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주님 수난 성지주일


호산나! 저희를 구원하소서.

구원사업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제자들은 아무도 타지 않은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걸치고, 예수님을 나귀 위에 올라타시게 하였습니다(루카19,35).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아가실 때에 그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왕의 등극식을 보는 듯합니다. 예후가 왕으로 불렸을 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재빨리 옷을 벗어 돌층계에 깔고는 예후를 그 위에 모시고 나팔을 불며 “예후가 왕이 되셨다” 하고 외쳤습니다( 2열왕9,13). 예루살렘 입성은 힘과 권력으로 통치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희생의 봉사를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수난과 죽임을 당하시게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주님 수난 성지주일”로 지냅니다.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환호하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호하던 무리가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외치는 폭력배로 돌변하는 모습을 통해 내 모습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성지주일을 맞이하면서 주님의 수난에 더욱 깊이 동참하고, 주님과 함께 부활할 수 있도록 더욱 경건한 삶을 다짐해 봅시다.

1.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

예수님의 지시를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귀가 있는 것을 보고 나귀를 풀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그 주인이 “왜 그 어린 나귀를 푸는 거요?”(루카19,33)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루카19,34)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 어린 나귀는 메시아가 나타나실 때 타셔야 할 것이므로 아무도 탄 적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게 어린 나귀는 예수님을 위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말을 탔지만, 가난한 이들과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타는 전형적인 가축은 나귀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즈카르야가 예언한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9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10 그분은 에프라임에서 병거를,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시고 전쟁에서 쓰는 활을 꺾으시어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 그분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즈카르야9,9-10).

 

희생물로 바쳐질 동물은 일상적인 일에 사용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느님을 위하여 잘 준비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메시아 왕이신 예수님께서 타시는 동물은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여야 했습니다.

나귀 주인은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라는 말씀에 기꺼이 어린 나귀를 내어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내게도 필요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맡겨 놓으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주님께서 필요하실 경우 당연히 쓰실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움켜잡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필요하시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도 필요합니다.”하고 움켜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 군중들의 찬미

예수님께서 어느덧 올리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이르시자, 제자들의 무리가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 때문에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하였습니다(루카19,37). 제자들의 기쁨은 지금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과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들도 무리를 지어 군중들 사이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을 본 모든 군중들은 어린 나귀를 타고 나아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즈카르야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았을 것입니다. 즈카르야 예언서에 의하면 메시아는 올리브 산으로부터 그 도시에 들어가시리라고 기대되었기(즈카르야 14,4)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에 자기들이 목격한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루카19,38).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을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자 군중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하며 예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당시 성전에 다다른 순례객들은 성소로부터 나온 사제들에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시편118,26)라는 축복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이 축복 양식이 예수님께 표하는 경의의 외침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찬양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가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루카19,38)이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임금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이 되셨고, 그 구원사업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니 인간 편에서 보면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복되시어라.”(루카19,38)라고 찬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메시아 왕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구원에 감사하며“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이라고 환호하는 것입니다.

 

4. 군중들의 환호를 당연한 것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제자들이 침묵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19,40)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침묵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침묵의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찬양하지 않으면 돌들이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성지가지를 들고 “호산나! 저희를 구원하소서.”하며 외쳐야 합니다. 나의 임금님을 찬미 찬송”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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