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월요일


마리아! 그녀의 사랑!

1.말씀읽기: 요한12,1-11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다 (마태 26,6-13 ; 마르 14,3-9)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유다인들이 라자로까지 죽이기로 결의하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재의 수요일에 단식을 한 형제자매들에게 몇 가지 나눔 주제를 주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나에게 빵이 세 개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였습니다. 그랬더니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먹고 하나는 배우자에게, 그리고 하나는 자녀에게 주겠다는 사람. 하나는 자신이 먹고, 두 개는 나눠 주겠다고 하는 사람, 그리고 모두 나누어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이렇게 썼습니다. “아침에 하나, 점심에 하나, 저녁에 하나.” 그는 나눌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면 나만 보이고, 주님을 보면 형제자매들이 보입니다. 유다는 자신만을 바라보았고, 마리아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아낌없이 주는 사람들. 자신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은 마리아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유다와 같은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아까워합니다. 오늘 유다와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나는 누구를 바라보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2.1. 베타니아로 가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십니다.(요한12,1) 그곳에는 라자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습니다(요한12,2). 이 식탁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왜냐하면 죽었던 라자로가 살아나서 예수님 곁에서 음식을 먹고 있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르타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위해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또한 라자로 가족을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이 가족과 함께 잔치에 참여하고 계시니 앞으로 펼쳐질 수난과 죽음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으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2.2. 마리아의 사랑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오시자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드립니다.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요한12,3)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당시의 풍습에는 머리에 한 두 방울 향유를 붓는 풍습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향유를 모두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이 행동은 가장 비천한 사람임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마리아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위해서라면 아까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하였습니다.(요한12,3).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죽은 오빠 라자로를 다시 살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주님께 향유를 발라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사랑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마리아의 이 사랑이 예수님의 수난의 고통을 조금은 위로해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직 마리아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녀의 눈에는 오직 예수님만 보일 뿐입니다.

 

2.3. 유다본색

마리아는 그녀의 사랑을 드러냈는데, 유다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냅니다. 마리아의 행동을 보고 유다가 이렇게 불평을 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12,5) 하고 말입니다. “유다본색.” 유다가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라는 말은 유다가 은전 삼십 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을 다시금 기억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핑계로 유다는 자신의 이기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니 삼백 데나리온이라면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한 돈을 쓰지 않고 모은 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습니다.

 

① 예수님을 팔아 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요한12,4)

유다는 마리아의 행동을 보고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12,5)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 이유를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요한12,4)이 라는 말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잘 드러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어떤 의견을 제시할 때 그 의견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진심어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지, 사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지.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좋은 마음을 가진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의 말에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왜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기에 그렇게 말했던 것임을 기억하면서,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유다의 말과 같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② 예수님께로부터 마음이 멀어진 유다의 행동

유다는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12,5)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도둑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유다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요한12,6)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유다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습니다.(요한12,6) 우리는 이것을 위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유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신 것일까요? 사실 유다가 재정을 담당한다는 것은 그 정도로 믿음이 있었고,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가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마음이 떠나면서 그가 변한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 나라보다는 자기 살 궁리에, 아니 자기 죽을 궁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던 것입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마음 하나 잘못 먹으면 금방 변합니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뀝니다.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뀝니다. 유다도 그렇게 생각이 바뀌는 돈을 꺼내 쓰는 습관이 생겨났고, 그렇게 생활이 바뀌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생각이 바뀌니 유다는 재정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그런 행동은 습관으로 바뀌어서 부정적인 생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그것이 유다의 삶이 됩니다. 하지만 그의 생활은 영생으로 이끌어주지 못하고, 멸망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바뀌게 되면 영생까지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은 죽은 라자로를 부활하게 했고, 그것은 또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내 행동이 달라지고, 더 나아가 영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2.4. 마리아의 사랑을 받아들이시는 예수님

①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요한12,7)

도둑 유다는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을 토해냈습니다. 만일 삼백 데나리온을 유다에게 맡겼다면 그는 그 돈을 자기 마음대로 썼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알고 계셨습니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유다의 말을 들었을 것이고, 자기들끼리 이런 저런 말들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요한12,7) 그리고 마리아가 하는 일의 본질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요한12,7)

 

발에다 기름을 바르는 것은 죽은 사람에게만 하는 것인데, 시체를 씻은 후에 온몸에다 기름을 발랐습니다. 향기로운 기름은 시체의 악취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기름부음은 예수님의 장례 예식을 미리 거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수난과 고통을 미리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게쎄마니에서 피땀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 본다면 그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마리아의 사랑을 내가 못해드린 것에 대해 죄송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마리아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②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무딘 마음을 지적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왜 그런 마음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마음에는 다른 것이 있으면서도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들을. 예수님을 께서는 그들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요한12,8)

 

이 말씀을 들은 유다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재물에 가 있음을 예수님은 아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을 배반하려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계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그렇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용서를 청할 수 있고, 생각을 바꾸면 내가 비판하고 있는 것들을 칭찬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때 고집을 피울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주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2.5. 몰려드는 사람들(요한12,9)

① 보고 싶은 사람들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고 몰려든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두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습니다. 죽었던 라자로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라자로를 살리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그들은 예수님께로 나아왔기에 볼 수 있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로 나아갈 때, 주님을 뵐 수 있고,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업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② 예수님과 라자로를 죽이려는 사람들(요한12,10)

그런데 군중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칼을 갈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라자로는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죽었던 그를 살려주셨다고 증언할 사람은 바로 라자로입니다. 수석 사제들의 눈에는 예수님과 라자로는 없어져야 할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라자로까지 “죽이기로 결의”(요한12,10)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요한12,11)입니다. 라자로가 자신을 다시 살리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고 세상에 증언한다면 지도자들은 더 큰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눈에는 예수님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눈에는 돈이 보이고, 수석 사제들의 눈에는 자신들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백성들 때문에 예수님과 라자로는 죽어야 할 존재로 보입니다. 같은 분을 바라보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마리아와 같은 마음입니까? 아니면 유다나 수석 사제들과 같은 마음입니까?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마리아의 사랑을 바라보면서 나는 예수님께 어떤 사랑을 드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내가 만일 마리아였다면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 드렸을까요?

 

③ 유다는 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라자로까지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시기와 질투 때문에 수석 사제들처럼 그렇게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4. 실천사항

① 마리아의 사랑을 본받아 예수님께 사랑 드리기

② 유다의 모습을 내 안에서 찾아보기

③ 수석 사제들의 모습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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