 한꺼번에 경축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수난과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성령강림 등의 전 생애의 사건을 일년이라는 주기를 통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전례주년이라고 하고, 그것을 다시 일 년 가운데 특정한 날들에 배열해 놓은 것을 전례력이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전례주년 이라는 주기를 통해서 1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또 그렇게 각각 다른 3년을 지냅니다. 그렇게 3년을 주기로 교회의 전례주년은 반복됩니다. 이 전례주기 안에 특정한 주제는 크게 대림시기, 성탄시기, 사순시기, 부활시기, 연중시기로 구분하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룩하신 구원 업적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월별로 모아놓은 것을 전례력이라고 합니다.

    대림1주일부터 성탄 전까지를 대림시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탄시기는 기쁨의 축제로서 더 연장해서 주님세례 축일까지 이어지게 되고, 여기서부터 연중 1주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연중시기가 지나서 부활을 준비하며 재의 수요일을 지내게 됩니다. 재의 수요일은 2월 중순에서 3월초에 있게 되며, 이날부터 부활 때 까지는 사순시기가 됩니다. 또 부활시기는 성령강림대축일로 끝나고 연중시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왕 대축일로서 연중시기가 끝이 납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연중시기가 끝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의 여정과 목적이 왕이신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중시기를 그리스도왕 대축일로서 막을 내리게 되고 다시 기다림을 시작하는 대림시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례적인 정신은 기억입니다. 어떤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의미를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축일이 되면 그것을 다시 기억하면서 그러한 의미를 지금 현재 이 순간에 되새기게 하며, 그 축일을 지냅니다. 이것이 바로 전례적인 정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축일들은 교회 안에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서 축일을 지내게 되었고, 주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부활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하여 사순시기가 제정되었고, 부활을 살아가기 위하여 부활시기가 제정되었습니다. 성탄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하여 대림과 성탄시기가 제정된 것입니다.

    전례주년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례주년은 부활과 성탄을 중심으로 크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전례주년은 그리스도께 관계되는 고유 축일들로 이루어지고,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축일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순위가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함께 동참한 성인성녀들의 축일들을 지내면서 성인성녀들의 삶을 살아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제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대림시기를 잘 보내어 성탄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3. 관리자 님의 말: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시기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축일을 준비하고 종말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깨어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대림절은 보속보다는 기쁨을 강조하는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한 생을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 왔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주님께서 오심은 기쁨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시기는 축제기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법은 사순절과 달리 대림절 동안은 단식과 금육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례력은 대림 첫 주일부터 1224일까지를 포함하는 4주간을 대림절로 정하고 있습니다. 태양력에 의해 예수님의 성탄 대축일인 1225일이 무슨 요일이 되느냐에 따라 대림절은 가장 빠르면 1127일부터, 가장 늦으면 123일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는 분명 세상의 변화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바로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랜 전통의 배경을 지닌 표징들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징들로 그날을 표현하십니다. 바다의 파도와 풍랑, 해와 달과 별들에 나타나는 표징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나타날 것 들입니다. 그런데 믿은 이들에게 두려움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표징들을 보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때를 보면 그동안 준비한 삶들을 더욱 잘 하라는 것입니다. 즉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성실한 삶을 살아가면서 깨어 기도하는 삶은 이러한 표징들이 나타날 때 오히려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른 이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다시 오심은 기쁨이고 희망입니다. 주님의 심판은 믿는 이들에게 구원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의 다시 오심은 위로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던 삶을 살아오던 이들,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기 위해 수많은 밤을 눈물로서 지새우며 기도하던 이들, 누가 오른 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 대던 이들, 억지로 오리를 가자하여도 십리까지 기꺼이 가주던 이들, 이들에게 주님께서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로가 바로 구원입니다.

     

    주님의 날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일 주님께서 오신다면 나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 근심걱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의 자비하심에 희망을 걸고 있으니 자비를 베풀며, 주님의 자비에서 멀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촛불 하나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도 그렇게 빛으로 타올라 주님을 향하며, 성탄을 기다려 봅시다.

  4. 관리자 님의 말:

    대림환과 대림초

    대림절의 특징은 대림환과 대림초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림환은 전나무 가지와 같은 푸른 나뭇가지를 둥글게 엮은 환에 4개의 초를 꽂아 만듭니다. 푸른 나뭇가지와 둥근 환은 생명과 공동체를 상징하며 4개의 초는 西, 곧 온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생명을 얻고 있는 공동체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들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는 말씀처럼 그렇게 주님의 빛으로 세상을 비출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빛이 온 세상에 비추어질 때 주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십니다. 그러므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깨어 있는 신앙인들에게대림시기는 기쁨의 시기입니다.

    또한 대림초는 대림 제1주일에는 한 개의 초에, 2주일에는 두 개의 초에, 3주일에는 세 개의 초에, 마지막 4주일에는 네 개의 초에 모두 불을 밝힙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탄이 가까울수록 빛이 더욱 밝게 빛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5. 관리자 님의 말: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이들이 해야 할 일

    하루하루 신앙생활 하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우리에게 밀려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렇게 시름에 젖어서 고개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보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 힘들어했던 그 모든 수고와 땀방울을 예수님께서는 구원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21,28)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던 이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그렇게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힘을 내야 합니다. 확실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루카21,34)

    왜냐하면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자녀들은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먼동 틉니다. 잠을 깨세요, 동녁 하늘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 찬 이 새벽. 눈을 뜨세요, 꿈을 깨세요, 어둠의 옷 벗고, 광명의 갑옷을 어서 입으세요, 이 좋은 아침. 성인되라고 새벽인사를 우리 다 같이 기쁘게 나누며, 감격에 잠긴 채 일어 납시다. 그대 나던 날 생각나세요, 물과 성령으로 천사들 옆에서 새 꽃 한 송이 피어나던 날 피어나던 날. 저 하늘에서 별 둘 따다가 드리고 싶어요. 하나는 기쁨의 하나는 사랑의 선물이 되게.

     

    충실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갑시다. 오늘을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일을 살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상의 삶도 중요하지만 천상의 삶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 보시기에 단정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바오로 사도가 다음과 같이 권면하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밤이 거의 새어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진탕 먹고 마시며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로마서 13,12-13)

    또한 깨어 있음은 기도함으로 드러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깨어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정신으로 늘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도생활에 충실합니다.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십시오.”(에페소 6,18). 라는 말씀처럼 언제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과 그 시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대림시기에 깨어 있는 삶을 연습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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