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부활 제 4주일, 성소주일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1.말씀읽기: 요한 10,27-30

2. 말씀연구

오늘은 착한 목자 주일(성소주일)입니다. 착한목자이신 예수님을 참 목자로 받아들이고, 목자의 부르심에 “예”하고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삶을 살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각자의 부르심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우리는 “성소”즉 거룩한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날은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성소”를 생각하게 하고, 신학교나 수도회에서는 청소년들이나 예비 성소자들을 초대하여 부르심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래서 사제로서의 삶과 수도자로서의 삶을 그려보게 하고, 꿈을 심어주고 노력하게 해 줍니다.

 

또한 사제성소나 수도성소만이 아니라 “혼인성소”도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성소중의 하나가 바로 “혼인성소”입니다. 대다수의 혼인 성소자들이 사제성소나 수도성소를 가치 있고 소중하게 생각해서 사제성소나 수도성소가 돋보이고 있지만, 사실 사제의 삶이나 수도자의 삶보다도 몇 배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바로 혼인성소입니다.

 

그러므로 혼인생활을 하는 형제자매들이 자신들이 부르심 받은 것을 생각하고, 자신들이 꾸민 가정이 거룩한 성소이며, 주님의 모시고 살아가는 교회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주어진 삶을 더욱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갈 때 혼인성소는 더욱 빛을 내고, 세상을 비추어 사제성소와 수도성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모든 사제성소와 수도성소는 혼인성소 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요한 10,27)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실천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아드님을 통하여 닫혔던 하늘의 문을 활짝 열고, 아드님의 희생제사를 통하여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며, 아들을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희생제물이 되시는 메시아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자유를 주고, 이민족의 억압에서 해방을 주는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로마의 식민지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메시아 개념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이 예수님을 그런 메시아로 오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늘 기적을 베푸신 다음에는 조용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입니다.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몸소 인간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메시아에 대한 틀을 버리지 못하니 예수님을 목자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요한 10,27)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② 양떼에게 생명을 주시는 참된 목자

참된 목자는 자기 양들을 돌봅니다. 참된 목자는 양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양들을 위해서 몸을 바쳐 희생합니다. 이 목자는 양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사나운 짐승들이나 도둑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합니다. 목자가 자신의 양떼를 지키고 있을 때는 그 어떤 사나운 동물도, 그 어떤 도둑도 양들을 헤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요한10,28)

 

하느님께서는 대사제나 바리사이파나 율법학자들이 백성들을 돌보며 목자의 역할을 하면서 백성들을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자신들의 욕심만을 챙겼습니다. 그들은 참된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율법조항들과 조상들의 전통을 일반 백성들이 온전히 지키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 알지도 못할뿐더러 다 지킨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백성들의 목자인 지도자들의 눈에는 일반 대중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들 눈에는 백성들은 죄인으로 보였습니다.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죄인으로 바라보니 목자와 양 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생겨났습니다. 목자들은 백성을 돌보지 않고 단죄했고, 백성들은 결국 길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목자 없는 양 떼로 바라보십니다. 이제 참된 목자께서 백성들을 돌보십니다.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목자 곁으로 모이는 양떼는 언제나 푸른 풀밭으로 인도되어 배불리 먹고, 물가로 인도되어 갈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목자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③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얻게 되는 것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양들을 아들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그 양들은 하느님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고,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이시며, 하느님이심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께로만 향하고, 다른 이들(거짓 목자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또한 도둑이나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요한10,29)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이 구원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의 불완전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인정해 주시고, 변화되기를 바라십니다. 그 모습까지도 사랑해 주십니다.

 

양들은 깻묵 타는 냄새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어느 날, 깻묵이 보관된 헛간에 불이 붙었는데 양떼들이 깻묵이 타는 고소한 냄새를 맡고 불속으로 달려들려고 하였습니다. 목자는 간신히 양떼를 불타는 헛간에서 떼어 놓았는데, 양들은 그 사나운 불길로 달려들었기에 몇 주간을 빌빌댔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양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갈 때 화나지 않으셨습니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목자는 대답을 했습니다.

“양들의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양들이 깻묵냄새에 취해서 불속으로 뛰어들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막는 것뿐이지요. 깻묵창고에 또 불이나면 양들은 또 불속으로 뛰어들려 할 것입니다.”

 

깻묵냄새에 취해서 죽는 줄도 모르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양들과 같이 나 또한 마찬가지로 별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뛰어듭니다. 내가 죽는 줄도 모르고 뛰어듭니다. 하지만 목자가 양들을 돌보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나를 돌봐 주십니다. 비록 내가 지금 죄를 짓고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나를 아시고 나를 이끄시고, 나를 사랑으로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나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목숨까지 내 놓으십니다. 그분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우리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고, 구원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④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나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파견하셨으니 예수님의 뜻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고, 예수님의 일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 양떼를 예수님께 맡기셨기에 예수님의 사람은 결국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국 아버지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 안에 계셨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셨고,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⑤ 주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 될 차례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은 하나이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을까요? 그리고 나는 형제자매들과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을까요? 주님 안에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불신과 교만은 하나가 아니라 하나씩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함께 예수님의 일을 하고, 함께 예수님께 기도하지만 불신과 교만은 하나가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주님 안에 하나가 될 때, 나는 주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늘 주님께로만 향할 수 있고, 형제자매들 안에서 주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하나 될 때, 주님의 부르심에 언제나 “예”하고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나라면, 내 옆에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은 주님의 자녀들이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과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더더욱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께서 이끄시는 곳으로, 생명에로 나아가려고 노력해 봅시다. 또한 내 형제자매들에게 어떤 부족함이 있다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겸손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내 삶을 변화시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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