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사람들의 삶의 자세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①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② 깨어 있어라 ③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두려움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하늘에 재물을 쌓는다는 것, 그리고 충성스러운 종과 같이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들은 모든 신앙인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고, 하고 있는 것이고, 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근본 자세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이런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 오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켜 봅시다.
2.1.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루카12,32)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시고, 작은 양 떼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 곁으로 다가온 양떼들은 오로지 목자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변의 모든 위험은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백성들을 예수님에게서 떼어 놓으려 했고, 더 나아가 예수님을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이런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유혹에 빠지게 되고, 그 유혹은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시면서 큰 상급을 약속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기꺼이 하늘 나라를 주시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하느님 나라에 비하면 지금 겪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힘을 내야 합니다. 두려움은 유혹이고, 그 유혹은 나를 예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허상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아쉬움이나 걱정들”은 주님과 함께 이겨내야 합니다.
2.2.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의 재산을 커다란 창고에 쌓아 두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으면 그 재산들은 그와 아무 상관이 없어집니다. 창고에 쌓여 있는 그 재산들은 하느님 나라에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쌓아놓는 곳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지고 갈 수 있는 재산으로 만들고, 하느님 나라에 재물을 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자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베푸는 모든 것들은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① 자선을 베풀어라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 방법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루카12,33)
자선을 베푸는 것은 내 창고에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고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베푸는 자선을 기억해 주시고, 내가 베푼 자선을 받은 이들도 나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 줍니다. 그렇게 쌓여진 것들은 결코 빼앗기거나 유통기간이 지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자선을 베풀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고 하느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주변에 가난한 이들이 보이고, 내가 내 재물을 투자해야 할 곳이 보입니다. 내가 투자해야 하는 곳은 부동산이나 금은보석이 아닙니다. 그런데 세사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하느님이 보이지 않고, 가난한 형제자매들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가난한 형제자매들이 보이고, 재물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는 세상의 이익이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재물로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하느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이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② 내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나의 보물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도 있고,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내가 좋아하는 보물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루카12,34)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7,24).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재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온통 재물로 향하고, 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구원에 필요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낚시를 시작한 사람들은 온통 월척 생각뿐이고, 골프를 시작한 사람들은 넓은 공간만 보아도 골프장을 생각하고, 당구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모든 벽이 당구대로 보입니다. 내 마음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곳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요? 무엇을 갈망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2.3.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는 이들은 하느님 나라에 보물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에 보물을 쌓으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깨어 있는 자세입니다.
①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루카12,35)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다는 것은 늘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옷자락을 띠로 매어서 활동하기 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한복을 입고 일하시는 어머니들이 한복 허리춤에 띠를 띠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등불을 켜 놓고 있는 다는 것은 준비를 하고 있는 다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주인을 언제든지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등불을 켜 놓고 살아가는 삶은 어둠 속에서 나를 감추고, 내 죄를 덮고 깨끗한 척 살아가는 삶과는 반대되는 삶입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빛 속으로 나아가 자신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님의 사랑을 굳게 확신하고 주님께 온전히 나를 맡겨야 합니다.
②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자세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다는 것은 주인이 돌아왔을 때 즉시 주인을 위해서 시중을 들려고 준비하는 이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루카12,36) 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인은 밤늦게 혼인잔치를 벌이는(마태25,1) 습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혼인잔치에 간 주인을 영접하기 위해 종들은 등불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는 슬기로운 종의 자세”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예수님을 말하고,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것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③ 행복한 종
예전에 부모님이 장에 가시면 아이들은 부모님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장에서 맛있는 것을 사오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부모님들이 혼인집에 가시면 꼭 주머니에 사탕이며 떡 등을 싸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님이 언제 오시나 졸면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깨어 기다린 아이들이 사탕과 떡 등을 받아먹는 것처럼, 예수님을 깨어서 기다린 제자들도 주님께로부터 은총을 받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루카12,37)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주인을 기다린 종들에게 오히려 주인이 시중을 들어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시중을 들어 주신다는 것은 한 생을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 온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주님께로부터 복을 받게 될 것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어떤 영광을 차지하게 될지를 미리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광에 비추어본다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들이나, 지금 누리고 있는 기쁨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깨어 기다리는 종들이 행복한 이유를 잘 알고 있는 신앙인들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이 기다림의 시간을 기쁘게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처음의 그 아름다운 마음이 무뎌집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되고, 누가 열심히 하려하면 비웃거나 방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찰과 통회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늘 새롭게 하고 언제나 처음처럼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주인을 깨어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할 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마지막 날에 큰 은총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또한 은총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연히 해야 될 몫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나의 삶이어야 합니다.
예전에 신문에 자신의 개를 위해서 막대한 수술비를 지출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개는 좋은 애완용 개도 아니었지만 그가 퇴근을 해서 대문을 열면 항상 그 개가 반겨 줬다고 합니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쪽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가족들은 그 개처럼 그를 맞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공부하기에 바빴고, 아내는 텔레비전이나 모임에 바빴고, 그리고 더러는 피곤해서 먼저 잠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변함없이 그를 맞아 주던 존재가 개였기에 그 개가 아팠을 때 막대한 돈을 들여서 그 개를 고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주인을 향했던 그 마음이 보상을 받았던 것입니다.
④ 오시는 주인을 맞이한 종들의 행복
다시 오시는 주님은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루카12,38)라고 말씀하시면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만일 외출을 해서 늦게 들어왔는데 가족들이 모두 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보신다면 주님께서는 얼마나 행복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의 은총을 받는 나는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⑤ 생각지도 않을 때에 주님께서는 오신다.
신앙인들은 늘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예수님께서는 도둑의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루카12,39) 도둑이 자신의 집의 담 밑에 구멍을 뚫고 들어오려 할 때, 주인이 그것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막을 것입니다. 도둑을 막으면 손해가 없습니다. 그러나 도둑이 뚫고 들어와서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을 훔쳐서 달아난다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주인은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잘 지켜야 합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를 정확히 안다면 틀림없이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늘 깨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준비하는 삶은 나를 영광스럽게 할 것이고, 준비하지 못하고 세상 것에만 집착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나는 주님의 날에 당황하고, 더 나아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12,40)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늘 준비하는 삶, 성실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2.4. 슬기로운 집사와 어리석은 집사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루카12,4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슬기로운 집사와 어리석은 집사의 이야기를 해 주시며 슬기로운 집사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렇게 슬기로운 집사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당연히 그렇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할 일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포함될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이 행복한 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내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깨어 있는 모습을 통해서 그들도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깨어 있는 형제자매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① 슬기로운 집사
집주인이 집을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자기가 없는 동안을 대비하여 집사(관리인)에게 집안을 제대로 보살피도록 책임을 맡겼습니다. 집사(관리인)는 주인이 아니라 다만 관리하는 사람일 뿐이고 따라서 주인이 바라는 대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충성스럽고 슬기로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슬기로운 집사를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루카12,43-44)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종. 충실 한 종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보든 안보든 간에,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읿니다. 그 충실한 삶이 나에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러므로 성실하게 변함없는 자세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들이 성실하게 깨어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교회를 돌보고 이끌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사도들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② 어리석은 집사
슬기로운 집사와는 달리 어리석은 집사는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루카12,45)하고 생각하며 못된 짓만을 골라했습니다. 자신의 알량한 지위를 이용하여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여 방탕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루카12,46)오시게 된다면 그 악행을 보게 될 것이고, 그의 운명은 불충실한 자들이 겪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즉 멸망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재림)을 생각하지 않고, 현세의 것들만을 추구하며, 의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바로 이러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이익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유혹이 있습니다. 관리인에게 유혹은 바로 “주님이 더디 오시겠지”라는 것입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불충한 종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오늘의 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전혀 기다리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도 않고, 준비하지도 않고, 안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나 자신”임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③ 불충실한 이가 받게 되는 벌
“성실한 종”에게는 행복이 선언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충실한 종에게는 멸망이 선고됩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루카12,47)라는 것은 엄한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풍습에 의하면 그런 종들은 칼로 전신을 동강을 냈다고 합니다. 또한 매를 많이 맞는다는 것은 그냥 얻어맞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장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영원한 벌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상을 받을 사람도 있겠고, 벌을 받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기준은 “받은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였느냐? 그렇지 못하였느냐”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믿음 생활을 하는 신앙인들은 누구나 다 항상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④ 맡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주인의 뜻을 알고 있으면서도 따르지 않은 종은 엄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더 큰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매를 맞는 다는 것은 보통 종들이 받는 벌인데 여기서는 내세의 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과 계획을 전혀 전해 받지 못한 사람은 벌을 좀 덜 받을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루카12,48) 모르고 한 것들은 알고 한 것보다는 그 죄의 무게가 가볍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인이신 주님의 뜻은 이제 온 세상에 선포되었고, 모든 이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몰랐습니다.”라는 말이 이제는 통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을 더욱 알려고 노력하고,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12,48)는 것은 주어진 책임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주님과 함께 하면서 주님께로부터 더 큰 가르침과 은총을 받았고, 사명을 수여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불충실한 것과 신자들이 불충실한 것은 벌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직책을 부여받은 사람들의 불충실이 더 큰 죄가 되는 이유는 그의 불충실한 행동을 통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신자들에게는 모범이 되지 않으며 “책임 맡은 사람들도 저러는데…,”하면서 그들의 삶이 충실에서 멀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나는 관리인입니다.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나는 슬기롭고 충성스러운 관리인입니까? 나에게 주어진 직무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바꾸어야 합니다. 두려움을 버리고,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충실한 삶으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며, 내 주변에 있는 형제자매들도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더욱 풍성한 상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